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 아카데미 소녀 마도장교-11화 (11/40)

〈 11화 〉 조 배정

* * *

『조 편성을 시작하겠다.』

두 번째로 맞이한 수업에서 가르텔의 첫 마디였다.

앞으로 6개월간 조를 이뤄 활동한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성과에 따라 생도별로 차등을 두어, 곧 있을 적격 심사에서 가산점을 배분한다.

그가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강조한 사안이었다.

“이런 방식의 훈련은 기존에 없었는데…….”

난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교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합동 훈련이라니,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교육과정이었다.

이례적으로 저번 능력 검사를 시행했던 공터에서 수업할 정도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춘 듯싶었다.

이 역시 세상이 현실이 되면서 달라진 많은 면면 중에 하나겠지.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훈련일수록 즐거움 또한 배로 늘어날 테니까. 앞으로 어떤 생도와 생활을 같이할지 궁금해졌다.

『그럼 호명을 시작하겠다.』

그리고 그 궁금증의 결과는,

“음…….”

뜻밖의 만남을 안겼다.

“리나?”

난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소녀의 얼굴을 보고 침음성을 내었다.

리나 빅토어 빌헬름 호엔촐레른. 마나 등급에 있어서 극과 극인 서로였기에 함께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깨고 같은 조가 되었다.

“……예나 프로이드.”

그녀는 반짝이는 두 눈을 치켜세우며 터벅터벅,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전 봤어요.”

그렇게 거리를 좁혀서 꺼낸 말은 반가움의 인사말도, 적개심이 드러나는 비아냥 또는 욕설이 아닌,

“어제 과제 해결을 위한 시간이 주어졌던 그때, 가장 빠르게 성공한 사람이 그쪽이라는 걸.”

전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리나는 속사포로 말을 뱉어대며 살쾡이같은 눈빛을 뽐냈다. 얼마나 흥분한 건지, 곱게 땋은 새하얀 머리카락이 뒤흔들릴 정도로 부들부들 떨었다.

본 사람이 더 있었구나.

하긴, 저번 강당 사건 이후 내게 한 치의 관심도 떼지 않을 그녀였으니 어제 수업에서도 지켜보고 있었겠지.

“마나는 최하위인데 운용 능력은 저보다 좋다고요?”

끄덕─

난 거짓 하나 없는 순수함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가상현실, 아니 신 따위의 존재가 마련해놓은 공간에서 수없이 수련해왔으니 사실이었다.

“하.”

그걸 알 턱이 없는 리나는,

“……거짓말.”

고개를 푹 숙인 채, 제국을 상징물인 독수리가 각인된 코트를 거세게 움켜쥐어 감정을 표출할 뿐이었다.

“언젠가 밝혀낼 거예요, 그쪽이 숨기는 것.”

또각─ 또각─

몇 초가 지난 뒤에야 평정심을 되찾은 그녀는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말을 끝내곤, 귀족 특유의 도도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비밀을 밝혀낸다라…….

난 정모의 챙을 깊게 눌러써 입가의 웃음을 가렸다.

정말 알아낸다면 손뼉을 치리라, 아니 경외를 표할 것이다. 다른 세상에서 왔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간파한다면 대단하다 칭송받아도 마땅했다.

물론 기대하지는 않았다.

리나가 이야기하는 ‘내가 숨기는 것’은 앞서 언급한 비밀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였으니까.

“나머지는 언제 오는 거야?”

어쨌거나 지금은 조원을 꾸리는 게 우선일 때, 난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봤다.

조는 총 넷으로 구성되었기에 아직 두 명의 생도가 남아있었다. 가르텔의 명단 공표도 끝난 참이다, 지금쯤이면 모습을 보일 차례인데…….

“저 애들인가?”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오는지, 때마침 조원들의 형상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허.”

그리고 난, 그중 한 명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쟤가 여기서 왜 나와?

금발의 머리, 나보다 머리 두 개는 큰 키, 대충 봐도 부드러운 실크로 치장된 코트 아래 셔츠 등. 익숙한 용모의 소유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 안녕…….”

“어, 리나! 같은 조가 됐네!”

월프였다.

수줍게 인사하는 소녀도 옆에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월프, 저 녀석에 온 신경을 빼앗겼다.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가르텔의 관찰력이면 월프와 내가 사이가 안 좋다는 걸 모를 리가 없고, 리나와 놈이 각별한 관계임을 알 텐데?

스윽─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예나?”

“……아닙니다.”

난 당황한 마음에 교관에게 이의를 제기하려 했으나, 그의 순진무구하단 표정을 보고 결심을 접었다.

되려 확신했다.

작금의 편성이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찻잔을 들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교관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불만은 없었다. 리나와 같이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월프를 자세히 살필 기회가 많아진 거니까.

한 학기 동안 유지되는 조이니, 잘만 하면 그동안 오해를 풀 수도 있겠지. 다만, 교관이 나와 리나, 월프를 한 데 모은 점이 의문스러운거지.

