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3년 후 4
* * *
모든 흐름은 아름답다. 그 안에 충만한 질서가 있다면.
적어도 데이브는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눈에 집결지로 속속 모여드는 솔저들의 모습은 더없이 흡족하고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와, 씨발. 표정 존나 재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데없이 날아오는 무례한 말에도 데이브는 표정을 찡그리지 않았다. 애초에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가 화를 낸다고 해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 오히려 그녀는 그런 반응을 즐길 것이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온몸에 장비를 뒤집어쓰고 눈가의 흉터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모습은 일종의 경고였다. 절대 그녀를 만만하게 여기지 말라는.
새로 도입될 특수처리조의 대장, 회색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며 걸어오는 그녀를 보며 데이브는 의례적인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여기까지 나와 계셨습니까? 준비는…"
"여기다 헬멧만 뒤집어 쓰면 됩니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십쇼."
그녀는 태평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솔저들이 차량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짧은 관찰만으로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수입산이네. 여기서는 징병이 안된답니까?"
수입산이라. 본인도 바깥에서 와 놓고는. 데이브는 속으로 그런 말을 삼키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네. 이 도시에서는 솔저가 좀처럼 배출되지 않습니다. 아주 가끔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 영입하는 인재들이 있지만, 거의 항상 가뭄에 가깝죠."
"그래서 다른 데서 끌어다 쓴다? 뭘 그렇게 신경을 쓴데? 뭐 좋은 거라도 있나 봅니다?"
그녀는 연이어 질문을 던졌고 데이브는 최대한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끝 모르고 쏟아지던 질문은 이번 작전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그쪽에서 잡으면 출동 안 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괜히 헛걸음만 한 거면 기분 잡치는데. 그쪽이 책임집니까?"
위협을 섞은 질문에 데이브는 그저 싱긋 웃으면서 여유롭게 대답했다.
"충분히 기대에 부응해드릴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저들은 자긍심이 강하니 분명 사냥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고 전멸하겠죠."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녀석이니까요."
*
예림이의 말에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이번 토벌은 위험하니 빠지겠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예 토벌을 헤비 박스에 맡기자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 괴물 토벌을 포기 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지?"
예림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난 우리가 저 놈을 사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둘이고. 하나는 이번 건을 저 깡통 놈들한테 맡기면 그걸 빌미로 온갖 패악질을 부릴 거라는 거. 다른 하나는 그냥 우리 복수는 우리가 하고 싶다는 거."
최근 헤비 박스의 행보는 위험하다. 그동안 얌전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양 공격적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 헌터로서, 그 폭주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그런 문제를 전부 떠나서 저 괴물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되도록이면 직접. 그래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다.
"하지만 예림이 너는 그게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거지?"
예림이는 머뭇거리다 겨우 대답했다.
"…지나치게 위험해요."
"정보가 부족하니까 당연히 위험하지."
알 수 없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똑같이 위험한 것이어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때로는 정보가 없다는 것 만으로 위험 등급이 한 단계 오르기도 한다. 지금 저 녀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아니. 근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예림아."
하지만 지금 예림이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데?"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괴물과의 전투를 반대하고 있다. 그녀는 막연한 불안에 떠는 것도 아니고 위험 앞에 몸을 사리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 있는 내 부사수는 저 괴물과의 싸움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예림이는 내 질문에 어깨를 움츠리더니 시선을 피했다. 내면의 갈등이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났다. 대체 뭘 망설이는지, 왜 망설이는지는 몰라도 그 고민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말해줘. 그래야 저 괴물과 싸울지, 말지 정할 수 있어. 왜 저 괴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지. 왜 헤비 박스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죄송해요."
예림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서 천막 밖으로 나갔다.
불러 세울 틈도 없었다. 쫓아갈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대신 예림이가 남기고 간 경고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았다.
명예, 떳떳하지 못한 정보원, 괴물의 출처, 도시의 혼란, 암투.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둥실둥실 돌아다니며 합쳐졌다 나눠졌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궁리하고 나서도 결국 지금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만 되새기게 되었다. 아니 결국 얻은 게 하나도 없어.
"뭐 하나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둘만 남은 천막 안에서 어색한 침묵을 견디다 못한 혜은이 입을 열었다.
