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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 헌터는 돌아갈 수 없다-4화 (4/55)

〈 4화 〉 시가지 사냥팀­3

* * *

김예림은 회귀자였다.

그녀의 폭발적인 성장. 그 배경에는 끝없이 주어지는 회귀가 숨어있었다.

회귀 능력의 가호 아래 실패와 죽음은 의미가 없었다.

이길 수 없는 괴물을 죽이며, 막을 수 없는 재앙을 막고, 살릴 수 없는 사람을 살려서 얻을 수 없었던 스킬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실수나 문제가 튀어나오더라도 모두 되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 모르는 것이 없는 현자, 망설임 없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회귀를 잃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던전 안이었다. 몬스터들은 예상 이상으로 거칠고 지독했고 아껴두고자 했던 기술을 몇 번이나 사용했다.

그렇게 무리를 거듭하며 코어룸까지 길을 뚫은 그녀는 그동안 얻은 정보로 다시 던전을 공략하고자 회귀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곗바늘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위기감이 느껴진 것은 한참 뒤였다.

김예림은 회귀 능력을 얻고 수십 번을 죽었다.

수백 번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다.

수천 번 죽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직면했다.

그 이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새 던전 밖이었고, 모두가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되돌리고 싶었다. 그들의 분노와 실망을 되감고 도망치고 싶었다.

불가능했다. 시간은 이제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그녀에게도 공평했다.

그 사실이 너무도 불공평하고 두렵게 느껴져서, 그녀는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몇 주가 지나고, 김예림에게 인사이동이 통보되었다. 징계성이었는지, 위로 차원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수많은 회차 속에서 번번이 발목을 붙잡던.

가장 지독하고 심술궂은, 숙적과도 같은 남자였다.

*

예전부터 탐냈었는데, 지혜의 바이크는 성능이 정말 무시무시했다. 각성자가 아니면 사용하지도 못할 만큼. 덕분에 늦지 않게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당한 곳에 바이크를 세워 놓고 지체 없이 실버볼의 임시 본부를 찾아갔다.

"타이탄즈, 시가지 사냥팀 윤현수입니다."

"시가지? ……아! 현수 씨! 다행입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주고받던 가드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랜만입니다. 소식이 들리지 않아서 무슨 일 있으셨나 했습니다."

익숙한 얼굴의 가드가 앞으로 나서며 대화를 주도했다. 현오찬 경감이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해산하여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고 자연스럽게 현오찬 경감이 담당하여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B급 야수형 괴수 하나가 저지선을 돌파하여 상선로 방향으로 향했고 가드들이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지만……"

"교전은 최대한 피하라고 전하십시오. 목격 보고만 재깍재깍 해주시고, 통신 채널 공유해주세요."

가드들의 조직 실버볼.

치안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 실버볼은 아무리 각성자로 이루어졌다고 한들 괴물 사냥에 적합한 조직이 아니었다. 제대로 무장을 갖춘 솔저들의 저지선을 돌파할 수준이라면 어설픈 제압시도는 인명 피해로 이어질 뿐이었다.

"민간인 피난은 맡겨두겠습니다. 괴수 위치는 파악되었습니까?"

"대략적인 위치는 특정되었지만 계속해서 이동하는 터라……"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투입하면 되겠군요."

위치를 확인하니 일단 피난이 끝난 구역이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현오찬 경감의 표정은 어쩐지 좋지 않았다.

"저 사실, 먼저 오신 분이 계십니다."

"먼저?"

"저쪽에……"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익숙하게 올려 묶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알아보지 못할 뻔했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김예림이었다.

평소에도 항상 굳어있는 얼굴이었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라 보였다.

마치 겁에 질린 듯,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

거기에서 억지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먼저 투입하지 않은 거죠? B급 야수형이라면 위협적인 수준은 아닐 텐데요."

"일단 도착은 하셨는데, 계속 말도 없으시고 안색이 창백하셔서 투입을 보류 중이었습니다."

현오찬 경위와 다른 가드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모여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저게 진짜.

아니. 아니다.

"알겠습니다. 맡겨두시고 상황 공유 계속 부탁드립니다."

나는 몰래 얕은 한숨을 내쉬며 김예림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장비는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타이탄즈 본부 대기실과 이곳의 거리를 생각하면 호출기가 울리자마자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한 셈이었다.

저렇게 떨면서도 이 자리까지 왔다.

그 사실에 기특함과 괘씸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김예림 헌터. 출발합시다."

"……"

그녀는 내 모습을 보고 움찔 떨더니 시선을 내렸다.

벌벌 떨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지금 중요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바로 가야 합니다. 따라오세요."

