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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 헌터는 돌아갈 수 없다-5화 (5/55)

〈 5화 〉 시가지 사냥팀­4

* * *

수많은 회차를 거치면서 김예림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윤현수는 지독한 인간이었다.

실력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골치 아픈 것은 인간성 자체였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물어뜯는 독종에, 기이할 정도로 강한 악운.

사사건건 참견하려 드는 그를 제거하려 시도했던 회차도 수없이 많았지만, 그는 항상 살아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그런 지독한 남자가 지켜준다고 말할 때.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말았다.

*

윤현수와 김예림이 몬스터를 쫓아가는 동안 가드들도 마냥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임시 지휘권을 받은 현오찬 경감의 지휘 아래, 그들이 할 수 있는 준비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다.

"뭐하나! 빨리 움직여!"

세상이 변화한 후, 각성자들은 오랜 시간 말할 수 있는 무기 정도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 무기는 그 존재 의의를 잃기 마련.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각성자들은 좀 더 생산적인 능력을 개발하며 사회에서의 새로운 역할을 손에 넣었다.

지금까지도 각성자들의 전투 능력이 존중과 우대를 받는 것은 소수의 몇몇 조직들 뿐.

"임시 저지선 만들고 지원 병력 불러! 드론병은 소식 없어?"

도시의 방패, '가드'들의 조직 실버볼은 그런 조직들중 하나였다.

강력하고 범용적인 능력으로, 어떤 던전에서도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활약하는 진짜 초인들, 헌터.

하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그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전투형 각성자들은 특수 경찰인 '실버볼'과 초인전투부대 '헤비박스'에 들어가 자신의 적성을 살리려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실버볼은 개개인의 전투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일원화된 지휘 시스템과 압도적인 머릿수를 바탕으로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며, 유사시 범죄자 제압에서 민간인 대피 등의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발견 보고! 사냥팀 측 발견 보고입니다!"

"위치 공유해! 드론 3대로 집중 감시한다!

또한 오늘과 같은 상정 외의 사태에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괴물 사냥을 지원하기도 한다.

현오찬 경감은 빠르게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이미 민간인 대피가 모두 끝난 구역이었다.

"좋아! 해당 구역을 둘러싸는 형태로 이동 초소를 구축한다. 제압 장비 분배하고 이동해!"

빠르게 모든 지시를 마친 현오찬은 남들 몰래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예기치 못한 사태의 연속이었다. 전조에 비해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이 너무 빨랐고, E급 식물형 사이에 급작스럽게 B급 야수형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저지선이 뚫리고 말았다.

헤비박스의 지휘부는 단숨에 혼란에 빠졌다. 약한 몬스터를 쏟아낸 후 곧바로 게이트가 닫히는 '플래시 몹' 상황을 예견했던 그들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즉각적으로 실버볼와 길드 연합에 지원을 요청했다.

실버볼은 요청과 동시에 가드들을 파견했지만 비상 대기조의 개념이 사라진 길드의 지원이 언제 올지는 막막한 상황.

목숨을 버려서라도 괴물의 발을 묶겠다며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던 순간에.

김예림과 윤현수, 두 명의 A급 헌터가 도착했다.

김예림.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길드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한 슈퍼 루키.

그리고 윤현수.

사실, 위명보다는 악명이 높은 헌텨였지만 현오찬은 그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윤현수 헌터가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고. 몇 차례의 비공식 작전을 함께하며 현오찬은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해당 구역에 드론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만 의존하여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오찬은 저도 모르게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다잡으며 드론 송출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저게 어떻게 B급이야? 아니, 야수형은 맞나?"

그리 깨끗하지는 않은 송출 화면.

그러나 괴물의 강함만큼은 선명하게 전해진다.

뿜어져 나오는 박력.

꿈틀거리고, 꿈틀거리고, 그렇게 점점 커져가는 것 같은 육체.

두 발로 선 늑대에 고대인들의 악몽을 섞어 놓은 듯 곳곳에 솟아있는 날카로운 뿔들.

적어도 A급. 그리고 악마형에 가까운 외관이었다.

"처, 처음 목격된 것과 다릅니다!"

최초 보고를 올린 가드를 불러 확인하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다른 개체가 저지선을 뚫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저 괴물이 침투 후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침투 후 진화, 그렇게까지 드문 현상은 아니었다.

게이트를 오가며 강력한 힘에 노출된 괴물들은 점진적으로 그 힘과 형태가 흉악해지기 마련.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변화를 보이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사냥팀, 목표물과 지금 조우했습니다. 교전을 시작합니다!"

"안돼! 일단 후퇴 후 지원군을……"

"아니."

부관의 다급한 말을 끊은 것은 현오찬 경감의 목소리였다.

"일단 현장 판단을 기다린다."

냉정을 되찾은 현오찬 경감은 단호하게 말했다.

A급 헌터 두 명과 A급 악마형. 보통이라면 전투가 성립하지 않을 수준의 전력 차이.

­ 괜찮습니다. 교전 시작합니다.

그러나 무전 속 목소리는 담담하게 돌입을 선언했다.

말릴 틈도 없이, 두 헌터가 괴수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게 A급……?"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린 것은 누구였을까.

