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36화 (137/144)

136화

네오 유토피아의 공략법은 어릴 적 즐겼던 땅따먹기 게임과 다를 바가 없다.

총 4구역으로 이루어진 구역에서 아군을 만들어, 구역을 점차 덮어 가는 식의 전쟁.

그렇기에 피로도는 둘째로 치고, 까다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민들의 만족도를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적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제약까지 존재한다.

정호는 분명 그 공략법을 충실히 이행하기는 했다.

C 구역에 존재하는 롬멜을 포섭함으로써, 레지스탕스라는 전력을 얻었고.

의외의 수확이기는 했으나, B 구역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인 ‘클라우스’ 또한 손에 넣지 않았던가.

‘모자라지.’

다만 그 모든 행동은 최소한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본래라면, D 구역의 상인들부터 포섭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와아아아아아!””

적들과 적들이 서로 엉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이 고개를 돌려 아군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

‘만족도가 90에 이르렀을 때, 강제로 진행되는 이벤트.’

이는 제아무리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도 피할 수 없는, 버그다.

본래 만족도 90이란, ‘완전히 승리’를 확신했을 때에야 비로소 달성하는 조건.

D 구역, C 구역, B 구역. 하물며, A 구역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수치다.

‘설정상으로는, 현 총통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속으로만 품고 있다고 했던가?’

이유가 어떻게 되었던.

본래라면 승리를 확신했을 때에야 비로소 돌아서는 녀석들이다.

하나, 거대한 격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독한 총통을 몰아내라!”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퍼엉-! 펑!

그들은 정호의 충실한 개가 되어, 코앞의 적들과 마주하고 있다.

- 주인, 어떻게 된 거야?

어느새 탱커 녀석을 묵사발 내고 돌아온 잔다르크가 알 수 없다는 듯, 물음을 내던지고 있었다.

“…글세.”

거기에 정호는 답하지 않고서.

‘자, 여기까지는 됐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의도한 대로 흘러갔기에 당연히 생겨야 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페이즈 3에 진입했으니, 서로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과도 같은 장면이 펼쳐질 것이 분명했으나.

‘이제, 어떻게 나올 거지?’

정호는 그림자 지하 성채와 크라켄의 역습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톨비아 때와는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네오 유토피아는 분명 자신의 의도대로 공략되어 가고 있기는 했으나.

그중 단 하나.

보스 몬스터만큼은 결단코, 자신의 생각처럼 따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구웅-

아니나 다를까.

그런 정호의 생각처럼.

구우우우웅-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페이즈 4.’

그것은 보스 몬스터,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몸을 움직이는 페이즈 4에 진입했다는 것과 같다.

이제 막 페이즈 3에 들어섰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예상을 크게 벗어난 일이나 다름없었으나.

“생각보다 너무 경계했을지도 모르겠어.”

정호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의 대응 방식은.

‘서두르다 전멸한 공격대가 하나둘이어야지.’

이미 톨비아 유저들 사이에서는 주의해야 할 패턴으로 자리매김을 한 이후였으니까.

“예전의 기억이라도 있나 보지?”

정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패턴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

그 말인즉.

“그렇다면, 넌 최악의 선택을 한 거야.”

그 파훼법 또한 나와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 * *

아군과 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전장.

그들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위기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유능한 지휘관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고서야 제정신으로 있을 수도 없으리라.

“…….”

그런 전장의 한가운데.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정신력이 아닐 수 없는 순간이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침착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돌프가 명장이어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불세출의 천재였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분명 포기할 이유가 없는 아군들이 등을 돌린다라고… 이전과 같군.’

그저, 이미 이 상황을 한 번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완전히 꿈과 같은 상황이야.’

사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꿈’이라는 것에 그리 큰 믿음이 없었다.

잠자리마다 떠오르는 기억들은 자신을 괴롭히고 있기는 했으나.

