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12화 (12/40)

〈 12화 〉 대련을 시작한다

* * *

가르텔이 공터 탁자에 미리 마련한 보호구를 흔들었다.

『작년에 대련 도중 생도가 사망한 사례가 나왔다. 다들 조심하고, 충분히 안전을 숙지하길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조끼리 나와 가져가도록 한다. 질서를 유지하도록.』

생도들은 복명복창하곤, 차례대로 장비를 배부받았다.

교관의 강력한 경고가 먹혔는지, 아이들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질서있는 모습으로 오와 열을 맞췄다.

우리 조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

난 뺨을 긁적이며 조원들을 살폈다. 가관이었다. 협동심을 발휘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내가 속한 조는 모이지 않고, 전부 각자만의 거리를 유지했다.

「쯧, 그냥 가져가면 되는데 귀찮게…….」

정확히는, 월프 이놈이 원흉이었다.

내가 평민이니 뭐니 같잖은 이유로 상급자인 교관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여 움직였다.

빠드득!

끔찍이도 역겨운 행태야. 난 빈정거리는 그의 태도를 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제국에서 아직도 군인보다 귀족을 앞서 생각하는 열등한 족속이 아직도 있다라, 그 누구보다 군인의 프라이드를 존중하는 나로선 분노가 치밀었다.

저런 녀석들이 제국을 망쳤지.

인맥과 자금을 이용해 무능한 인간이 맡아서는 안 될 요직을 차지하고, 유능한 인재는 자격지심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 내치거나 제거해서 말이야.

버러지같은 놈들.

과거 승전하기 이전까지 수백 번의 대전쟁을 반복할 동안, 무능한 장교들에 대해 히스테리가 쌓였다.

냉정함을 신조로 삼는 내가 유일하게 용납하지 못하는 유형이었다.

“후…….”

“예, 예나?”

“응?”

에리카는 잔뜩 구겨진 내 표정을 봤는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무슨 일 있어?”

“아냐, 우리도 빨리 장비 받으러 가자.”

“으응!”

난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순수함으로 치장된 그녀의 눈동자에 미소로 답하고, 보호구가 놓인 탁자로 나란히 걸었다.

이 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에리카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조원 활동이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생도였다.

【예나 프로이드】

【에리카 폰 로제힐트】

나와 에리카는 서로의 이름표가 써진 상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와,

철컥, 철커덕!

하나씩 부위에 따라 착용했다.

생도들 각각의 치수에 맞춰 제작한 제품인 듯, 몸 위에 덧대자 딱 맞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관절 부위도 유연하게 움직였고, 경도 또한 나쁘지 않았다.

마력석을 합성했군.

표면이 매끈하면서도 보랏빛이 감도는 특징에 값비싼 그 광물이 사용됐으리라고 쉽게 유추했다.

“장갑도…….”

비슷한 거 같긴 한데, 이건ㄴ 뭐지?

달칵, 달그락─

재질은 몸의 보호구와 똑같았지만, 특이하게도 손등뼈 부근에 마력석이 통째로 박혀있었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구조였다.

“……아.”

난 고민 끝에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기억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과거에 수련할 때마다 달고 다닌 물건이었다.

아마도 효과가,

『안전상의 이유로, 이번 대련에서 마나의 사용은 금지된다. 어차피 쓰려고 해도, 그 장갑을 낀 이상, 불가능하니까 괜히 힘 빼지 말아라.』

그래, 마력 억제였다.

때마침 사열을 끝낸 가르텔이 보호구의 효과를 소개했다. 이 장갑은 대련을 위한 필수품 중 하나였다.

찌잉, 스으으─

마나를 끌어올리는 즉시 보호구로 빨려 들어간다니, 멋지군. 시대를 고려하면 최첨단 성능이었다. 각성자 사관학교라는 명성다운 물건이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벽한 기능을 자랑하진 못했다.

사용자가 나였으니까.

아무리 전문 인력이 달려들어 탄생시킨 산물이라고 해도, 수많은 무기를 시험해본 내 앞에선, 134년의 군용품은 한낮 구식에 지나지 않았다.

사아아─

따라 마나를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고작해야 전간기 1세대 물건이니, 무력화하는 건 손쉬웠다.

그렇기에 이 편법을 요긴하게 써먹을 심산이었다.

유일하게 나만 뚫어낼 줄 안다는 건 상당한 이점을 지녔으니까.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루고, 매너를 지키는 게 도리잖아? 라고 혹자는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긴 경기장이 아니다. 스포츠맨십 따위는 없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가 자신의 운명으로 정해질 뿐.

『조마다 승자를 뽑아, 토너먼트 형식으로 생도를 가릴 방침이다. 쉽게 말해 너희 옆에 있는 동료들이 이젠 네가 맞서야 할 적이라는 소리지.』

가르텔은 수업에 대한 최종적인 공지를 마쳤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곧이어 생도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넌 내가 이긴다.」

「이번에 지는 사람이 점심 쏘는 거다?」

후보생들은 긴장 반 , 두근거림 반으로 교관의 호명을 기다렸다.

“잘해보자, 에리카.”

“응!”

난 끈으로 포니테일의 머리를 꽉 묶으며, 적어도 에리카가 내 상대가 되지 않기를 희망했다.

에리카와 리나 말고, 꼭 싸우고 싶은 상대가 있었으니.

파스슥─!

“조심해라, 만나면 죽여버릴 거니까.”

