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용기의 증명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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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달리는 장갑차, 그 안에서 기동타격대의 지휘를 맡게 된 현오찬 경감이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근래 이상한 일이 너무 많았다.
식물형 몬스터가 쏟아지던 게이트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야수형이 저지선을 뚫고 도시 한가운데에서 날뛰었다.
끝내 헌터들에 의하여 토벌되었지만, 악마형으로 변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또다시 모골이 송연해진다.
게이트 확보가 끝난 후 공략한 던전에는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었다. 왜 야수형이 나온 것이고 왜 악마형으로 변한 것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불가사의한 사태에 불안해하던 시민들이 겨우 다시 안정을 되찾는가 싶더니, 오늘의 사건이 터져버렸다.
아무런 전조 없는 몬스터의 등장.
지금까지도 그 게이트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채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헤임달 프로젝트의 뿔피리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100%에 가깝다던 신뢰도가 무색하도록.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더 큰 위험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현오찬 경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변의 젊은 대원들을 둘러보자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눈에 띄게 초조해하는 표정, 딱딱한 표정,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
그의 오랜 경험으로, 대원들 모두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린놈들아. 현오찬 경감은 서글프게 웃었다. 겨우 30대 중반을 넘긴 그는 우습게도 세대 차를 느끼고 있었다.
헤임달 프로젝트 이전을 경험한 가드와 그렇지 않은 가드, 둘 사이에는 분명한 의식의 차이가 존재했고 현오찬 경감은 그것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가드가 민중의 마지막 방패였던 시절은 흘러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젊은 가드들이 민간인 피난 말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냐느니 한가로운 소리를 하길래 크게 꾸중을 놓은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 불운한 가드뿐만이 아니라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이든 가드들도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오찬 경감은 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위험한 현장으로만 불려가던 그는 죽음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언제건 죽을 수 있다. 언제건 무너질 수 있다.
현오찬 경감의 눈앞에서 사람들이 녹아내리는 광경이 선명했다.
그때, 헤임달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직전.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이 그 정도의 희생으로 마무리된 것은 요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희생을 다행이라고 하는 것에 현오찬 경감은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몬스터들을 사살하고 해당 구역을 폐쇄해야 할 것이다. 놈들이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미온적인 대처를 해서는 안 된다.
현오찬 경감이 속한 팀을 포함해 기동타격대가 곳곳의 현장을 향하고 있었고 각 관할 길드에서 파견한 헌터들도 속속들이 합류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타이탄즈의 시가지 사냥팀은 없었다.
현오찬 경감은 그들의 행선지를 떠올리며 불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때, 과거의 그 참혹한 현장에는 그 남자도 있었다.
그는 알 것이다. 막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
"미안, 조금 늦었다."
옥상과 옥상을 뛰어다니며 달려 겨우 아카데미까지 도착하니 김예림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시간이 넉넉한 건 아니니까 간단하게 설명한다. 지금 날뛰는 놈들은 눈속임. 이쪽이 진짜 노림수."
"아라크네 타입 변종인거죠? 혼합 독을 사용하는."
"맞아. 정확해."
게이트를 통해 침입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 최대한의 피해와 혼란을 가져다주고 가능하다면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것.
그런 뚜렷한 목적성은 반대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지간히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닌 이상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충귀형들은 달랐다. 덩치만 컸지 별다른 공격 수단도 없는 놈들이 뭉치지도 않고 각기 흩어져서 날뛴다?
양동 작전. 그것이 내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였다.
그리고 몬스터의 외양을 보았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 조우한 적이 있는 타입이라고.
"근데 어떻게 알았나? 안 나온 지 꽤 된 놈들인데. 던전에서 발견된 적도 없고."
"그냥, 예전 기록에서 봤어요."
예림이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싶었는데 그냥 뭔가 숨기려는 눈치였다.
"저번이랑 같은 놈들이면 아마 이 부근 큰 건물에 숨어있을거야. 제일 수상한 건 이 아카데미 건물인데, 네 스킬로 훑어봐야 돼."
