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19화 (19/40)

〈 19화 〉 가르텔과의 독대

* * *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든 채 턱을 쓰다듬는 여인은 침음성을 냈다. 그 내용을 세세히 살펴봤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숨겨진 비밀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하셨으니, 만족하실 만한 정보를 가져와야 하는데.

“……너무 평범해.”

알려드릴 만한 특이사항이 없다. 단발의 여성, 리나를 극진히 보필하는 시녀장인 헬레나는 짧게 혀를 찼다.

[예나 폰 프로이드 정보 요약본]

이 생도의 인적 사항을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향력 있는 가문의 자녀가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평범함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리나 님이 분명…….”

굳은 얼굴로 꼭 좀 알아봐달라 명했던 게 눈에 선명했다. 황녀께서 그렇게 진심을 담아 언질을 줄 때면, 언제나 비범한 비밀이 숨어있길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생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의 아버지가 제국 훈장을 받았다는 것, 그 외에는 건질 만한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끼익, 끼이익─

헬레나는 예나 프로이드에 대한 문서를 움켜쥐고, 아무도 없는 기숙사 방안을 돌아다녔다.

“…….”

그러다 벽에 등을 기대어 스르르 눈꺼풀을 닫았다.

【 에리히 프로이드 】

그는 마도 장교로서 수 십 대의 전투기를 격추했으며, 합중국의 몇 안 되는 각성자 분대를 전멸시키긴 대단한 군인이었으며, 예나의 아버지였다.

특이했다.

남들에겐 없는 배경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녀석의 정체를 특정할 만한 단서가 한 글자도 없는 문서였다.

‘이거로는 황녀님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못하겠지.’

타악─!

헬레나는 두꺼운 가죽으로 마감된 문서의 표지를 덮으며 살며시 눈을 떴다.

‘직접 나서야겠군.’

그렇다면 역시 답은 하나였다. 혹시라도 그녀가 지니고 있을, 아니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비밀을 파헤친다. 그리고 당당히 황녀님께 받친다.

어떻게?

은밀하게 뒤를 밟아서.

“후우.”

왜 이리 성심성의껏 임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황녀님께 행했던 과오를 떠올리면 소소한 보답에 불과했다. 이런 짓을 백 번 반복해도 뉘우침의 끝이 없으리라.

‘이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게 황녀를 보필하는 시녀장으로서의 도리이리라.

타악─!

헬레나는 오른편의 탁상을 강하게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냉기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로, 기숙사 밖을 향해서 발을 내디뎠다.

* * *

쇼카콜라의 달콤한 향과 커피 원두의 쌉쌀한 냄새로 가득한 집무실,

“편히 들어도 괜찮아.”

“감사합니다.”

가르텔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가 건넨 도자기 잔에 두어 개의 각설탕을 넣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했다.

꿀꺽─

에스프레소 특유의 알싸함이 혀를 스쳤다. 제국의 장교가 즐기는 커피라 그런지, 확실히 사관학교 매점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맛이 어떤가?”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마셔보는 거 같습니다.”

“하하, 입맛에 맞는가 보군.”

따끈한 커피가 속을 데우자, 있었던 약간의 긴장감도 사라졌다. 덕분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 생겼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군. 집무실의 풍경은 기억과 다를 바 없었다.

벽에 걸려 위용을 뽐내는 제국기, 의자 뒤 벽면에 박음질이 되어있는 현재 제국 대통령의 초상화 등. 전형적인 베른 제국의 장교다운 인테리어였다.

저건가?

그리고 그 속에서 빨간색 도장으로 마감처리가 된 봉투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저게 바로 가르텔이 말한 추천서겠지.

빨리 받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게 우선,

“프으으──, 미안하군. 내가 애연가라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난 에스프레소가 담긴 잔을 반쯤 비운 후, 파이프를 여물고 뭉게뭉게 구름을 피우는 가르텔을 향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용케 시간 맞춰서 와주었군, 그래.”

그는 제국기 문양으로 조각된 접객용 책상에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이어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아버지가 에리히 프로이드, 맞나?”

“그렇습니다.”

“내가 궁금증 하나는 참 많아서 그 분에 대해 한 번 조사를 해봤다. 대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했더군?”

투욱─

그는 손가락 반 마디 정도 두께인 서류 뭉치를 꺼내들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 너의 아버지가 마도술을 개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살펴보니 충분히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조사했나.

“마도 장교를 역임하신 분이기도 하고 말이지.”

“자랑스러울 따름입니다.”

