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쿠우웅-
거신체가 휘두르는 손은 그 무게와 크기에 비례하여 강력하기 짝이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괜히 지금껏 클리어된 적이 없는 보스라고 할까.
한 번이라도 정통으로 얻어맞는다면, 그대로 비명횡사.
스친다 하더라도 치명상으로 이어질 일격들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쿠웅- 쿠웅- 쿠웅-
하나, 제아무리 강력한 일격이라고 한들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인 법이다.
- 어째서 맞지 않느냐. 어째서 알고 있느냐.
그 상황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돌프의 비명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게.
거신병은 그 크기와 무게로 인해 둔해 보이기는 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
거신병이 휘두르는 손의 크기를 생각해 본다면 미리 알고 있지 않고서야 어지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공격들이다.
쿠우웅-!
하지만 맞지 않는다.
눈앞에 선 기체는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니, 거신병의 움직임보다 느리다.
쿠웅-.
한데도 전혀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물론 그것만이라면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 상대는 그것으로도 벅차다는 듯, 이리저리 피해 내고만 있었으니까.
꾸웅-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듯, 공격이 끝난 직후 들어오는 반격.
거신병에 비하면 한참은 미치지 못할 작은 손으로 휘둘러지는 블레이드에.
기우뚱.
거신병의 몸이 흔들렸다.
피해는 적다.
거신병의 장갑은 고작 저런 블레이드에 뚫릴 만큼 약하지 않으니까.
‘말도 안 되는.’
하나, 공격이 들어맞았다는 점부터가 크게 잘못되었다.
아돌프의 생각에는 휘둘렀던 손에 이미 녀석이 붙잡혀 으스러졌어야 했으니까.
“역시 패턴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네.”
이어지는 말에 아돌프는 크게 분노했다.
‘내가, 내가, 인형들과 똑같다고 하는 것이냐.’
아돌프 히틀러는 꿈에서의 기억과 지금의 상황 속에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
네오 유토피아의 인간들은 스스로 생각을 지닌 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목적 따위는 없이, 일정한 패턴에 같은 행동. 인형이랑 다를 바가 없다.’
작금의 상황 또한 다를 바가 없다.
누가 보아도, 위급한 상황이나 다름없었으나 친위대라 불리는 녀석들은 자신의 출격을 막아섰다.
‘출격을 하더라도, 곧장 결합하지 않은 채 덤비는 꼴도.’
마치 그렇게 되는 걸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상황을 내버려 두고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다 전멸을 맞는 상황.
그것을 몇 번이고 꿈속에서 보았다.
심지어 반복되기까지 한다.
“나는 다르다.”
그러니, 아돌프는 직접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인형들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종 형태에 도달한 거신병은 보다 확실하고, 정확하게 적을 무찌를 힘이 있었으니까.
“나는… 다르단 말이다.”
자신은 독재자.
세계를 정복하고, 결국은 네오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이윽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딜 침략자.
한데, 그런 자신을 녀석은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아돌프 스스로 죽인 친위대처럼.
“인형이 아니란 말이다!”
쿠우우웅-!
기울어지는 거신병의 몸뚱어리 안에서, 아돌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 * *
아돌프 히틀러의 거신병이 가지는 공격 패턴은 결합된 친위대의 기체 개수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팔만 결합한 거신병이라면, 바닥을 쓰는 패턴을 사용한다든가 하는 방식 말이다.
다만, 그것은 완전히 신용하기 어려운 법이다.
‘확실하게, 히틀러는 게임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호는 녀석이 얼마나 다른 행동을 보여 줄지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돌프는 간간히 눈속임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여 주며 그 경계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다.
다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니네체르와 벨라미.’
정호는 이미 보스 몬스터로 활동하던 화신들을 소유하고 있는 마당이다.
- 제 의지로 움직인 것은 확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는 당시 주인님을 적대시할 생각도 없었으니까요.
니네체르는 정호와의 첫 만남에서 이미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육체를 멈추어 준 이를 향해 칼을 내미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실제로 니네체르는 차를 대접하겠다는 뚱딴지 같은 말을 내밀지 않았던가.
- 한데도, 저는 결국 주인님과 싸우게 되었지요. 당연한 방어 본능이기도 했지만…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언데드를 일으키는, 소위 말하는 패턴대로 이행할 뿐이었죠. 거기에 절망한 제가 곧장 항복을 한 것입니다.
결국 두 번째 만남에서 곧장 항복 선언을 한 니네체르다.
- 뭐, 저야 이미 의지가 꺾인 마당에 받아 주길 바랄 뿐이었죠.
