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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13화 (13/40)

〈 13화 〉 야 일어나, 재밌게 싸워야지

* * *

월프는 주먹질 한 방으로 피웅덩이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단단히 여민 손을 힘껏 뻗었다.

후우웅─!

파멸적인 파공음을 내뿜으며 허공을 가르는 공격은, 지체 없이 예나에게 향했다.

‘죽여주마.’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월프는 승부의 결과를 확신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저 무표정한 눈동자가 얼마 안 가 눈물로 가득 차겠지. 예나가 무릎을 꿇고 굴복의 의사를 표하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부르르 떨리는 즐거움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 행복한 시간을 즐기기 싶다, 월프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마침내 둔탁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꺄악!」

「으, 으으.」

생도들은 처참하리라 예상되는 예나의 외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몇몇은 입술을 잘근 씹기까지 했다.

“커어억!”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예나와 어울리지 않는 굵은 육성이었다.

「어, 어?」

「이게 무슨…….」

생도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에 두 눈을 끔벅였다.

정면에 펼쳐진 건 피를 토하며 쓰러진 예나도, 대리석 바닥 밖으로 나가떨어진 예나도 아닌,

“끄, 끄아아악!”

면상에 돌 부스러기가 박힌 채 구른 월프였으니까.

“야, 일어나, 재밌게 싸워야지.”

허약할 줄만 알았던 예나가 눈웃음을 지으며 월프를 내려다봤다.

여린 용모에 작디작은 소녀가 슈트레만 가문의 장남을 쓰러뜨렸다. 흑발의 소녀가 자신보다 몸집이 배는 클 법한 남성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았다.

“월프.”

이변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미래, 예상이 깨져버렸다.

* * *

첫 타격이 성공한 뒤로 대련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으아아아!”

격식 있는 교육? 서로 간의 실력증진을 위한 훈련? 그런 대의따위 까맣게 잊혀진 지 오래였다.

추하디 추한 월프의 모습을 보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이런 미힌 년이!”

월프는 흥분한 상태로 미친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입술 사이로는 악에 받친 괴성이 흘러나왔다.

“푸훕.”

난 그의 얼굴을 보며 볼살을 씰룩였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특히나 바람이 숭숭 지나가는 입안의 광경을 보고, 어깨를 들썩이며 실소했다.

직전의 주먹질 한 방으로, 그의 앞니 하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새하얗고 가지런하던 치열에 구멍이 뚫린 모양새는 웃지 않고는 버티지 못했다.

“이 개년!”

발음도 잘 안되나 보네.

샥, 사악!

난 그가 날카롭게 내지르는 공격들을 가뿐히 피했다.

아무리 그가 혼신을 다해 팔을 휘두른다고 해도, 내 부드러운 살결에 손가락 하나 닿지 못했다.

체내에 마나를 끌어올린 상태였으니까.

마력 억제를 뚫어내어 마나를 다루게 된 지금, 월프가 아무리 몸이 좋다고 한들, 오로지 몸으로만 싸우는 그였기에 한계가 명확했다.

“으아아아!”

쿵, 쿵, 쿵!

그가 다리를 굽혀 황소처럼 돌진해 잡으려고 해도 가뿐히 벗어날 수 있음이 그 이유여서였다.

장비의 허점을 이용한다고 해도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잖아?

“후우, 후우…….”

그래도 버겁긴 하네.

거칠게 심호흡하며 볼에서 미끄러지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한들 버틸 수 있는 상한선이 있기 마련이었다. 워낙 마나량이 적다 보니,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았음에도 체력이 메말라갔다.

“……죽여버린다.”

그에 반해 놈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눈빛을 독살스럽게 다지며, 주먹질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하아.”

그런 월프의 몰아붙임에 점차 몸을 가누기 힘들어졌다. 과연 박빙의 상태로 치닫는 중이었다.

“헤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런 걸 원했으니까! 이게 진짜 수련 아니겠는가. 즐겁고도 유쾌했다!

서로가 진심으로 임하며, 죽이겠다는 의지로 주먹을 겨루는 즐거움은 다른 무엇보다 높은 행복을 선사했다. 이 기분을 얼마나 느끼고 싶었는지 몰랐다.

근육통이 몰려와도, 목덜미가 땀에 축축하게 젖어도 전투를 지속하고 싶었다. 조금 더 이 희열을 이어가고 싶다.

몸이 버텨줬으면 좋았을텐데.

“쯧.”

아쉽지만 슬슬 끝내야했다. 맘만 같아서는 오래도록 격투를 하고 싶었으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승리 그 자체, 그만 싸움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다.

…이 쯤 해야겠군.

“후우.”

심신을 안정케하기 위해 내뱉은 숨을 시작으로 전신의 긴장을 풀었다. 상기된 마음을 가라앉혀 침착함을 찾았다.

“둬져 이 새끼야!”

후웅!

그런 고도의 집중상태에서, 월프의 살인적인 주먹질을 피해내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으, 으아아아!”

상체를 비틀어 월프의 타격을 피해냈다.

목을 꺾어 콧등으로 날아오는 발을 흘려냈다.

