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등급 확인
* * *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으로 가득한 바깥.
「너 몇 등급 나올 거 같냐?」
「솔직히 5 정도는 넘지 않을까?」
생도들은 공터에 오와 열을 맞춰 도열했다.
터벅─ 터벅─
난 정모를 푹 눌러쓰곤, 말없이 대열 사이에 합류했다.
아이들 사이엔 내게 뜨겁게 불타오르는 눈빛을 보내는 리나도 보였다.
마치 사나운 고양이와 같은 눈길, 리나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의 독보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가 이리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니.
“…….”
난 애써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무시했다.
「쟤야? 월프 폰 슈트레만이랑 싸운 게?」
「키는 엄청 작은데…….」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아이들의 눈빛을 받아야 했다.
광장에서 소란이 컸던만큼, 이목이 쏠린 거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웬만한 생도는 내 이름 정돈 알고 있겠지.
「저 새끼 또 만났네」
「야, 야 월프 네가 참아라」
개중에는 월프 뒤에서 재잘거리던 패거리도 있었다. 리나에 이어 월프까지 우연찮게 같이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직전의 사건에 분노하는 듯, 리나와는 다른 의미의 불타오르는 시선으로 날 쳐다봤다.
툭, 투욱!
하지만 그 시선도 얼마 안 가 걷혔다.
「야, 야 온다.」
「이제 조용히 좀 해봐.」
딱딱한 군홧발의 소리가 울려 퍼졌으니까.
시끌벅적하던 생도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환영한다, 후보생들. 이번 검사를 안내할 가르텔 교관이라 한다.”
그 자리엔 장교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이 서있었다.
“……가르텔 교관이라.”
난 무척이나 친근한 그의 이름에 남몰래 미소지었다.
그는 사관학교의 주요 행정을 담당하는 장교임과 동시에, 미래에는 제국을 주름잡는 장관진 중 하나가 바로 가르텔이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지.
비록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군대를 지휘하거나, 전술을 수립하는 데에 실력은 없었지만, 가르텔은 행정 능력 하나만큼은 우수했다.
덕분에 과거 대전쟁 중에 있어 점령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저 교관도 중반부에 볼 인물일 텐데…….
이 역시 현실이 되어 겪는 기연이리라.
“방송에서 들었다시피 지금부터 본 기기를 통해 마나를 측정하도록 하겠다.”
가르텔은 어디선가 가져온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기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측정기는 제국의 독자적인 기술로 제작된 것이니 함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자부심을 지녀도 좋고.”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마치 현대의 길거리에서 볼 법한 타격 측정기와 닮은 기계가 위치했다.
상반신 정도 크기의 장치, 중심에서 반짝이는 보석, 상단에는 최종 등급을 산출하는 듯한 디지털 화면 등, 교관의 말마따나 정말 값비싸 보였다.
「우와 저게…….」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
생도들은 그런 측정기의 자태에 압도되어 입을 벌렸다.
정확히는, 기계 중심에 박혀있는 보랏빛의 보석에 경악했다.
“저, 저게 마력석 맞습니까?”
“그래.”
문득 학생 중 하나가 질문을 건네자, 가르텔은 근엄함이 느껴지는 음성과 함께 머리를 끄덕였다.
「마, 말로만 듣던 마력석이구나」
「저렇게 큰 건 처음 봐…···.」
그럴수록 아이들의 얼굴은 얼간이나 지을 법한 멍청한 얼굴이 되어갔다.
난 이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저 정도 크기의 마력석은 일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들 테니까.
석유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공룡이 묻혀 시간이 지난 거라면, 마력석은 먼 과거에 괴수가 죽으면서 체내에 있던 마력이 응집되어 생성되는 광물이다.
단순히 철과 금 따위의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마력석은 각성자의 대한 마나를 증폭시키고, 육체 능력을 향상시키기에 매우 중요한 전략물자로 취급된다.
더구나 그 효능이 매우 대단하여 마력석으로 제작한 각성자용 무기 하나가 폭격기의 값어치와 맞먹는 수준인데, 하물며 저렇게 큰 마력석은 어떻겠는가.
생도들이 신기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짝, 짜악─!
“다들 얼빠져있지 말고 주목.”
침묵 속의 감상도 잠깐, 가르텔은 손뼉을 두어 번 치곤 말을 이었다.
