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21화 (21/40)

〈 21화 〉 1학년 단체 공지

* * *

참 매력적인 남성이야.

탐이 났다. 이상한 쪽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군인으로서, 한 명의 장교로서 그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비록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초면엔 날 무시하던 투가 팍팍 묻어나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되려 데리안의 그런 냉정한 면모가 좋았다.

실력만 보고 판단한다는 거잖아?

아직 뭣도 증명하지 않은 후보생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처음에야 쌀쌀했던 거지, 내가 가르텔의 칭찬을 받은 생도란 걸 알자 따스하게 대해준 거 아닌가.

결국 상대방이 평민이든 귀족이든, 실력만 좋으면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주는 격이니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추천서를 받았다고 해서 봐주거나 그럴 일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아직 네 능력을 두 눈으로 보지 못했거든.”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가봐도 좋아. 아, 물론 입단 심사는 안 봐도 된다. 탈락할 걱정도 하지 말고. 날짜에 맞춰 입단식에만 와라.”

타닥─!

난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둣발의 소리를 내며 두 다리를 정렬했다. 그리고 제국식 경례 자세를 취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제국을 위하여.”

“그래, 수고하도록.”

그렇게 데리안이 접었던 신문지로 눈길을 돌림을 확인하고, 집무실을 떠나려고 했건만…….

“아.”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의문에 마지막으로 질문을 건넸다.

“루츠 담당관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어디 계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계획부 담당관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 없으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건 맞는 거 같은데.

데리안 옆에 공석으로 남은 다른 업무용 책상을 보고 확신했다. 더구나 그 위엔, 오스발트 루츠라는 이름으로 집필된 《기갑 운용 기초 전략》이란 문서가 있었으니까.

“흠, 안타깝지만 그 분은 한 달 뒤에야 오실 거다. 잠시 수도에 교육관으로 파견을 가셨거든.”

“아하…….”

곧이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원정 교육을 떠났다니.

오스발트 루츠라면 장차 제국의 기갑 운용 전술 그 자체를 창립한 인물, 서로 긴밀히 대화를 나눠, 군사적 토론을 하고 싶었건만, 매우 아쉬웠다.

그런데 원정 교육을 갔다면 수도에서도 이 아스트라한 사관학교에 똑같이 교육관이 한 명 오지 않나?

과연 누구일까.

“혹시 누가 오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인연을 만들 기회이자, 유망한 교관이라면 앞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둬도 좋은 상황, 난 데리안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려다봤다.

“그건 나도 아직 모른다. 대충 일주일 뒤에 도착하신다고 했거든.”

하지만 이 역시 알 수 없었다.

쯧, 아쉽군.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잠시 루츠가 있었을 허전한 의자를 흘겨보다 데리안에게 허리를 굽혔다. 지나왔던 문으로 되돌아가곤,

끼이익!

입단식이 예정된 그 날을 기약하며 부서실을 떠났다.

철컥.

* * *

흙바닥이 돌부리로 가득한 단련장 안, 난 딱딱한 땅바닥 위를 자유자재로 쏘다니며 움직였다.

휘이잉!

소매와 풀어헤친 머리는 다니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렸다.

“흐읍─!”

찰나의 순간도 안 되어 표적의 코앞까지 당도하자, 언제나 그랬던 거처럼 푸른색의 마나를 끌어내어 팔을 빙결 마법으로 단단히 무장시켰다.

콰아앙─!

이어 다른 팔로 얼어붙은 쪽을 잡고,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완전히 뭉개지진 않았지만, 표적은 바닥을 나뒹굴 정도로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난 만족하지 않고, 곧바로 거리를 좁혀 후속타를 날렸다.

쿵, 쿠웅!

그렇게 고철로 팔 수 없는 수준까지 망가뜨리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기지개를 켰다.

“크하─!”

역시 훈련은 언제나 상쾌해.

벌써 부서 신청이 시작되고 사흘, 난 홀가분한 심장으로 꾸준히 발전 중인 신체를 둘러봤다.

몇 일 지나지 않았지만 변화는 대단했다.

어느새 왜소해진 몸에 적응이 되어 공격은 더욱 간소화되었고, 마구잡이로 마나를 쏴대며 연습하니 입학 당시보다 든든한 마나량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활용 능력마저 더욱 고도화되었다.

이젠 현실이었는지, 아니면 가상인지 모를 ‘아카데미 1945’속에서 아무리 마법을 수 천 번 넘게 다뤄봤다고 해도, 현실은 현실, 마나를 쓸 때마다 어색했다.

생도들보다 뛰어났을 진 몰라도,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서는 서툴렀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마나를 다루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렇게 전력을 다해도 마나가 반 절이나 남잖아?

단순히 강해지기만 한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미숙함을 탈피했다.

“후우.”

쉬이잉─!

난 목덜미를 지나, 가슴팍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볼살에 묻은 모래 알갱이들을 털어냈다. 이어 전에 없던 머리 끈으로 장발을 매만졌다.

“불편해 보인다고 주는 거랬지…….”

에리카의 선물이었다.

태생이 여자인 그녀의 눈엔, 어디 임시 숙소에서 주운 것으로 머리를 묶는 게 거추장스러웠는지, 손수 머리 끈을 사와 직접 묶어줬다.

덕분에 더 이상 머리카락이 끈에 뒤엉키지도 않았다. 목덜미를 간지럽히지도 않아 한결 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놓을 걸 그랬어.