"……!"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 것 같았지만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그대로 손목을 잡아끌자 김예림 헌터는 아주 잠깐 미약한 저항을 하더니 순순히 나를 따라 걸었다.

……

아. 이거 오래 잡고 있으니까 불편하네. 급한데 지금.

나는 슬쩍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버렸다.

"손목 잡은 건 죄송하고. 일단?"

말끝이 괴상하게 꼬였다.

내 손아귀에서 풀려난 뒤 잠시 허공을 방황하던 김예림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

"……"

"……뛰어서 갑시다."

조심스럽게 김예림 헌터의 손을 풀어내고 바로 땅을 박차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뒤를 돌아보자 그녀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뒤를 쫓아왔다.

그렇게 한층 더 어색해진 동행이 약 10분가량 이어졌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더 어색한 것 같아 뭐라도 이야기를 꺼내 볼까 고민하던 와중 김예림 헌터의 걸음이 멈췄다.

"뭐 찾았어요?"

그녀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김예림 헌터가 가진 수많은 스킬 중 하나인 [생명체 감지]가 무언가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근처?"

나는 방호 코트를 활성화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내 스킬들은 이런 도심지에서 쓰기에 까다롭지만, 균형 잡힌 능력을 갖춘 김예림 헌터라면 어렵지 않게 B급 야수형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모습으로 가만히 떨고 있었다.

……대체 공략에 실패했다던 던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용감하던 그녀가 저렇게 떨고 있는 걸까.

과거의 상처가 쓰려온다. 두렵다는 것을, 두려워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고통과 공포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무서워요?"

……편하게 말할까.

"무섭냐?"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예림은 처음 길드에 입단했던 C급 헌터 때부터 늘 침착한 모습만 보여서 귀여운 맛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의 모습은 놓쳐버린 신입 시절을 만회하듯이 어설프고 불안정해 보였다.

"왜 무서워?"

최대한 사근사근하게, 달래듯이 말하려 노력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들썩이던 그녀의 입술이 마침내 한 마디, 한 마디씩 단어를 뱉어냈다.

"……죽으면, 정말, 정말로 끝나버리니까. 이번에는"

결국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이거 중증이네.

아마 그녀는 처음으로 제대로 죽음을 실감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것과, 전장 속에서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경험하는 것과, 그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일어나리라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서로 너무나 다른 일이다.

한 번 죽음을 실감하고 나면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는 고민 끝에 왼손을 내밀었다.

"잡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잡으라니까."

거듭된 강권에 김예림은 마지못해 내 손을 잡았다.

원래 생존은 자가 부담인데…… 하기야 여기가 던전도 아니고.

마주 잡은 두 손. 거기에 나는 스킬을 사용했다.

"……!"

"놓지 마."

왼팔의 의수로부터 검은 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검은 물결, 혹은 연기 같은 것이 그녀의 손등을 타고 올라 온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몇 차례 철컹이는 소리와 함께. 김예림의 전신에는 어느새 절제된 디자인의 갑주가 덮여 있었다.

"게이트 침투전 때 솔져들이 착용하는 장비에 이것저것 덧붙인 거야. 절대 안 뚫린다."

적어도 B급 야수형한테는.

내 능력은 단순히 기계를 분해하고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준비 과정일 뿐, 내 고유 스킬의 핵심은 몸속의 축적된 재료들로 기계 장치를 조립해내는 것.

몇 가지 제약은 있지만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고, 익숙한 사용 방법은 아니지만 이렇게 전투복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전투복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스킬을 공격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지키고, 네가 친다. 할 수 있지?"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녀의 등을 밀어주는 것 뿐이다.

"나 알지? 더럽게 안 죽어. 절대 안 죽지. 죽더라도 그냥은 안 죽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강하게 단언했다.

"나 죽기 전까지는 넌 털끝 하나 안 다친다."

죽음의 공포는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눌 수도 없는 거고.

하지만 거기서 잠시 눈을 돌리게 해줄 수는 있다. 그 두려움에서 잠시 거리를 두게 해줄 수도 있고.

비겁한 방법이다. 하지만 비겁하게 자기 자신을, 동료를 속여서라도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이 헌터의 숙명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김예림은, 이런 말장난만으로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김예림 헌터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에는 어느새 검이 쥐어져 있었다.

"……안 죽는다는 말. 믿을게요. 제발 죽었으면, 진짜 죽었구나, 할 때에도 매번 살아 돌아왔으니까."

그런 적이 있었나?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마주 보고 웃어주었다.

"그럼 저도 믿고 있겠습니다. 김예림 헌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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