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거의 모든 던전은 단순히 중심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공략이 완료된다.
중심이란 보스 몬스터.
던전의 중추이며, 근간이 되는 녀석이 없어서야, 던전이 유지될 수 없는 법이니까.
하나, 그렇다고 단순히 보스만을 쓰러뜨릴 수는 없는 법이다.
보스 몬스터는 마지막에 있기에 더욱 빛이 나는 법이고, 갖은 함정과 몬스터들을 뚫고 난 뒤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다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고등급의 어쌔신 클래스를 이용한 암살, 지형지물을 이용해 단숨에 도착하는 방법과도 같이.
찾으려 한다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보스 런.’
유저들 사이에서는 ‘보스 런’이라 부르는 형태의 공략, 아니 꼼수가 게임인 이상 없을 수는 없는 법.
이는 게임사의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 아픈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톨비아는 상당히 악독한 과금 게임이기도 했으나.
그만큼 상위의 유저에게 돌아가는 재화의 양은 상당했으니까.
보스 런을 통해 특정 던전을 빠른 속도로, 반복적으로 도는 것은 게임 내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네오 유토피아는 그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골치란 말이지.’
그것을 가장 처음 막아 세운 것이 바로 이 상위 던전, ‘네오 유토피아’란 것이 문제다.
‘세계 수준의 던전.’
네오 유토피아는 ‘나치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 때의 미래를 세계관으로 삼고 있다.
거기에는 보스 몬스터의 존재가 필수 불가결 하기는 했으나.
이미 만들어진 세계라면.
‘아돌프 히틀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관계가 없는 법이다.
또 다른 독재자가 보스의 형태를 취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니까.
[Q. 쿠데타]
- 아돌프 히틀러의 독재에 시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를 막고, 네오 유토피아의 시민들을 구원하십시오.
- 조건: 아돌프 히틀러의 처치.
전투 직후 떠오르는 메인 퀘스트의 존재는 분명 ‘보스’를 쓰러뜨리면 되는 것으로 나와 있었으나.
- 보상: 시민들의 만족도에 따라 차등 지급.
- 만족도: 5%
이 보상에 걸린 탭만큼은 톨비아 시스템을 따르는 유저에게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법이다.
정호에게 있어서는 최우선 순위에 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걸 보고도 5%? 정말이지, 까다롭게도 구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운석들의 세례.
그 공세는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수천에 달하는 기계 보병대를 박살 내었다.
“이, 이게… 고작 단 한 기로 이루어 낸 힘이라니.”
“노, 놀라워.”
시민들과 레지스탕스들은 분명 그 사실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뭐… 무리도 아닌가.”
다만, 정호는 그 짜디짠 결과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 소환수인 ‘메카 헤카테’로 강화된 멀린의 필사 스킬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게 뭐야…….”
“우리가 이긴 것 아니었냐고…….”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지평선 끝에서 떠오르는 수없이 많은 그림자.
후우우우우웅-
철컥- 철컥- 철컥-
땅과 하늘 가리지 않고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거대한 기계 병기들.
그것들은 조금 전의 화력을 보고도 의지가 꺾이기에 충분했으니까.
‘이래서야 성대하게 시작한 보람도 없군.’
본래의 의도는 당연하게도 아군의 사기와 퀘스트의 만족도를 노린 것이다.
광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천벌과도 같은 힘은 인간으로서는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게 만들 테니까.
하나, 예상을 아득하게 넘기는 적들의 수가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건, 나로서도 예상하지 못했군.”
정호의 작전을 알고 있던 롬멜조차도 고개를 내젓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정말이지…….’
정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적들은 이제 더 이상 밀집 대형을 이루지 않고서, 일정한 거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래서야 광역 스킬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저만한 수를 제대로 통솔하고 있다는 것은 적 지휘관도 네임드급이라는 것과 동일한 말.
그야말로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롬멜 원수님!”
“무슨 일인가?”
그런 와중에 정호의 일행이 존재하는, D 구역에 들려오는 낭보가 하나.
“증원! 증원입니다!”
“드디어 왔는가!”
그토록 기다리던, 지원군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수는?”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었으나, 정호는 침착하게 물음을 내던졌다.
증원이 있다는 것은 어차피 기정사실이다.
겨우 탈취한 수십 대의 기계 병기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 그게……!”
“얼른 말을 하지 않고 뭘 하나! 한시가 바쁜 마당이다!”
