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연구부서 면접
* * *
언제나 그랬듯이 다가온 점심시간.
「오늘이냐?」
「솔직히 좀 많이 쫄린다…….」
그러나 학급은 평소 같지 않았다. 교관이 앞에 있었음에도 수다 소리가 간헐적으로 새어 나올 정도였다.
『다들 조용!』
가르텔이 그 분위기를 의식하여 고성으로 아이들을 휘어잡아서야, 어수선함이 겨우 정리됐다.
뭐, 확실히 이럴 만한 날이긴 하지.
다름 아닌 후보생들, 아니 1학년들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사관학교로서도 꽤 커다란 이벤트에 속하는 연구 부서, 그 면접의 시작되는 날이지 않은가.
『들뜬 건 이해하겠지만 자중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가르텔도 그 일정을 알고 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간단히 주의만 줬다.
『그럼 다들 정렬!』
이어서 평소처럼 본인의 할 일을 이어나갔다.
저 수염은 언제봐도 멋지단 말이지.
가르텔이 생도들을 사열하며 종례를 준비할 때, 난 묵묵히 그를 지켜보면서도, 고풍스러움을 띄는 갈매기 수염을 주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 모양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왁스를 썼을까.
짝짝─!
교관이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키기 직전까지 그 털을 살폈다.
『오늘이 부서 신청 마감일인 건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오후에 면접이 진행될 예정이니 숙지하도록.』
『예!』
『이만 해산해도 좋다.』
마침내 그가 점심을 먹으러 가서야, 시선을 뗐다.
타다다닥!
“예나! 나 면접 잘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옮긴 시야 안에는, 새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았다 해도 좋을 머리색을 지닌 에리카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당연하지.”
“헤헤…….”
면접에 대해 걱정하는 그녀를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음을 체감했다.
과거엔 하루하루가 지겨워 시간이 느리게 갔는데, 어느새 부서 신청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만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단 뜻이겠지.
오늘을 시작으로 차차 일정이 있는 거라, 모든 부서가 오늘 면접을 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에리카가 지원한 곳은 오늘 면접과 발표를 동시에 하기에, 긴장의 끈을 유지해야 했다.
다른 부서도 아니고, 그 유명한 마도전술 계획부였으니까.
“에리카는 왜 계획부에 가고 싶은 거야?”
“그야 당연히 예나가...... 아, 아니 원래부터 전략을 연구하고 전술 관련 학술지를 읽는 걸 좋아했어, 헤헤.”
어제와 같이 에리카의 알쏭달쏭한 표정을 보아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어찌 됐든 나야 환영이었다.
그녀와 같은 부서가 되면 오래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질 거고, 그럼 무언가를 교육하기에 한층 원활하니까.
당연하게도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 지옥같은 날씨에도 꾸준함을 유지했던 아이인데 설마 탈락할까.
스윽─
난 고개를 들어 쨍쨍한 햇살을 맞이했다. 연방 내륙 지방 특유의 기후에 영향을 받아, 낮은 덥고 밤은 추운 끔찍한 일교차가 나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에리카는 하루라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했다.
아니, 애초에 누가 가르친 아이인데.
과장을 조금 보태서, 지금 이 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1학년 중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투력을 지녔으리라 자부했다. 물론 머리도 포함이었다.
이론을 톡톡히 가르쳐줬지.
혹여 필기시험에서 떨어질까, 부서 중에 가장 우수하단 마도전술 계획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모든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
어딜 가든 간에 분명히 합격할 것이다.
음, 그래야지.
난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근데 예나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아?”
“옛날에 공부했었거든. 아버지가 마도 장교이셨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 미안…….”
“괜찮아.”
에리카는 눈망울을 빛내며 내 얼굴을 응시했다. 왠지 모르게 측은한 눈빛이 아련한 다람쥐의 눈만 같았다.
역시 편하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대답을 한 치의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이럴 때마다 에리카가 지닌 특유의 착한 성품이 고마웠다.
아버지에게도 감사할 따름이었고.
언젠가 한 번 묘비에 찾아가야겠어. 그리고 진솔하게 추모를 하리라. 그에게 받은 도움이 이젠 열댓 번에 달하니, 그에 따른 예우를 갖출 필요성이 있었다.
비록 슬픈 건 아니라 눈물로서 보답할 순 없겠지만, 군인으로서 존경심을 표할 마음은 있었다.
“근데 볼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
“나중에 이기면.”
“여, 역시 그렇겠지?”
“응.”
어찌 됐든 지금은 부서 면접 준비에 열중해야 할 시기, 난 마지막까지 에리카에게 이론 복습을 시키기 위해 이제는 친근한 단련장으로 향했다.
* * *
적막함이 감도는 사무실.
“전부 지원자 맞지?”
