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가르텔의 경악
* * *
집중해야 한다. 천천히 마나를 주입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자제력이 흐트러진다면 실패다.
「오오, 나 될 거 같은……, 안돼!」
「우리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
「교관님은 이렇게 어려운 걸 왜 과제로 내주신 거야?」
난 강의실의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침착하게 마나 흐름을 제어하며 수정구를 밝히는 데 몰두했다.
타 생도와는 다르게 교본에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오로지 기존의 지식과 실력만으로 마나를 운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화아악─!
완벽한 성공이었다.
“하아, 하아.”
사관학교 창립 이래 이보다 빨리 성공한 사람이 있을까, 난 축축이 젖은 손바닥을 코트에 닦으며 수정구를 바라봤다.
밝다.
비록 적은 마나량 때문인지, 광도가 높진 않았지만, 투명하기만 하던 내부가 마치 우주의 은하와 같은 형태의 푸른빛으로 채워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게 빙결 속성이구나.
난 특히 마나의 빛깔에 주목했다. 지난번의 형형색색의 무지개색과는 달리, 오직 푸른빛만이 감돌았다.
당연하게도 의도된 형태였다.
많은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을 숨기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한 가지 속성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가장 무난하면서도, 여타 마법들보다 가지각색으로 활용이 가능한 빙결 속성이었다. 그 때문에 푸른빛이 감돌았던 거고.
앞으로 잘 써먹어야겠어.
빙결 능력을 다루는 데 완벽히 통달하면, 차례대로 타 속성도 연마하리란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럼……, 제출하면 되려나.”
난 빙결 능력의 특징에 따라, 어느새 차가워진 수정구를 품에 안고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생도들이 내 성공을 눈치챈 거 같진 않았다. 앞서 말했던 대로, 마나 등급이 낮아 형성된 빛이 생도들의 시선을 끌만큼 밝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생도들의 관심 없이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이라는 건데.
“음?”
“어, 으에에?”
난 그렇게 고민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이내 시선에 들어온 한 명의 소녀에 다시금 궁둥이를 붙였다.
“지, 지금 그거 구슬을……!”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품 안의 수정구를 가리켰으니까.
하늘색의 머리, 바다와 같은 밝은 색채감을 지닌 눈동자, 청량함 그 자체의 외형을 지닌 아이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두 눈을 비비며 날 응시했다.
본 사람이 있었구나?
아무도 나에 대해 신경 하나 쓰지 않을 거 같았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어서인지, 마나 운용을 지켜본 듯했다.
“도와줄까?”
“으, 으응?”
난 경악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을 뒤로하고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거 같아서.”
“그, 그렇긴 한데…….”
“어차피 같은 사관후보생이잖아?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지. 교관님도 협력을 금지하진 않았잖아?”
친절함을 띈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를 대했다.
그녀가 내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큰 흥미를 보이고 있음을 깨닫고 선택한 행동이었다.
앞으로 동료를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어.
내 천재적인 마나 활용능력을 들켜서 입막음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상관들이 주목할 테니 좋을 따름이었다.
그저 이 타이밍을 이름 모를 소녀와 좋은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발판으로 사용이 가능할 거 같아 움직였다.
지금 나한텐 뒷배라곤 없으니까.
재능을 가졌거나, 혹은 든든한 가문을 가진 이가 절실했다. 한때 월프와 좋게 지내려고 했던 것도, 리나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동료가 많을수록 옥석을 얻을 확률도 높아지기 마련, 결국 소녀를 향한 도움은 일종의 투자인 셈이었다.
“그, 그런가?”
“사실 교관님도 이런 걸 바라셨을걸?”
“진짜?”
“생도의 덕목인 협동심, 이걸 확인하고 싶어서 이런 시험을 내리신 거지. 함께 도와서 과제를 해결하라고 말이야.”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경계심을 풀었다. 더는 내 도움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름이 뭐야?”
“에리카 폰 로제힐트…….”