“우선 이 측정기를 통해 개개인의 마나량과 속성을 기록하도록 하겠다. 뒤이어 기초 체력에 대한 평가도 진행할 테니 미리 참고하도록.”
그는 측정기를 손으로 두드리며 기본적인 절차 진행 방법을 비롯해 세부사항과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렸다.
“그럼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라.”
곧이어 가슴팍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 필기를 준비했다.
“그럼 얀테르, 측정기 앞에 서도록.”
“옙!”
드디어 시작된 마나 검사.
후보생들은 교관의 명령에 따라 순차적으로 마력석에 손을 얹었다.
찌이잉─!
“으, 으으윽!”
“5등급. 화(火) 속성이군.”
가르텔은 잠깐의 빛줄기 뒤에 화면에 표시되는 숫자를 써내려갔다.
각자가 그리 낮지만은 않은 성적을 달성하는 상황 속, 난 과연 어떤 등급의 마나량이 산출될지 궁금증을 품었다.
당연하겠지만 하위권에 등극하겠지.
다만 논점은 얼마나 심각한 마나량을 지녔냐는 것. 과거를 통틀어 가장 낮은 위력의 마법을 발산할 정도이니, 웬만한 마나량은 아니리라.
“이제 이 아이도 끝났고.”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가르텔은 생도 명단을 무심히 훑어내렸다.
“……다음.”
이내 손을 멈칫했다.
“리나 빅토어 빌헬름 호엔촐레른.”
동시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네 어절.
「야, 야. 드디어 나왔다.」
「쟤가 네가 말한 그 사람이야?」
「어, 황녀였대.」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다가왔다.
검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이나 동료와 아이들의 목소리는 단숨에 정적을 찾았다. 대신 그들은 공터의 중심을 걸어가는 한 소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네.”
리나는 특유의 기품있는 걸음으로 측정기를 향해 다가섰다.
스윽─
손목을 뒤덮는 새하얀 실크를 걷곤, 천천히 마력석 위에 손을 대었다.
“측정 시작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가 마력석에 온몸의 마나를 쏟아부었을 때,
사아아─!
새하얀 빛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와아아…….」
아름다움을 넘어 청량했다. 하얗다는 느낌을 넘어 신성했다. 생도들은 리나의 팔에서부터 발광하는 우아한 빛에 오직 감탄사만을 내질렀다.
험담이나 수다따윈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새하얀 빛만을 만끽했다.
“으읏.”
나 또한 순간 시야를 가득 채우는 반짝임에 손바닥으로 앞을 가렸다.
저게 신성력인가.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백광(白光), 신성력의 위엄은 가히 대단했다. 지금껏 봐온 생도들 누구보다도 강력했다. 전신에서 따스함이 감돌았다.
황가 고유의 능력, 그 명성에 걸맞은 아우라였다.
스으으─
차차 빛이 잦아들자 생도들은 하나둘씩 눈을 떴다.
「대, 대박」
「지금 몇 등급 나온 거야?」
시력을 되찾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측정기 최상단의 점수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2]
그리고 모두 경직한 채 입을 쩍 벌렸다.
“사관학교 이래 가장 높은 점수군. 호엔촐레른 가문은 호엔촐레른 가문이라는 건가. 대단하구나, 리나.”
가르텔마저 펜을 쥐던 손가락을 바르르 떨며 겨우 평가를 마칠 정도였으니 후보생들은 오죽할까.
“감사합니다.”
리나는 말아 올렸던 옷자락을 내리고는, 도도히 몸을 돌렸다.
또각─ 또각─
다시금 본래 위치로 돌아갈 땐, 전보다 우월감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
정확히는 여기를 바라보며.
내가 무척 걸리적거리나 보군.
웬만한 시선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호기심이나 관심으로 살피는 게 아니라, 호의든 적의든지 한 가지의 마음을 품고 바라보는 게 맞았다.
딱히 일을 크게 벌리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이쪽을 힐끗거리는 걸까. 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인물과 뭐가 어떻든 관계가 형성된 점에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었다.
고작해야 월프에게 묵직한 모욕을 하고, 그의 경고에도 재차 도발을 건네고, 리나를 스스럼없이 대했을 뿐이잖…….
“아.”
이렇게 나열하니 납득되는군.