한데, 그 질문에 답하는 병사의 얼굴에는 그리 좋은 낯빛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기계 보병 사백 기. 그중에서 대공 사격이 가능한 병기는 스물… 입니다.”
사백의 증원.
그토록 레지스탕스를 모으고, 백장미단을 끌어모으고도 고작해야 ‘400’.
“분명 증원은 2천 이상이었을 터다! 아니, 그것도 최소한의 증원이었을 터!”
롬멜은 곧장 역정을 내었다.
적의 수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군의 수는 아득하게 모자라지 않은가.
역정을 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그게… 아무래도 직전에 마음을 바꾼 이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군수에 넣어 둔 스파이들이 몇인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죄도 없는 병사를 나무라는 롬멜.
“뭐, 우리 쪽에만 스파이를 쓴다는 이야기는 없을 테니까. 중립까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 거지.”
하나, 정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것을 감안한 2천이란 말이다! 이래서야 싸움이 되지도 않아. 수만과 오백. 이 차이는 결코 줄일 수 없네. 자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개인의 힘으로는 무리란 말일세.”
롬멜의 말은 정론이었다.
압도적인 수의 차이는 그 자체만으로 전술이 되고, 전법이 되는 법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씨익-
한데,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호의 입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400이면 많이도 모였군. 클라우스가 꽤 힘을 쓴 모양이야.’
애당초 정호는 2천이라는 병력이 모이리라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승률 0프로에 가까운 자살 행위에 몸을 담는 녀석들이 멍청한 거지.’
보통의 공대가 이 시점에서 100명의 아군을 얻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기쁘기 그지없는 ‘오차’나 다름없다.
“후퇴하도록 하지. 이대로는 개죽음밖에…….”
“클라우스에게 그대로 진격하라고 전달해.”
“…응?”
롬멜은 고개를 기울이고서, 정호를 바라보았다.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
그에 정호는 재차 답했다.
“진격하라고 해.”
“예… 예……!”
떠나가는 무전병을 벙찐 얼굴로 보낸 롬멜이 정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 자네의 일이니 생각하는 것이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번 쿠데타의 총대장은 정호의 몫.
그것은 이미 확정된 사항이니,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어떤 수단이라 할지라도 고작 400으로 저 수와 붙게 하는 것은 자살행위일세.”
다만, 정호의 명령은 정말이지 비상식적인 일이나 다름없다.
“설령 클라우스라 할지라도 따르지 않을걸세.”
정상적인 지휘관이라면, 이런 의미도 없는 명령에 따를 리가 없다.
정론으로 타파하려 했던 롬멜이었으나.
그런 우려와 달리.
““와아아아아아아.””
기잉- 쿵. 기잉- 쿵.
거대한 벽을 향해 내달리는 사백의 기동대에는 한 치의 의심조차 없다.
롬멜의 얼굴에는 경악만이 가득해 있었다.
퍼어엉- 퍼엉- 퍼엉- 퍼엉-
고작해야 사백밖에 되지 않는 기계 보병에 쏟아지는 폭우와도 같은 포탄 세례.
그것을 맞고서 살아남을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터다.
“사막의 여우라는 이명이 울겠군, 롬멜.”
한데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정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완전히 미쳤군! 사람을 잘못 봤어!’
롬멜 또한, 꽤나 무리한 작전을 요구하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리를 넘어서 그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계란이라도 되면 다행이다.
이래서야 고기 방패도 되지 않는다.
“잔다르크. 싱크로.”
정호에게서 일갈이 튀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 * *
“버러지 같은 녀석들!”
아돌프 히틀러는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아주 멋대로 해 주겠다, 이거지.’
빠득-
이를 가는 아돌프의 얼굴에는 굴욕에 의한 분노가 가득했다.
밖과 안이 동시에 터져 나가는 난리 통은 지금껏 겪었던 그 어떤 비상 사태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실제로, 대응이 늦는 바람에 침공에 대비해 축적하고 있던 ‘수천’이라는 병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총공격이다. 그 외엔 있을 수 없어!”
“하, 하지만 총통 각하! 적들은 고작해야 수십 기에 불과합니다.”
“고작 한 기에 수천을 잃어버리고도 잘도 지껄이는군.”
타앙-
그런 예민함 탓일까.
꽤나 과한 대응에 만류하는 이들의 머리를 날리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개중에는 중요 인사도 섞여 있었기에, 스스로도 과한 처사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나.
‘그래. 이게 전쟁이었지.’
그에 아돌프는 한 점 후회가 없었다.
‘쓸모없는 녀석은 쳐 낸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야.’
