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사람들은 침공에 대비하여, 아스텔의 시스템을 부여받았다.
같은 출발점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불평등한 시작은 아니었을 터다.
적응을 하기 위한 시련이라는 형태의 보상도 주어졌으니 말이다.
그 말인즉, 누구나 침공에 대비하여 강해질 수 있는 여견이 있었다는 말이다.
[뒤처지는 유저들]
[다음 침공에 대비된 이는 고작 1,000명? 상위 랭커들에 기대는 시민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흘러갔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시련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침공이 진행이 되면 될수록.
유저들의 수준은 크게 벌어졌다.
더 이상 침공해 오는 던전에 도움을 줄 수 없을 정도란 말이다.
아니, 오히려 득보다 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이번 ‘역습’에서부터였다.
최상위의 던전부터, 하위 던전까지 모두 나와 있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나 다름없었으나.
“라이트닝 볼트!”
“파이어 엘레멘탈 부여!”
“배쉬!”
그 대신, 하위 던전이 열리게 되면서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던 유저들 또한 공략을 시작하게 되었다.
“케에에에엑!”
톨비아 내에서 하위 던전으로 취급 받는 고블린의 콜로니.
그곳에는 몬스터들의 신음 소리만이 퍼져 나갔다.
“생각보다 편한데요.”
“네. 코인도 꽤 쏠쏠하고, 이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죠?”
“공략에 있던 권장 레벨은 다 넘었으니까요.”
“난이도도 D 등급이라고 들었어요.”
대부분이 톨비아 유저들이 써 놓은 공략이기는 했으나.
그런 톨비아 유저들 또한 아스텔의 시스템을 부여받은 마당이지 않은가.
그들은 던전마다 등급과 권장 레벨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로 인해 안정성은 크게 늘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권장 레벨보다 높은 레벨의 인원들이 모여들었으니 말이다.
“이곳까지 오다니…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그들은 실로 손쉽게 던전을 공략하여, 보스 몬스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게 기무라 헤이타… 뭐였죠?”
“기무라 헤이타로요.”
고블린의 콜로니에서 보스 몬스터로 군림하는 것은 기무라 헤이타로.
제2차세계대전의 일본 제국 군인으로써 버마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이다.
“그런데 왜 고블린 모습이래요?”
“형태가 몬스터에 가까울수록, 낮은 등급의 던전이라고 하더라고요.”
기무라 헤이타로는 도조 히데키의 최측근이자, 삼간사우(三奸四愚) 중 하나다.
세 명의 얼간이와 네 명의 얼간이.
기무라 헤이타로는 사우(四愚) 중 하나로, 민간인 학살에 유능하고 전투에는 무능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로 인해 ‘도살자’라는 이명을 받게 된 케이스다.
화신으로서의 가치도, 보스 몬스터로서의 가치도, 실로 하위 던전에 어울리는 녀석이다.
실제로.
쉐에에에에엑-
“케에에엑-!”
녀석은 공격을 당할 때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상처를 입고 있을 뿐.
이미 공략이 완료된, 거기에 안정성을 생각해 높게 측정된 권장 레벨까지 넘긴 공격대를 막아설 힘 따위는 없었다.
털썩-
결국 나자빠지는 것은 보스 몬스터의 몫이다.
“생각보다 간단했네요.”
“D 등급보다는, C 등급으로 가도 좋을 것 같아요.”
“권장 레벨이 생각보다 높게 측정되었다는 말도 있으니까. 아슬아슬하지만 가능하지 않겠어요?”
공격대는 쓰러진 보스를 뒤로한 채, 다음 던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스믈스믈.
다만 그들은 아직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제아무리 레벨 업을 하고, 강해진 무력을 통해 찍어 누른다고 한들.
“가, 가증스러운 인간 놈들이……!”
“어?”
그들은 톨비아의 던전에 익숙지 않은 ‘뉴비’일 뿐이다.
“왜 아직 안 사라졌지?”
“얼른 쓰러뜨리고, C 등급으로 가자고요.”