현대 사회에서 헌터의 강함이란 직접 실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되었다.

바다가 산의 험준함을 상상하지 못하듯이.

산이 바다의 광활함을 상상하지 못하듯이.

게이트 대응 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민간은 점점 더 안전해졌다. 헌터들의 무대는 던전 안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일반인들은 그 강함을 상상 속으로만 그려볼 뿐, 헌터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D­F급의 각성자인 그들로서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 한 B급 이상의 헌터가 얼마만큼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5월의 낮. 그 거리에는 겨울이 내려앉아 있었다.

김예림 헌터는 마치 지상으로 마실을 나온 눈의 요정 같았다.

그녀가 내뿜는 한기가 아스팔트 위에 서리를 가득히 피워내고, 서리꽃밭 위를 나풀거리며 뛰노는 검은 나비.

괴물의 몸이 서서히 얼어붙는다. 경악과 분노가 몸부림쳐도 심장은 말없이 멈춰간다.

죽어가는 괴물이 휘두르는 발톱은 허무한 허우적거림으로, 무의미한 난동으로, 결코 그녀의 몸에 스치지 못한다.

우아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검을 번뜩일 때마다 괴물의 몸에는 참혹한 검상이 새겨지고, 온몸에 가득한 상처에서는 핏물마저 얼어붙어 흐르지 못한다.

분에 못이긴, 공포에 질린, 이성이 마비된, 괴물의 흉악한 사지가 이리저리 날뛴다.

어떤 우연한 순간에 짐승의 뿔난 앞발이 그녀를 똑바로 겨냥하여 내리꽂힌다면

어김없이, 윤현수 헌터의 검과 왼팔이 그 공격을 막아낸다.

A급, 그것도 악마형과 야수형이 섞인 육체에서 우러나오는 무지막지한 괴력.

그것을 맨몸으로 막아내고도 그 남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얼굴에 떠오른 사나운 미소는 괴물마저 떨게 만들고, 주춤거리는 틈을 노려 냉랭한 칼날이 또다시 빛을 토해낸다.

거듭되는 상처, 얼어붙는 육체, 그 속에서 흐려저가는 영혼.

괴물의 목숨이 스러지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의 문제였다.

"……상황 종료."

모두가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던 와중, 현오찬 경감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무전했다.

"영웅분들을 모시고 복귀한다."

*

야수형인지 뭔지 모를 괴물을 잡고 난 다음 날.

나는 호출을 받고 길드장 집무실을 찾아갔다. 오랜만이었다. 대충 3개월만?

"음. ……현수야. 일단 앉아라."

박규태 길드장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리를 권하더니 한참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뭔데요. 징그럽게."

"새끼 말하는 뽄새하고는……"

길드장은 내 말에 얼굴을 구겼지만 애써 말끝을 눌러 삼켰다. 어지간히 중요한 용건인 모양이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뭐기는, 그냥 우리 조카. 이번에 잘해줬다 칭찬이나 한 마디 하려고 불렀지."

"칭찬 한 마디 하자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하고…… 그리고 제가 언제는 뭐 못했나요."

대접이 푸대접이라 그렇지.

내 심드렁한 반응에 길드장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다가 겨우 가라앉았다.

"진짜 말하는 거만 좀 이뻤으면…… 그래도 이번엔 정말 잘해줬다. 덕분에 길드 위신이 크게 섰어. 다른 대형 길드들도 죄다 대응이 늦었는데 우리 길드에서 깔끔하게 해결했으니까. 거기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 반응도 좋고."

말하면 말할수록 기분이 풀리는지 입술이 씰룩이는 것이 눈에 띈다.

그 말대로 이번 침투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몇 년 만에 일어난 몬스터의 도시 침투.

평화에 찌들어 있던 대부분의 길드가 급작스러운 사태에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 위기감을 잃지 않고 항상 대기조에 길드의 핵심 전력을 배치하고 있던 타이탄즈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

……라고 보도된 것이 세간에 유례없는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그 구성원에 원래부터도 큰 인기를 끌던 김예림 헌터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대중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무엇보다 결정타가 된 것은 가드들이 이례적으로 공개한 드론 영상이었다.

그 안에는 김예림이 화려하게 능력을 사용하여 괴물을 농락하고 처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A급 헌터의 힘을 생생히 느낀 대중들은 그녀를 영웅시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별로였다. 지나치게 능력을 낭비하고, 겁쟁이처럼 회피에만 몰두하고.

그녀의 평소 전투법과 전혀 다른 어색한 형태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불러온 듯했다.

같은 헌터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대중의 눈에는 그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싸움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대중들의 지지에 힘입어 타이탄즈의 주가는 치솟았고 가드와 솔저 측에서도 감사 표창을 보내는 등 호재가 연달아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

"그러면 저 이제 돌아가도 되죠?"

처음부터 이미지 관리를 위해 들어왔던 시가지 사냥팀.

모든 악평을 쇄신한 지금, 다시 원래의 일상인 던전 공략으로 돌아갈 때였다.

그럴 터였다.

"아…… 현수야. 그거 말이다."

길드장, 박규태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너 거기 계속 있어야 할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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