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24화 (24/40)

〈 24화 〉 에리카의 능력을 확인하다

* * *

”그, 그러니까 예나랑 싸워서 이기면 볼을 만지게 해주겠다는 거야? 기회에 대한 제한은 없고?“

”응.“

”그래도 친구끼리 주먹 다툼을 하는 건 조금...... 난 예나랑 같이 체조나 훈련을 하는 줄 알았단 말야.“

”에리카.“

난 그녀가 거절할 기미를 보이자, 무미건조한 눈매를 지으면서도 두 손을 서서히 얼굴에 가까이했다.

말랑─

”진짜 볼 만지게 해줄게.“

그대로 뺨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얼굴이 얼얼하고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지만, 꿋꿋이 자세를 유지했다. 설득에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이 정도 노력쯤은 할 수 있었으니까.

일종의 대의를 위한 자그마한 희생이었다.

스윽, 스윽─

에리카는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살덩이를 따라 눈동자를 왔다갔다 하다가, 이내 침묵을 깨고 손을 번쩍 들었다.

“하, 할게!”

긍정의 대답이 들려오고 나서야,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아린 피부에 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야.”

“대신 심하게 싸우진 않기로 약속해! 알았지?”

“알겠어.”

에리카는 이미 승리의 보상에 매혹되어 머리를 주억거리기만 했다.

누군가가 이 자리에 와서 그녀의 눈빛을 본다면 미끼에 낚인 물고기같은 눈동자라고 답하리라.

그만큼 그녀의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대련이니까 심하게 안할게."

괜히 다치기라도 했다간, 추후 합동 훈련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에리카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강도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으응.”

난 공터 구석으로 가 코트를 벗고 제복 상의의 단추를 풀었다. 견장과 금장 등 각종 장식으로 가득한 외투를 벗고, 오직 나풀거리는 하얀 셔츠만 남도록 했다.

스륵─

소매를 당겨 새하얀 팔이 드러나도록 접어, 한결 움직임이 편안해지도록 만들었다.

“예나, 다 준비했어!”

“그래.”

“정말로……, 만지게 해주는 거지?”

“난 거짓말 안해.”

네가 이길 수만 있다면 말이지.

아무리 연습이라도, 실전이 아니더라도, 가장 소중한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에리카와 전투라고 하더라도, 쉽게 볼 짝을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몸은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니까.

파슥, 파스슥─

“그럼 시작한다.”

“응!”

어느새 에리카의 눈동자는 떨림이 멎어 있었다. 푸른 안광 속에서는 확고한 의지만이 보였다.

얼추 마음을 다잡았다는 거겠지.

“프으으──.”

그렇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게 마땅하리라. 난 폐에 있는 모든 공기를 빼내듯 숨을 토해내며, 온몸에 힘을 풀어 자세를 낮췄다.

타다닥!

그리고 예고도 없이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갔다.

재빠르게 달리자 머리칼과 셔츠가 휘날렸다. 난 순식간에 에리카와의 거리를 붙이고는 복부를 노려 주먹을 날렸다.

“으읍─!”

에리카는 처음부터 이리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다.

훙, 후웅!

그러나 전투가 지속할수록, 적응이라도 하는 건지 점차 여유를 보였다. 처음엔 주먹에 안 맞으려는 데 급급했다면, 이젠 드문드문 반격까지 엿보았다.

“하앗!”

그 꾸준함의 결실을 본 건지, 에리카는 드디어 내 지속된 압박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제대로 된 자세에서 나온 공격이 아니었다.

콰지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맞는다면 단련장 밖으로 나가떨어질 위력이었다.

에리카의 마나 등급은 나와 비교해서 무려 세 단계, 배수로 따지자면 수십을 앞서있기에 이런 조잡한 몸짓마저 살인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맞지 말아야 한다. 난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핏─!

손가락이 눈 아래를 스치면서 가느다랗게 핏방울이 맺혔다. 남들보다 허약한 탓에 쉽게 상처가 나는 거겠지.

“예, 예나 괜찮……!”

“계속해!”

에리카가 순간 손등에 묻은 혈흔에 놀라 대련을 멈추려 했지만, 허용하지 않았다. 도리어 윽박질러, 이 분위기가 깨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이렇게나 즐거운데 끝내고 싶지 않았다. 무대가 시작됐으면, 그 결말을 봐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이건 고작 대련이 아니다, 장교의 능력을 검증하는 신성한 전투다.

“하아......”

그러니 에리카의 능력에 걸맞게, 조금 더 힘을 끌어올리리라.

콰득, 콰드득!

눈앞의 소녀가 마나를 발산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처를 하는 게 마땅할 터, 난 양손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 후, 천천히 주변의 기를 모았다.

퍼엉─!