분홍색의 머리 아래로 동글한 안경을 쓴 여성은 탁상에 놓인 서류와 앞에 있는 생도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
그리고 그 물음을 들은 아이들은 힘차게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별도 달랐으며, 머리와 눈동자 색 또한 가지각색이었지만, 이들 모두 가슴팍에 숫자가 쓰여 있는 종이를 붙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려 마도전술 계획부에 지원하여 면접을 받는 학생들이었다.
“네, 네에!”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에리카도 이 집단에 포함됐다.
“손까지는 안 들어도 되는데.”
“아, 아하하 죄송합니다!”
“푸웁, 괜찮아. 너 재밌는 아이구나?”
“헤헤…….”
에리카는 피식 웃는 면접관 선배의 반응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하, 할 수 있어.’
그러나 반짝이는 눈빛 속에 품은 강렬한 의지만큼은 잃지 않았다.
꾸욱─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정자세를 유지한 상태에서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며 의욕을 다졌다. 예나를 실망시킬 순 없지 않은가.
날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성장에 대한 욕구가 다분한 그녀라면, 수련하지 않는 일 분 일 초가 아까울 텐데도 내게 정성을 쏟았다. 아니, 아예 나만의 선생님이 돼주었다.
노력에 보답해야 해.
지금까지의 예나의 행적을 단순한 시간 낭비로 만들 순 없다. 꼭 멋진 성과를 가지고 되돌아갈 테다.
[전술 계획부 면접 위원]
에리카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의미를 갖는 정면의 표지판을 보며, 면접을 보기 전 예나가 조언했던 대로,
‘진정하자. 머리를 차갑게 하는 거야.’
마음을 차분히 다스렸다.
“그럼 슬슬 면접을 시작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에 발맞춰 면접도 본격적인 막을 열었다.
직전에 입을 연 부서 담당관을 시작으로, 발랄함을 뽐냈던 여자 선배와, 아직도 한 마디를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남자까지.
총 세 명의 인물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크, 크다.’
그중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사람은 담당관도, 여자 선배도 아닌, 바로 이름 모를 남자 선배였다.
고릴라가 현신하면 이런 모습일까.
키 차이는 거진 두 배에, 몸집은 나와 비슷한 생도를 둥글게 묶어 만든 형상인 것처럼 거대했다. 신체 곳곳에 있는 근육의 위용에 절로 압도됐다.
저 정도가 돼야 생도를 심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거겠지.
분명 그 반대편에 앉아있는 분홍 머리 선배도 외적으로는 별것 없어 보이지만, 대단한 재능을 지녔으리라.
꿀꺽!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예나와 만나는 거야, 평소 하던 대로만 하자. 에리카는 손이 축축이 젖어갔음에도, 평정심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에리카 폰 로제힐트.”
“네!”
“먼저 시작해도 괜찮을까?”
그 각박한 환경 속에서,
“……네!”
그녀 일생일대의 도전이 진행되었다.
* * *
쉼없이 움직이는 시계.
째깍─ 째깍─
짧은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는 시침은 어느새 좌측을 상단을 향해가고 있었다. 지상엔 땅거미가 드리운지 오래였으며, 어둠이 찾아오려 했다.
“아음.”
그리고 난, 그 차디찬 저녁 날씨 속에서 공원 벤치에 앉아 슈크림 빵의 달콤함과 고소함을 음미했다.
지금쯤이면 끝났을 텐데.
언제 오는 거야? 본관 주변, 마도전술 계획부 면접실이 있는 건물 앞에 자리를 잡은 지 몇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에리카가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슬슬 추운데 말이지…….”
난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았다. 그냥 기숙사에 돌아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가르친 학생이잖아.
학생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선생님의 도리다. 물론 진짜 선생님은 아니지만, 에리카가 합격 소식을 들고 웃으며 달려오는 모습은 보고 싶었다.
떨어지진 않았겠지.
에리카의 재능, 그리고 내 지식이 모였으니 불상사가 벌어지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나 늦으니 괜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냠.”
끼이익─!
슈크림 빵의 마지막 조각을 다 먹어갈 때쯤이 돼서야, 마침내 본관 정문 특유의 불쾌한 경첩 소리가 들려왔다.
「야, 진짜 힘들었다…….」
「쯧. 이걸 떨어지네, 넌 합격했냐?」
「했겠냐.」
머리를 들자 수십의 생도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들 몸에 붙어있는 번호표가 마도전술 계획부에서 면접을 본 생도임을 나타냈다.
에리카는 어디 있지?
난 입에 머금은 빵조각을 잽싸게 삼키고 본관에서 나오는 인파로 다가갔다. 뒤이어 익숙한 파란 머리의 실루엣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타다다닥!
그리고 그때 발견한 한 명의 생도.
씨익─
난 찰나 간에 눈을 가늘게 떠 정체를 알아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입 주변에 보조개를 만들었다.
“예, 예나!”
돌진하듯이 달려오는 소녀의 눈가와 코끝이,
“나, 합격했어──!”
새빨갛게 서려 있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