좌우지간 설명할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곧장 입구 옆 경비실로 향해 헌터증을 내밀었다.
"타이탄즈, 시가지 사냥팀 윤현수입니다. 이곳에 몬스터가 숨어들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어 내부를 조사해보려 하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예상외로 젊은 경비원이 창구를 열더니 헌터증을 확인하며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실례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따로 연락을 받은 게 없어서요."
"긴급 상황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즉시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바로 얼마 전에 웬 잡상인이 헌터증을 위조해 들어오려던 일이 있어서… 타이탄즈라고 하셨죠? 전화로 확인해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경비원의 얼굴을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성실하고 깔끔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예림이를 불렀다.
"예림아. 그냥 넘자!"
그리고 닫힌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봐요! 당신 뭐야!"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었다. 예전에는 헌터증이면 바로 프리패스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귀찮은 세상이 된 건지.
나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땅을 박차고 점프해 교문을 뛰어넘었다. 한 차례 가볍게 굴러서 착지한 뒤 다시 소리 높여 예림이를 불렀다.
"예림아! 너도 그냥 뛰어서 건너!"
그러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경비원의 어리둥절한 목소리였다.
"어? 김예림 헌터? 그, 맞죠?"
"네, 맞아요."
"으아, 그럼, 죄송합니다. 바로 열어드릴게요!"
두꺼운 철문 너머 그런 대화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천천히 문이 열리며 예림이가 걸어들어왔다.
"……가자."
"……네, 선배."
길드 단위로 스타로 밀어주는 애는 진짜 다르구나.
예전에는 그냥 헌터면 바로 알아보는 일도 많았는데, 요즘은 던전에서만 뛰어다니니 몇몇 소수만 얼굴이 팔리지 대부분은 얄쨜없다.
근데…나도 저번에 영상에 나오지 않았나? 왜 나는 못 알아보지? 이러면 후배 앞에서 내 위신이 대체 뭐가 되지? 길드 차원에서 뭔가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닐까?
교정이 조용한 탓에 한번 시작한 잡념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불길한 감촉이 피부에 닿을 때까지, 계속.
나는 걸음을 멈췄다. 피부에 짜릿한 느낌이 번지며 온몸의 털이 삐죽 선다.
새삼 교정을 다시 둘러보니 정말 조용했다. 그래, 지나치게 조용하다. 오후의 햇살에 어울리지 않는 방과 후의 정적이 교정을 떠돌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번에는 슈트 없다?"
왼손의 의수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지나치게 가벼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금 나는 전투용 의수가 아니면 능력을 완전히 사용하는 것이 힘들었다. 슈트나 총기 같이 제대로 된 무장은 어림도 없다.
그러니 본격적인 작전 투입 전, 확실하게 해놓아야 했다.
"아직, 조금 무섭지?"
"…"
예림이는 제자리에 선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짓씹은 입술에서 자괴감이 묻어나온다.
"그래, 그러면 이번에는 이렇게 하자."
나는 교정을 대강 훑어보고 말했다.
"아마 '머리'는 옥상에, '다리'는 학교 곳곳에 있을 테니까. 내가 '머리'를 붙잡는 동안 '다리'를 끊어둬."
이것이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법일 것이다. 내가 머리를 맞상대하는 동안 도시는 안전할 거고, 다리를 다 끊어버리면 그것으로 상황 종료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김예림은 내가 가장 위험한 일을 부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동시에 몸에 새겨진 두려움으로 선뜻 입을 열어 반론을 꺼내지도 못했다. 좋은 징조였다.
개인적으로 책임감이 강한 놈이 크게 자란다. 무서운 걸 아는 놈은 영리하게 크는 법이고. 그리고 김예림은 지금 둘 다였다.
문제는 책임감이건 공포건, 사람을 무겁게 내리누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저기 저 두 유령에게 붙잡히면 결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없다.
그렇게 중압감 속에서 무너져 내리거나 자포자기해서 무모한 결정을 하는 헌터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니 내게는 선배로서, 후배가 스스로 일어나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었다.
