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시가지 사냥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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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즈에 드리우는 암운: '텃세 미투'는 사실인가?]
타이탄즈는 연이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번 분기 저지율 100%의 훌륭한 성적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러한 성과에는 최근 A급으로 승급한 김예림 헌터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승가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전망은 불투명하다.
사사건건 매번 싸우고…… 저희도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가 없거든요……(선배들) 눈치가 보이니까……
내부자의 제보에 따르면 김예림 헌터는 길드 내 다른 고위급 헌터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익명을 희망한 제보자는 '일부 선임 헌터들이 김예림 헌터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윤현수 헌터의 노골적인 견제로 인해 활동의 제약이 심한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취임 이후 10년간 여러 위기를 돌파해온 '벽사자' 박규태의 리더쉽이 과연 이번에도 발휘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김예림 헌터는 타이탄즈 입단 후 반년 만에 C급에서 A급으로 승급하여 타이탄즈의 새로운 유망주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집무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길드장은 새치가 섞인 머리카락을 벅벅 긁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현수야, 내가 널 왜 불렀겠냐."
"귀여운 조카 용돈이라도 주시려고?"
"거 지랄은."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타이탄즈의 수장이자 아버지의 오랜 친구, 박규태는 그 굵직한 손가락으로 신문의 헤드라인을 톡톡 두드렸다.
"너, 이거 보고도 아무 생각 안 드냐? 심각성이 안 느껴져?"
"심각성은 무슨, 전부 날조인 거 알잖아요."
게이트, 몬스터, 그리고 각성자.
이전까지의 상식을 부수면서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세상의 모습을 크게 바꿔 놓았다.
하지만 인간의 저력은 격류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니, 끝내 살아남은 인류는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새로운 상식을 쌓아 올렸다.
새로운 문명, 새로운 사회, 새로운 역할이 필요했고, 그중에는 초월적인 능력을 각성한 자들을 필요로 하는 장소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길드,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들의 조직이었다.
"던전 안에서 의견 교환이 조금 거칠어질 수 있다는 거 충분히 잘 아실 텐데 왜 이러세요?"
그리고 길드에서의 상식은 이랬다. 던전 안에서 생존은 자가 부담, 상급자 판단에 이의가 있다면 실력으로 설득한다.
나는 어디까지나 그 상식에 맞춰 행동한 것 뿐이다.
"그래, 그럴 수는 있지. 그런데 왜 그게 기사가 나와? 이게 왜 기자들 귀에 들어가냐고?"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나는 억울했다.
기자들이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내부자가 이런, 이런 음해를 퍼뜨린건데, 그 배신자 놈을 털어야지 대체 왜 나를 붙잡고 있어?
"억울하냐? 억울해? 난 임마, 내가 더 억울해 죽겠어."
"뭐가요?"
"야, 내가 니 아빠 얼굴봐서 얼마나 많이 봐줬는지 모르냐? 이번 건 빼놓고도 봐봐, 솔직히 다투기야 맨날 다퉜잖아. 그게 보고로 안 올라왔겠냐?"
그걸 그랬지.
솔직히 찔리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김예림이 막무가내로 굴 때마다 나서서 막는 것은 늘 내 역할이었으니까.
그녀가 아직 C급일 때…………
"이봐 신참! 자리 지켜! 정신 못 차리나!"
직후 김예림은 기습적으로 벽을 뚫고 나온 몬스터를 단숨에 쓰러트려 진형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그녀가 B급으로 오른지 얼마 안됐을 때에는…………
"단독 작전? 누구 마음대로? 지금 승급 했다고 뭐라도 된 것 같아? 어?"
직후 김예림은 홀로 세 곳의 플랜트를 파괴한 후 아무런 부상 없이 돌아와 합류했다.
A급으로 올랐을 때는 어땠더라…………
"이봐요. 예림 씨. 제정신이에요? 또 다른 코어가 숨겨져 있다니, 그걸 예림 씨가 도대체 어떻게 아는데? 책임질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김예림은 숨겨진 통로를 찾아내어 비밀 코어를 파괴하고 사상자 없이 던전 공략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 때 김예림 없었으면 꽤 많이 죽었겠지.'
생각해보니 김예림 덕을 많이 본 것 같기는 하다. 그녀가 명령을 거스를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덕분에 큰 활약을 보였으니 말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김예림은 뛰어난 헌터였다.
입단할 때만 해도 '잠재력 있는 신입'정도로 평가되던 김예림은 석 달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아끼지 않는 행동력,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는 듯한 판단력, 완숙한 베테랑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인정받고 길드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했다.
A급 심사 때에는 직접 대련하며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솔직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대련 내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었으니. 마치 나와 수백번은 겨뤄보며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기지? 지금은 그 때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약점이 없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
길드장의 말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아주 번쩍 들었다.
"그냥 못 넘어가면요?"
