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예상 외의 능력
* * *
[아카데미 1945 제작자 드림]
짧은 대목임에도 손이 떨렸다.
"제작자라고?"
이제는 가녀린 여자아이의 음성으로 중얼거린 난, 지체 없이 봉투를 뜯고, 내용을 확인했다.
"하."
그리고 첫 문구를 보았을 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안녕하세요 예나님!】
이라.
너무 태연하게 서두를 떼잖아. 이 저자가 작금의 사태에 대한 배후일진대, 이리 뻔뻔한 인사말로 포문을 여는 게 우스웠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형식적인 상황 설명을 시작으로,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갑작스레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 등의 내용이 첫 문단을 이뤘다.
【……그리고 신체의 성별이 바뀌었을 텐데 그 점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ㅠ.ㅠ 예나 님을 위한 일종의 밸런스 패치랄까요. 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월프와 갈등 속에서 파악을 끝낸 몇 가지 정보를 일러주는 문장이 두 번째 중장을 차지했다.
충격적이었던 등장과 다르게, 정작 그 안의 내용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까지만 본다고 하면 말이지…….”
【기존과 신체가 바뀐 만큼 마나의 총량도 줄어들었습니다. 최대한 좋은 조건을 마련해드리고 싶었지만 이게 최선이네요.】
난 조심스럽게 마지막 부분의 글씨체를 읽어내렸다.
【아 이런 말씀을 드리기 뭐하지만, 예나 님께서는 제국의 승전이라는 게임 클리어 조건을 아시고 계실 겁니다! 꼭 이뤄내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만약 실패하신다면 좋지 않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ㅠ.ㅠ. 플레이 전 확인 문구에 동의하셨으니 돌이킬 수 없답니다】
단순히 미사여구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중요한 대목이 돋보였다.
과거 게임에서도 제국의 승리를 끌어내야 게임 클리어를 할 수 있었던만큼, 이와 비슷한 과제를 주리라 예상은 하였건만, 실패하면 좋지 않은 결말이 기다린다니?
목숨이라도 빼앗을 것만 같은 살벌함 아닌가.
“하하하!”
난 순간 등골을 스치는 소름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작해야 게임 약관에 동의했다고 해서 이런 현실감 없는 일이 닥쳐오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제작사에서 보내준 개정판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게임 속 세상에 빙의함과 동시에 성별이 바뀌리라 생각하는 녀석이 이상한 거지.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난 어느새 다 읽은 편지를 구긴 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중얼거렸다.
딱히 좌절할 만한 내용은 없는걸. 뭐, 제국을 대전쟁에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미 결심했던 사안이고, 능력 약화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잖아.
생각보다 괜찮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얼마나 능력이 약해졌느냐는 건데…….”
끼익─
난 의자 등받이에 몸을 눕힌 채 허공으로 손 하나를 뻗었다.
사아아!
이내 손바닥 중심에 체내에 순환하던 마나를 모은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아까는 리나의 중재로 마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능력을 점검하는 제일의 타이밍이다.
“끄, 끄으으…….”
힘을 모을수록 고통도 배가 됐다.
정상적으로 마법이 발현되고 있다는 청신호였다. 살구색을 유지하던 피부는 어느새 살갗 안쪽을 선명하게 비추는 수준으로 밝게 빛났다.
화륵, 찌이잉─!
뜨거운 불길.
서리를 일으키는 얼음덩어리.
“허억, 허억!”
드디어 마법이 발현됐다. 서로 상극의 성질을 지닌 두 가지 원소가, 손바닥 위를 원을 그리며 떠돌았다.
난 화려한 두 물질을 둘러보며 헤실거리며 웃었다.
역시 마나 발동원리는 달라진 게 없었어.
성공적으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마나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작동 원리가 과거 게임과 다른 게 없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는 엄청난 뜻을 의미했다.
마법 숙련도가 이 세계에서도 유지된다는 거지.
추측했던 대로, 이 세계에서 내가 가장 마나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앞으로 장교과정을 밟는 데 있어 든든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흐흐으…….”
이 행복함을 주체할 수가 없다. 볼살이 흔들리도록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랑스러움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손 위를 떠다니는 불과 얼음을 응시했다.
“잠시만.”
곧 눈을 동그랗게 뜨며,
덜컹─!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재차 눈을 비벼 확인했다. 그런데도 눈앞의 광경을 그대로였다.
이게 가능한 거였나?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겠다, 마나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건 뭔 상황인가.
다시 확인해도 납득하지 못했다. 본디 각성자란 속성 하나를 지니고, 그것을 부리는 게 일반적인데, 이 마나 덩어리는 그 상식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찌이잉!
기세를 더욱 끌어올리자 입 쩍 벌어질 모습이 연출됐다.
불과 얼음에 이어서 흙과 물까지, 이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가 함께 어우러져 공존했다.
두 가지의 마나가 떠다닌다.
이게 가능한 건가?
편지의 내용 중에선 다원소 마법이 가능해졌다는 정보는 일언반구도 없었어. 그렇다면 제작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털썩─!
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얼떨떨한 심정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그렇게 몇여 초가 흐르고,
“설마?”
뇌내를 관통하는 한 가지 가정에 몸을 움찔거렸다.