꿈이라는 형태는 ‘죽음’ 외에는 흐릿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불안감만은 어쩌지 못해, 총공격을 가하기는 했으나 그조차도 꿈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은 이렇게 흘러간다는 거지.’

마치 이렇게 되는 것이 확정되어 있다고 하는 것처럼.

그 과정은 전혀 달랐으나, 결과적으로 아군은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

“흐흐흐, 흐흐흐하하하.”

그것을 깨달았을 때.

지금까지의 조급함은 어디로 갔냐는 듯, 아돌프 히틀러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기억대로 흘러간다면.’

자신이 어떤 대응을 하든 간에 기억대로 흘러간다면, 그 해결책이란 실로 간단하기 그지없다.

꿈에서의 자신은 패배로 점철된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승리를 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나가지.”

그 대부분의 승리가 바로 스스로 전장에 뛰어들어, 적들을 쓸어버리는 일이었다.

적들은 마치 자신이 지금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크게 당황하여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안 됩니다, 각하!”

“지금은 아군과 적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곧장 반발이 이어지기는 했으나, 아돌프는 그런 이들의 의견을 싸그리 무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슈페어 장관, 병기는?”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시험 운행도 하지 않은 실정이라.”

“상관없다. 가져와라.”

“하지만 위험합니다! 아직 중요한 결함이……!”

“가져오라고 했다.”

“…예. 각하.”

군수 장관인 슈페어의 만류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묘하군.’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 것인가.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오직 자신만이 이 앞에 도사리는 위기를 알고 있다.

슈페어가 위험하다고 하는, ‘병기’의 결함 또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지 뻔히 알고 있다.

“어차피 적들의 군세는 겨우 4백!”

“이 혼란만 진정된다면 각하께서 나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일까.

자신을 만류하는 측근들의 조언들은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생각해 보면 늘 그랬지.’

본래부터 의심이 많은 성격인 아돌프에게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은 독재자다.

‘독재’를 부정하는 독재자가 있을지언정, 아돌프는 자신이 독재자란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독재자란 최고 권력을 지닌 자.

모든 일을 단독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위치란 말이다.

‘나의 행동을 항시 제약하는 녀석들.’

한데도, 지금 이 상황처럼.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누군가에 의해 결국에는 가로막혀 왔다.

아니, 의도되어진 것처럼 움직여졌다.

‘침공은 어떻지? 나의 의지는 있었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돌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하, 하하하하……! 그랬군, 그랬어. 그래서 항상……!”

마치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것처럼, 아돌프가 허탈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드드드득-

꽉 다물린 입에서 섬뜩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에 화들짝 놀라며, 다가오는 측근들을 향해.

“아무것도 아니네, 아무것도 아니야.”

아돌프 히틀러는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측근들을 향해.

타아앙- 타앙- 타앙-!

일말의 자비도 없이, 총알 세례를 쏟아부었다.

“커억.”

“컵……!”

“허억. 이, 이게……!”

측근들로 가득했던, 회의장의 내부가 시체만이 가득한 지옥도로 변했다.

“아… 아아.”

유일한 생존자인 슈페어는 아무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아돌프가 살려 준 이유가 단순히 자신만을 총애해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뭐 하는가, 슈페어 장관. 아니, 이젠 부총장인가? 뭐 상관없겠지. 얼른 안내하게.”

이 참상을 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거는 아돌프의 말마따나.

“예, 예……! 각하!”

그저 자신의 일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었으니까.

* * *

- 네 녀석인가?

정호는 곧장 내달려 도달한 장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페이즈 4라고 표현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네오 유토피아가 기나긴 공략 시간을 통해 보스 몬스터에 당도해야 했기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페이즈 4란, ‘아돌프 히틀러’와의 전투.

즉, 보스 몬스터와의 조우를 의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보스치고 작은 기체.’

다만, 모습을 드러낸 아돌프 히틀러는 상당히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는데.

거대한 기체를 가지고 있는 정호의 메카 헤카테의 무릎에도 오지 못할 정도.