벨라미는 꽤나 시무룩한 답을 내놓기는 했으나.
- 상황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만, 행동 범주 밖의 일을 할 수 없는 건 확실합니다.
마지막 말만큼은 확신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 특이점을 내보이더라도 한계가 있다.’
정호는 ‘전’ 보스들의 말에 따라 아돌프 히틀러를 철저하게 비(非)인격체, 즉 NPC 또는 보스 몬스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 나는 인형이 아니다.
크게 당황한 듯한 녀석의 절규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후웅- 후웅-
‘아래에서 퍼 올리기, 위에서 내려찍기.’
실제로 녀석은 인형과도 같이 지금까지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정호가 해야 할 일이란.
쿠우웅-
공격을 피해 내며, 가벼운 공격을 날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정호가 거신병을 상대로 노는 것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 웃기지 마라. 나를 놀리려는 것이냐? 동정하는 것이냐.
그 사실은 이미 아돌프 또한 알고 있는 듯했으나.
“…….”
정호는 그에 답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같은 일을 반복했다.
- 그따위 공격으로 뚫어 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콰아아앙-!
신경질적인 아돌프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뭐, 확실히.’
실제로 몸체가 휘청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에 비해, 거신병에는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반격을 가하는 시간 자체가 빠듯하다는 것도 있기는 했으나.
‘멋대로 다음 패턴으로 넘어가면 곤란하지.’
녀석의 행동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그것을 철저히 이용해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호는 일부러 힘 조절을 해, 녀석이 지금 이 상황을 유지하도록 하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변형 상태에서는 내가 상대하기 까다로우니까.’
지금 메카 헤카테가 거신병에 비해, 앞설 수 있는 것은 정호가 녀석의 패턴을 파악했다는 점도 있었으나.
직접적으로 피해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나 크기의 차이에 의해 이루어지는 속도 차 덕분이다.
‘이 상황에서 스피드 형태의 거신체는 악몽이지.’
거신병은 총 세 번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보스다.
첫 번째 형태가 파워 중심의, 압도적인 힘으로 무너뜨리는 타입이라면.
두 번째는 두터운 장갑을 벗어 던진, 속도를 우선하는 형태.
완전체인 거신병에게 간간이 반격을 하는 것도 벅찬 마당에 속도를 우선시한다면, 정호에게 있어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투웅- 투웅-
그렇기에 정호는 신중히 힘 조절을 해 가며 녀석을 후려치고 있었다.
콰아아앙-!
다만, 제아무리 완전체의 거신병이라 할지라도.
정호의 메카 헤카테는 어디까지나 ‘6성 등급’, 최고 등급의 화신인 헤카테가 만들어 낸 소환수다.
그것을 맞고서도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콰득-
힘 조절을 했다고는 하나, 결국은 그어지는 균열.
그와 동시에.
뚝-
정호가 몸을 우뚝 세우고는, 행동을 멈추었다.
피이이잉-
녀석의 가슴팍에 새겨진 동그란 구슬이 새파랗게 빛나며, 돌아가기 시작했으니까.
녀석이 변형하기 위한 아슬아슬한 체력에 도달했다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지금!”
쉐에에에엑-
정호는 지체할 것 없이 메카 헤카테의 신형을 그대로 거신병에게 밀어붙였다.
콰드득-
거신병의 장갑을 부숴 낸 블레이드가 크게 요동치며 틈새로 파고들었다.
“헤라클레스.”
부르짖는 것은 네오 유토피아에 접어들어,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헤라클레스의 존재다.
화아악-
빛이 뿜어져 나오며 등장하는 헤라클레스.
“싱크로-”
정호는 모습을 드러내는 헤라클레스를 향해 가타부타 설명을 하지 않고서, 곧장 싱크로를 진행했다.
콰드드득- 콰드드득-
그러자 지금까지 두들겨 왔던 장갑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메카 헤카테의 블레이드가 녀석의 장갑을 완전히 부숴 버리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뿐이 아니라.
- 마, 말도 안 된다.
아예 파고든 검이 녀석의 몸체를 일직선으로 그어 내고 있었다.
이윽고, 파앙-
아래로 주욱 그어지던 블레이드의 끝에 바닥이 닿았을 때.
- 마, 말도 안 되는……!
아돌프의 비명과 함께.
기우뚱-
무게중심이 무너진 거신병의 신체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 * *
분명 스피드 우선의, 변형 형태를 보여 주어야 할 거신병.
