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정신 나갈 것 같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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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의 일은 사냥이다.
근데 그러면 그거로 일이 끝나냐? 그럼 뭐 야구 선수는 야구만 해? 방망이 휘두르고, 공 던지고, 그러면 끝이야?
그렇지 않다. 야구 선수의 일은 스타디움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훈련을 하고, 트레이닝을 받고, 다른 팀과 자기 자신의 전력에 대해서 분석한다. 스타 플레이어라면 광고 촬영이나 온갖 대외 활동도 들어오기 마련이고, 코치와 감독, 그 외 관계자들과 교류를 주고 받는 것도 엄연히 업무의 일환이다. 그리고 주장 쯤 되면 팀원들의 상태도 파악하고 분위기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가지 사냥팀의 팀장 헌터로 일한다는 것은 야구 선수와 주장, 코치, 감독을 모두 섞어 놓은 것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내 머리 위의 누군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거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는 말이다.
"삼촌, 제발 조카 불쌍해서라도 다음 일은 취소합시다. 예?"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정말로 진심이었다. 아니, 진짜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지만 규태 삼촌은 그런 내 호소에도 아랑곳 않고 담담한 얼굴로 공문을 내려놓았다. 아카데미에서 현역 헌터의 특별 강연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고, 여기 앉아 계신 길드장님께서는 그 명예로운 자리에 나를 앉히고자 적극적으로 제안을 건네오고 있었다.
"거, 현수야. 내가 이러는 거, 전부 너 아껴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이거 다 끝나면 내가 어련히 뭐라도 챙겨줄 거 아니야. 내가 뭐 해준다고 해 놓고 안 해준 거 있냐?"
"대기실 캐비넷도 안바꿔줬잖아요. 그리고 방호 코트 허리 스위치 불편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고쳐주지도 않고, 전부 한 번 말해봐요? 끝장 봐요 오늘 그냥?"
"에이, 거, 속좁은 새끼."
야박한 건 겨우 토벌 끝내고 돌아온 사람을 바로 다시 근무에 밀어 넣는 이 놈의 길드다.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모아서 업무 공백을 채웠어도 하루 이상은 절대 안된다고, 원래 휴식조였던 인원까지 곧바로 다시 로테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큰 부상 없이 끝난 전투였다고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토벌 사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내 앞으로 돌아왔다. 괴물 발견 경위랑 투입된 인적물적 자원들 싹 정리하고, 타임 테이블 만들어서 동봉하고, 괴물의 특징과 행동 등의 상세 사항이랑 어떤 방식으로 공략에 성공하였는가 등등.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이후 비슷한 개체가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반드시 철저한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
근데 그걸 왜 내가 해?
"네 덕분에 항상 든든한 거 알지? 일 정리되면 내가 감자탕이라도 한 그릇 살 거니까 너무 섭섭해 하지 말고."
삼촌은 그렇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하면서 저 혼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번 건도 네 앞에 달아 놓는 거로 알고 있어라. 어려운 것도 아니야. 그냥 이야기만 좀 하고 오면 되는 것을 호들갑은…"
"그럼 다른 사람 시키세요, 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달달 볶지 말고."
기정 사실인 양 뻔뻔스럽게 일을 떠넘기는 것이 삼촌의 주요 패턴이었다. 이제 다음도 뻔하다.
이제 먼저 다시 한번 살살 달래고,
"부담 가질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현수야. 그냥 잠깐 시간 내서 갔다 오면 그만이야."
그 다음에는 으름장을 놓다가,
"진짜 너,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내가 너 키워주고 가르치고, 지금 이렇게 건실하게 사회 생활 하는 게 내 덕분인데, 이 정도도 못해주냐?"
마지막에는 거의 협박에 가깝게 말을 꺼낸다.
"영상 다시 복구해 보라고 할까?"
무슨 영상? 순간 떠오르는 게 없어 되물어 보려는 찰나에 불쑥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아니, 삼촌. 그거 진짜 사고라니까요? 현장에서 기기 망가지는 게 하루 이틀이에요? 촬영 기기가 그거 얼마나 섬세한 건데."
저도 모르게 손사래를 치며 질겁했다. 그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내가 할 말이 없다.
도시 내에서의 모든 전투가 그렇듯, 거미 원숭이 토벌전 또한 촬영 드론을 통하여 모든 과정이 기록된다. 이는 비슷한 개체가 등장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헌터들에 대한 전투 평가에 사용되거나 외부 홍보 자료로 쓰이는 등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영상이 일부 손상되고 말았다. 하필 괴물놈의 눈이 붉게 물들였을 무렵에 급작스러운 기기 장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맞다. 내가 지웠다. 예림이가 지 모가지에다가 약 꽂아 넣는 부분 때문에 관리자들한테 살짝 부탁해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현직 헌터가 아무리 위험해도 전투 중 도핑 약물의 힘을 빌린다는 게, 썩 보기가 좋은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데, 업계 사람들이 뭐라고 수근거릴지 몸서리가 쳐진다.
