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좌천 헌터는 돌아갈 수 없다-24화 (24/55)

〈 24화 〉 음모, 계획, 말썽 ­ 3

* * *

윤현수의 좌천, 그 뒤에는 무언가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서혜은이 그것을 추적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윤현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함이다.

윤현수는 자신이 부조리한 분노를 쏟아내는 것을 그냥 넘어가 주었다. 말하는 것은 늘 얄미웠지만 그것이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깨닫고 말았다.

더불어, 얼마 전 거미 여왕 사건에서 그는 자신을 믿고 사지에 몸을 던졌다. 서혜은이 힘을 통제하지 못했다면 윤현수 자신까지 불타버렸을 것이 분명했는데도, 두려움 없이 자신을 믿어주었다. 인정받았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서혜은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김예림을 위한 것이다.

김예림은 서혜은이 꿈꿔오던 특별한 초인이 아니었다. 함께 지내던 시간들이 말해줬지만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예림이 마침내 자신의 치부를 고백할 때, 서혜은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우상은 허상이었다.

서혜은은 더 이상 김예림을 존경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미워할 수도 없었다. 거품을 벗겨내고 들여다본 김예림의 민낯은 생각 이상으로 투명하고 순수했다. 그 안에서 서혜은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새로운 힘을 터득하게 해준 것에 대한 답례를 하자. 서혜은은 그렇게 치기로 했다.

그리고, 서혜은의 생각에 그 둘은 사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이것으로 둘에게 동시에 빚을 갚을 수 있다. 경제적이다. 그렇게 해서 서혜은의 탐정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추리 소설도 몇 권 읽었고 하드보일드는 그녀가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조사활동은 벌써부터 큰 전환점을 맞이했던.

유민하, 김예림 이전에 윤현수의 부사수였던 헌터.

서혜은은 그녀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김예림과 윤현수를 갈라놓으려 허위제보를 한 사람은 바로 이 여자다!

하지만 이성이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훌륭한 탐정은 결코 속단하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결론에 확신을 가지기 전에 먼저 의심 가는 정황들을 따져 보았다.

첫 번째 단서, 신문의 인터뷰.

신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어느 한 익명의 내부자가 '윤현수가 김예림을 견제하고 괴롭히지만 선배들의 눈치가 보여 함부로 발언할 수가 없다'라는 제보를 넣었다고.

즉 윤현수를 고발한 것은 그 시기 타이탄즈에서 윤현수보다 아래 기수였던 사람이고, 유민하는 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다.

두 번째 단서, 동기.

서혜은은 내부자가 윤현수를 고발한 이유가 질투심이라고 생각했다. 김예림과 윤현수의 관계를 질투한 누군가가 그 둘을 떼어 놓기 위해 내부 불화설을 터뜨린 것이라고.

그렇다면 원래 윤현수의 부사수였다가 김예림이 들어오며 그 자리를 뺏긴 유민하는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물론 이 가설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왜 저렇게 예쁘고 활달한 사람이 윤현수 같은 놈을 좋아했는가?

서혜은은 이 모순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유를 떠올렸다.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척하는 사람이 사실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거기다 남의 떡은 무조건 커 보이는 법이고, 뺏긴 떡이면 말할 것도 없으니, 왜곡된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충 그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마지막 단서, 유민하의 특기.

서혜은은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유민하가 윤현수의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며 무릎 장난을 거는 모습을.

즉, 유민하는 자신의 모습과 기척을 숨기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주 무기는 활이지만, 보조 무기로 단검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높은 기동성과 은신 능력으로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저격 지원을 하며 위기 시에는 단검을 휘두르며 화려한 공간 전투를 보여준다고 한다.

스닉 궁수 단검?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다시금 결론을 내렸다. 유민하는 유력한, 아주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진실을 밝힐 수는 없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

서혜은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측정실을 나왔다.

"아, 측정 끝났어?"

서혜은은 말없이 새로운 프로필을 들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뚜렷한 글씨로 '흑염'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김예림의 도움 없이는 검은 불꽃을 피워내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작은 규모라면 혼자서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프로필을 보며 흐뭇하게 웃음 짓던 윤현수의 얼굴이 문득 짓궂게 변한다.

"표정 봐라, 저거."

화들짝 놀라 헤죽거리는 입술을 내리눌렀다. 그 모습을 티 없이 맑은 웃음으로 지켜보던 유민하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선배, 후배분 새 스킬 등록한 기념으로 같이 카페에서 케이크나 먹을까요? 아까 하던 이야기도 마저 하고요."

"네가 사는 거지?"

"추해요."

츱, 소리를 내며 입술을 삐뚜름하게 비틀던 윤현수는 슬쩍 눈짓으로 서혜은을 가리켰다.

"혜은이 너는? 괜찮고?"

서혜은은 잠시 고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대화를 해보면 좀 더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셋은 윤현수가 알고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는 거의 윤현수와 유민하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서혜은은 간간히 억지웃음을 짓거나 묵묵히 음료수를 마셨다.