한데, 가슴팍부터 사타구니까지 완전히 갈라진 상태의 녀석이 그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우뚱- 쿠웅!
거신병은 재차 일어나려 하고 있었으나,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다리 한쪽으로 제대로 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놀랍군.’
정호는 솔직한 감상을 늘어놨다.
물론 지금껏 헤라클레스를 사용하지 않은 까닭은 녀석의 체력 안배를 위함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헤라클레스가 소환해 내지 못하는 순간에 있었던 탓이다.
‘과업의 효과가 좋긴 한 모양이야.’
12과업.
그것은 성장형의 화신인 헤라클레스만이 지니고 있는.
5성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6성 등급으로의 등급 업이 확정 지어진 능력이다.
‘꽤나 시간을 요구하기는 하니까.’
정호는 분명 많은 화신을 지니고 있었으나, 공격대가 아니라 솔로로 플레이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만큼 많은 화신을 소환하는 것이 필수불가결인 상황.
헤라클레스가 마냥 현시점에 도움이 크게 되고 있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 빈자리를 채울 화신이 마땅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네오 유토피아는 사전 작업이 많으니까…….’
정호는 이번 네오 유토피아 공략이야 말로, 헤라클레스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3번… 3번의 과업이나.’
[헤라클레스★★☆☆☆]
- 힘: 500 민첩: 200 체력: 300 지능: 180
총 12과업 중 3번의 과업을 해내고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이미 2번의 각성을 마친 상황이었다.
‘힘 외에는 떨어지던 스탯이 크게 올랐어.’
헤라클레스를 운용하기 힘들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가진 힘에 비해 한참은 떨어지는 체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300이라는 수치.
어지간한 5성 등급의 화신들조차 다가서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 위업!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렸습니다.
- 네메아의 사자탈☆☆☆☆을 장비합니다.
= 위업! 헤라클레스가 레르나의 독사, 히드라를 쓰러뜨렸습니다.
- 스킬: 만독불침을 습득합니다.
= 위업! 케리네이아의 암사슴을 생포하였습니다.
- 스탯: 체력이 100 상승합니다.
‘체력이 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만.’
제아무리 6성 등급에 도달할 수 있다고는 하나, 5성 등급에서도 크게 떨어지는 헤라클레스가 고평가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나, 나를 무시하지 마라.
정호가 헤라클레스의 상태를 살피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위이잉- 위잉-
아돌프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 형태 변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2번째는 실패일 거고.’
예상과는 다른 방향이기는 했으나, 이보다 더 좋은 오차가 없을 수 없다.
녀석은 두 번째 형태를 포기하고 마지막 형태로 변환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적이 변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마냥 기다려 주는 것은 멍청이가 하는 짓이다.
“헤라클레스.”
정호는 기꺼운 마음으로 헤라클레스를 불렀다.
지금의 헤라클레스라면, 혹시나 두 번째를 넘어 세 번째의 형태조차도 부숴 내고 아돌프를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으니까.
“…….”
“힘의 권능.”
곧장 부르짖는 것은, 새롭게 얻어 낸 패시브 스킬을 제외한다면 헤라클레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최강의 스킬인 힘의 권능이었으나.
“싫다.”
“…음?”
헤라클레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 말이지?”
“나는 과업을 통해 깨달았다. 신의 아들인 나에게는 맨몸이면 충분하다.”
정호는 녀석의 대답을 듣고서,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이런 미친 새끼가 뭐라고 하는 거야?’
잔다르크에 의해 교육은 확실하게 되어 있을 터다.
하지만 그 ‘신의 아들병’이 하필이면 과업이 끝난 직후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이 따위 소환체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이어지는 말은 더더욱 가관이다.
힘이 조금 생기더니, 용감해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이래서, 기피 대상이군.’
교육을 하더라도, 자신감이 차오르면 다시 오만해지는 녀석의 성격.
정말이지 공격대에서 기피할 만도 했다.
하지만 정호는 녀석의 반항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 하? 지금, 저 녀석이 뭐라고 하는 거야?
그도 그럴 게.
이 메카 헤카테를 만들어 낸 장본인, 헤카테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으니까.
- 야.
“어떤 녀석이 날 부르는 거지?”
헤라클레스가 짐짓, 의연한 말투로 헤카테에게 물음을 내던졌으나.
이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 너, 제우스의 아들이지?
“…….”
- 제우스, 그 녀석은 자식 교육도 안 하고 뭐 했대?
헤카테는 티탄족의 여신.
헤라클레스와는 머나먼 친척, 아니.
“아, 아아……!”
조상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