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어떤 게임이든 간에.
던전의 보스 몬스터란 제각기 다른 주요 패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림자 지하 성채의 니네체르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네 방향으로 찢어진 진짜를 찾아내는 것처럼.
아돌프 히틀러라는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최종 페이즈 직전에 나타나는 친위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공략의 열쇠다.
친위대는 모두 다섯.
각각의 친위대가 가진 기체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기체와 결합하여, 거신체를 만들어 낸다.
녀석들의 결합을 막아 내는 것이 바로 네오 유토피아의 공략이다.
‘평균적으로는 셋 정도를 쓰러뜨리는 게 정석인데…….’
다만 모든 기체를 쓰러뜨리는 것은 톨비아 유저들도 하지 않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게.
결합한 만큼, 보스가 강해진 만큼.
최종 페이즈를 쓰러뜨린 직후의 보상이 바로 이 합체된 기체의 수만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두 기체 정도만 부수려 했는데.’
정호는 그런 아돌프의 공략에 셋이 결합한 보스를 쓰러뜨리려 했다.
보다 더한 보상을 탐하면서도, 공략에는 문제없는 아슬아슬한 선이다.
‘그런데…….’
정호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의 형태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높이.
아파트 20층은 족히 넘어 보일 법한, 거신병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꿀꺽-
‘하나의 친위대를 쓰러뜨리는 게 최소 컷일 텐데.’
톨비아는 망한 게임이었으나, 꽤나 오랫동안 서비스를 유지한 게임이다.
그만큼 많은 유저가 갖은 방법으로 공략을 했고.
막대한 보상을 노리고서, 일부러 4 페이즈를 넘기려 했던 이들 또한 존재했다.
‘전부 실패했지.’
하나, 그것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눈앞에 서 있는 거신병은 단 한 번도 유저들의 앞에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꿀꺽.
정호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걸 혼자 하라고…….’
지금껏 정호는 톨비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공략해 왔다.
한데, 그런 톨비아에서조차 단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는 완전한 형태의 거신병을 상대한다는 것.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계획을 다시 세워야…….’
당연하게도 정호는 후퇴를 떠올렸으나.
쿠우웅.
아돌프의 거신병이 그 우악스러운 손을 내뻗어, 퇴로를 막아섰다.
“크아아아악!”
“가, 각하아!”
그 손이 너무 커다랬던 탓에, 적들마저 휘말리기는 했으나.
- 도망을 치려고? 그건 곤란하지.
아돌프는 그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정호를 향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완전한 우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망할…….’
앞으로도 향할 수 없고,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는 막다른 길.
‘멀린과 잔다르크, 아틸라까지.’
심지어는 필사 스킬마저도 세 개나 빠진 마당이다.
절망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아니, 아니지.’
다만, 정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서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필사 스킬이 남아 있었다고 한들, 아무런 영향도 없어.’
애당초 게임 내에서 20인으로 구성된 상위 공격대조차도 클리어 하지 못했던 마당이지 않은가.
그것을 혼자 도전한 이상, 필사 스킬 몇 개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방법이 있을 거야.’
정호는 공략 불가능한 보스가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분명히 최종 형태에 도달한 거신병 또한 공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드드드드드득-
하지만 그런 간절한 믿음과는 달리.
“으아아아악!”
“커억!”
거신병은 그 거대한 손으로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무참히 도륙 내며 정호를 감싸려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사 성 등급의 화신에 필적한다는 기계 병기들이 단 한순간에 폐기물이 되어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나 다름없다.
드드드드드득-
그 파쇄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드득-
정호는 이를 갈며, 몸을 움직였다.
당장에는 저 무자비할 정도로 강력한 거신병을 쓰러뜨릴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다.
파아아아앙-
바닥을 박차고, 하늘 위로 솟구치는 메카 헤카테.
콰아아아앙-!