만약 게임 속에서 발현시켰던 수많은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된 거라면, 수많은 게임오버 속에서 한 번쯤은 다뤘던 능력을 전부 펼치는 게 가능해진 거라면?
차분히 눈꺼풀을 닫았다.
“다(?)속성의 마나를 구사할 수 있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땐, 떨림이 멎은 안정된 눈동자를 보였다.
과거 게임 캐릭터로서 네 자릿수에 달하는 죽음을 겪으면서 체득했던 다양한 기술들을 이 세계가 현실이 됨으로써 전부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런 경우는 제작자마저 생각지 못했던 걸까.
비록 낮은 능력치로 인해 아직까진 많은 마법을 동시에 부리는 덴 무리가 있더라도, 이는 대단한 희소식이었다.
이거라면, 이 활용 능력이라면, 남들보다 고속으로 성장하는 게 가능하다.
“마나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최하급인 거 같지만…….”
얼음과 불꽃의 크기가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마도 장교로서 마나가 부족함의 극치를 달림을 깨달아 한편으로 걱정하고 있었으나, 근심을 덜게 되었다.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단순히 쓸 수 있는 원소가 많아진 것만이 아니야.
마나량까지 늘릴 수 있어.
꽈악─!
난 허공에 손을 뻗고,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본디 마나는 재능의 영역으로서, 그 총량을 증가시킨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설일 뿐, 예외란 항상 존재하는 게 세상이다.
『추가 개화』
운과 노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극소수에게만 발생하며, 각성자에게 새로운 속성을 안겨주는 현상이다.
이를 이용하면 마나를 늘릴 수 있다.
정확히는 새롭게 생겨나는 속성 마법을 활용함으로써.
마나를 통해 다양한 속성의 마법을 구사하여 마력 친밀도를 올린다, 그리하여 마나의 격이 한 층 상승한다면, 이를 받아낼 수 있도록 신체를 단련한다.
이게 바로 마나 성장의 메커니즘이었다.
결국 『추가 개화』는 새로운 속성을 각성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발전의 발판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그리고 난, 그 과정들을 이미 완수한 셈이 됐다.
추가 개화를 겪지 않아도 이미 온갖 속성마법을 부릴 수 있잖는가? 그러니 편안할 따름이었다.
“크흐흐.”
덕분에 입술 사이에선 한숨 대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맙다.
난 새하얀 페인트로 도장이 된 천장 위로 손을 뻗으며, 이 편지를 보냈을 놈에게 인사를 전했다.
놈이 의사도 제대로 묻지 않고 이런 몸을 줬으며, 동시에 각종 페널티를 부여했지만 앙심이 생기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깜짝 선물을 준 녀석이 기특하지.
앞으로의 성장은 전적으로 내 의지에 달렸다.
꾸준한 훈련.
끝없는 마나 사용에 따른 고통.
그 모든 시련을 참아내는 것이 미래를 결정할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렇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난 그 두 가지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오히려 환영했다.
이 세계에 처음 당도했을 때에도 수련을 만끽하리란 상상에 미소를 지었는데 어찌 괴로워할까.
지금 불편한 건 낮아진 능력치도, 단련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아닌, 몸뚱아리가 변하면서 주는 위화감 하나뿐이었다.
그 유일한 단점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에으.”
난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을 찡그렸다.
자그마한 몸에 비해 상체에선 무게감이 느껴졌다.
긴 머리는 입을 간지럽히는 것도 모자라, 옷을 입는 행위도 방해하여 환복에 대한 난이도를 더욱 높였다.
여성형 의복을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익숙해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일 터, 한시라도 빨리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면 이제 좀 자볼까.”
남은 건 다음 방송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겠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덮고 사르르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몇십 여분이 지나,
지직, 지지직!
『사관생도 후보생 여러분은 각자 임시 숙소 위치에 따라 가까운 광장으로 집결하시길 바랍니다. 곧 능력 검사가 진행됩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사관생······. 』
고대하던 방송이 울리자,
슥, 스윽─!
외출을 위한 환복을 준비했다.
단추를 채우자 딱 맞는 겉옷.
허벅지 아래까지 다다르는 기다란 부츠.
독수리가 박힌 멋들어지는 정모.
그 모든 것을 착용하자 여리기만 하던 소녀에서, 엄중함과 근엄함이 함께 하며 카리스마가 풍기는 장교의 구색이 갖춰졌다.
사락─
깔끔히 묶여 정돈된 머리가 그 분위기를 더했다.
조금 볼 만한 얼굴이긴 한가.
방 한구석에 자리한 거울 앞에 다가가, 옷가지를 정돈하던 도중 드는 생각이었다.
도도하다 생각될 눈매 속에서 또렷이 빛나는 벽안, 단정히 내려간 흑발에 이어 과도하지 않은 건강한 몸매 등,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괜찮은 낯짝이었다.
그러니 월프라는 그 아이가 말을 걸어왔던 거겠지.
난 짧게나마 몸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고 눈을 뗐다.
겉모양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랴, 힘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 대해선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로지 힘과 권력, 마나의 강력함만을 기원했다.
끼익─!
난 그런 소망과 함께 현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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