"다리가 어떻게 숨어있을지 몰라. [생명체 감지] 없으면 전부 찾기는 힘들 거고. 그러니까 네가 해야 되는 거야."
사실이었다. 그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상태에서 너까지 따라온다고 머리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화력이 부족하니까 시간 벌이밖에 안 돼. 그러니까 네가 가서 다리나 전부 끊어 놓고 지원 기다리는 게 안전해."
이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예림이는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예나 지금이나 내 말을 안 들어 먹는 건 똑같은 거 같은데 이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이것도 충분히 네 역할을 다 하는 거야. 넌 이미 훌륭한 헌터고."
그리고 고민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좋은 헌터가 되는 거야."
여기서부터는 사실, 거짓말이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이다.
못난 선배는 후배의 등을 밀어주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
"먼저 물어보겠는데, 혜은이랑 요즘 왜 그러냐?"
"무슨, 이야기에요?"
"뭐기는, 너 원래 혜은이 좀 무서워했잖아."
딱딱하게 굳어가는 얼굴이 내 짐작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상하게 첫 대면부터 뭔가 있는 눈치더니 연구실로 끌어들이길래 뭐가 있구나 했지. 뭐, 감시? 그런 거로. 지금은 별 상관없으니까 굳이 물어보지는 않을게."
예림이의 얼굴에 경악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티를 내면서 왜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
순간 웃음이 비집고 올라올 뻔했지만 겨우 참아내고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 무서워하는 걸 파헤치는 건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근데 요즘은 반대로 계속 피해 다니고 밀어내고 있잖아. 그러면 알만하지. 맨날 보는 이야기인데."
왜 요즘 들어서, 인제 와서 그렇게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걸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현직 헌터와 야심 넘치는 헌터 지망생.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
"무서운 게 달라진 거지? 처음에는 이유는 몰라도 일단 혜은이를 무서워하다가."
이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이제는 헤은이한테 정 붙이는 게 무서운 거지?"
내 말에 예림이는 한참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 저는…"
예림이는 화를 내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울상을 짓는 듯하다가, 그러다가 결국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대신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을 연 상대가 죽으면 상처가 오래 남지."
나는 김예림이 첫 실패를 경험한 공략을 떠올렸다. 자세한 정보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상자가 몇 명인지, 그 이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내막이 어느 정도 짐작되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가 죽었을 것이다. 아마 그녀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남의 상처를 후벼 파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필요한 일이 될 수 있다.
김예림은, 서혜은이 헌터가 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헌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관계를 끊어내려 할 것이다.
사람이 쉽게 죽는 세상에서도 유달리 명이 짧은 직업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하고, 일부러 정을 떼려고 하고. 괜히 관두라고 욕하고 갈구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혜에게 꼰대 같다고 혼나기도 한다. 쓴웃음이 살짝 나왔다.
"자기는 아예 죽어도 상관없을 놈이랑 일하는 게 편하다, 이러고 다니는 애도 있는데, 솔직히 그건 좀 너무 나갔지."
그리고 같이 일하면서 서로 등을 맞대다 보면 어느새 정이 들어 있는 일이 태반이다.
"그러니까 그냥 살아있는 동안, 얼굴 볼 수 있는 동안 실컷 봐둬야지. 그리고 불안하니까, 불안한 만큼 어떻게든 분발해서 살리려고 애써봐야 하는 거고."
그렇게 뛰어난 헌터가 되어 가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을 맺으며 방호 코트를 벗어 건네주었다.
"너무 늦어졌다. 자, 이거 줄 테니까 얼른 가. 체육관부터!"
예림이는 머뭇거리면서 내 얼굴과 코트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럽게 소매에 팔을 넣었다. 품이 조금 넓어서 옷에 파묻힌 듯한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방금 전보다는 조금 편안해 보였다.
"선배."
조심스럽고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다치지 마요."
"무슨 선배 걱정이 그렇게 많아? 후배는 선배 걱정하는 거 아니야. 얼른 가!"
나는 피식 웃으며 본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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