덕분에 거신병은 애꿎은 박수만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정호는 공중에서 곧장 몸을 움직였다.
‘최종 형태라면, 모든 패턴을 사용할 거니까.’
바닥을 쓸어 마주치는 것은 두 팔이 붙어 있는, 2개의 지휘관이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거신병의 패턴이다.
다만.
공중으로 피하더라도, 곧장 깍지를 끼고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일격이 이어진다.
후우우웅-
그것을 주의한 정호가 곧장 메카 헤카테의 신형을 뒤로 빼내었으나.
“…음?”
정호는 의문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타박.
공중에 떠오른 자신이 다시 땅에 발을 디뎠음에도 불구하고.
- 쥐새끼 같은 녀석이로군.
거신병에서 들려오는 아돌프 히틀러의 목소리에는 분하다는 음성만이 가득하다.
“그래, 정상적일 리가 없지.”
정호는 그 음성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래라면 지휘관 다섯과 아돌프 히틀러.
총 여섯이 움직여야 할 거신병이다.
기체는 온전히 남아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아돌프 혼자서 저 거대한 기체를 완벽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럼…….”
쓰읍-
입맛을 다시는 정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만, 그것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거신병과의 전투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종 페이즈의 난이도만큼 보상을 준다면…….’
단 한 번도 공략된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난이도를 지닌, 완전한 형태의 거신병을 쓰러뜨린다면 어떻겠는가.
-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녀석의 손이 다시금 뻗어 온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일말의 두려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파아아앙-!
“그래, 절대 놓치지 마라.”
오히려 잡으러 오는 그 손을 향해 뛰어드는 정호의 얼굴에는 광기가 떠올라 있었다.
* * *
제아무리 거신병의 움직임이 제한된다고는 하지만, 거대한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은 여전했다.
콰아앙-!
쾅-!
그저 손을 내뻗는 것뿐이건만, 절로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압도적인 파괴력.
휘이이익-
그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는 정호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공격할 수도 없네.’
반격을 가할 틈도 없이 아무렇게나 쏟아 내는 손의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다.
- 하! 겨우 이 정도로 이 나를 죽이려 들었나?
그런 정호의 상황을 알아차린 듯, 아돌프의 말에는 여유로움마저 묻어나고 있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정호는 그에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언젠가 빈틈이 나온다.’
완전 형태의 거신병이 공략되지 못한 까닭은 그 자체만으로도 단단한 장갑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모든 패턴에 ‘틈’이 없기 때문이다.
반격을 가할 새도 없이 발과 손, 심지어는 가슴팍에서의 미사일까지.
완전한 형태의 녀석은 공격대에게 공격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우뚝-
하지만 지금, 거신병의 공격에는 ‘틈’이 있었다.
쉴 새 없이 패턴을 난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반격을 가할 기회는 몇 번이고 나왔다.
‘내려찍고 한 번, 내뻗고 한 번.’
한데, 그것을 확인하면서도 정호는 단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훌쩍 뒤로 물러나, 녀석이 태세를 갖출 시간을 주기까지 했다.
- 크하하, 뭘 두려워하는 것이냐.
그런 실수를 놓칠 아돌프가 아니다.
녀석은 큰 웃음과 함께 재차 공격을 가해 왔다.
쿵- 쿵-
그것은 한참이나 지속되어, 완전한 열세임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 만족도: 87%
실제로, 보스전에 접어들고 난 뒤.
퀘스트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있는 추세였다.
‘흥.’
하나, 정호의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내려찍고, 한 번 더. 여기서 스톱.’
이미 확인한 패턴을 두 번, 세 번씩 확인하며 몸을 피해 내고 있을 뿐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마당에, 그 이상함을 아돌프가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
- 흥, 지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군.
실제로 거신병의 공략법 중에는 녀석의 진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공략 또한 존재했다.
- 웃기지도 않은 수작질이로군.