말투 진짜 너무 적응 안되네, 픽 웃음이 나왔다.
잠깐 말상대나 해주자. 복잡한 생각은 잠깐만, 잠깐만 미뤄 놓자.
혜은이는 습관처럼 목걸이를 잠시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예림 씨가 저렇게 반대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다시 예림이 이야기였다. 나는 대충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어, 맞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확신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저렇게 확신하는 거면 믿어도…"
"그러면 이유를 이야기 해줘야지. 그 전까지는 안돼"
단호하게 말하자 혜은이의 눈꼬리가 살짝 쳐졌다.
"언어와 논리를 넘어서 존재하는 신뢰라는 게 두 분 사이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크아악…]
느닷없이 빛나는 문양과 그르릉 소리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 그 소리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왠지 서운한 듯 하다.
하지만 그런 게 도리어 반가웠다. 나머지 둘에 비하면 차라리 알기 쉬워서 좋았다. 나는 의수 손목의 장치를 점검하면서 이야기했다.
"글쎄. 진짜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으면 이야기했겠지. 뭐라도 방법이 있으니까 망설이는 거 아니야? 그도 아니면,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하겠지. 그때 들어보고 생각하면 돼."
킹,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손목을 분리하여 내부를 살피자 혜은이 살짝 질색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꽤 재미있어서 일부러 천천히 점검을 했다.
"내가 봤을 때 그래도 반반은 간다. 그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
"이길 확률 말입니까?"
"살아 돌아올 확률."
이번에는 살짝 어깨가 움츠려 드는 게 보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어깨를 펴고 애써 당당한 척을 했다.
그래, 이래야지.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다시 손목 장치를 결합시켰다. 철컥, 하고 어딘가 속이 후련해지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혜은이가 제일 고달팠는데 지금은 제일 다루기 편하다. 적당히 쫄아 있고, 그러다가 허세 좀 부리고.
하나는 분하다고 엉엉 울다가 어디 가서 숨어버리고, 다른 하나는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고민하다가 도망가고. 내가 속이 터진다, 터져.
"농담이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손목의 장치를 다시 기동했다. 킹, 킹, 하고 손목에서 어깨까지 부드럽게 흐르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니들 굴리는 동안 나도 놀고 있던 거 아니거든."
*
김예림은 윤현수가 던진 질문을 속으로 계속 되내었다.
그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 우리가 사냥을 포기하고 물러나야 하냐고.
김예림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저 괴물은 헌터가 죽일 수 없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 차라리 빠르게 헤비 박스에게 차례를 넘기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그렇다면 윤현수는 또다시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질릴 정도로 많이 받아본 질문이었다. 결코 새어나갈 리 없다고 생각한 비밀이 그녀 입에서 흘러나오면 모두들 경악하며 그렇게 물어봤다. 대체 어떻게 알았냐고.
단 한번도 제대로 대답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회귀를 통해 얻은 지식이란 어떤 의미에서 선험적이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 사건은 되감기는 시간 속에서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비밀을 폭로하기 위해서 적절한 거짓말을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그럴 시간은 언제나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떤 거짓말도 준비하지 못한 그녀가 질문과 마주했다.
직접 겪어봤어요. 해봤는데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자신이 회귀자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 대답과 함께 몇 가지 비밀들을 들려주면 충분히 윤현수를 납득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또 다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늘 괴물에게 누군가 희생당하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
그 질문은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예림이 외면해왔던, 용인해왔던 수많은 죽음들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결백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때로 김예림이 손에 묻혀왔던 피는 아무리 시간을 되감아도 지워지지 않고 그녀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고발했다.
심지어 윤현수도, 서혜은도.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그 무언가는 가슴을 꽉 채우는 듯 하다가 결국 눈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닦아내면 사라질 물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슥 눈을 훔쳤다. 한때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의 목숨도 그와 같았다. 닦아내면 흔적도 남지 않을 눈물에 불과한 것. 다시 돌아가고 나면 자국도 없이 사라질 죽음들.
이제는 그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에게 그러하듯 다른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도 한번이었기에.
하지만, 조금만 더.
김예림은 결국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민하 씨."
그녀는 비밀을 좀 더 이어가기로 했다.
"잠시,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