"김예림이 지금 국민 영웅이야. 국민 영웅. 그런데 이런 기사가 나오니까 다른 길드에서 얼마나 군침이 돌겠어? 괜히 헛바람 나오지 않게, 우리 쪽에서도 뭔가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야."
"설마 저 자르시게요? 저를요? 와, 저 진짜 서운합니다? 저희 사이에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억울함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분명 김예림에게는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듯한 통찰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은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다. 독보적이었지만 독단적이었고, 필연적으로 다른 구성원과 불협화음을 불러왔다.
공략팀의 베테랑으로서, 김예림의 독단적인 행동을 제제하고 조율할 의무를 다한 것 뿐인데 퇴출이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러는 게 어디 있긴 새끼야. 해야 되면 하는 거지."
정말 해고야?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고, 싸우고, 굴러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길드장의 태도는 단호했지만, 대신 그렇게 매정하지는 않았다.
"자르는 것까지는 솔직히 영 아닌 것 같고. 몇 달만 머리 식히고 와라. 그러고 조용히 복귀해. 알았어?"
"머리 식히라니요. 어디서요?"
*
그렇게 시가지 사냥팀으로 전근을 온 지 3개월이 되었다.
뭐하는 곳이냐면, 설명은 됐고 그냥 3개월 동안 한 번도 출동할 일이 없는 그런 곳이다.
창고방을 대충 뜯어 고친 듯한 대기실은 황량했다. 침대형 침상 하나, 관물대 하나, 테이블 하나가 구색을 맞추듯이 놓여져 있고 쓸데없이 채광이 좋은 창문에는 을씨년스러운 방범창이 붙어있었다.
처음에는 혹시 모른다고 제 나름 청결을 유지해보려 했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자 무기력함이 대기실을 지배했다. 책상과 관물대에 퀴즈집, 퍼즐, 철 지난 추리소설 같은 물건들이 쌓여갔다. 그냥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이라 동질감이 느껴진다.
제 기능을 다 하기는커녕 그 목적부터 불분명해져가는 대기실이었지만 있어야 할 물건은 있었다. 예를 들어 장비 손질 키트나 내선 전화 같은 거.
나는 수화기를 들어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장비 3팀 최지혜 팀장입니다."
"어. 난데."
"아…… 왜?"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래도 내가 군기를 덜 잡았나 보다.
"뭐긴, 연구 협조지. 있다가 2시쯤 간다?"
"필요 없다고…… 그만 오라고……"
"그래, 훈련실 들렀다가 넉넉잡아 4시쯤 갈게! 고맙다!"
찰칵,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전화선 너머 노성을 덮는다.
아, 기분 좋아.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정비가 끝난 의수를 느긋하게 왼팔에 끼워 넣었다. 부드럽게 결합부끼리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시가지 사냥팀은 나름대로 오랜 전통을 지닌 팀이었다. 과거 이변 사태 대처 메뉴얼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절, 도심으로 숨어든 괴물들을 처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헌터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팀이었다.
하지만 점점 대처법이 확립되고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그 필요성은 점점 퇴색되었다. 몬스터들이 게이트 저지선을 돌파하고 도심지에 숨어드는 참사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고, 점점 많은 길드들이 시가지 사냥팀을 해체하는 대신 던전 공략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는 거의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현재 구성원이 나 한 명이라는 사실이 현재의 사냥팀의 위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즉, 나는 좌천 당한 것이다.
그래서 내 일과는 장비를 깔끔히 손질하고, 훈련을 한 뒤, 연구실에서 시간을 떼우는 것으로 채워졌다.
의수의 동작 확인을 마친 후 훈련 장비와 호출기를 챙겨 일어서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시가지 사냥팀 윤현수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인사과 대리 김민수입니다."
놀랐다. 사실 지혜인 줄 알고 장난 삼아 예의 바르게 받은건데.
"저, 현수 씨가 담당이셨습니까?"
"네. 그렇죠."
"아…… 음. 네……"
무언가 곤란해 보이는 투였다. 인사과 직원이 쩔쩔매며 무언가 망설이는 사이 전화가 온 이유를 고민해보았다. 혹시 해고인가?
"음, 시가지 사냥팀으로 새로운 인원이 배속되었습니다. 아마 곧 도착할 텐데, ……음. 따스한 환대와 교육 부탁드리겠습니다."
왜 자꾸 음, 음 거려? 쩔쩔매는 듯한 말투에 무언가 불안함이 치솟았다. 이거 어디 이상한 폐급 굴려 넣는 모양인데?
그래도 신입은 신입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무리 의심쩍어도 텅 빈 대기실에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내가 기다려 줘야지.
그의 말대로 신입은 금방 도착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얼굴이 나타나자, 나는 인사과원이 곤혹스러워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네가 여기에 왜 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화제의 신인. 김예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