하지만 아돌프의 말마따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석적인 공략, 즉 쓰러뜨린 친위대의 수가 많을 때나 이루어지는 일이다.
완전체에 도달한 거신병의 에너지원은 도합 500만 마력의 핵융합로.
저 거대한 기체를 무한히 움직이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원이다.
‘뭐, 그렇겠지.’
다만 그것은 정호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은 실로 간단하기 그지없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트라이에서 쓸데없이 나대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없지.’
던전의 모든 공략은 개발자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선발대라고 불리는, 최상위권 유저들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바로 공략법이다.
랭커의 위치에 있던 정호 또한, 그런 선발대의 위치에 있던 유저.
새로운 던전의 트라이라면 수도 없이 해 본 위치였다.
- 겁쟁이로군.
그렇기에 저런 도발의 의도가 다분한 아돌프의 말에도 전혀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겁쟁이가 트라이의 신이지.’
이곳은 게임이 아니다.
그렇기에 목숨을 소중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그것은 게임이라 할지라도 다를 것이 없다.
패턴을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 최소한의 시간으로 공략하는 열쇠니까.
지이이이잉-
‘언제 나오나 했다.’
보이지도 않는 거신병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를 확인한 정호는 눈을 흘겼다.
손과 발로만 이루어지던 공격 패턴에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윽고-
콰드드드드득-
바닥을 쓸어 내리는 녀석의 두 손.
처음으로 되돌아간 거신병의 공격에 정호는 몸을 띄웠다.
콰아아아앙-!
- 쥐새끼 같은 녀석.
귀를 어지럽히는 박수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아돌프의 목소리.
거기에는 정호가 반격을 가할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공중에 떠오른 정호의 메카 헤카테는 이쯤에서 반드시 뒤로 도망갔을 테니까.
쉬이이익-
한데, 이상한 일이다.
공중으로 떠올랐던 정호의 신형이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네가 자세를 풀고, 움직일 때까지 정확히 3초가 걸려. 그리고 오른손을 내뻗겠지.”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정호가 입을 열었다.
- 웃기지도 않을 이야기를 하고 있군. 지금까지 그런 의미도 없는 시간을 재고 있었나?
아돌프는 그런 정호를 비웃었다.
분명 거신병은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있었다.
본래라면 절대로 틈이 생기지 않아야 할 시간을 녀석에게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 네가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정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했을 것이 분명했다.
꿈에서 보았던 자신 또한, 눈에 훤히 보이는 공격들을 내보이고 있었으니까.
- 네가 생각하는 아돌프 히틀러는 가짜라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다.
정호가 몇 번이고 재확인했을 터인, 공격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다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까.
쉐에에에에엑-
아돌프는 오른손을 내뻗음과 동시에, 정호의 시야 사각에서 왼손을 끌어 올렸다.
‘여기서,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녀석의 몸을 움켜쥔다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공격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멍청한 녀석.’
그런 마음과 함께 ‘콰악’ 움켜쥐는 왼손.
그 안에는 정호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파스스스스-
분명 박살이 났을 것이 분명한 메카 헤카테 대신, 모래만이 가득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 무, 무슨…….
당황한 아돌프는 곧장 시야에서 잃어버린 정호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딜 보나?”
하지만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자신의 정면에 나타나는 정호.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그 손에 쥐인 블레이드에는 이미 공격 준비를 마친 듯, 새파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른손을 내뻗고, 시야 밖에서의 공격. 똑같네.”
- 있을 수 없는 일!
아돌프는 마치 자신을 몇 가지의 패턴을 반복하는 프로그램처럼 대하는 정호의 모습에 분개했다.
곧장 누르는 버튼은 눈앞의 정호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미사일의 발사 버튼이었으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가슴에서 미사일 폭격.”
뚝-
아돌프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정호의 목소리와 함께.
“결국, 공격 패턴은 여기까지가 끝인 모양이네.”
쉐에에에에엑-!
거대한 블레이드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