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용기의 증명7
* * *
'다리'는 그 외양부터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검은 몸뚱아리에 빽빽하게 달린 길쭉한 다리가 끊임없이 꾸물꾸물.
그리고 그 생김새에 어울리도록 지독하게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몸에 칼날을 찔러 놓고 한껏 한기를 불어넣으면 온몸을 고통에 뒤틀며 다리가 후두둑 떨어져나가면서도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 나간다.
결계를 펼치고, 안의 사람들을 잠재우고, 그 정기를 조금씩 흡수하면서, 여왕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그 헌신이 본능에 아로새겨진 것이라도 그것에 저항할 지성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다.
김예림은 한 마리를 겨우 처치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곧 결계가 뒤틀리며 요동이 일었다.
일찍이 경험한 그대로였다. 이른 시기에 등장한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김예림이 이전 회차에서 몇 번씩 상대해본 상대였다.
정신을 집중하여 다시 [생명체 감지]를 펼친다. 그 감지망에 옥상으로 향하는 윤현수의 움직임이 걸려들었다.
억지로 가라앉힌 고무공이 수면 위로 튀어오르 듯, 선배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서혜은을 걱정해?
김예림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회귀 속에서 그녀는 서혜은에게 죽고, 서혜은을 죽였다. 그렇게 쌓아온 은원들을 모두 잊어버릴 정도로 속이 편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따라다니며 마냥 순수하게 동경하는 눈빛을 보내고, 칭찬을 들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뿌듯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간식을 준비해오고, 그 간식을 선배에게 빼앗겨 화를 내고, 그러면서 다시 꺼낸 간식은 선배가 좋아한다던 커피 맛이고, 민망한 표정을 얼른 숨기면서 '헌터님께 어울리는 어른스러운 간식도 준비했습니다.'라고 변명을 늘어놓고.
그런 모습이 멋쩍으면서도 기쁘다거나, 귀엽다거나, 후배라는 건 이런걸까 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걱정된다거나, 기특하다거나,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한번 건물에 진동이 울렸다. 김예림은 집중을 되찾고 나머지 다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감지망에는 옥상에서 분투를 벌이는 두 생명체의 움직임이 잡히고 있었다.
윤현수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끈질기게 버텨낸다. 독에도, 화염에도.
김예림은 다리 하나를 더 찾아내 칼끝을 쑤셔박으며 저번의 대련을 떠올렸다.
머리 끝까지 약이 오른 서혜은이 보여준 기술들은 여전히 어떤 선을 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김예림에게 보여준 것과 그 위력의 급이 달랐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현수는 상처 하나 없었다.
*
"네가 여기서 왜 나와?"
혜은이는 걸음을 멈췄지만 대답을 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꼭 처음 봤을 때 같았다. 그때 있는 힘껏 허세를 부리고 멋있는 척 연기를 하면서도 저 눈빛 하나를 숨기지를 못했다.
한동안 나를 보면 화를 내고, 예림이를 보면 웃다보니 통 보지를 못했는데.
"원군을 불렀느냐, 가증스러운 인간아…"
턱을 맞부딪치며 으르렁대는 칼리오네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어려운 질문이다.
"맞으니까 조심해라. 바싹 구우러 오셨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어떻게 혜은이를 이 싸움에서 빼놓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대체 여기에 왜 와? 언제 왔고?
지난 일주일 간 가르친 입장에서, 확실히 혜은이에게는 잠재력이 충분했다. 충분히 노력해온 것도 잘 알았고.
그리고 잠재력이란 소중하게 아껴주고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지 냅다 실전에 꼬라박으라고 있는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한껏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있는 저 벌레년에게서 혜은이를 지킬지 고민하고 있었고, 혜은이는 그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휙 고개를 돌려 칼리오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가 내 종착점인가, 아니면 그 운명의 시작점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서혜은은 양손에 보라색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쏘아냈다.
"키앗!"
칼리오네가 공격을 막으려 내뻗은 집게발이 한순간에 불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여왕은 고통에 비명 지르며 나머지 한쪽 팔로 불타오르는 집게발을 잘라냈다.
그 사이에 또다시 서혜은이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서 몇 개의 불덩이가 새로 피어오르며 놈에게 날아갔다.
강하다.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하지만 어설프다. 정직하고, 치명적이지 못하며, 제 위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공격에 적응을 끝낸 여왕이 능수능란하게 공격을 비껴 내고 피해내면서 알게 모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못하다.
왜? 실전이 처음이라서? 긴장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불덩이를 피워내고 던지는 혜은이는 그 와중에도 한없이 고요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그러나 숨기지 못하는.
