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다시 시작, 약속, 책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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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은은 시가지 사냥팀의 막내다. 나이로 보든 경력으로 보든 완벽하게.
그리고 시가지 사냥팀은 막내로 살아남기에 호락호락한 곳이 결코 아니었다.
막내는 조직 내에서 가장 미숙한 구성원이기 마련이며, 동시에 조직이 원활히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취급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갖가지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결국 돌고 돌아 둘로 나뉜다. 철저히 보호하거나, 과감하게 단련시키거나.
말할 필요도 없이 윤현수는 후자였다.
"여기서 한번 더 지면 하체 1세트 추가다."
"이익!"
냅다 달려드는 서혜은의 다리를 가볍게 후려 차 넘어뜨리는 것으로 윤현수의 승리가 결정되었다. 하체가 부실해서 그래, 하는 조롱을 뒤로하고 서혜은은 눈물 대신 땀을 쏟으며 운동에 들어갔다.
끊임없는 훈련, 대련, 실전.
윤현수는 막내에게 끊임없이 과제를 던져주고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중 조금이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혼내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 칭찬했다.
다시 말해, 쉴 틈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서혜은은 괴로웠다. 거기에 항변할 처지도 아닌 터라 더더욱 괴로웠다.
처음 윤현수를 만났을 때 예의 없이 굴었다는 자각. 그것이 서혜은의 입을 막았다. 괜한 선입관으로 갖은 면박을 주고 무시했던 것이 민망하여 지금은 고분고분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윤현수의 조언은 실제로도 틀린 점이 없었다. 첫째는 자신의 안전, 둘째로 팀원들의 안전. 이 두 가지 대원칙을 바탕으로 내려오는 그의 지시는 결코 서혜은에게 과분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녀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윤현수의 감독 아래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혜은은 가끔 생각했다.
김예림은 그녀에게 이상으로서의 헌터를 보여줬다. 무표정한 얼굴로 냉엄한 카리스마를 두르고, 믿기지 않는 활약을 이어나가는 현대의 영웅.
그렇다면 윤현수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인 형태로 헌터로서의 모범이 아닐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처리해 나가는, 도시의 파수꾼.
"예림아. 나 전화 받고 올 거니까 혜은이 좀 봐줘."
윤현수는 그 말과 함께 훈련실을 나가려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한 세트 추가해."
그리고 문을 닫았다. 서혜은은 화가 났다. 한 세트 추가라는 말로 그녀를 기만한 윤현수의 잔인함에.
그녀의 표정을 읽었는지 김예림은 조심스럽게 달래듯이 말했다.
"……한 세트 추가라고 하셨지, 쉬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김예림은 그렇게 말하며 서혜은에게 타월을 건넸다. 어색하게 타월을 받아 땀을 훔친 서혜은은 김예림 옆에 앉아 그녀를 힐끔거렸다.
아직까지도 서혜은은 김예림이 어려웠다.
서혜은은 김예림과의 거리감을 재지 못하고 있었다. 한때 우상으로 추앙하며 쫓아다녔던 만큼, 한번 벌어진 거리감은 회복할 날이 요원했다.
그날 서혜은과 김예림은 서로의 약한 모습을 보았고, 속이 후련해질 만큼 쌓인 말들을 서로 토해냈다.
그러고 나면 관계가 더 단단해진다,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충분히 상호 간의 신뢰와 애정이 쌓여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어색함만 남을 뿐.
그래서 그 둘은 어색했다. 이후 윤현수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소동으로 어색함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갔다.
김예림과 서혜은은 나란히 앉아서 어색한 시간을 나누었다.
숨이 막히도록.
"……수분 보충하세요."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건넨 물병을 다시 어색하게 받는다. 그리고 어색하게 힐끗 곁눈질을 해보면 김예림의 얼굴은 완전히 무표정. 그래서 또다시 어색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래도 무섭지는 않았다.