곧이어 일순간에 손바닥으로 마나를 방출하여, 이를 추진력 삼아 에리카에게 그대로 돌진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애써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이젠 그런 찰나를 용납할 내가 아니었다. 에리카의 움직임에 발맞춰 진로를 변경했다.

“으읏!”

마침내 가슴팍으로 에리카를 안을 수 있는 거리가 됐을 때, 먹잇감을 조아대는 뱀처럼 뒤에서 감싸 안고,

쾅!

한쪽 팔을 꺾으며 바닥으로 내리쳤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에리카였기에 어렵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아으으…….”

땅바닥에 등을 부딪힌 그녀는 몸을 비틀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을 잃진 않았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더 할 수 있겠어?”

“멀쩡해!”

얼마간의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되찾은 에리카는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전혀 겁이라곤 먹지 않은 태도였다.

에리카의 이런 점이 좋았다.

드높은 벽에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참으로 가르칠 맛이 나는 학생의 정석이었다.

난 목깃의 단추를 풀어 더욱이 숨을 잘 쉴 수 있게 하곤, 양팔을 넓게 펴 에리카를 맞을 준비를 했다.

타악─!

몇 초 뒤, 에리카는 이번엔 정확히 자세를 잡고 전보다 더한 마나를 축적하여 복부를 매섭게 노려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노리고 있을 목적지에 명중하지 않았다.

내 공격이 눈에 익숙해져 쉬이 피해냈던 에리카처럼, 나 또한 조금씩 그녀가 어딜 노리고 있는지 궤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속도로 빨라졌다고 하더라도 곧잘 대처했다.

대충 승부가 결정 난 듯싶은데.

몇 분 더 치열한 사투를 보냈지만 더는 의미가 없는 몸놀림에 불과했다. 에리카가 나를 어떻게든 끌어안아 바닥에 넘어뜨리려 시도했지만,

콰당!

“으, 으익......”

도리어 허점이 많아지는 건 그녀였다.

“하, 항복! 헤엑, 헤엑”

끝났네.

허물이 벗겨지듯, 바닥에 쓰러진 에리카는 신음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에 휩싸인 피부와 찐득하게 달라붙은 머리카락으로 난장판이었다.

아쉽지만 대련을 여기서 끝마쳐야 했다.

이게 노련함의 차이인가.

수많은 공격을 하는 와중에 체력 배분을 신경 쓰지 않았던 점, 아직 후보생에 불과한 만큼 대련을 해본 절대적인 횟수가 적고, 아직은 몸놀림이 어색한 점.

이외에도 그녀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사안들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털썩─

난 잠시동안 방금 전 사투로 먼지로 가득 찬 허공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반쯤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는 에리카 옆에 궁둥이를 붙였다.

“흐으으……”

흥분감이 내리 앉고, 아드레날린의 분출이 멈추자, 눈썹이 촉촉하게 젖도록 쉼 없이 땀이 터져 나왔다.

승리했음에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꽤 재밌었어.”

“예나는 왜 이리 잘 싸우는 거야?”

“열심히 노력해서.”

얼추 숨을 고른 우린 바닥에 몸을 붙인 상태로 대화를 이어갔다. 만족스러웠던 대련에 괜히 입가로 호선을 그리며 친절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그렇구나. 수련했었는데, 나도…….”

나로선 싸움한다, 그리고 에리카의 실력을 평가한다가 주된 목적이기에 후회는 없었지만, 에리카는 여간 아쉬운 게 아닌 거 같은 얼굴이었다.

“으으으, 볼 만져보고 싶었는데.”

만지작, 만지작─

피곤할 텐데도 입가에 군침을 흘리면서, 허공에 손을 뻗어 주물럭거리는 사람이 정상은 아닐 테니까.

“아직 기회는 많잖아, 에리카. 우리 합동 훈련 전까지 함께 훈련하기로 약속했잖아. 그때마다 도전하면 받아줄게.”

“저, 정말?”

난 축 처진 에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로서는 달콤한 말로 위로를 전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여기서 끝낼 마음을 없어서 하는 말이었다.

“응, 난 한 번한 약속은 지키는 거 알잖아.”

“꿀꺽─!”

머리에 든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교육하면 어디까지 성장할지 궁금하잖아.

욕심이 들었다. 과거 장교로서 셀 수 없이 많은 군인을 가르치며 얻었던 교관의 소양이 영향을 끼친 건지는 몰라도, 한 번 이 아이에게 내 재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언제든지 이기면 얼굴 만지게 해줄게.”

몇 년 뒤에나 등장할 마나 운용법이나 격투술, 체계화된 수련 방법 등, 이 모든 걸 집어넣으면 어떤 변화를 보일까.

“하아......”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언제든지 이기면 얼굴 만지게 해줄게.”

“예나, 약속했다?”

이미 한 번 선택을 해봤기 때문인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응, 당연하지.”

난 에리카에게 알 수 없는 웃음을 내보일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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