“네.”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는 의미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톨비아에서 상위 던전이라면 반드시 존재하는 패턴.
다만, 하위 던전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
- 보스 몬스터, ‘기무라 헤이타로’가 광폭 모드에 접어듭니다.
광폭 모드 혹은 ‘발악 패턴’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처음 겪을 수밖에 없었다.
콰득-
“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의문.
“미, 미친……!”
“힐. 얼른 힐을!”
“꺄아아아악-!”
콰득-!
이어지는 것은 눈이 새빨갛게 변한 도살자의 유린이었다.
* * *
“제대로 해. 알겠어? 이 고모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버지하고는…….”
“뭐?”
“네, 넵! 고모!”
고모라고 하기에는 꽤나 거리가 먼 사이였으나.
헤카테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헤라클레스에게 자신의 호칭을 고모로 확정 지으며 웃음을 자아내었다.
다만, 정호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실리지 않았다.
‘이대로 잘 풀리면 발악 패턴까지 바로 갈 수는 있겠지만.’
보스 몬스터의 패턴에 ‘발악’이라는 형태의 패턴을 넣는 것은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다.
체력이 다하더라도, 일정한 기믹을 해내지 못하거나.
그 전에 미리 준비해 두지 않는 이상 무조건적으로 ‘전멸’하게 되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상상 이상으로 짜증 나는 패턴이고, 현실이라면 말을 할 것도 없이 ‘최고 위험도’를 가진 녀석이다.
‘특히나 아돌프라면.’
아돌프 히틀러의 ‘발악’ 패턴은 그중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편에 속했는데.
‘자폭이겠지.’
이판사판의 자폭이 바로 그 정체였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패턴인지는 몰라도, 미친놈일 게 분명해.’
정호는 이를 갈았다.
최상위 공격대 소속이었던 정호로서는 직접 경험해 보기도 했기에 그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거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는지.’
적을 쓰러뜨리고서, 환호하고 있는 공격대가 그저 단 한순간의 폭발로 절망으로 바뀐다.
극악의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콰드드득-
헤라클레스가 싱크로한 메카 헤카테가 거신병의 가슴팍에서 팽팽 돌아가고 있는, 에너지원을 움켜 쥐는 것을 확인한 정호는 눈을 흘겼다.
‘이대로 스킵되었으면 좋겠는데.’
거신병의 세 번째의 형태는 방어를 우선시하는, 장갑 특화 형태다.
아니, 더 이상 그것은 거신병이라 불릴 수도 없는 존재다.
거대한 구체 형태의 샌드백.
물론 그 자체만으로는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
‘장갑 특화인 형태로 자폭을 시전하면 막기 어려워지니까.’
애당초 최초의 목적을 달성했다.
지금의 정호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스피드 형태의 거신병의 전환을 멈추어 세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략을 토대로 거신병을 쓰러뜨릴 수는 있다.
다만.
‘녀석이 가진 에너지원은 아까우니까.’
지금까지 메카 헤카테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도시 한 개분의 마력인 100만 마력.
그것을 토대로 소환된 메카 헤카테는 화신들의 능력치를 크게 올릴 뿐만이 아니라, 완전 형태인 거신병을 상대로도 큰 성과를 올릴 만큼 강력한 힘을 보여 주었다.
‘그걸 500만.’
정확하게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메카 헤카테라는 형태를 고안한 공격대원이 추정하는 ‘거신병’의 핵융합로의 마력이다.
-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거신병은 굴러가지 않아요. 구할 수 있다면 무조건 저한테 팔아 주셔야 돼요. 아시겠죠?
톨비아를 즐길 무렵 들었던 공격대원의 말을 떠올린 정호는 미소를 지었다.
500만 마력의 메카 헤카테라면, 지금보다도 훨씬 높은 성능을 보여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
정호는 그 가능성을 ‘자폭’이라는 형태로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바람이 통한 것인지.
