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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 헌터는 돌아갈 수 없다-39화 (39/55)

〈 39화 〉 3년후 ­ 3

* * *

그는 자신의 이름을 데이브라고 밝혔다. 그리고 뻔뻔스럽게 발언을 반복했다.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이번에 출몰한 괴물은 저희 쪽에서 처리할 것이니 즉시 철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 마음대로!"

현오찬 경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그런다는 말입니까! 작전권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하하… 물론 그렇지요. 도심에 괴물이 출몰할 경우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실버볼,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굳이 거기에 대해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고요."

데이브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쪽은 헌터가 넷이나 죽었는데, 느닷없이 쳐들어와 뻔뻔스러운 소리를 하면서 웃는 꼴이 역겨워 저도 모르게 가시 돋친 말이 튀어나왔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우리가 잡겠다. 너희 권리도 인정한다. 싸우자는 건 아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데? 그럼 뭐, 그냥 알아서 물러나라, 그런 이야기입니까?"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음, 죄송합니다. 제 말이 조금 일방적이었군요."

데이브는 난감하다는 듯 손을 들어 저었다. 오해하지 말라는 듯, 싸우고 싶지 않다는 듯한 제스쳐였다.

그러면 뭐? 아가리로는 시비 털어 놓고 손으로 항복하면 그만이냐?

"확실하게 입장을 밝혀주시죠. 무슨 근거로 철수해달라는 것인지."

"사실을 밝히자면, 현재 저 괴물이 위치한 곳이 저희 쪽 시설 인근입니다."

데이브는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헤비 박스는 이상 사태에 의해 인명과 재산이 위협 받을 경우 보호를 요청하거나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를 갖는다. 그중 후자의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개같은 놈들이.

"쉽게 말해서 저희를 믿지 못하겠으니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이군요."

"말씀이 조금 과하십니다."

데이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말을 정정했다.

"다만, 저희가 처리하는 것이 좀 더 피해가 적겠지요."

뭐가 말이 과하다는 건지. 사실상 똑같은 말이었다.

늘 뻔뻔스러운 놈들이었지만 지금은 유독 참아주기 힘들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묻고 싶군요. 저희는 헤비 박스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훌륭하게 도시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지키고 재건하기까지 했죠. 그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데이브는 그렇게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자경단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헌터들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이어졌고요. 이번 사태에도 알 수 있다시피 지금의 체제는 헌터 개인의 판단과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제건 통신은 끊길 수 있고, 상황은 변할 수 있었으니까요. 현장의 판단은 현장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도시가 재건 되기 이전의 일이겠지요? 지금은 다릅니다. 충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죠. 저희 헤비 박스의 손을 빌린다면 도시의 모든 상황을 통제하면서 좀 더 효율적인 판단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대화는 또다시 평행선이었다.

헤비 박스는 도시를 진보시킬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의 발전인지는 항상 그렇듯 미심쩍었다.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마지막으로 통보했다.

"저희 도시 안에서 일어난 일은 저희가 책입집니다. 돌아가시죠."

데이브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헤비 박스와의 대담은 이런 식으로 서로를 고집불통으로 여기며 마무리 되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저희 시설에 솔저들을 배치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뭐라고 하지는 않으시겠죠."

"마음대로 하십시요."

"좋습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지만, 언제라도 저희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하십시요."

지랄하네.

*

데이브가 떠난 후 회의실에는 불쾌한 긴장감이 찐득하게 내려앉았다. 그의 목적이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서혜은에게 있어 헤비 박스와 헌터, 가드들의 대립은 낯선 것이었다.

아카데미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그 교육 내용 또한 어느 한 쪽에 편향된 시각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으로, 막연한 분위기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로를 적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길드, 실버볼, 헤비 박스는 단순히 헌터, 가드, 솔저가 속한 조직이 아닌 서로 직접적으로 대립하거나 협력하곤 하는 독립된 세 조직이다. 방금 전의 대화에서 서혜은은 그것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현장에서 솔저와 협업할 때는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그에 대해 윤현수에게 물어보자 대답이 되지 못한 한숨만 돌아왔다.

"그건 요즘… 아니다 일단 나중에 이야기 하자."

하지만 지금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헤비 박스가 아닌 주차장의 괴물 원숭이였다.

헌터를 넷이나 죽인 괴물.

그 괴물을 죽이기 위해 사용 가능한 전력을 헤아려 보았다.

먼저 가드 병력.