김예림은 항상 무표정했지만 서혜은은 그것이 꺼림칙하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 무표정 아래에 아주 가끔, 조금씩 드러나는 감정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혜은이 혼날 때는 안절부절못했고 위험할 때에는 다급한 기색이 어렸다. 김예림은 상상 이상으로 희로애락이 분명했다.
또 한 가지, 김예림의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오직 시가지 사냥팀 팀원들과 마주했을 때뿐이었다. 평상시에 다른 사람과 업무상 대화를 나눌 때는 좀처럼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서혜은에게 남모를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마치 그녀가 김예림이 특별히 여기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서.
그래서 불편하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결코 두렵지는 않았다. 싫지도 않았고, 다만 다가갈 타이밍을 가늠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특히 윤현수의 앞에 있을 때 김예림의 눈 끝, 입매, 콧잔등에서 피어나는 복잡한 감정들은 서혜은의 비밀스러운 즐거움 중 하나였다.
반면, 김예림과 유민하가 같이 있을 때에는 정말로 "혜은아!" "네!" 무서웠다.
서혜은은 반쯤 경기를 일으키면서 대답했다.
이름 한번 부르는 것으로 서혜은의 심장을 멈춰버릴 뻔한 유민하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지 반응이 귀엽다는 듯 싱긋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이제 충분히 쉬었지? 충분하다고 해주라. 지금 딱 선배 들어왔는데 너 앉아 있으면 혼낼 거 아니야."
"네, 네."
서혜은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유민하의 지시대로 자리를 잡고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힐끗 옆을 봤다가 싱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유민하의 얼굴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서혜은의 막내 생활에 있어 윤현수가 '괴로움' 담당이고 김예림이 '불편함' 담당이라면, 유민하는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유민하는 서혜은을 혼내는 것도 아니었고 나무라는 것도 아니었다. 대련을 하면서도 적당히 손속을 두는 편이었고 평소에도 재치 있으면서도 배려심이 넘쳤다. 그러니까 보통이었다면 평범하고 이상적인 선배였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무서웠다. 서혜은이 느끼기에 유민하 행동에는 항상 무언가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유민하의 행동은 항상 적절했고, 그래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서혜은이 윤현수와 함께 단둘이 훈련을 할 때면 적당히 이제 쉬어야겠다 싶을 때 유민하가 찾아와 간식을 챙겨주었다. 어쩌다 유민하와 쇼핑몰과 마주쳤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윤현수가 근처를 지나갔던 것은 그녀 기억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의도는 알 수 없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둘이 연인 관계인 것도 아니었다. 유민하는 항상 거침없이 호감을 표현하면서도 연애 감정은 깔끔히 배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웠다.
서혜은은 가능하면 유민하와 거리를 두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유민하는 언제나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나면 단숨에 그녀의 페이스로 넘어가 일상적인 화제를 나누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호의를 베푸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걱정이 많고 오지랖이 넓다.
그런 모습은 윤현수를 닮았다 싶었지만, 그가 지켜볼 때는 이 정도의 압박감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다행히 서혜은이 심한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쓰러지기 전에 윤현수가 돌아왔다.
"민하랑 예림이 잠깐 나와. 혜은이는 그대로 있고."
윤현수는 돌아오자 마자 둘을 부르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조금 호기심이 동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피로와 탈력감이 더 강하게 몸을 내리눌렀다.
서혜은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내려다보는 윤현수의 시선에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윤현수의 눈에는 비난이 서려 있는 것도 아니고 실망감에 젖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심각한 분위기였다.
"이제 퇴근하랜다."
"네?"
느닷없는 퇴근 소식에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11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평소 근무 시간의 반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준비했다는 듯이 답변이 돌아왔다.
"저번에 새로 팀원들 보충되기 전에 고생했잖아. 그때 고생했다고 내일까지 휴일이랜다. 이럴 거면 좀 진작에 말해주던가……."
그렇게 투덜거리던 윤현수는 정말로 짐을 챙기면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나머지 선배 둘도 퇴근할 채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서혜은도 얼른 장비를 반납하고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고생들 했고, 이제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푹 쉬어라. 모레 보자."