살기가 찐득하게 묻어나오는 협박과 동시에 군홧발로 거칠게 지면을 내리찍어 흙먼지를 튀기는 남성, 이 월프를 저 대리석 바닥 위에서 만나길 빌었다.

대외적인 이유로 참아왔던 분노를 교칙을 위반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녀석의 면상에 주먹을 처박아 풀 기회였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득이 많거든.

만약 월프를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면 가르텔과 생도들의 태도는 어떻게 변화할까. 적어도 날 깔보지 않을 건 자명했다.

위상이 올라가는 거지.

“예나. 괜찮아?”

“응, 멀쩡해.”

“그치만 이렇게 더러워졌는데…….”

“괜찮아. 어차피 대련하고 나면 흙이 잔뜩 묻을 텐데.”

난 대신해서 먼지를 털어주려는 에리카의 손길을 애써 마다하곤, 오로지 가르텔의 입에서 ‘예나 프로이드’가 터져 나오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가르텔의 목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브루너와 클린! 라냐와 벨…….』

그렇게,

『세 번째 조! 에리카 폰 로제힐트와 리나 빌헬름 빅토어 호엔촐레른! 8번 대련장에서 기다리도록.』

드디어 그의 말이 끝을 맺자,

『그리고 네 번째, 월프 폰 슈트레만과 예나 프로이드, 둘은 10번 대련장으로 가도록.』

“흐히…….”

몸을 부르르 떨며 붉게 상기된 볼을 감싸쥐었다.

* * *

월프는 혀를 날름거리며 앞머리를 쓸었다.

“하, 꼴에 자존심은 있어선.”

“무슨 일이라도 있냐?”

자신의 패거리들과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다.

“저년 때문에.”

저기 멀뚱히 서 있는 예나를 두고서.

서로 급이 맞지 않는데, 교관이라는 작자는 무슨 생각으로 조를 짠 걸까.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그나마 이들과 욕을 같이하니 짜증이 풀렸지.

‘얼굴은 반반한데.’

월프는 조용히 화를 삭이며, 우두커니 있는 예나를 훑었다.

흑요석의 빛을 머금듯 검은 머리카락, 차갑게 서린 눈이 어딘가 퇴폐적이었다. 리나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외모였다.

다만, 싸가지가 없었다.

예나는 외형만큼이나 자존심이 드셌다.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해도, 명백한 선이라는 게 있는데 지킬 의지가 안 보이잖는가.

「월프 네 말대로 별로인 거 같긴 하다.」

「평민이 어떻게 온 거야?」

월프는 넌지시 시선을 보내자 예나를 열심히 물어뜯는 친구들을 보곤, 피식 실소를 흘렸다.

‘뭣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재능이 출중하면 그나마 납득하겠다만, 지금 나처럼 주위에 호응해주는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외모를 제외하면 무엇 하나 없는 년이 설치니, 거슬렸다.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던 그날, 만약 광장에서 본인의 신세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으면, 평민이면 평민답게 무릎을 꿇었으면 편안한 생도 생활을 보냈을 텐데.

‘어리석은 거지.’

우득, 우드득─!

월프는 손가락을 앞뒤로 꺾으며 입술을 핥았다. 이번 대련에서 그녀와 나의 격차를 확실히 체감시켜줄 생각이었다.

착한 내 성격상, 가녀린 여자애를 가지고 놀듯 괴롭히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쩌겠어.

예나가 초래한 거잖아?

『다음 월프와 예나, 대련장으로 입장해라.』

그리고 혹시 몰랐다. 이번에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면, 저 콧수염마저 고집스러워 보이는 가르텔이 잘못된 걸 깨닫고 조를 바꿔줄지.

“갔다 올게.”

“큭큭, 빨리 끝내.”

월프는 녀석들의 인사에 답하며 유유히 대련장으로 향했다.걸음걸이에서 여유가 풍기는 것이 이미 승리를 확신한 태도였다.

뚜벅─ 뚜벅─

“원망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

마침내 돌바닥으로 이뤄진 대련장에 다다르자, 월프는 보호구의 끈을 꽉 여미며 예나에게 말을 전했다.

긴장이라곤 없었다. 진다는 가정은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쯧, 또 침묵인가.’

그래서인지 예나가 안쓰러웠다. 월프의 시선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예나가 마치 온몸에 엄습한 공포심을 무시하고,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거로 보였으니까.

지금 와서 용서를 구한다면 빨리 끝내줄 의향이 있었으나, 마지막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니,

하찮았다.

「시, 시작한다.」

「이건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훈련이라고 해도 다칠 거 같은데…….」

「조용히 해봐.」

어느덧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예나와 월프의 싸움에 집중했다.

정확히는, 월프가 예나를 어떻게 끝낼지 관심을 가졌다. 워낙 그들 간의 능력 차가 컸기에 예나가 월프를 이긴다, 라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을 뺀다면.

“……”

리나 빅토어 빌헬름 호엔촐레른.

월프의 강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단연코 그녀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녀는 월프의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본 게 있었으니까. 예나의 충격적인 면모를 확인한 유일한 사람인만큼, 대련의 판세를 멀리서 관망할 뿐이었다.

『준비──!』

많은 의견이 난립하는 가운데, 절차는 진행되었다.

가르텔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갔고, 그에 발맞춰 월프는 상체를 낮추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시작해라!』

그리고 커다란 목소리가 터지는 순간,

타다닥─!

월프는 곧장 예나에게 돌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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