“당연하지. 제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르신 위인이시니, 한 명의 군인으로서 존경을 해야 마땅하다.”

난 태연하게 언담을 나누면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문서들을 흘겨봤다.

대략 보이는 건 대전쟁 당시의 예나의 아버지, 아니 에리히 프로이드 활약상이 신문 기사였고, 그 외로는 군사 기밀을 담은 듯싶은 종이가 반을 차지했다.

철저하게도 알아봤네.

고심을 거듭했을 가르텔을 떠올리자 괜한 웃음이 났다.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었겠지. 철저하게 개연성을 고려하고 꺼낸 이야기인만큼, 가르텔은 정말 내 아버지가 마도술을 개량했다고 믿을 거다.

그리고 일개 마도 장교가 그런 성과를 내었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거다.

“…….”

말없이 파이프를 피우는 그의 얼굴만 봐도 심경이 어떤지 눈에 보였다.

비록 사실이 아니었지만, 거짓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게 진짜가 되는 법이다. 난 멍하니 서류 더미를 쳐다보는 가르텔을 구경하며,

“후릅.”

즐거운 마음으로 원두의 향을 음미했다.

“부모님께서도 널 자랑스러워 하실 거다. 안타깝게 묻힐 뻔한 기술을 끝까지 지켜냈으니까.”

드디어 상념을 끝냈는지, 가르텔은 몇 분간의 침묵 끝에 소파에서 일어섰다.

타악─!

그는 업무용 책상 한쪽에 있던 추천서를 가져와 내 앞에 내밀었다.

“마도술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라고 써주는 건 알겠지?”

“예.”

“마도전술 계획부에 가면, 담당관이 있을거야.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종이를 전달해주면 된다.”

난 그의 말에 고개의 끄덕이며 품속으로 종이를 가져오려고 했다.

꾸우욱─

그러나 꽉 물린 그의 엄지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 추천서를 가져오려고 해도, 그는 더 세게 움켜쥐어 본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래서 말인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네.”

“으, 으음?”

그는 머리를 앞으로 숙임과 동시에 내 팔을 당겨 거리를 가까이했다. 어찌나 갑작스럽던지, 평온함을 유지하다가, 흠칫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나 프로이드.”

“예, 예?”

그는 특유의 금색 콧수염을 달싹이며 더더욱 사이를 좁혔다.

스윽─

그렇게 서로의 눈동자 색을 확인할 정도까지 되자,

“마도전술 계획부에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마치고, 제국 행정부에 편입할 마음은 없나?”

그는 특별한 제안을 전해왔다.

찰랑.

가슴에 달린 후보생 신분을 상징하는 독수리 형상의 배지도 그 떨림에 움찔했다.

“행정부, 말씀이십니까.”

난 두 손으로 꼬옥 붙잡던 추천서에서 힘을 풀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의견에 빳빳이 몸을 굳혔다.

……나쁘진 않아.

가르텔은 훗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여 행정부의 책임자가 될 터, 이는 그를 따라갔을 때, 적어도 권력의 한 자리는 꿰찰 수 있음을 의미했다.

몸을 쓰는 것보다 경제나 전략 등과 같은 문서화된 작업이 주류를 이루니, 전투에 휘말릴 일도 별로 없겠지.

달칵, 달카닥─!

난 보라색 꽃이 그려진 티스푼으로 도자기 잔 내부를 휘저었다. 흰색의 거품이 일렁일 즈음엔, 입술에 가까이하여 목을 따스하게 데웠다.

그래선 재미없어.

입천장을 지나, 식도에서 감도는 에스프레소의 달콤함을 느끼며 집무실에서 전략이나 짜고 있을 지루한 미래를 그려봤다. 역시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었다.

명색에 각성자인데 후열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전선에 나가 제국의 승리를 위해 직접 선두에 서고 싶었다.

애당초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싫어도 전투에 나가야했다.

단순히 전략과 전술을 잘 짜기만 한다고 제국이 승리하진 못하니까.

부패한 군대, 무능한 장교, 멍청한 총통, 삼박자로 어우러진 악재를 타파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권력이 필요했다. 이는 행정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펜이 아니라, 총과 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야 기억되는 시대니까.

【 국방군 】

그 중심에 서서, 각종 전장에서 공을 세워 직접적으로 업적을 남기는 장군, 혹은 군인이 돼야 했다.

제국의 패망을 막기 위해.

끼이익!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난 두 소리를 양 허리에 붙인 채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요히 내 대답만을 기다리는 가르텔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세상의 다양함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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