“그래 에리카. 수정구에 손을 얹어봐.”
“으응!”“손바닥 사이에 가느다란 실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 실 사이로 마나를 움직인다는 마음으로 집중해.”
난 에리카의 옆에 바싹 붙고는, 수정구에 붙은 그녀의 손등 위에 똑같이 손을 밀착한 뒤 말을 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하던 거처럼 손바닥 가운데에 마나를 응집시켜봐.”
“으으…….”
에리카는 밑입술을 씹으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아악─!
그에 맞춰 투명하던 구슬은 점차 일렁이는 이형의 광선으로 채워졌다.
나쁘지 않은 재능인데?
물론 에리카의 손등으로 마나를 흘려 도와주고 있다만은,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재능은 아니야. 일반적인 생도를 뛰어넘는 적응력이다.
정말 옥석일 수도 있겠는걸.
마나 이동에 열중하여 땀방울을 흘리는 에리카를 괜히 따듯한 눈초리로 흘겨봤다.
이 아이는 월프와 마찬가지로 과거 보지 못했던 생도였다.
바다빛을 머금은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시원한 색깔의 머리까지. 이런 특이한 용모를 내가 기억하지 못할 일은 없고, 새로운 인물로 보는 게 알맞았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능력을 보여준다라, 도와주길 잘했어.
“조금만 더 힘내자.”
“흐으으!”
에리카는 대답이라도 하는 듯, 신음과 함께 수정구 전체를 빙결 속성의 특징인 파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어도 곧잘 해냈다.
「저, 저기 성공하나 본데?」
「저 애는 누구야?」
「대, 대박」
자연스레 생도들의 이목이 쏠렸다.
7등급이라는 안타까운 마나량의 나와 대비되게, 에리카는 그래도 평균에 준하는 마나를 지녔는지, 주변을 환하게 밝힐 수준의 광파를 발산했기에,
「대, 대단하네.」
「우리도 빨리하자!」
「꼭 성공하고 돌아간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생도들의 의욕을 불태우는 도화선 역할정돈 되었다.
“흐으, 흐으……. 해, 해냈다!”
“그래, 잘했어.”
기어이 수정구를 마나로 채운 에리카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고, 고마워! 그…….”
“예나.”
“예, 예나!”
파악─!
곧바로 그녀는 머리에 쓴 정모가 날아가는 빠른 속도로 달려오곤, 그대로 내 가슴팍을 껴안았다.
성공이네.
에리카와 친밀감 형성이라는 과제를 말끔히 해낸 순간이었다.
* * *
생도들이 전부 빠져나간 어느 오후의 강의실.
“흐음…….”
가르텔은 나무 상자에 담긴 수정구를 하나씩 들어 확인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오전에 수거한 구슬들에는 생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누구의 성적이 좋고, 상대적으로 어떤 아이가 부진했는지 단번에 파악이 가능했다.
그렇게 내린 총평은 괜찮다, 였다.
‘과연 가장 기대되는 기수다워.’
아예 색이 들어있지 않은 수정구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이는 이번에 맡은 후보생들이 적어도 마나 운용의 기초 지식정돈 구비했음을 의미했다.
“허허…….”
기대 이상의 성적이지 않나, 가르텔은 매끈한 촉감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콧수염을 들썩였다.
‘심지어 역대 최고의 생도라 평가받는 아이도 칭호에 걸맞은 면모를 보여줬고 말이지.’
동시에 불현듯 한 손에 들린 구슬을 내려다봤다.
사아아─!
천사의 날갯짓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마나가 떠다니는 형상은 언제나 감탄을 자아냈다. 2등급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던 리나다운 성과였다.
응용력도 좋을 줄은 몰랐는데. 마나도 풍부하고 다루는 능력 또한 출중하다, 이미 완성된 아이 아닌가!
정식으로 장교에 임관했을 때가 기다려졌다.
