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27화 (27/40)

〈 27화 〉 부원간의 첫만남

* * *

“예나, 무슨 일 있어?”

“왜?”

“아까 리나랑 싸우는 거 같아서…….”

“아아, 싸운 게 아니라 잠깐 대화한 거니까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폭풍 같은 대화가 지나가고, 큰 소란 없이 서로 떨어져 앉자, 난 대신 걱정해주는 에리카에게 별일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설마 하던 상황이 진짜로 펼쳐질 줄은 몰랐지만, 사관학교에서 폭발적인 인기의 부서다, 이상할 건 없었기에 당혹스러움을 빠르게 진정됐다.

도리어 난처한 건 리나이리라.

“예, 예나. 뒤에서 엄청나게 쳐다보는데.”

저기 뒤편에서,

「…….」

살쾡이 같은 눈빛으로 뒤통수가 뚫려도 좋을 정도로 노려보는 금빛의 눈동자를 보기만 해도, 이 상황을 누가 가장 언짢아하는지 단번에 보였다.

“같은 조원이니까 그런가 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

또각, 또각!

“쉿. 선배님 오신다.”

에리카에게 전말을 설명할 순 있었지만, 귀찮아지기만 할 거 같아, 능청스럽게 말을 잘라냈다.

철컥!

「야, 야. 온다.」

「면접에서 봤던 선배님들이다…….」

생도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등장한 주인공은,

“음, 네가 예나인가.”

“안녕! 저번에 봤었는데, 기억나?”

저번 추천서를 제출했을 때 도움을 준 여성과 이름은 모르지만 한 번 보면 선명히 기억에 남을 근육의 소유자였다.

“연구부장이시죠?”

“응, 맞아.”

“남자 선배분도…….”

“같은 부류로 보면 된다.”

역시 맞았네.

사람들로 가득 찬 부서에 도착하여 익숙하게 아이들을 휘어잡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저들이 바로 2학년들 중 성적을 가려 선발하는 부서 관리자였다.

쉽게 말해 천재 중의 천재라는 거다.

마도전술 계획부에 가입하는 거부터 쉽지 않은데, 그 부원 중에서도 가장 공부를 잘하고 재능이 뛰어난 엘리트다. 이만한 설명이 더 있을까.

“담당 교관이 누구시지?”

“가르텔 교관님입니다.”

“허, 그 신실한 원칙주의자께서 추천서를 써주셨다는 건가.”

그런 사람이 이렇게 내게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다. 확실히 추천서의 여파가 크긴 컸나 보다.

“음, 소문이랑 다른 성격같네. 네가 이렇게 순순히 대답해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꽤 온순한 성격인걸.”

“저에 대한 소문이 있습니까?”

“음, 몰랐어?”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쏟아지는 질문을 응대했으나, 얼마 안 가 분홍머리 선배의 고언에 어안이 벙벙했다.

“슈트레만 가문 자제의 얼굴을 웃으면서 난타했다면서? 손바닥에 묻은 피를 해맑은 얼굴로 만지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미친 애구나 싶었어.”

“…….”

“그런데 아닌 거 같아. 괜한 오해를 해서 미안하네.”

에리카와만 대화하고 지내니 소식이 느린 건가, 라고 고려해도 이건 머리를 거하게 맞는 충격의 말 아닌가. 그제야 생도들이 왜 이리 날 피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저 선배 둘도 언짢다는 듯이 날 지켜보고 있었구나.

어쩐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과 압박감이 은근히 주변을 휘감는다 했더니, 이런 괴상한 선동이 교내에 만연했던 탓이 있던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유추할 수 있었다.

1학년만이 아니라, 그 한 기수 위인 2학년, 졸업을 앞둔 3학년조차 귀족이 대부분이니, 슈트레만 가문에 관해서라면 입방아에 오르기 충분했다.

“친구에게 안 들었어?”

“제가 친구가 별로 없어서요.”

“아, 아하하 미안…….”

선배도 딱딱해진 내 낯빛을 보고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우물쭈물하며 뒤로 물러났다.

“에리카.”

“우, 우음?”

“넌 저 소문 알았어? 친구에게라도 들었을 거 아니야.”

그래도 에리카라면 귀족이기도 하니, 건너건너 풍문을 들었다면 알려줄 만하지 않나? 왜 침묵을 유지했던 거지. 난 뒤를 돌아 에리카를 응시했다.

도리도리─

“나, 나도 몰랐어. 친구라곤 예나가 전부니까…….”

그리고 에리카의 답변에 이마를 짚었다.

* * *

째깍─ 째깍─ 째깍─

시계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생도들이 각자 합격한 부서에서 환영식을 치르고, 선배들과 일면식을 다질 때, 사관학교 안 두 명의 남자는 기숙사 방 안에 앉아 차를 마셨다.

“어, 어둡네요.”

“역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커튼으로 창문을 완전히 막아, 거실에 켜진 양초를 제외하면 암흑 그 자체인 곳에서 말이다.

“그, 그 제안, 아직 유효한 거지요?”

콰앙─!