다들 퇴근 준비는 출동 준비만큼이나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 문이 닫히고 불이 꺼졌다. 텅 빈 대기실에 환기 팬 소리만이 황량했다.
그리고 약 20분 후, 서혜은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요즘 도심에 출몰하는 괴물이 줄어들면서 출동 횟수가 급감하기는 했지만 인력 부족은 여전했다. 그런 상황에 포상 휴가가 떨어질 리가 없다. 거기다 다음 인수인계도 없이 돌아가라는 것도 수상쩍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진짜 퇴근이었다면 윤현수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체력 신경 쓰지 말고 제대로 대련이나 해보자고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냅다 퇴근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혜은은 캐비닛을 열어 호출기를 확인했다. 합류를 위해 서로 위치를 확인 가능한 호출기이니 정말로 하루 휴가가 주어진 것이라면 모두 반납했어야 맞아떨어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3명 전부 반납을 잊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서혜은은 다시금 확신했다. 무슨 일이 있었노라고. 하지만 그녀의 팀원들은 그녀를 이 일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다시 좌표를 확인했다. 윤현수와 유민하의 위치는 못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아 알기 쉬웠다. 거기에 주요 보호 시설로 좌표를 외워둔 곳이기도 했다. 실버볼 총본부.
김예림의 위치는 계속 움직이고 있어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그동안 귀가 닳도록 배운 계산법으로 대략적인 장소와 방향을 추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근처에는 중요한 장소도 없었고 움직이는 방향으로 더 이동한다고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김예림이 향하는 곳은 현장이거나, 그에 준하는 장소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타이밍에 아무 의미 없이 이런 속도로 뛰어갈 리가 없으니까.
서혜은은 잠시 호출기를 내려놓고 고민했다. 의도적으로 그녀를 빼놓고 움직인 것은 지나치게 위험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물리적이든, 아니면 정신적이든.
그렇다면 여기서는 모르는 척 배려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서혜은은 더 이상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겠다면서 무모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린애처럼 마냥 보호만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어도 무슨 상황인지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기 수준에 맞지 않은 일이라면 순순히 물러날 것이다. 그래도 그 판단은 자신이 직접 내리고 싶었다.
윤현수가 그랬던 것처럼, 뭐든지 직접 확인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서혜은은 호출기를 챙겨 안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했다. 본부에 간다고 해서 상황을 설명해 줄 리는 없다고.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번 김예림의 위치를 확인했다.
*
"아니 확실해? 진짜로?"
이 삼촌 눈이 옹이구멍이냐? 다 직접 확인했다. CCTV랑 근처 이동 기록이랑 전부. 증거가 이 정도면 현행범도 울고 가겠다.
"돌겠네……."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면서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확인했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믿을 수가 없었다. 흑백의 활자 따위로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무거운 소식이었다.
잠시 넋을 놓자 입에서 아무 말이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삼촌 통해서 연락받아서……. 덕분에 혜은이도 따로 빼놓고."
경험 삼아 넣지 그러냐?
"경험은 지랄, 적어도 제압할지 사살할지 선택권은 있어야 그게 경험이지. 지금은 안돼. 지가 다치거나 상대 죽이거나 둘 중 하나야."
혜은이의 모든 스킬은 결국 살상에 특화되어 있다. 불꽃을 다루는 능력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죽이는 데에 한해서는 아주 정밀해질 수도 있고, 아주 화끈해질 수도 있지만 사람을 붙잡는 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뭐 어쩔 건데?
"말했잖아. 어차피 혜은이는 우리랑 내내 같이 있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사정 청취는 나랑 민하만 하면 되지. 예림이는 근처 지부에서 정보 인수·인계받을 거고.
그거 말고. 다음에 어쩔 거냐고.
"어쩌기는."
머리를 감싸 쥔 손가락에서 머리카락이 바스락거렸다. 그 감촉이 문득 섬뜩하여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김성필.
평범한 삶을 꿈꾼다던 22살의 청년 미용사.
"죽이든, 살리든. 직접 책임지고 잡아야지."
각성 능력을 이용한 특수살인 용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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