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네가 왜 따라와1
* * *
거기에 계속 있어야 할 것 같다?
시가지 사냥팀에? 계속?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저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서러움에 목이 멘다. 울분에 가슴이 답답하다.
"삼촌. 아니, 길드장님. 제가 뭐 서운하게 한 거라도 있습니까? 저한테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짧은 침묵이 흐르고.
"현수야."
왜일까, 길드장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오랜 시간 담아두기만 했던 마음이 밖으로 나온다.
"그럼 서운한 게 없겠냐. 내가."
그 말에 나는 짐작 가는 것을 떠올렸다. 박규태 길드장과의 오랜 인연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친구였던 박규태는 나를 오랜 시간 돌봐주었다. 마치 가족처럼.
덕분에 나는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부족함 없이 배울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 세월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제가 그렇게 방해였습니까?"
차마 대답하기 어려운 듯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결국 그는 대답한다.
"방해라기보다는, 골칫덩이였지."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입안에 가득 쓴맛이 퍼진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새겨버린 상처가 내 것인 양 쓰리다.
"그렇게 괴로워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박규태 길드장은, 삼촌은 홀몸으로 나를 기르고 가르쳐온 것이다.
장장 16년간을……
"외로우셨겠죠. 남의 자식이 딸린 홀아비라니, 있던 인연도 달아나겠지요."
"뭐?"
길드장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지만 나는 참담한 심경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저 하나 때문에 결혼 못 했다고 하는 건 좀…… 양심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
울분이 차오르는지 길드장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지금 뭔 씨발 개소리야!"
저런 거친 소리까지 하시다니. 전쟁이 끝난 후로는 단 한 번도 욕을 입에 담으시지 않으셨는데.
모르는 사이에 쌓여있던 응어리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 이야기가 지금 왜 나와?"
아닌가?
"그 이야기 아니에요?"
"아니야! 일 이야기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오나? 거, 내가 서운하다고 한 건. 길드에서 맨날 말썽부리고, 이상한 짓 하고 다니고, 그러는 거 말하는 거지."
"난 또."
52년 묵은 노총각 히스테리가 드디어 터졌나 했었는데.
씩씩거리던 길드장은 문득 표정이 살짝 굳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너 때문에 못 만나고, 그런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하긴 그 얼굴로 연애는 좀 힘들긴 해요."
"진짜 이 개……"
가까스로 삼켜낸 욕 대신 한숨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내가 진짜 미안해서 참는다. 미안해서 참아."
"뭐가 그렇게 미안…… 아, 그래서 제가 왜 계속 남는 건데요?"
탈선한 이야기가 드디어 원래의 노선으로 돌아왔다.
시가지 사냥팀에 계속 남아야 한다. 이 좌천 생활이 더 길어진다. 도무지 반가워하려야 반가워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이대로면 내 헌터로서의 생명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3개월이면 솔직히 꽤 오래 있던 거 아닙니까? 헌터가 두 달만 쉬어도 무슨 죽을병이라도 걸렸냐, 손버릇이라도 안 좋나? 온갖 안 좋은 소문은 다 퍼져요. 거기에 던전 못 가니까 괜한 장비 관리비만 계속 나가고, 보험금은 보험금대로 나가고."
"내가 그걸 모르겠냐? 힘든 거 알지. 다 알지. 근데 길드 이미지가……"
"아니, 솔직히 제가 물의를 일으켜봐야 얼마나 일으켰다고. 그리고 이번 건 덕분에 나쁜 이미지도 많이 벗었잖아요. 저 다시 데려온다고 해서 누가 길드에 뭐라고 하겠어요?"
"그거 말 잘했다."
길드장은 몸을 앞으로 내밀며 손가락을 세웠다. 공수전환의 신호였다.
"니가 방금 말한 그거. 그거 때문에 돌려보내기 힘든 거야. 이번에 활약한 일 때문에, 너 사냥팀에서 빼내는 게 힘들어졌다고."
"무슨 소리예요?"
"생각해봐라. '위기의 순간 빛난 타이탄즈의 철저한 안보 의식' 이렇게 보도를 때려놨잖아."
15년 전 대전쟁이 종식되고, 게이트를 이용한 침투전도 완벽한 대응 체제가 세워진 게 벌써 4년.
몬스터들의 어설픈 습격은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가드들과 솔저들의 연계망에 찢겨나가며, 게이트는 닫힐 틈도 없이 탈취당해 역으로 던전으로 향하는 입구 취급을 받았다.
헌터들의 원래 의미, 전선 너머로 숨어든 괴물을 사냥한다는 본분은 잊히고, 솔저들이 확보한 게이트를 통해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 요즘의 세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길드들이 경각심을 잃어 이번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 타이탄즈만이 믿음직한 활약을 보여준 것이다.
"요행이었잖아요. 이럴 줄 알았던 것도 아니고."
"거, 그야 그렇지. 하지만 기왕 얻은 평판인데 안고 가야 되지 않겠냐?"
심드렁하게 부끄러운 부분을 지적하자 길드장은 의외로 뻔뻔한 얼굴로 받아쳤다.
새삼 느끼지만, 내 앞에서는 주책맞은 삼촌이라도 10년간 길드장을 연임한 관록은 어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녀석아. 이번 일 있자마자 바로 사냥팀이 해체되면 주변에서 무슨 눈으로 보겠냐?"