달칵, 스으윽─!

어쨌든 훈련도 끝났겠다, 공터 구석에 고히 접어놨던 코트를 걸치고 기숙사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뒤이어 단련장 입구로 되돌아가, 왔던 길로 다시금 발을 내디뎠다.

뚜벅, 뚜벅.

아무에게도 단련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일부로 인적 드문 단련장에 왔더니, 돌아가는 동안 누구하고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직 내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물론 슬슬 해가 지고 통금 시간이 임박한 때라, 생도나 교관하고 만나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 위화감은 뭘까.

“…….”

짧게 혀를 차며 바람에 나풀거리는 나무들을 훑었다.

사아아─!

그저께는 착각이었다면, 어제는 의심, 오늘은 확신이었다. 며칠간 신경을 곤두세우는 인기척이 주변을 나돌았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자꾸 훈련을 소극적으로 하게 되잖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잡아서 정체를 확인하고 싶지만…….

참아야지.

난 애써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무시하며 걸음걸이를 유지했다.

만약 어디선가 정말로 날 지켜보고 있고, 그 이름 모를 녀석이 어떠한 의도를 품고 미행하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반응하지 않음이 그 이유에서였다. 굳이 미행이 들켰다는 걸 눈치채게 만들어 도망가게 하면 안됐다.

올가미에 짐승을 몰듯,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포획해야지.

난 적어도 누군가가 따라오는 걸 눈치챘단 것에 만족했다. 남들과 차원이 다른 마나 민감도 덕분에 알아낼 수 있던 거니까. 다른 생도들은 죽어도 몰랐을 터다.

지직, 지지직!

"음?"

대략 기숙사에 반쯤 도착했을 즈음, 길가에 설치되어 있던 확성기에서 불현듯 전파음이 터져 나왔다.

『아, 아아──, 아스트라한 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에게 알린다』

곧이어 굵직한 음성이 사관학교 전체를 메웠다.

『훈련 일정에 관련하여 광장에 주요 공지문을 부착했으니 다들 확인하도록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한다. 광장에 주요 공지문을 부착했으니 다들 확인…….』

“루스테트?”

말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사관학교의 총책임장이었다.

무슨 일정을 공지한다는 거지?

상당히 이례적인 방송이었다. 원래라면 생도들의 점호가 시작될 시간에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거니까.

“……일단 가봐야겠지.”

난 그가 말했던 단어 하나, 하나를 복기하며 발끝을 돌렸다.

* * *

해가 저물어가는 초저녁.

“이럴 리가 없는데…….”

헬레나는 단발의 머리를 귀 옆으로 넘기며 입술을 씹었다.

‘뭘 숨기는 거지?’

예나 프로이드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의지와 무색하게도, 그녀한테서 ‘보고할 만한’ 특징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설마…….’

미행이라도 들킨 건가? 한 번이라면 우연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냐, 그럴 리가 없다.”

헬레나는 애써 머리를 휘저으며 찝찝함을 지웠다.

아무리 예나의 능력을 높게 쳐주더라도, 자신은 황가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시녀장이자, 과거 마도 장교까지 지내봤던 전직 군인이다.

말이 안 된다.

더불어 예나 프로이드는 마나가 7등급이지 않나.

그녀는 3등급을 상회하는 종합 능력치를 지녔다. 이 정도라면 현재 졸업 예정자인 생도들마저도 기척을 파악하기 벅찰 터, 들킬 가능성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파스스─!

헬레나는 예나를 더 쫓지 않고, 수풀에서 나와 주변 인적이 드문 건물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아…….”

그리고 노을로 새빨갛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쿵─

콘크리트 외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열심히 하지 않은 거야.’

헬레나는 이마의 통증을 느끼며 자책했다.

리나, 황녀를 향한 충심이 부족해 일을 그르쳤으리라.

그녀는 입술을 쥐어뜯다가, 치아를 맞닿도록 턱에 힘을 주었다. 위기감이 전신을 옥죄어왔다.

‘아직 키도 다 크지 않은 듯한 꼬맹이에게 말이 묶이다니.’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야 했다. 이미 한 번 버림받아 성격이 차가워졌다고 해도 좋을 황녀님에게 또다시 회의감을 떠안겨줄 순 없으니까.

그게 참회이자, 사죄다.

“……조금 더 힘을 쓰는 수밖에 없어.”

그녀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아 차분해진 눈동자로 굳게 결심했다.

이렇게 해도 성과가 없으면, 예나가 지내고 있을 기숙사를 가보고, 그래도 진 사관학교에 오기 전 머물렀던 가택을 털기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보기로.

몰래 도움 될 만한 정보만 확인하고 나오는 거다. 황녀님께 해가 가지 않도록 할 자신이 있었다.

‘사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작전인데……, 완벽하게 해내야만 해.’

터벅, 터벅.

헬레나는 어둑한 골목 속을 빠져나왔다. 초저녁의 불그스름하고도 주홍빛이 감도는 노을이 얼굴을 비췄다.

『1학년 생도들에게 알린…….』

그녀는 때마침 들리는 방송에 발맞춰 건물 지붕으로 날았다. 그리고 건물을 넘나들며 기숙사로 향했다.

쉬익, 쉭─!

잠시 밖에 다녀오실 황녀님이 돌아오기 전에 방을 청소하고, 그녀를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소하고, 그녀를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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