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좌천 헌터는 돌아갈 수 없다-3화 (3/55)

〈 3화 〉 시가지 사냥팀­2

* * *

김예림 헌터는 이 대기실과 어울리지 않았다.

길드의 떠오르는 샛별과 시대에 뒤처진 낡은 대기실.

이 조합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왜 왔어? 아니. 왜 오셨어요. 김예림 헌터님?"

나는 제발 그 이유가 '김예림의 느닷없는 전근'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아니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로 떨어졌는데, 얘를 이곳으로 보내면 어떡해?

하지만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 그녀는 아무런 대답 없이 조용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김예림 헌터는 조용히 시선을 피했고 견디기 어려운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하, 됐고. 일단 앉기라도 하세요. 자, 여기 의자."

내 마지못한 권유에 그제서야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나도 의자를 끌어와 건너편 자리에 앉았고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 찬찬히 쳐다보니 김예림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해 보였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조금 수척해 보였고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김예림은 한 번도 저렇게 여유를 잃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말은 없지만 늘 침착하고 유능하다는 분위기를 흘리면서, 때로 독단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는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그다지 즐겁지 못한 추론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김예림이, 최단기간 A급 승급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길드의 초신성이, 정말 시가지 사냥팀으로 전근을 온 건가? 무언가 사고를 쳐서?

"일단 혹시 모르니까 확인하겠는데, 여기로 전근 온다는 게 예림 씨에요?"

김예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제발 아니기를 바랬던 상상이 사실로 밝혀졌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탄식을 억누르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일로…… 아니, 그건 됐고. 얼마나 있을 예정입니까? 오래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공략 중 돌발 행동을 저지른다는 점을 빼면 그녀의 실력은 확실했다. 나도 어디 가서 실력으로 밀리지는 않지만 그녀는 실력도, 인기도, 이미지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런 김예림이 이곳에 오더라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김예림 헌터의 무성의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이봐요. 예림 씨. 대답할 거면 똑바로 합시다! 예?"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삼킬 수는 없었다. 나는 황급히 입을 꾹 다물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두려움도, 망설임도, 자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말이라는 듯 항상 쿨한 모습을 보여주던 김예림.

독선적인 카리스마로 길드 바깥에서 팬클럽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가 내 고성에 겁을 먹었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고 떨고 있었다.

"……"

겁먹은 눈동자가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휙 시선이 돌아갔다.

나는 저릿하게 올라오는 죄책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얘 대체 왜 이래.

다시 한번 대기실은 적막에 휩싸였다.

*

"야, 그래서 뭐 들은 건 없고?"

김예림의 전근이 있고 며칠 뒤.

나는 연구 3팀의 실험실에서 오랜 친구, 최지혜의 연구에 값진 도움을 주고 있었다.

"얌전히 처먹고 빨리 꺼지기나 하십시요. 고물상 새끼야."

그 은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까칠하게 내 말을 무시하며 보고서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어이없다? 너까지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냥 얌전히 처먹읍시다. 제발. 나 어제 밤 새서. 피곤해 죽을 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지혜의 말에 나는 작게 투덜거리면서 다시 왼팔의 의수를 뻗었다.

너덜너덜하게 망가지고 회선이 끊겨있는 장비. 거기에 왼손이 닿자 순식간에 표면이 검은색으로 뒤덮이더니 이내 먼지처럼 바스라지며 폭삭 주저앉았다. 그리고 의수 손바닥의 구멍이 열리며 게걸스럽게 철 가루를 빨아들여 마신다.

예전에는 '강철 포식', '장님 먹보' 같이 멋있는 별명이 따라오던 고유의 스킬이었지만.

"야, 이것도 폐기다."

김예림의 활약에 반비례하여 길드 안에서의 내 위상은 초라해져갔고, 어느새 내 별명은 '고물상'으로 정착되고 말았다.

나는 새삼스럽게 비통함을 느끼면서 망가진 기계들을 전부 흡수한 뒤 지혜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일이 일단락된 건지, 아니면 그냥 잠시 숨을 돌리려는 건지. 최지헤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그냥 그러고 냅두고 온거야?"

"그렇지 뭐. 이제 두 명이니까 2교대로 돌아가야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인수인계는 해뒀다."

그 날 김예림은 결국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몹시 피곤해진 나는 입을 다문 채 쭈뼛거리는 김예림 헌터에게 쏟아내듯이 필요한 사항들을 설명했다.

어떤 상황에서 출동할거고, 수속은 어떻고, 현장 도착 시 어느 메뉴얼을 참조하면 되고 등등.

제대로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허수아비 마냥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에게 예비 호출기를 넘겨준 뒤 곧바로 퇴근시켰다.

이후 내가 밤 근무, 그녀가 낮 근무를 맡는 것으로 시프트를 구성하여 통보했다.

답장은 없었지만, 그녀는 아침 8시에 출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진짜 나는 이해가 안 간다. 길드 에이스 대우를 그런 식으로 해?"

"내 말이. 길드장 사람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냐? 나도 그렇고, 예림이도 그렇고, 유능한 인재들을 이렇게 푸대접 해도 되는거야? 고소해도 할 말 없는 부분이지 이건."

"길드장 말고 너. 아무리 그래도 지금 길드 간판인데 2교대로 뺑뺑이 돌라는 게 말이 되냐?"