나의 본분을 망각했다. 귀족을 상관하지 않는 평민이라니, 리나 입장에서는 내가 이상한 녀석으로 보이고도 남았겠지.
“역시 엄청난데?”
월프는 자리로 되돌아오는 리나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압도적인 그녀의 마나량에 모두가 충격의 도가니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그만이 당당하게 입을 열며 리나와 대화를 나눴다.
“역시 황녀는 다르다니까, 하하!”
“알았으니까 조금만 떨어져 줄래.”
역시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다. 그것도 보통이 아니라 상당히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는 거 같은데.
“황가를 알고 있음을 넘어 친한 가문이라.”
난 저런 둘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이제 월프가 높은 가문의 자제임은 분명해졌다. 리나가 싫어하는 기색을 저리 내뿜고 있어도, 결국 월프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모습에서 확신했다.
적어도 황가에 꿀리지 않는 정도라는 거겠지.
“다음 월프 폰 슈트레만.”
“옙!”
그렇다면 과연 실력은 어떨까.
“시작해라.”
“하하, 제 능력을 마음껏 보여드리겠습니다!”
월프는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측정기에 다가가, 지체없이 마력석에 손을 얹었다.
찌잉─!
「우, 우와. 밝다!」
「리나보단 아니지만, 진짜 대단하네…….」
푸르스름하면서도 청순한 빛.
직전의 새하얀 빛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생도들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수준의 광도가 주위로 비산했다.
“수(?) 속성인가. 4등급, 좋은 수치다.”
최종적으로 산출되는 등급 또한 높았다.
「잘 봤냐?」
「못 볼 리가 있겠어?」
월프는 가르텔의 말에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위치로 복귀한 뒤,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놈들보다 잘 봐야지」
「하긴, 뭣 없는 귀족들보다 못 보면 수치긴 해」
그의 얼굴엔 조소가 가득했다.
말투에서 묻어나오듯이, 그는 특유의 자존심이 드센 성격으로 같은 귀족까지 낮잡아보며 말담을 나눴다. 아무도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니, 과연 대단한 위세였다.
의외네.
나는 콧대가 높이 솟은 성싶은 놈의 얼굴을 쳐다보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능력조차 우수할 줄은 몰랐다. 푸른색의 광선으로 보아 나쁘지 않은 취급을 받는 수(?) 속성일 테고, 등급도 높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생도 중 상위권이었다.
든든한 뒷배에 우수한 재능까지, 앞날이 열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남들을 맹목적으로 깔보기만 하는 성격을 바꾸지 못한다면, 뛰어난 장교가 되지 못하리라.
아무리 본인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지휘권으로서의 병사 관리와 통솔력을 상실한다면 대전쟁 과정 중에 탄생하는 수많은 유골 중의 하나가 될 테니까.
뭐, 지금은 내 걱정이 먼저인가.
새하얗고도 가녀린 팔목을 내려다봤다. 핑크빛이 피부에 감도는 외형이 전형적인 소녀의 것이었다.
이 안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가 몸속에 감돌고 있을 터.
지금은 월프의 능력치를 평가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본연의 힘을 강하게 단련하는 게 더욱 중요했다.
“다음. 예나 프로이드.”
마침내 가르텔이 호명했다.
난 주변의 시선이 쏠리는 걸 의식하며 발을 내디뎠다.
파슥, 파스슥─
“……이름이 예나.”
리나의 중얼거림이 자그맣게 들려왔다.
「어, 엄청 예쁜데?」
「넌 그런 거밖에 안 보이냐.」
「저렇게 약해보이는 아이가 정말 월프랑 맞붙었다고?」
수군거림이 고막을 간지럽혔다.
“준비됐나.”
이 모든 걸 지나자, 특유의 냉철한 분위기가 풍기는 가르텔이 맞이했다.
“예, 교관님.”
난 그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시작하도록.”
이내 그의 허가가 떨어지자, 조심스럽게 광석 위로 손을 움직였다.
「쟨 얼마 나올 거 같냐?」
「별로. 몸집도 작은데 6등급이나 넘을까?」
이번만큼은 뒷담을 하던 월프와 그의 친구들도 숨죽인 채 결과를 지켜봤다.
과연 어떤 숫자가 나올까.
찌이잉!
환하게 밝아지는 마력석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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