중년의 남성은 차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아든,

“당연하죠.”

월프는 여유를 풍기며 눈을 가늘게 감고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 그럼…….”

“비밀은 지켜드립니다, 저 아시잖아요?”

나이가 몇 배는 더 많아 보이는 남자가 주위에 누가 있나 힐끗거리는 한편, 월프는 실실 웃으며 도자기 잔에 담긴 홍차를 음미하는 광경이 갑을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한눈에 보였다.

‘넘어올 줄 알았어.’

월프는 내심 눈앞의 남자를 비웃어대며 다시 한번 찻잔을 들었다.

후릅─

식도를 타고 흘러내린 뜨거운 액체 속에서 향긋하게 퍼지는 홍차의 향이 괜스레 기분을 더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음미하는 만찬 같아 즐거웠다.

‘몇 번 튕기더니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작금의 상황 이전에 놈과 나눈 대화는 간단했다.

걸리적거리는 생도 하나를 치우게 좀 도와줘라. 대신 돈을 받고 싶은대로 주겠다, 슈트레만 가문의 작위를 걸고, 군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다.

‘처음엔 거절했지.’

같은 제국민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더니, 사관학교에 근무하는 처지로서 생도를 보호해야 한다더니, 군인으로서 덕목을 잃는 거라더니…….

뭐, 그거 말고도 많은 이유를 나열했지만, 원래 말꼬리가 길수록 쥐새끼처럼 들러붙는 법 아닌가.

“여기, 약속했던 선수금도 준비했답니다?”

쿠웅─!

그도 결국 사람인지라, 인간의 추한 면모답게 돈에 굴복한 거다.

‘정확히는 그런 부류를 노린 거지만.’

덜덜덜─

남성은 탁자 위에 올려진 두둑한 주머니를 보자 떨림은 더욱 주체하지 못했다. 땀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를 얼굴에 잔뜩 묻히고,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인간의 가장 추한 몰골이었다.

“꿀꺽, 하, 하, 하겠습니다!”

“충분히 고민하시는 건 어때요? 이젠 번복 못하는데.”

“……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왔습니다.”

몇 번의 재질문에도 불구하고, 놈이 일관되게 대답하자, 월프는 입꼬리를 스윽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투욱─

그리고 주머니를 그의 앞으로 밀어 넣었다.

“흐, 흐흐. 부탁하신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잘 해낼 테니. 이래 봬도 머리 하난 좋다구요?”

“그래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 정말 그 예나라는 애를 처리하기만 하면 여기에…….”

“예, 오십 배에 달하는 데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슈트레만 가문의 자금력을 의심하지 마세요.”

“크흐흐,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남성은 축 처진 주머니를 마치 아기 다루듯 품에 안고선 몸을 일으켰다.

철컥─

이어 그가 이 어둑어둑한 기숙사를 빠져나가자, 월프는 깍지 낀 두 손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푸, 푸흐흐──!”

고대하던 거래가 성사됐음을 자축했다.

‘그년도 이제 끝이야.’

그는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금화 하나를 빙그르르 돌리며 혀를 날름거렸다.

방금 빠져나간 남자는 추하고 역겨워 보여도 무려 장비 관리원, 그것도 곧 있을 합동 훈련의 장구류를 책임지는 요직에 앉은 인간이었다.

그만큼 저번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제 예나에게 남은 건 행복한 사관학교 생활이 아니라, 비참하게 기록될 최후밖에 없었다.

“하, 하하!”

돈으로 얼마나 공포스러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몸소 깨닫게 해주지. 월프는 폭소에 가까운 웃음보를 터뜨리며, 장밋빛으로 가득한 앞날을 그렸다.

* * *

친구가 없어서 소식을 못 들은 거라니…….

“헤, 헤헤.”

난 실없이 웃는 에리카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뗐다.

사실상 나 때문에 친구가 없던 거였으니까.

소문이 사실이라면, 다른 생도들로선 에리카가 악독하고도 무섭다고 소문 난 생도와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격이다. 친구가 생길 수 없었다.

불똥이 튄 거 같아 괜히 미안했다.

“괘, 괜찮아. 상심하지 마! 지금 보니까 괴소문에 불과한 거 같으니까, 내, 내가 다른 선배들에게 잘 말해서 오해를 풀어줄게, 하하하…….”

분홍 머리 선배는 에리카와 내 주위에 형성된 어수선함을 인지하고, 발랄함으로 애써 분위기를 환기했다.

“감사합니다.”

난 그녀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굳이 1학년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외톨이였다는 점은 내색하지 않았다.

언제나 해맑았던 에리카가 매일 나한테만 점심을 먹자고 했던 것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된 건 약간 가슴이 아팠지만, 앞으로 바꿔나가면 되니까.

“소문이 어떻든 나랑 베르토는 편견 하나 없을 거니까 안심하고, 그럼 이제 설명을 시작할게.”

잠깐의 소란이 막을 내리고, 선배는 드디어 본인과 옆에 있는 덩치 큰 남자를 소개하려는지 부서실 중심, 부원들이 전부 보이는 위치로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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