"야 그럼 나는 뭐냐?"

이 새끼 말 진짜 서운하게 하네.

나는 거기 오고 한 달 동안 그냥 대기실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

"아저씨 퇴물이야…… 정신 차려…… 그리고 꺼져……!"

최지혜는 대화에 싫증이 났는지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하게? 어디가?"

"너 없는 곳."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패널을 조작했다. 그러자 연구실 한 켠에 격벽으로 둘러싸인 구역에 불이 들어오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 나 밥 주게?"

"미친 새끼. 진짜."

지혜가 속해 있는 실험실은 주로 안정성 테스트를 한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구조가 단순하고 투박한 것이 많다. 게이트를 통과하여 던전에 들어갈 때 강력한 에너지에 노출되어 망가지거나 멋대로 격발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터들의 목숨과 직결된 무장들은 어떤 변수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복잡한 구조를 지양하여 만들어진다.

하지만 통신 장비는 그런 안일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효율과 내구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던전 내에서 화기를 사용하거나 전자 기기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여왔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바로 타이탄즈의 장비 3팀인 것이다.

오늘도 그녀와 팀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헌터들의 목숨을 지킬 장비들을 개발하고 테스트할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인류의 존망을 결정짓기 위한 투쟁에 큰 기여를 할 터였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나온 폐기품들을 별다른 비용 없이 처리해준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번 실험은 실패처럼 보였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며 장비에 불이 붙었다. 격벽의 유리창으로 그 결과를 지켜본 지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니 밥시간이다…… 대충 먹고 치워 놔라……"

멍멍.

나는 격리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망가진 장비를 흡수한 뒤 주변을 간단히 청소했다.

자리로 돌아오니 지혜는 놀란 눈으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결과 괜찮았어?"

"아니? 됐고, 이거나 봐. 김예림 무슨 일 있다는데."

아무리 실패했어도 이렇게 관심이 없어도 되나? 오랜 친구의 성실하지 못한 모습에 탄식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길드 내 익명 커뮤니티였는데, 최근 김예림이 보여준 불미스러운 모습에 대한 게시글이 대거 올라와 있었다.

[김예림 갑자기 왜 그럼?]

[느그 헌터가 맞습니다……]

[밑천 드러난거지 머 난 진즉 알아봤음ㅅㄱ]

[그저…… 지랄났다! 예림단!]

김예림을 향하는 악의적인 게시물들.

그 요지는 던전 공략 도중 갑작스러운 공황 증세를 보이고 이후 출동을 거부하며 잠적한 김예림의 태도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뭔데? 던전 공략 실패?"

"어…… 보니까 갑자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데리고 후퇴했다던데. 언론에는 그냥 적당히 실패했다고 올렸는데 안에서 소문이 쫙 퍼졌나 봐."

"근데 왜 나는 몰랐지?"

"니한테 이런 이야기 들려줄 놈이 나밖에 더 있냐?"

나는 조용히 수긍하면서 게시글들을 마저 살펴봤다.

몇몇 옹호하는 반응이 있기도 했지만 커뮤니티의 여론은 이미 김예림에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

게시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쾌한 기분이 치솟았다.

"얘들 익명이라고 막 던지네."

"김예림 헌터는 걔 좀 쿨한? 그런 이미지였으니까. 네가 이렇게 잠적했으면 그냥 게으른 새끼라고 욕했을걸?"

저년 말하는 싸가지 좀 봐.

그렇지만 최지혜의 말은 핵심을 꿰뚫는 데가 있었다.

김예림은 항상 과묵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력을 증명해왔다. 그런 모습은 시민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같은 헌터들에게는 가슴 깊은 곳에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계속 강한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한 번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신나게 물어뜯는 거지."

흔한 일이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공포심에 휘둘리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든 출동을 거부하는 것은 비겁함과 나약함의 징표라고 여겨졌다.

나는 대기실에서 김예림이 보여준 모습을 떠올렸다. 핼쑥하고 초조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어쩐지 심기가 불편하고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었다.

"야. 쿠폰 번호 좀 보내줘. 빵 사 먹게."

똑같이 좌천된 주제에 무슨 오지랖인가 싶지만 일단 밥이라도 조금 먹여 놓고 싶었다.

"미친 새끼야, 맡아 놨냐?"

"적립 같이 했잖아. 빨리 내놔."

"그때 니가 사준대매 개새­" 삐빅

갑자기 울리는 신호음에 대화가 끊겼다.

삐비빅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꺼내자 빨간 점이 점등하며 신호음이 울렸다.

초록색은 일반 공지, 주황색은 긴급 공지, 빨간색은…………

나는 즉시 장비를 챙기고 연구실 밖으로 달렸다.

"야! 이거!"

최지혜의 외침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던지길래 받아보니 차 키였다.

"지하 2층 C ­17!"

"고맙다!"

나는 키를 손에 꽉 쥔 채 계단을 내달리며 호출 내용을 확인했다.

시가지 내 괴수 침투, 3개월 만의 첫 출동이었다.

*

신호음이 울린다.

신호음이 다시 울린다.

신호음과 신호음 사이의 간격, 그 틈을 채우는 침묵이 견딜 수 없이 숨을 죄어온다.

아무도 없는 대기실, 김예림은 붉게 점등하는 호출기를 망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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