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좌천 헌터는 돌아갈 수 없다-25화 (25/55)

〈 25화 〉 반갑지 않은 얼굴 ­ 1

* * *

예전에는 모임을 가질 때면 항상 고깃집을 찾았다. 그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거기에 값도 싸고, 술도 있다. 무엇보다 고깃집의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열기, 오고 가는 술잔들로 서로 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초밥집도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밥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음식이고, 정 생선이 싫으면 다른 요리도 있다. 무엇보다 초밥집은 그 자체로 화젯거리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어색한 순간이 오더라도 어떤 초밥을 주문했는지, 그 초밥은 맛이 어떤 지로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가 끊기는 일이 없었다.

물론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술이 있다는 것도 중요한 사항이었다. 술은 관계의 윤활제가 되기 마련이니.

오늘 모임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원활하고 부담 없는 소통을 위해 미리 안면을 터 놓는 것.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쪽이 오늘부터 새로 같이 일하게 될 분들이야."

민하의 시가지 사냥팀 합류가 결정되었다. 거기에 더불어 민하가 신세지고 있던 헌터팀 멤버들이 통째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연히도 멤버 전원이 나와 면식이 있는 무소속 헌터들이었는데, 실력이나 인성 면에서 결격 사항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촌에게 연락하자 '알아서 해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팀 단위로 길드에 임시 고용 계약을 맺는 식으로 처리를 해두었다.

말은 임시 고용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오래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서로 얼굴이나 익혀 놓는 편이 앞으로의 활동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친해지면 더 좋고. 그런 생각에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

"반갑습니다. 타이탄즈 소속의 헌터 김예림입니다."

김예림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보였지만, 잘 생각해보니 얘는 원래도 그리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진짜, 처음 시가지 사냥팀으로 굴러떨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양반이지. 그때는 이야기하다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는데.

"서혜은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타이탄즈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습니다."

혜은이도 무난하게 자기 소개에 성공했다. 뭔가 목소리를 깔고 멋있는 척을 한 것 같지만 넘어가주기로 했다.

진짜 처음 봤을 때 꼬라지 생각하면 무슨 폭탄이 터질지 몰라서 불안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처음부터 나한테만 그랬다. 대체 왜 그 지랄이었지?

그렇게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한 모임은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아저씨. 그 혜은 씨? 혜은 씨는 학생인데 막… 괴롭히고 그러는 거 아니죠?"

"형. 그러다 삐끗하면 신고 당해. 알지?"

"누가 보면 내가 때리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그리고 그 화기애애함을 지피기 위한 뗄감은 바로 나였다.

대부분 길드 안에서건 밖에서건 나를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나를 안주 삼으면서 대화에 점점 활기가 돌았다. 대체 멤버들 모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혜은이를 붙잡고 이상한 헛바람을 넣느라고 다들 난리였다.

"선배. 차라리 맞는 게 나아요. 진지하게."

"민하 너는 저기 손들고 서 있어."

"왜요? 왜 저만요?"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되어가건 간에, 덕분에 분위기가 풀어지니 참을 수 있었지만 민하는 못 참는다.

"네가 제일 귀여워서."

"네?"

"설렜냐? 지랄 말고 간장 좀 갖다 줘."

"진짜 저 선배 죽이고 싶은 거 알죠…"

"나는 오는 도전은 안 피하는데? 꼬우면 덤비면 되는데?"

대련 전적 25전 25패의 유민하는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얼굴로 간장을 건네주더니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질문했다.

"근데 왜 초밥집이에요? 선배 초밥 좋아했나?"

"무슨 질문이 그래? 너 생일이면 초밥 먹는다며. 케이크는 생략하니까 이거로 참아라."

"…네?"

아무리 용을 써도 오늘 외에는 날짜가 안 나와서, 그냥 겸사겸사 생일 축하도 같이 하기로 했다.

25패의 유민하는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민하네 동료 팀원들도 놀랐다는 듯 왁자지껄 호들갑을 떨었다.

"어? 민하 오늘 생일이야?"

"이야기 하지 그랬어? 나 아무 것도 준비 못했는데."

"저것들 팀원 실격 아니냐? 깔끔하게 벌주 합시다."

빠르게 교통 정리를 한 후 벌주를 먹이는데 뜬금없이 민하도 함께 술잔을 기울여 벌주를 먹이는 의미가 무색해졌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고, 그 한잔에 취한 건지 벌써 얼굴이 빨개진 민하에게 물이라도 따라주려던 참에 갑작스레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몸이 굳어버렸다.

[크아악…]

시선을 돌려보니 몽롱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서혜은이 한쪽 눈을 가리고 괴상한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내 불꽃은 인연도, 운명마저도 태워버리지… 그리고 남는 것은, 뒤늦은 후회 뿐…"

[크아아아악…]

"어떤 놈이 저거 술 먹였어?"