현오찬 경감의 말에 따르면 운용 가능한 가드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전부로, 나머지 전력은 현재 다른 게이트와 이상 사태에 투입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토벌 도중 괴물이 도주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 병력의 지원은 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다음으로 추가 지원될 헌터들.

윤현수는 길드에 연락을 넣어 시가지 사냥팀 휴식조 헌터들과 그외 헌터들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 명도 안된다는 게 말이 돼요?"

도시는 게이트 없이 돌발적으로 출현하는 괴물들로 소란스러웠지만 게이트가 잠잠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가지를 헤매는 괴물들이 눈에 보이는 위협이라면 게이트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헌터들의 헌신이었다.

결국 타이탄즈에서 지원을 올 수 있는 것은 휴식조에 속해 있던 헌터들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윤현수는 인맥을 이용해 길드 연합과 무소속 헌터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소용 없는 일이었다.

"너… 야, 너 그게 말이 돼? 네가 어떻게 그래?"

다른 길드도 인력 부족은 마찬가지였다. 타입 불명의 S급을 사냥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 길드도 있었다. 소속이 없던 헌터들도 공략에 참여 중이거나, 길드에 들어가 바쁜 나날을 보내거나, 부상을 입고 휴식 중에 있었다.

그중에는 헤비 박스로 들어가 솔저로 전향한 사람도 있었다.

윤현수는 거기에 무어라 욕을 쏟아내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입 안에 도는 쓴 맛에 얼굴을 찌푸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결국 8명이었다. 처음 동원하려던 숫자의 절반.

현오찬 경감은 다른 지원을 알아보려 자리를 비웠다. 윤현수는 암담한 기분으로 남은 3명에게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야. 4명이 추가로 도착하자마자 정비 후 공략에 들어가거나, 괴물의 동세를 살피면서 추가적인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어느 쪽이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윤현수는 겨우 한숨을 삼켰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결코 한숨을 뱉어내서는 안될 상황이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8명으로 그 괴물에게 도전해야 했으니까.

어쩌면 찾아올 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 대비하여 윤현수가 짧은 휴식을 입에 올리려 할 때였다.

"…그럼 저희 아무 것도 못해요?"

어떤 전조도 없이 유민하의 눈에 눈물이 맺혀 떨어졌다.

"어? 아니, 아니에요. 일단 저도 전화로 프리 시절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 연락 돌려볼게요."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얼른 닦아내더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면서 천막 밖으로 나갔다.

천막 안에는 이제 윤현수, 서혜은, 그리고 김예림만이 남아있었다.

유민하가 떠난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윤현수는 결국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애들아. 우리만 있으니까 말하는 건데. 솔직히 이번에는 그냥 포기할까 싶더라."

그는 또다시 한숨을 푸우 내쉬더니 그러고도 입 안에 씁쓸함이 남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목숨 걸 때는 진짜 답 없거나 필요할 때 그러는 거지, 이번에는 헤비 박스가 처리한다고 하잖아. 그 새끼들 띠껍기는 해도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거든. 그러고나서 그거 빌미로 이것저것 요구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목숨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의 눈에 잠시 죽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눈물 흘리던 유민하의 모습도.

"여기서 물러나면 앞으로는 진짜 선배 행세 못할 것 같고 그렇다. 죽은 새끼들 목숨값은 직접 치루게 해줘야지."

그는 그렇게 결심을 마쳤다.

윤현수의 시선이 잠시 방황하다가 서혜은에게 향했다.

"혜은아. 넌 이번에는 빠져."

"…싫습니다."

"고집 피우지 말고."

서혜은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저한테 빚 하나 있지 않습니까?"

"뭐?"

"칼리오네와 싸울 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에 응했고요."

윤현수는 칼리오네가 누군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겨우 그것이 예전에 옥상에 나타났던 거미 여왕을 말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제가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윤현수는 헛웃음이 터져나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마지막으로 윤현수는 김예림을 바라보았다.

"예림아. 너는?"

김예림은 무표정한 얼굴로 윤현수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 했다.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선택을 어떻게 말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안돼요."

"…어쩔 수 없지."

윤현수는 실망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주 약간 그런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함부로 강요하거나 기대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김예림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뜻이 아니에요."

윤현수도, 서혜윤도 결사의 각오를 다지던 그때에 김예림은 그녀만이 알 수 있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김예림은 아직 각오를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녀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토벌은 헤비 박스에 맡겨야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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