그 눈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빛내며 그저 불꽃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속에 있는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대부분의 경우, 저렇게 자포자기해서 싸움에 몸을 던지는 놈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전장은 씨발 애새끼들이 스트레스를 풀러 오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자기 속 후련해지겠다고 찾아와서 저러는 새끼가 오래 사는 것도 말이 안되지. 샌드백 패는 것도 아니고. 저러다가 금방 방심해서 뒤져나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에라이."
저 봐라. 가시 뻔히 날아오는데 아무 것도 안하는 거.
아슬아슬하게 서혜은의 앞을 막아서며 가시를 쳐냈다.
"정신 안차리냐? 여긴 또 왜 왔어?"
저 봐라. 기껏 구해줬더니 인상이나 찌푸리는 거.
"…비켜라. 이건 내 싸움이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불꽃을 피워 올리는 꼴을 보니 내 속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싸움에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어? 그리고 따지고 보면 새끼야, 이게 니 싸움이냐? 내 싸움이지."
"난!"
혜은이는 또 한 번 불덩이를 던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처음으로 표정이 무너지며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소리를 지르는 거로 울고 싶은 걸 얼버무리는 것 같았다.
"…나를 증명해야 한다."
"누구한테?"
"나 자신에게…"
"돌겠네."
어디 배낭여행도 아니고 이런 싸움판에 자아실현을 하겠다면서 찾아오는 년이 어디 있냐?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럼 내가 도와준다."
"방해하지 마라. 네 도움은 필요 없다."
내 고민이 무색하게도 혜은이는 냉정하게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건 오로지 내 힘으로, 오롯이 이뤄내야 할 과업이다."
진짜 미치겠네. 나는 힐긋 여왕의 상태를 살폈다. 칼리오네는 이제 노골적으로 반격의 기회를 내리고 있었다.
혜은이도 충분히 알아차릴 만 한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비슷한 공격만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만 같다…… 나는 불현듯 떠오른 의심에 서혜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제서야 손등에 떠오른 그 문양이 눈동자 위에도 희미하게 떠올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계약. 의무. 대가.
'나 다운 모습으로 남는 것.'
나는 이빨이 빠드득 갈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네 도움이 필요해."
"뭐?"
필요하다는 그 말에, 처음으로 서혜은이 동요를 보였다.
"도와달라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나는 못하니까, 그러니까 도와줘."
도움을 받는 일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면, 반대로 도와주는 입장에 서게 만들어야 했다.
서혜은의 계약 조건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을 억지로라도 고수하게 만드는 것.
자기 자신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는 끝에 스스로의 삶을 망쳐 놓는 꼴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영원히 방황하게 만드는 인생의 함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꼴사납게 어른이 아이의 도움을 구걸한다.
혼자 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에 빠져서 스스로를 망치지 않도록.
단 한 명이라도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다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기에, 어른은 아이를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거라면…"
거칠게 타오르던 불꽃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간다.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이래나저래나 성격이 나쁜 건 아니다. 도와달라는 말을 들으면 늘 저렇게 기쁜 듯이 받아들이니까.
"고맙다."
"…방해만 하지 마라."
당장이라도 건방진 소리를 내뱉는 저 주둥이를 한대 때려주고 싶지만 내가 어른이니까 참아준다.
스스로를 증명하겠다며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싸움에 몸을 던지는 일을 숱하게 봐왔다. 그러면서 죽어간 사람도 숱하게 봤고.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이라도 뜯어 말리고 싶다.
그냥 기절 시키고 구석에다 던져 놓으면 그만인데.
근데 그러면 후배한테 늘어놓은 말들이 뭐가 되냐. 어차피 얘가 이쪽 업계로 오면 맨날 보게 될 꼬라지인데 헌터 지망 때려치라고 할 것도 아니고.
아직 준비가 조금 덜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내가 제대로 지켜주면 된다.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못난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런 것 뿐이다.
그러니까 선배 노릇, 어른 노릇 하려면 분발 좀 해야지.
나는 의수가 떨어져 나가면서 걸레짝이 된 왼쪽 어깨의 접합부에 손을 올리고 이를 꽉 깨물었다.
손톱으로 부품과 선을 긁어내고 살을 파헤친다.
"그게 무슨… 왜 그런 짓을?"
"이거 스위치가 망가져서 그래."
이따금 잘못된 곳을 건드리면서 머리가 아득해지는 고통이 찾아왔지만 겨우 숨겨진 내부 버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숨을 흡 들이쉬고 버튼을 눌렀다.
한순간에 머리 속이 뜨거워지며 그 열기가 목덜미를 지나 전신으로, 다시 심장으로 모이고, 어깨에 가 닿았다.
오버클럭을 통한 강제적인 스킬 사용.
검은 입자가 입에서, 코에서, 눈에서 흘러나오고 왼팔에 모여 형태를 이룬다.
강도재현율 5할, 기능재현율 2할 이하.
충분하다.
나는 복구된 의수로 주먹을 쥐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음에는 진짜 쓰지 말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