그래서 그냥 덮었다. 그 원숭이가 위기의 순간 미지의 힘을 발휘해서 잠깐 기기가 마비 되었고… 하지만 큰 영향까지는 없었다는 거로…
그렇게 문제를 덮어놓았다 싶었는데, 삼촌이 귀신 같이 수상한 낌새를 챈 모양이었다.
"아, 할게, 할게요. 하면 되죠? 가면 되잖아요. 거기 학생들 앞에서 헌터 절대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놓고 와야지. 에이."
결국 또 하나 일거리가 늘었다. 조 하나가 전멸하는 바람에 이제 제대로 된 휴무도 없는데 해야 할 일만 자꾸만 늘어난다.
삼촌은 내가 투덜거리건 말건 넘겼으니 그만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지건 볶건 네 맘대로 해라. 그럼 그렇게 알고 간다?"
"가시고, 다시는 오지 마십쇼."
규태 삼촌은 피식 웃으면서 방을 나갔다. 항상 그렇듯이 결국 마지막에 지치는 것은 나였다.
*
불편한 배려라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오히려 부담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을 말한다.
안타깝게도 박규태는 알지 못하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박규태는 그의 친절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조카의 태도가 불만스럽기만 했다.
하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박규태도 구태여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윤현수는 동료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었고, 그 슬픔에서 눈 돌릴 만한 것이 필요했다. 아무리 숨겨보아도 10년 넘게 같이 지내던 가족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박규태는 윤현수에게 일감을 몰아주었다. 차라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심할 경우 방구석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죽은 동료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하면서 궁상을 떨고 있을 수도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박규태가 두 눈으로 확인한 일이었다.
"가만 보자, 그 일도 그냥 저 놈한테 맡겨야겠구만."
그렇게 또 하나 일거리를 늘린 박규태의 걸음은 방금 전보다 또다시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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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수의 호출을 받았을 때 김예림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들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잘못을 들키고 나서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이 흘러가는 것이다.
약물 사용은 헌터들에게 있어 금기시 되는 일이다. 명확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헌터들 사이의 문화라는 것이 그렇다. 본연의 힘 이외의 것에 의존하는 것을 극히 혐오한다.
윤현수가 그것을 지적했을 때, 김예림은 그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디에서 구했는지도 모를 중화제를 건네주면서 '나중에 이야기 하자'라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따로 자리를 잡는다는 말인가. 대체 이야기가 얼마나 길어지려고?
윤현수가 업무를 위해 가끔 사용하는 사무실에 불려왔을 때, 김예림은 불안감과 동시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윤현수도 위기 시를 대비하여 도핑용 물약을 휴대하고 있다.
그러면 김예림의 건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해주지 않을까?
"예림아.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약을 빨면 어떡하냐? 그것도 그 독한 걸."
어림도 없었다. 윤현수는 자신보다 남에게 보다 엄격한 사람이었다.
김예림을 억울한 나머지 마음 속에 담아둔 말을 그대로 뱉어버릴 뻔했다.
'선배도 쓰잖아요. 약물.'
그러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거기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김예림은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젊어도 그런 거 함부로 맞고 다니면 몸 다 버린다. 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뭐냐, 아무튼 그러다가 몸 망치는 애들 여럿 봐서 그래."
김예림은 한 번 더 참았다. 그렇게 윤현수의 잔소리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지쳤다는 생각이 들 때쯤, 윤현수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기록도 지우고 입단속도 시켜놨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비슷한 일 없게 하고. 웬만하면 약 같은 거에 손 대지 말고.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윤현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주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뭐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보통 정기적으로 한번씩 나오는 이야기니까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들어."
윤현수의 태도에 김예림은 없던 불안감도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았다.
정기적으로 한번씩 나오는 이야기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격 검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이렇게 뜸을 들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뭘까?
부서 변경. 그것을 떠올렸을 때 김예림은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그녀가 시가지 사냥팀을 떠나도 윤현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별을 뜻했다.
그리고 김예림이 생각한 이상으로, 이별은 두렵고 괴로웠다. 그녀는 유민하의 말을 떠올렸다. 빨리 태도를 제대로 정하라고. 그 말대로 그녀가 자꾸 어물거리면서 불분명한 태도를 보여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지만 지금도 김예림은 그녀 자신의 마음을 확언할 수 없었다…
"진짜 너무 나쁜 생각은 하지 말고, 침착하고 들어."
김예림이 어물거리는 사이 먼저 결심을 마친 듯 윤현수가 진지한 얼굴로 김예림의 눈을 마주 보았다.
결국 마음의 준비를 마치지 못한 김예림에게, 그 한 마디는 당황스러웠다.
"정신과 한번만 가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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