"안 먹던데…"

그럼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저런 꼴이라고? 아니, 생각해보니까 저게 본 모습이고 긴장이 풀려 저러는 걸 수도 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저런 말을… 어떻게… 어우…

어이가 없어 바라보고 있으니 앞에서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놈들이 보였다. 저 놈들이 부채질 했구만.

"아저씨들 순진한 꼬마애 그만 놀려먹고, 혜은이 넌 물 한잔 마시고… 주목합시다 주목."

분위기가 생각 이상으로 훨씬 달아오른 모양이다. 이런 걸 기대하기는 했는데, 좀 과하다. 다른 할 일도 있고.

"알아서 자제해서 마셨죠? 미리 오늘 이야기할 거 많다고 말해뒀는데 생각 없이 퍼 마신 미친 놈 없지?"

"너요."

"응 맥주로는 절대 안 취해. 그럼 이야기 좀 시작합시다. 자."

분위기도 적당히 풀렸으니 이제 터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고, 인수인계 시 기록을 어디에 놓느냐, 식사는 어떻게 할 것이냐 같이 사소하지만 말을 맞추지 않으면 나중에 피곤해지는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점점 대화가 길어지면서 좀 더 진지한 안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그 주역은 다름 아닌 김예림이였다.

"그러니까 주택가에서 출현 경보가 울렸을 때에는 차라리 피난시키는 인원에 합류했다가 출동하는 게 낫다는 거죠. 그래야 피해 상황도 빨리 파악하고…"

처음에는 어째서인지 냉랭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몇 번 의견을 묻고 나니 물꼬가 트인 듯 여러 가능성이나 변수에 대해 정확히 짚어가고 있었다.

"괜찮네. 그대로 하면 되겠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의견에 감탄하고 호응할 때마다 예림이는 표정이 풀어지며 더 의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다른 멤버들도 진지하게 예림이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 메모를 하거나 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진지한 자리는 아니고, 간단히 확인만 마친 후 모임을 이어가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져 버렸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근데, 진짜 다 좋은데.

만약에 내가 공략팀 남아있었을 때, 저런 식으로 이야기 했으면, 그러면 나랑 다툴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구나 납득하고 보내줬을 것 같은데, 그러면 나 쫓겨나지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런 말로 꺼낼 수 없을 억울함 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팀 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편성? 편성은 그냥 이대로 가면 되지 않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팀이 셋, 길드에서 할당한 팀이 넷, 민하네 팀이 다섯으로 각기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우리 팀은 인원은 적지만 안정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최전방에서 공격을 받아내고 주의를 흩어놓는다. 김예림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보조와 공격 양쪽에 능하다. 서혜은은 아직 미숙하지만 절대적인 수준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컨트롤도 괜찮아 후위를 맡길 만 하다.

하지만 여기에 한 명 반대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있었다.

"안돼요, 선배. 위험하잖아요."

민하였다. 아까는 술에 취한 것 같더니 지금은 한치의 흔들림 없는 태도로 이견을 제시했다.

"실전에서 어떤 변수가 있을 줄 알고, 후배 분은 아직 새내기인데 혼자 후위를 맡는 건 위험해요."

"음… 그렇기는 하지."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안전하면 안전할수록 좋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편성을 바꾸려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애매해지는데…

"그러니까 제가 갈게요."

다시 민하였다.

"네가 온다고? 너희 팀은 어쩌고."

"저희 팀은 원래 후열만 둘이에요. 저는 전열도 되고 후열도 되니까 깍두기로 끼어있었는데, 솔직히 저 없어도 상관은 없어요."

그렇죠?하며 시선을 돌리니 그녀의 팀원들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다면 말릴 건 없긴 하지…"

"우리는 상관 없어."

그렇게 분위기는 팀을 옮기는 쪽으로 흘러갔다. 서혜은도 처음에는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설명을 듣고 수긍하는 눈치였다. 순간 의미심장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확률 상 그냥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김예림이었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살짝 옮겨 예림이 옆으로 가자 훅 불어오는 냉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예림이가 무의식 중에 뿜어내는 능력이었다. 그녀는 심기가 몹시 불편해보이는 표정으로 말없이 잔을 비우고 있었다.

선뜻 말을 꺼낼 용기가 생기지 않아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예림이 덕에 시원해져서 맛이 기가 막혔다.

"저기, 선배."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것은 예림이였다. 잠시 우물쭈물거리던 예림이는 다시 입을 떼어 말을 이었다.

"만약에 제가 민하씨가 들어오는 게 싫다고 하면… 그러면, 들어주실 건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예림이는 말없이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잔을 채웠다.

"아니에요. 못들은 거로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잔을 쭉 비웠다.

텅 빈 잔에 살짝 서리가 끼어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