"대체 뭐하는 놈들인가 하겠죠……"
"그렇지."
기껏 성과를 보였는데 그러자마자 팀을 해체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앞설 것이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러면 그냥 저 말고 다른 인원으로 돌려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로테이션으로 좀 돌리면 되지. 한 달 정도면 그냥 좀 휴가 온다 생각하고 오는 애들 있을걸요?"
팀을 남겨 놓는 건 남겨 놓는 거고, 그게 내가 남아있을 이유는 안 된다.
아니 나한테 무슨 원수를 졌길래 이렇게 억지로 묶어놔? 삼촌 머리숱 줄어드는 게 내 탓인가?
"그건……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인데."
박규태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되도록 꺼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내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사실 김예림이 먼저 와서 사냥팀에 한동안 남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를 바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김예림 헌터는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이었다. 물론 그녀의 네임벨류야 입단한 이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늘 상승세에 있기는 했지만, 휴식기를 가지기에 적합한 타이밍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일이 없는 것은 또 아니다.
"거…… 아마 이미 들었을 건데. 저번에 무슨 일인지 던전에서 갑자기 공황을 일으킨 적이 있다."
"들었죠. 그러고 보니까 그건 왜 그랬대요?"
길드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몰라.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안 해. 아니, 그 이후로 뭘 물어봐도 대답을 안 했었지."
"그랬던 것 같네요."
하긴. 이번에 오고 목소리 들은 일이 손가락 안에 꼽혔다.
원래도 말수가 적긴 했지만, 지금의 과묵함은 무언가 병적이었다.
"근데 헌터 일이 원래, 아무리 안전해졌더래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좀 그렇잖아요. 아마 주변의 기대만큼 압박감도 있었을거고. 그래서 지쳤던 거 아닐까요?"
저도 모르게 변명을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하면서도 말에 설득력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애써 현장까지 나온 모습을 떠올리면 무어라 변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이해해주니 다행이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박규태의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그래서 김예림은 사냥팀에 남을 건데, 다른 헌터랑 부대끼다 보면 좀 잡음이 생기지 않겠냐? 그 일 있고 나서 길드 사람들은 다 쉬쉬하면서도 욕을 그렇게 했는데, 지금도 감정 안 좋은 친구들 꽤 있을 거야. 그런 거 생각하면 네가 남는 게 제일 깔끔하지. 안 그러냐?"
"별로 안 그런 거 같아요."
아니 결국, 김예림 걔 때문에 여기 남아야 한다고? 걔 멘탈 케어 때문에?
안쓰럽고 기특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걔 뒷바라지한다고 한직에 붙박여 있기는 싫었다.
"좋게 생각해봐. 원래 너 예림이 신입 때 사수였잖아. 오랜만에 부사수 좀 돌봐주고 그래라."
"저번에는 떼어 놓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대체 뭐에요?"
"그때는! 그때의 사정이 있는 거고, 지금은 또 지금 아니겠냐."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해서 제가 얻는 게 뭔데요?"
내가 무슨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따로 뭐 용돈이라도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 좋으라고 이런 고생을 떠맡아야 하나?
길러준 은혜? 이 정도로 훌륭하게 자랐으면 이미 갚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길드장은 살살 달래고, 나는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표하면서 대치하기를 한참.
길드장은 결국 표정을 와락 구기더니 떨떠름하게 조건을 제시했다.
"예전에 네가 이야기했던 그 슈트. 개발 허락해주마. 그거면 되겠냐?"
느닷없는 제안에 잠시 머리가 굳었지만, 곧장 그 의미가 뇌리 깊숙이 스며들었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려보았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충분하고도 남죠. 무르기 없습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손을 비볐다. 그런 조건이라면 김예림이 셋이라도 기쁘게 맡아줄 수 있다.
박규태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의자에 늘어지듯 앉으면서 동시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나 참…… 그런 물건이 뭐가 좋다고. 만들어봐야 네 밑천만 깎아 먹는 거 아니냐?"
"아시면서 괜히 더 그러네."
느물거리며 일어서자 안쓰럽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 시선이 따라왔다.
"그럼 그런 거로 알고, 전 갑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
집무실을 떠난 후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내가 없으면 텅 비어있던 대기실은 이제는 낮이면 김예림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한결 사람의 온기가 돌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예림이 무슨 켕기는 일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라며 쳐다본다.
"좋은 아침. 근데 무슨 할 말 있어?"
"……"
보니까 뭘 하던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좀 멍하니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너무 놀라는데 내 생각이라도 했나?
"노크 필요해?"
텅, 텅, 문을 두드리자 금속질의 소리가 울린다. 김예림은 눈썹을 가볍게 씰룩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봤다.
저러면 더 신경 쓰이는데. 혹시?
나는 뭔가 보기 불편한 물건이라도 놓고 간 적이 있나 기억을 되새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
"아, 장비, 장비."
김예림한테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하필 장비함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바빠 보이시네요."
별일이 다 있네. 얘가 말을 다 걸고.
"응? 아, 연구실 가느라고."
"연구실이라면, 최지혜 수석이 있는 곳인가요?"
"어, 그렇지?"
"……같이 가요."
"뭐?"
나는 의문 부호만 내뱉는 멍청한 타자기가 된 기분이었다.
얘가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의문으로 가득한 머릿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예림은 단호하게 말했다.
"같이 가자고요. 연구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