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톨비아는 소환할 수 있는 화신의 개수가 한정되어 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VIP 효과를 통해, 둘 정도의 화신을 이용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상위 랭커라 불리는 극소수의 유저들만이 셋 정도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다섯 이상의 화신을 다루는 정호의 경우는, 화신 도감 중 ‘보스 몬스터’라는 새로운 효과를 누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신의 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곧 화신들의 조합과 성능이 최우선시된다는 말이다.
강력한 화력을 지닌 주력 화신 하나를 토대로, 그것을 보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주력 화신의 강력한 화력.
‘높은 등급’의 화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헤카테는 주력 화신으로 이용할 수 없는데.’
헤카테는 분명 저평가를 받은 화신이다.
메카 헤카테라는 형태의, 새로운 소환수를 이용하는 방법은 충분한 화력을 뽐내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육 성 등급이라면 다 손에 쥐고 있는 정도니까.’
육 성 화신은 ‘신’ 등급이라 불리는 화신들이다.
애초에 ‘불멸자’라는 죽지 않는 효과를 누리고 있는 그 화신들은 오 성 등급의 화신과는 궤를 달리한다.
압도적으로 높은 스탯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위 던전을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다.
‘헤카테는 그 점에서부터 힘이 조금 떨어지지.’
헤카테는 그런 ‘신’ 등급에 불과하고, 그런 압도적인 능력치를 부여받지는 못했다.
소환수의 능력치가 상당한 편이었으나, 그뿐.
‘필사(必死) 스킬이 별로니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기 짝이 없는, 필사 스킬이 폭발적인 힘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주력 화신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정호는 아돌프와의 전투 끝에서 일어난 빛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게 여기서 터지네.”
빛이 사라지며 떠오르는 흐릿한 형상의 여신상이 하나.
헤카테의 얼굴을 똑 닮은 세 개의 여신상은 아돌프 히틀러의 몸을 중심으로 이를 감싸듯이 자리를 잡았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스킬의 한 종류 중 하나다.
[세 갈래의 길]
- 적 일 체에게 세 가지의 길을 제시한다.
경계의 여신이라고도 불리는 헤카테의 근간이 되는 스킬.
자세한 설명도 없는 모습은 필사 스킬임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즉사였던가?’
그 효과는 ‘즉사(卽死)’라는, 실로 믿기 어려운 힘.
화력 면에서는 주력 화신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하나, 그것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헤카테의 필사 스킬인 ‘세 갈래의 길’은 마음먹은 곳에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주력 화신으로도 손색이 없다.
다만,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화신들의 스킬과는 달리, 헤카테의 필사 스킬은 꽤나 제멋대로인 점이 있었다.
‘어디서 발동 조건을 만족한 거지?’
발동 조건을 필요로 하는 스킬들.
가장 간단한 발동 조건은 많은 화신이 가지고 있는 적의 공격을 막아야만 발동하는 ‘반격’ 스킬이다.
고작 적의 공격을 막는 것뿐이나, 그것만으로도 화신의 효율 자체가 떨어지는 마당이기에 발동 조건을 가진 화신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다만 헤카테의 경우에는 그런 발동 조건의 스킬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발동 조건의 트리거조차 주지 않는다.
적의 공격을 막는다거나.
적의 마법 시전 시에 사용 가능하다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 발동한다거나 하는.
그런 간단하고 직관적인 범위에서 머물지 않는다.
‘발동 조건 자체를 몰라.’
거대한 기계 병기, 메카 헤카테를 소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화신이 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발동하는 것인지도 알아내야 하는 판에.
‘게다가…….’
더욱 악랄한 것은 ‘적’마다 그 발동 조건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발동했다 하여, 그 조건을 다른 보스 몬스터에게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
실제로 헤카테를 주력으로 쓰던 유저조차도 이 필사 스킬의 발동 조건을 알 수 없었다고 단언할 정도니, 사실상 없는 스킬이나 다름없다.
“뭐, 발동했으면 됐지.”
하나,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정호는 헤카테를 주력 화신으로 이용할 생각 따위는 없었고.