비단 리나만이 아니었다. 이 소녀와 두터운 친분을 과시한 월프라는 생도에게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지녔다.
찌이잉─!
수정구 안, 마나의 순도와 강렬함이 비록 리나를 뛰어넘진 못했지만, 그래도 생도 전체 평균에 비해서는 무시하지 못할 결과물을 도출해냈으니까.
“슈트레만 가문의 장남이라고 했었나.”
가르텔은 과거 기록부에서 읽었던 월프의 인적사항을 상기했다.
전쟁이 막을 내리며 귀족들의 권세가 약해져도, 정치인과 인맥을 이어가며 위세를 떨치는 슈트레만 가문의 아들, 귀족 중의 귀족인 로열층.
이런 대(大)가문이니, 과거 황가였던 리나 측 집안과 연이 닿아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거만한 건가.’
가르텔은 눈을 냉랭하게 빛냈다.
수년간의 군생활로서 얻은 눈치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학급을 주름잡으려 하는 것과 평민 출신인 예나를 괴롭히는걸.
허나 제지하지 않았다.
리나에 이은 우수한 성적이 아닌가. 그에 걸맞는 권위를 지닐 뿐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을 묵과했다.
장차 제국을 이끌어가야 하는 마도 장교가 약해선 안 된다. 넘어설 생각을 해야지, 고작 초짜 후보생의 위압에 밀리는 녀석은 필요없었다.
철저히 약육강식의 생태를 기반으로 한 방치였다.
그리고 혹시 모르잖는가? 월프 특유의 남을 깔보는 태도가 생도들 간의 의욕을 부추겨 반대로 좋은 영향을 끼칠지?
“리나 빌헬름 빅토어 호엔촐레른, 최우수. 월프 폰 슈트레만, 우수. 헤르빈 폰 게르, 보통. 에리카 폰 로제힐트. 우수…….”
상념을 끝마친 가르텔은 수정구에 적힌 생도명을 따라 차례대로 점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한 물체를 두고 손짓을 멈췄다.
【예나 프로이드】
두 어절의 단어가 시선을 강탈했다.
“이건……!”
이어서 수정구의 모습이 추가적인 놀라움을 안겨줬다.
‘와, 완벽하다.’
후보생 수준이 아니다. 졸업 예정인 3학년생도? 아니, 그 이상이다. 현역의 마도장교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정교함이다.
‘도대체 어떻게?’
가르텔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수정구에 각인된 【예나 프로이드】라는 문구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마나량은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쓰레기 그 자체다. 하지만 응용력, 즉 마나의 활용은 수준이 사관학교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빙결 속성이었나.’
수정구의 빛깔 덕분에 의도치 않게 각성자 능력 검사 당시에 몰랐던 마나의 종류를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 이 일정하고도 조밀하게 배열된 마나는 뭐지?’
예나의 특출난 기술에 대해선 당최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대전쟁의 영웅인 아버지에게 배운 것일까. 아니면 타고난 기질, 혹은 마나가 적음을 어렸을 때부터 깨닫고, 갖은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인가?
무엇을 집어넣어도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깜짝 놀라게 하는구나, 예나 프로이드.”
가르텔은 예나의 수정구를 지켜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만약 천부적으로 마나를 타고난 리나와 월프를, 다음 수업부터 치러질 조별 과제에 있어서 예나와 같은 팀원으로 묶는다면, 어떤 시너지가 발휘될까.
치이익─!
그는 품 안에 모셔뒀던 파이프를 꺼내고 불을 붙이며 눈을 감았다.
‘실력으로서는 최상위의 팀이 탄생하게 되는 건데.’
교관으로서 가지게 되는 학생들의 잠재력에 대한 궁금증이 곧 결심을 만든다.
“프으으──.”
가르텔은 한껏 연기를 빨고, 깊게 내뱉으며 마침내 눈을 떴다.
“역시…….”
그의 입가엔, 반달 모양의 선이 떠 있었다.
“보고 싶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