전쟁이 사라진 세계.
평화가 너무 지속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이 무뎌졌다.
정호가 살아 있다는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었으면, 결코 그것에 안심을 해서는 안 되었다.
“반란 분자들 사이에 증원! 클라우스 대령… 아니, 클라우스입니다! 그 수는 사백! 모두 기계 보병입니다!”
“곧장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견제 사격 명령을!”
평소의 아돌프였다면.
고작 400기 정도의 병기 정도는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을 터다.
직접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전장의 지휘관들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무엇을 숨기고 있지?’
아돌프는 지금까지 당하기만 해 왔다.
거기에 고작 한 기에 수천이라는, 천문한적인 금액의 군수 물자를 잃어버린 마당이다.
‘얼핏 보아서는 자살 특공대 정도지만, 고작 저것으로 줄 수 있는 피해는 경미할 터.’
그러니 한없이 의심한다. 녀석이 그리 행동한 의미를 찾는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파고들고 만다.
“총공격. 모든 화력을 집중해! 녀석들을 다가오지 못하도록 해!”
그런 의심병이 내놓은 결론은 ‘총공격’.
400기라는, 얼마 되지 않는 병력에게 내놓는 모든 화력을 집중한 총포격.
펑- 퍼엉- 퍼엉-
피우우웅-
아직 해도 지지 않았을지언데,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폭죽 소리는 멈추질 않는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던, 결코 이루어질 리는 없을 거다!’
아돌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쏟아지는 폭죽에 터져 나갈 장관을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답기 그지없는 포물선을 그리는 포탄들은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정확히 떨어졌다.
퍼어어어엉-! 퍼어엉-!
퍼어엉-! 펑!
D 구역답다고 할까.
잿빛의 흙구름이 피어올라, 시야를 완전히 어지럽힌다.
“체크메이트다.”
아돌프는 승리를 직감했다.
증원조차 없어진 녀석을 기다리는 것은 수만의 병기가 쏘아 올리는 포탄에 의해 같은 운명을 따르는 것일 터.
“크, 크흐흐흐하하!”
이토록 시원한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던가.
절로 나오는 웃음소리에는 광기가 서려, 순수함마저 비칠 정도다.
다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휘이이이이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는 잿빛 구름.
그와 함께 떠오르는 것은.
“…저게 대체 무엇이냐.”
아돌프의 인생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돔 형태를 지니고 있는 샛노란 방어막.
그 위를 누군가가 날개로 보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역정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중심에서 400기의 기계 보병이 단 하나의 상처도 입지 않은 채, 굳건히 버티고 있었으니까.
* * *
‘너라면 덥석 물 거라고 생각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진 보스 몬스터다.
그런 녀석이 내외 할 것 없이 궁지에 빠졌다.
멀린의 ‘메테오 스톰’에 큰 피해를 입기까지 했다.
적진을 향해 내달리는 400기의 미끼를 녀석이 물지 않을 리가 없다.
‘녀석도 상당히 빠듯한 실정일 터.’
아돌프 히틀러는 모든 ‘병기’를 꺼내어 총공격을 가해 왔다.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서, 아예 짓밟겠다는 심산이었겠으나.
그 모든 병기가 쉬지 않고 탄을 쏘아 올린다면, 재장전까지 완전히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것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필요하기는 했다.
바로 그 모든 공세를 받아 내고서 버텨 줄 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잔다르크.’
그 열쇠가 되는 것이 잔다르크의 필사 스킬이다.
‘생크로생티티.’
신성불가침(sacrosanctity).
일시적으로 단 하나의 아군에게 일시적인 ‘무적’ 효과를 부여하는.
톨비아의 화신 중에서도 몇 가지고 있지 않은 최상위 스킬.
그것을 ‘메카 헤카테’를 통해 강화하여 광역기로 펼쳐 낸다.
‘나 혼자 받아 낼 수도 있지만.’
굳이 메카 헤카테를 통해 강화하지 않아도 되는 스킬이기도 했다.
아마도 아돌프는 자신 혼자서 돌격하더라도 총공격을 가했을 테니까.
하지만 정호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만족도라는 건, 주관적인 거니까.’
기계가 발전한, 독재자만이 우상시되는 세상.
그 속에서 피어나는 거대한 천사의 형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생존.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함.
- 만족도가 30%를 넘어섰습니다. 보상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 만족도가 50%를 넘어섰습니다. 보상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 만족도가 70%를 넘어섰습니다. 보상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