네오 유토피아의 침공을 막아 낸다면 다시 볼 일도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우우웅-
두둥실 떠오르는 아돌프 히틀러의 몸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보스의 완전 무력화.
그사이에 공격을 가할 수 없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점이나 다름없었으나.
육 성 등급의, 무려 ‘신’에 해당하는 헤카테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고서 도달한 필사 스킬이지 않은가.
“즉사 확률은 33프로.”
세 갈래의 길이라는 스킬 이름처럼, 아돌프에게는 세 가지의 길이 주어졌을 터.
그중 하나는 확실한 죽음에 도달하는 명계로의 길. 삼분지 일이라는, 높은 확률로 즉사에 도달한다.
이마저도 확률 놀음을 하는 톨비아에 이가 갈릴 법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확률이다.
그도 그럴 게-
아돌프가 다른 길을 택한다 하더라도.
“어디 선택 잘해 보라고.”
모조리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 *
“이건 무엇이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아돌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빛과 함께 눈을 뜬 아돌프는 생전 처음 보는 장소에 와 있었다.
거대한 원탁처럼, 치솟아 오른 새하얀 대지 위에 세 갈래의 길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죽음인가?’
자신은 분명 의도치 않게 자폭 버튼을 눌렀을 터.
그렇기에 아돌프는 이 모든 것이 죽음 이후의 세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당신의 길을 선택하세요.
문뜩 여성의 목소리가 위에서 울려 퍼지자, 아돌프는 눈을 부릅떴다.
“뭣……?”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그 목소리는 아돌프의 적대심을 건들기에 충분했다.
‘네 녀석이구나……!’
자신의 행동은 스스로가 선택해서 움직이는 법이다.
한데, 네오 유토피아의 세계에는 그런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프로그래밍된 기계처럼 움직이는 녀석뿐이었다.
아돌프는 자신만은 다르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를 멋대로 죽인 것이 네 녀석이구나……!’
지금껏 의심은 있었다.
자신 또한, 네오 유토피아의 녀석들처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실제로 ‘꿈’이라 생각하는 과거의 기억에서, 자신은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하여 패퇴하고 죽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신하게 된 것은 마지막의 순간이다.
아돌프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 후퇴를 다짐했다.
결코 자폭과도 같은 멍청한 행동을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은 자폭의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 하나는 생명의 길.
- 또 하나는 죽음의 길.
- 또 다른 하나는 경계의 길.
그러니 저 목소리의 정체가 바로 자신을 이런 상황으로 밀어 넣은 범인일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어떤 인형이 될지 선택하라는 말이냐.’
그것은 아돌프만의 착각에 불과했으나, 이런 기괴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어림도 없다.”
털썩-
아돌프는 아예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선택하지 않겠다. 더 이상 네 녀석의 뜻대로는 움직이지 않겠어.”
더 이상의 인형 노릇은 지긋지긋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지옥이 아닌가.
물론 정말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있어 봐야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반드시 탈출한다!’
자신은 모든 세계의 정복이라는, 야망을 품고 있는 마당이다.
네오 유토피아를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나, 또 다른 세상의 존재는 그의 정복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고 싶으면, 너의 인형 노릇을 그만두게 해라.”
아돌프는 실로 뻔뻔하게도, 대뜸 그런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네 녀석도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가치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하나의 세계를 정복한 정복자.
또 다른 세계마저 침공할 정도의 힘과 군사력을 가진 자신이다.
그러니 녀석도 자신을 인형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를 이용할 필요도 없을 터.”
그러니 거래를 요청하는 것이다.
“나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다면, 네 녀석의 뜻대로 하겠다.”
모습조차 드러나지 않은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그것이 결단코 이루어지지 않을, 제3자에게 향하는 거래임도 모른 채 말이다.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 요청 사항을 수용합니다. 당신의 길을 선택하세요.
기묘하게도, 길게 뻗어 있던 세 갈래의 길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하얗기만 했던 세상에 물이 들었다.
- 하나는 과거의 길.
새빨간 색이 하나.
- 또 하나는 현재의 길.
- 또 다른 하나는 미래의 길.
“그래, 이렇게 해 주면 좀 좋나.”