타다닥─!

그렇게 수 차례 월프의 공격에서 벗어난 뒤 녀석의 등 뒤로 향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가 반응할 새도 없이 시야의 사각지대에 당도해, 마치 한 마리의 뱀이 먹잇감을 감싸듯, 놈의 가슴을 껴안았다.

우드득─!

그대로 팔을 비틀어, 어깨의 관절을 꺾었다.

“끄, 끄아아악!”

월프의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토록 자만과 자존심에 가득 차 있던 놈이 고통과 당황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니 속이 후련했다.

“커억!”

사지가 덜덜 떨리는 놈의 안면에 강하게 주먹을 꽂아 넣어 곧게 뻗은 콧대를 박살을 내버리자, 전보다 높은 음조의 신음이 귓가에 꽂혔다.

“무, 무슨…….”

월프는 본인의 코를 감싸쥐며 좌우로 눈을 떨었다.

그의 두 눈에는 경악과 당혹감이 서렸다. 마치 ‘내가 지금 얘 주먹을 맞은 게 맞나?’라고 이야기하는 성싶달까.

뭐, 그럴만하지.

마나를 사용해서 기존보다 배에 달하는 근력을 끌어올렸으니까. 이 아기자기한 손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힘이 나오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씨발, 씨발, 씨발!”

더 이상 귀족스러운 면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월프는 내 옷자락을 잡으려,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몸싸움으로 들어가 전황을 뒤집어보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그 눈없는 손짓에 당해줄 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월프의 상체에 빈 공간이 보이자마자 파고들어 어깨를 부여잡았다.

빠각─!

전과 같이 비틀었다.

“끄으읍!”

참지 못할 고통일텐데, 월프는 쓰러지지 않았다.

참으로 의지가 대단하다.

난 피로 물든 월프에게 속으로 감탄을 보냈다. 평민에게는 죽어도 쓰러지기 싫다는 건가, 근성 하나는 칭찬해줄 만 했다.

“으아아──!”

그는 핏물을 터져 나올 정도로 입술을 씹어 정신을 차리곤, 망가지지 않은 반대쪽 팔로 대련을 지속했다.

「이, 이거 말려야 할 거 같은데.」

「쟤 예, 예나맞아?」

허나 생도들의 말마따나, 애잔하게 비춰질 따름이었다.

추해.

팔을 부서진 뼈와 망가진 인대로 퉁퉁 부었고, 셔츠는 입과 신체 곳곳의 찢어진 상체에서 흐른 피와, 바닥에 깔린 토양들로 더러워졌다.

이처럼 추잡한 몰골이 어디있을까.

더는 생도들의 유익한 훈련이라 보기엔 무리였다. 전장에서나 볼 법한 악에 받친 처절한 몸짓이었다.

이쯤 되면 자비를 베풀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럴 마음은 없었다.

밟힌 지렁이의 꿈틀거림을 보듯, 귀족이라는 허물을 다 벗고 난 뒤, 살의만이 남은 월프를 보는 건 꽤 재밌었으니까.

더군다나 가르텔의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대련을 이어나가야 하는 법, 월프가 항복을 하지 않는 한,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기 이전엔 계속돼야만 했다.

뭐, 조금 미안하긴 한다마는…….

“할 건 해야지.”

난 녀석이 허공에 헛손질했을 때를 노려 가슴팍으로 달려들었다.

콰앙─!

그의 멱살을 붙잡고, 딱딱한 지면으로 내리꽂았다.

“으, 으어어…….”

헤롱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월프의 배 위에 올라타곤, 놈의 안면을 향한 난타를 시작했다.

손이 왕복하는 횟수에 따라, 얼굴에 피멍이 생겨났다. 마나가 실린 주먹은 살인적인 위력이었으니, 그의 입장을 비춰보자면 거대한 철제 모루를 떨어뜨리는 셈이었다.

콰직, 콰드득─!

피튀기는 전투, 생명이 오가는 백병전.

놈의 혈흔이 손을 적실수록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월프를 적군이라 되뇌며 주먹질을 휘둘렀다.

사실 무력한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를 즐기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예나 프로이드가 됐다. 아니, 난 예나 프로이드다. 평민이니 뭐니 하며 정치질을 곁들인 모욕은 참기 힘들었다. 나도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이 무자비한 난도질은 격분의 대가라 할 수 있었다.

『예나, 그만! 멈춰라!』

타다닥, 파악─!

마침내 가르텔이 달려와 제지했다. 그는 눈 깜짝할 새에 나와 월프 안으로 끼어들며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만하면 됐다.”

더 이상 허가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하아, 하아. 이긴 겁니까.”

“그래.”

난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월프를 내리치며 모든 힘을 토해냈었기에, 힘이 없어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그으, 그으어…….”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월프를 두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돌바닥의 대련장을 빠져나왔다.

손에 묻은 피들을 깔끔히 닦고, 어느새 풀려져 어깨춤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다시금 묶은 뒤,

「대, 대박.」

「미친…….」

홍해처럼 갈라지는 생도들을 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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