예상외였다. 화기애애한 자리에 혼자 어색하게 끼어있는 것이 생각보다 불편했다.

다행히 그 덕에 대화는 거의 윤현수와 유민하의 옛날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서혜은으로서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서혜은은 이걸 노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같이 던전을 돌았던 이야기, 처음에는 윤현수가 그렇게 무서워 보였는데 지금 보면 푼수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 윤현수가 시가지 사냥팀으로 발령 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민하도 타이탄즈를 나갔다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그래서 왜 나갔냐? 솔직히 여기만 한 곳이 어디 있다고."

"선배 나가고 분위기가 얼마나 어수선했는데요. 누가 그런 헛소문을 다 퍼뜨렸냐. 에이 솔직히 그럴 만하지 않았냐, 별말 다 나오고. 그러다 주먹다짐까지 가고."

"그래서 너는 거기서 부채질하고?"

"에이. 제가 선배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안 했다고는 못하는 거 봐라."

유민하는 한쪽 눈을 찡긋이며 케이크를 한입 먹고는 서혜은을 보며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선배는 운도 좋네요? 기껏 팔려 가나 했더니 귀여운 후배랑 다니고. 복 받았네?"

"다 내가 쌓아둔 공덕이지. 원래 사람은 베푼 만큼 돌아오게 되어있어."

윤현수는 뻔뻔하게 대답하고는 슬쩍 메이플 시럽을 옮겨주었다. 눈치를 보고 있던 서혜은은 말없이 와플 위에 시럽을 듬뿍 뿌렸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요즘 바쁘냐?"

"음? 선배 만날 시간은 있어요."

"아니 그거 말고. 무소속으로 일한다는 거, 요즘 일거리는 좀 있어?"

"음…어…그냥 그렇죠, 뭐."

그냥 잘 지내죠, 이런 말도 꺼내기 힘들다면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대부분은 못 알아들은 척하지만.

"그러면 일 하나 같이 할래?"

하지만 윤현수에게는 되레 잘된 일이었다.

"지금 우리 팀에서 사람이 좀 필요하거든. 네 실력은 네가 아니까. 혹시 지금 활동 같이하는 팀 있으면 소개도 해주고."

묵묵히 와플을 도륙하던 서혜은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걸 막아야 하나? 하지만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같은 팀으로 끌어들인 후 그 실체를 파헤치는 것이 이득이 되리라. 서혜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민하의 합류에 찬성표를 던졌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자의식 과잉이 사라진 서혜은은 낯가림이 심했다.

*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길 잃은 남자. 다른 길을 택한 것을 길을 잃었다 한탄하던 남자. 자기가 갈 길은 이렇지 않았다며 멀찍이 앞서가는 이들을 원망하던 남자.

헌터 지망생에서 가드가 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던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킷, 못된 농간에 휘말렸구나."

멈춰선 그의 앞에 그보다 3배는 덩치가 큰 듯한 거대한 거미 괴물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네놈이로구나. 어리석은 것. 이것을 어이할꼬…"

괴물은 턱을 딱딱거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고민하는 동안 그는 선택할 수 있었다. 도망갈지, 싸울지. 가능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선택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떨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한때 헌터를 지망했던 그는 가드로서의 자존심마저 지킬 수 없었다.

용기라는 것은 전신에 전투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두 손에 소총을 들고 있을 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맨몸의 그는 정신적으로도 비무장 상태였다.

그의 기도가 닿았던 것일까?

"그래, 가거라."

그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달렸다. 집으로 달려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잠이 들었다.

이것은 악몽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잠에 들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진짜 현실이 그를 찾아오겠지. 평범한 그에게 평범한 모습을 요구하는 편안한 현실이.

잠에서 깨어나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그는 기지개를 쭉 펴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착신 이력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는 터무니없는 늦잠에 당황하며 급히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잠자리가 워낙에 사나웠어야지. 이거 혼나겠어. 새로 들어온 팀장은 정의감인지, 오지랖인지, 너무 심해서 건수를 잡히면 안 되는데. 혼나기 싫은데.

은혜로우셔라. 또다시 그의 기도는 이루어졌다. 그는 혼나지 않았다.

그를 혼낼 팀장은 전투 중 순직하였다. 당당히 가장 선두에 서서 공격을 받아내던 그는 아주 납작해져서 죽었다. 모두가 팀장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던 와중에 그가 도착했다.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어느 사람은 버럭 화를 터뜨리려다, 머뭇거리다,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추모를 이어갔다.

그는 다시 도망갔다. 정신없이.

그는 진열장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멈추어 섰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유리 벽을 바라보자 그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뚫어져라. 계속.

점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유리 창 너머 진열되어 있는 TV의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TV는 뉴스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이탄즈의 영웅들이 또다시 사건을 해결했다고.

거짓말이야. 무슨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야. 난, 나는.

눈물이 차오르며 다시 초점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그 눈동자에 또다시 그의 모습이 비췄다.

눈물과 유리창, 눈동자 사이에 갇힌 그의 모습. 그 목덜미에는 선명한 문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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