콰드드득- 콰득-
3번의 과업을 통해 2번의 각성 효과를 얻어 낸 헤라클레스는 실로 손쉽게 가슴팍의 장갑을 뜯어 내고 있었다.
‘됐다……!’
헤라클레스의 힘은 이미 500을 돌파했다.
싱크로로 인한 메카 헤카테의 스탯과 힘의 권능을 토대로 이미 2천에 가까운 수치에 도달한 마당이다.
별다른 능력도, 스킬도 없음에도 그저 힘만을 앞세운 단순무식한 방법이었으나.
- 노, 놓아라……!
안간힘을 쓰며 반항을 하는 아돌프의 공격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장갑을 부숴 냈다.
기이잉-
세차게 돌아가던, 녀석의 에너지원은 그대로 소멸되었고.
투웅-.
거신병의 해치가 열리며 아돌프의 절망 어린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단 한 번도, 나의 거신병은 쓰러지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서도.”
최종 형태에 도달한 거신병이 쓰러진 것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
아돌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억 속에도 없는 공략 방식일 터다.
“네 녀석은 누구냐. 누구냔 말이다!”
과거에 사로잡힌 망령이 정호를 향해 울부짖었다.
거기에 대한 정호의 답은 실로 간결하기 그지없었다.
“자폭은 할 건가?”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닌, 전혀 다른 뚱딴지같은 물음.
“아니, 할 수는 있는 건가?”
정호는 단 한 순간도, 아돌프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
* * *
아돌프 히틀러는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어째서 녀석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자신을 대하는 정호의 태도는 실로 일관적이었다.
공격을 가할 때도, 피해 낼 때도.
마치 자신의 행동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하듯, 정호는 시종일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 또한, 인형들과 같다는 말인가.’
아돌프 히틀러, 아니 이제는 스스로도 누구인지 모르게 된 히틀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미 틀렸다.’
최종 수단이자, 최강의 병기인 완전체의 거신병을 꺼내 들고서도 적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주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아군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들이 완전히 기울어진 이 형세를 뒤집어 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니, 도와줄 생각도 없어 보이는군.’
어느새 뚝- 하고 멈춰 버린 전쟁의 흐름 속에서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대결의 승패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야.’
히틀러는 허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세계 전체를 손에 넣은 독재자다.
스스로를 독재자라 부를 정도로 그 업적만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마당이다.
‘적어도, 이까짓 일로 나를 배신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으며, 자살을 명해도 그 자리에서 죽을 만큼 충성심이 높았다.
‘허상.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히틀러는 깨달았다.
자신의 기억과 꿈속의 기억 그리고 지금의 자신.
그 세 가지 모든 것이 신기루와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누군가에 의해 심긴 기억인 건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만이 진짜인지, 아니면 자신 또한 가짜에 불과한 것인지.
‘자폭, 자폭이라.’
꿈속에서의 자신은 마지막에 마지막 발버둥으로 ‘반드시’ 동귀어진을 시도했다.
정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자폭’도 바로 그것에 의거한 말일 터다.
‘내가 자폭… 아니, 자살을 한다고.’
흥.
아돌프는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자살’이라는 단어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인형’의 일이라면, 오히려 더더욱 사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니, 할 수는 있나?”
재차 이어지는 도발에도 히틀러는 고개를 내저었다.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군.”
타악-
히틀러는 비상 탈출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이런 때야 말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법이다.
전쟁에 패배하였다고 하여, 모든 것을 저버리고 죽음으로의 도망을 택하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재기를 노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그것이 설령 의미 없는, ‘인형’의 발버둥일지라도.
딸칵-
망설임 없이 누르는 버튼.
“하, 하하. 하하하.”
한데, 그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아돌프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결국, 결국 이렇게 된다는 말이냐.”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상 탈출 버튼’이었던 그것이 전혀 다른 버튼으로 변화해 있었으니까.
기이이이이이이이잉-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핵융합로가 들끓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달은 아돌프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이윽고-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화아아아악!
눈앞의 세상이 환하게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