“아, 너도 내 조원이었구나…….”

리나에겐 우렁찬 목소리로 손을 흔들던 월프는 나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혀를 차며 다리를 굳혔다.

“격 떨어지는 년.”

그는 뭐가 아니꼬운지 내 몸을 위아래로 흘겨보곤, 리나가 있는 방면으로 등을 돌렸다. 전적으로 나를 무시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긴 몸짓이었다.

참 한결같아.

이렇게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은 오랜만이었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다루기 쉬운 놈이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난 별달리 대응하지 않고, 마저 남은 조원을 맞이하러 몸을 돌렸다.

“……에리카?”

“어,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그제야 부끄럼을 타는 생도의 정체를 알아보며 입을 벌렸다.

에리카 폰 로제힐트.

“예, 예나가 아니었으면 어제 아무것도 못하고 제출했을걸!”

바다빛의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소녀를 또 만났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하는 에리카는 나보다 한 뼘이 더 작았다. 덕분일까, 여태껏 키가 큰 사람만을 만나다가 그녀를 보니 왠지 모르게 상쾌했다.

“아냐, 친구끼리 뭘.”

“치, 친구.”

“아무리 도와줬다고 하더라도, 에리카 네 실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야. 그렇게 자신없어 할 필요없어.”

난 그 시원함을 업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친근히 대했다.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이야.

속으로는 실소를 터뜨렸다. 생도 간 친목을 도모하는 일환으로 에리카를 도왔다만, 그 여파가 하루가 지나서 당장 영향을 끼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운명이라고 해야 할 지, 원.

조원 모두가 연관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기막힌 만남이었다.

그러면 에리카를 확실한 내 편으로 끌어 들어들이는 게 우선이겠네.

월프와는 적대관계다. 리나도 그에 준하는 쌀쌀한 사이다. 유일하게 이 소녀가 서로 견제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동료였다.

월프와 리나의 견제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이 아이와 더욱 사이를 가까이할 계획이었다.

성격도 나쁘지 않은 거 같고.

“아무튼 고마웠어, 헤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에리카는 내 손을 잡고 예쁘게 웃었다.

짝짝─!

시간이 다 되었는지, 가르텔이 드디어 손뼉을 쳐 생도들의 시선을 모았다.

『다들 인사는 끝냈겠지? 앞으로 함께할 이들이니 친하게 지내면 좋겠군.』

그의 말대로 혼란했던 상황이 얼추 추슬러진 듯했다. 직전까지 북적이던 공터는 대강 대열을 맞췄다.

『다음으로는 전투술을 배울 생각이다. 뒤쪽 격투장으로 향할 거니 따라오도록. 당연히 마나는 사용하면 안 되는 건 알겠지?』

『예!』

『너희 같은 후보생들이 쓰다간 위험해지는 건 순식간이니 절대로 긴장의 끈을 놓지 말도록!』

가르텔은 손가락을 치켜들며 신신당부했다.

『그럼 이동한다!』

곧이어 후보생들을 데리고 어디론가로 발을 내디뎠다.

터벅, 터벅─

난 그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어떤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가보면 알겠지.

*

『다들 뒤처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예, 알겠습니다!』

기숙사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 수어 개와 비포장된 오르막길, 그리고 또 끝이 안 보이는 평지까지, 넓은 부지만큼이나 수십 분을 걸었다.

그렇게 다다른 목적지는,

『사관학교에서 가장 북적이는 장소에 온 걸 환영한다.』

원 형태의 돌바닥이 일정 간격으로 놓인 산 중턱이었다.

「뭐하려는 거지?」

「빨리 끝나고 점심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생도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공터를 둘러봤다.

처음으로 사관학교 기숙사와 본관을 벗어나 시설을 이용하는 만큼, 강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이러려고 조를 짰던 거였구나.

그리고 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매우 친숙한 장소였으며, 여기에서 조원들과 어떤 교육을 받을지 확신이 섰으니까.

“……대련장.”

과거 이 돌바닥 위에서 수없이 주먹다짐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직은 하얀 저 대리석이 빨갛게 물들고, 심하면 치아 몇 개가 나뒹굴었던 여긴, 사관학교에서 유일하게 생도 간 난투가 허용되는 공간이었다.

결국 누가 제일 강한지 보고 싶다는 거였어.

가르텔의 의도가 드러났다.

조를 구성했다는 건 무슨 말이겠는가. 일종의 합동 훈련 격으로, 조 안에서 대련을 하게끔 만든다는 거겠지.

내가 만든 수정구를 보고 그냥 지나칠 가르텔이 아니기에, 리나와 월프같은 극상위권의 아이와 붙이고, 결과를 지켜보려는 속셈인 거다.

교관으로서 학생을 강하게 키우는 걸 선호하는 가르텔다운 계획이었다.

『보다시피 각 단련장에 번호가 기재되어 있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자리에 가서 상대방과 겨루면 돼.』

철컥─!

『이 장비를 차고 말이야, 간단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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