심지어는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양산형의 기체들보다도 작은 기체를 타고 있었다.

‘거기에 당한 녀석들이 초반에는 꽤 있었지.’

다만, 정호는 그런 아돌프의 기체 크기에 방심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소형화된 만큼, 고도의 기술이 들어갔단 거니까.’

작은 몸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화력을 지닌 녀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조그마하군.”

하나,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정호는 녀석을 향해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본래의 녀석이라면 넘어올 터.’

보스 몬스터인 아돌프가 실로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탓에 내던진 말이었다.

- 작다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한데, 기묘한 일이었다.

본래라면 당장에 길길이 화를 내며, 달려들었어야 할 아돌프가 작은 기체로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로운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파아아아앙-!

정호는 곧장 아돌프와의 거리를 벌렸다.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4페이즈라면, 녀석 주위로 5개의 기체는 더 나타날 터.’

아돌프 히틀러와의 전투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점은 저 작은 기체에 실린 강력한 화력뿐만이 아니다.

친위대라 불리는 이들.

그것들과의 전투가 ‘페이즈 4’의 정체였으나.

기이하게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 무엇을 그리도 찾나.

정호가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아돌프는 능청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 요아힘, 라인하르트, 하인리히, 카를, 에리히……. 혹시 찾는 것이 이 녀석들인가?

“…….”

정호는 이어지는 아돌프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을 할 필요가 없었다.

녀석이 말하는 이름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인물들이었으니까.

-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어차피 그들은 오지 못할 거거든. 내가 죽였으니까.

“…음?”

정호는 아돌프의 이러한 기이한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꿈을 꾼 적 있는가? 기억할 리가 없는, 과거의 기억을.

“…없군.”

이내, 이어지는 말에서 정호는 자신의 예상처럼 아돌프 히틀러가 톨비아 시절을 떠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알고 있다면 이 행동은 더욱 기이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죽였으면 안 되었을 터.’

‘페이즈 4’에서 얼마나 많은 수의 ‘친위대’를 죽이느냐에 따라서 최종 페이즈에 접어들 때의 난이도가 결정되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데,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죽였다’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스스로 목을 죄는 일이나 다름없다.

- 어째서 덤벼 오지 않나? 자네가 걱정하는 친위대들은 내가 직접 쓰러뜨렸다고 하지 않았나?

한데, 그런 상황과는 반대로.

아돌프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고수한 채, 여전히 조그마한 기체를 탄 채 손가락을 까딱이는 여유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있다.’

정호는 그런 태도에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며, 고민했다.

‘페이즈 4에서 최종 페이즈로 넘어갈 때 가장 중요한 건, 보스 몬스터인 아돌프를 공격하지 말 것.’

페이즈 4에서 중요한 것은 ‘친위대’의 기체를 망가뜨리는 데에 있었다.

‘아돌프가 궁지에 빠지면, 곧장 최종 페이즈에 진입하여 친위대의 기체가 모두 저 작은 기체와 함께 합체하니… 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정호는 곧장 뒷걸음치던 발을 멈추고는, 블레이드를 꺼내어 곧장 출력을 높였다.

“이런 망할 놈이……!”

파아아아아앙-!

바닥을 박차는 메카 헤카테의 속도는 정호의 다급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재빨랐으나.

- 아돌프 히틀러는 독재자다.

쿠구우우우우웅-

이미 아돌프 히틀러의 작은 기체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흙먼지 구름은 주변을 아득하게 메웠다.

그런 흙먼지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돌프의 목소리는 점점 위로 솟구쳤다.

- 실패를 하는 것도, 성공을 하는 것도, 승리를 하는 것도, 패배를 하는 것도.

후우우우웅-

이윽고, 그 먼지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을 때.

정호의 ‘메카 헤카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산과 같은 기체 위에서 아돌프가 외쳤다.

- 모두 내가 결정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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