아돌프는 미소를 내지었다.
“현재의 길은 무엇이지? 대답해라.”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하고는 곧장 요구 사항을 늘렸다.
꽤나 소시오패스적인 면이 있는 그는, 이 사태가 얼마나 기괴한 상황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의 주민을 인형으로 만들었다면, 그 존재는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는 이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 존재가 인형 중 하나의 요청을 들어줄 리가 만무할 터.
- 직접 확인하고 선택하겠습니까?
하물며, 선택지를 준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다.
“좋다. 바로 안내해.”
곧장 새빨갛게 물들었던 길 하나가 순식간에 줄어드는가 싶더니, 곧장 아돌프의 앞에 도달했다.
- 과거의 길을 확인합니다.
화아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빛,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광경.
그것을 확인한 아돌프는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고 있던 입가를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타악-
낡은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의자 하나와 책상이 하나.
- 으음…….
그곳에서의 자신, 아니 또 다른 아돌프 히틀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만년필을 휘적거리며 글을 적어 대고 있었다.
그 내용의 첫 줄은 ‘유서’.
한참을 휘갈기며 써 내려가던 또 다른 자신은 곧장 책상 위에 있던 병을 하나 부여잡고서 들이켠다.
털썩-
곧장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의 죽음.
“이,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
그 상황을 눈앞에서 바라본 아돌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자살을 하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 당신의 과거.
- 새빨간 진실.
- 과거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이어지는 말에 경악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군……! 이런 꼴을 보여 준다 하여 내가 믿을 것 같으냐.”
자신은 버젓이 살아 있고, 하나의 세계를 정복하기까지 한 마당이다.
그것을 저버리고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
하나, 아돌프는 기묘하게도.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저 상황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치 기억 속에서는 이미 바래 버린,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이 장면이 익숙하기 짝이 없다.
“흐, 흥……! 과거의 길은 되었다. 자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기에 아돌프는 ‘회피’를 택했다.
이 장면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다음이다! 다음……!”
이를 바득 갈며 다음을 외치는 아돌프의 얼굴에는 불안감만이 서려 있었다.
* * *
“…원래 이런가.”
정호는 한참 동안이나 스킬, 세 갈래의 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찌나 오래 기다렸는지, 두둥실 떠올랐던 아돌프의 신체는 이제는 여신상의 머리 부근까지 올라가 있는 마당이다.
“미안해.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네.”
그런 정호의 의문을 해결해 주는 것은 당연하게도, 스킬을 사용한 당사자인 ‘헤카테’의 몫이었다.
“저항이라니?”
“이왕이면 완벽하게 하고 싶거든. 문제는 없어.”
당최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리는 헤카테.
정호는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상관없지.’
무엇을 완벽하게 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아돌프는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세 갈래의 길에 들어간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보스 몬스터 도감에 얻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정호는 떠오르는 아쉬움에 입술을 혀로 핥았다.
지금까지의 침공에서는 보스 몬스터의 의지를 꺾어 두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은 던전이 있었다.
몇 번 죽였다고 하여,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다음 공략에서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존재하기도 했으나.
보스 몬스터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하다는 장점도 존재했다.
하나, 지금은 ‘역습’이라는 형태의 침공 방어.
네오 유토피아는 지금 이 순간 한 번뿐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육 성 등급의 화신을 얻는 게 먼저야.’
역습의 퀘스트 완료.
그 보상만이 지금은 최우선적이니까.
“끝났어.”
이내, 들려오는 헤카테의 말과 함께 천천히 아돌프의 신형이 공중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으음…….”
아돌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그것에 정호는 곧장 자신의 검을 꺼내었다.
“전투 준비.”
‘즉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길을 택했다는 것.
어떤 형태의 길을 택했는지는 몰라도, 최대한 약화되어 있을 것이 뻔했으나 정호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바로 끝내야지.’
이런 순간은 질질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
그리 확신한 정호가 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주인.”
헤카테가 그것을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털썩-
아돌프의 무릎이 바닥과 닿았다.
- 아돌프 히틀러☆☆☆☆☆가 수하가 되기를 원합니다.
-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음?”
의외의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