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화아아아악-
정호가 클라우스를 받아들이자마자,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던 보관실 내부가 환해졌다.
“어… 어어?”
“대부님?”
아이들은 갑작스레 빛이 나기 시작하는 클라우스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정호라 하여 다를 것은 없었다.
드득, 드드득.
마치 육체가 재조립이라도 되는 양.
클라우스의 뼈가 삐그덕대며, 기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나, 그 직후의 변화를 바라본 정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긴 했어.’
오 성 등급이란, 인간으로서는 정점에 해당하는 위치.
그런 화신들이 노인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들도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탯 중 지능에 특화된, ‘캐스터’ 계열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개중에도 멀린처럼, 아예 나이를 먹지 않은 모습이 대다수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딜 보아도 캐스터 계열은 아닌 클라우스가 노인의 모습으로 있을 이유는 없었다.
화아아악.
빛이 점차 줄어들자.
클라우스는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서 삼십 대의 청년 모습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음!”
한쪽 눈은 여전히 희게 바래 있기는 했으나.
자신의 육체에 일어난 변화를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을 클라우스는 신기한 듯, 손발을 휘휘 돌렸다.
“…화신이라.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네.”
몸을 점검하는 한편,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것인지.
클라우스는 정호를 향해 고개를 푸욱 숙였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이를 주인으로 받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말수가 적은 충직한 스타일의 화신.
오 성 등급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성격이다.
다만.
“그런데, 나로 괜찮겠나?”
클라우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내보이며, 정호를 향해 말을 걸었다.
“자네… 아니, 주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군.”
“충분해.”
그에 정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답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 힘 : 250 민첩 : 230 체력 : 190 지능 : 240
스탯을 확인한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걱정할 만도 하지.’
클라우스의 육각형을 그리는 스탯은 아주 만족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소환된 상태, 즉 ‘도감’ 효과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모자란 스탯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분명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는 독일의 마지막 양심이라 불리며, 그를 주체로 한 영화도 제작되기는 했으나.
가장 중요한 업적 면인, 암살에는 결국 실패한 마당.
5성 등급의 화신으로 평가받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아슬아슬하지.’
스탯상으로도 오 성 등급에 턱걸이로 걸치고 있는.
최상위에 해당하는 사 성 등급의 화신이라면 충분히 맞붙을 수 있을 정도.
‘뭐, 당연한 거니까.’
하나, 정호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화신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그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편이고.
‘당장 녀석에게 기대하는 건 무력이 아니니까.’
원하는 것은 네오 유토피아에서의 그의 입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를 향해 칼을 내보였다는,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다.
“대, 대부님이……!”
“젊어지셨어!”
그를 따르는 에델바이스 해적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가지.”
정호는 지체할 것 없이 곧장 탈출을 하기로 결정했다.
뜻하지 않은 이득도 챙긴 마당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목적이 있어 온 것이 아니었는가?”
클라우스의 말마따나.
정호에게는 이곳에 온 목적이 따로 있기는 했다.
“요제프 멩겔레라…….”
“그 녀석은 죽여야만 해요!”
“악마 같은 녀석!”
얼마나 시달렸는지, 소년들은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대면서도 분노를 표출하기는 했으나.
씨익-
“상관없어.”
정호는 한 차례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그저 갈 길을 재촉하듯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어째서요.”
“왜요!”
그에 따지듯 정호를 향해 소년들이 달려들기는 했으나.
“물러서라. 괜찮다.”
클라우스가 소년들을 다독이자, 정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지었다.
자신의 의도를 알고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어차피 녀석은 제 목을 조인 셈이니까.’
멩겔레가 클라우스를 살렸다면, 철저하게 숨겼어야만 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멩겔레는 ‘배신자’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의심 많은 아돌프가 멩겔레를 총애한다고는 하나, 혈연조차 아닌 그에게 자비를 베풀 가능성은 없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클라우스가 정호에게 속삭였다.
“선전용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인가.”
유능한 지휘관이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클라우스는 정호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싫으면 다른 방법도 있다.”
“아군의 수는 늘리고, 적은 제 살을 파먹도록 하는 효과적인 전술. 거절할 이유 따위가 없네. 오히려 조금 더 험하게 굴려도 좋네.”
대답 또한 시원하기 짝이 없다.
‘스탯만 아니었으면, 주력 화신이었을 텐데.’
아쉬움을 삼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정호.
치이이익-
그런 그때,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험체 보관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꽈악-!
정호는 주먹을 불끈 쥐어, 클라우스에게 정지 명령을 내린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접근하는 데에는 암살자 클래스의 화신조차 필요 없을 정도다.
이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의 배후를 잡으려 하던 그때.
“이, 있는가.”
익숙한 목소리가 정호의 귓가를 때렸다.
‘…데미코프?’
데미코프라면, 알디니와 함께 떠난 미치광이 중 하나.
멩겔레와 함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데, 그런 그가 갑작스레 이곳에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지.”
“히, 히익……!”
쿠당-!
갑작스레 정호가 옆에서 나타나자, 데미코프는 화들짝 놀라며 나자빠졌다.
“지, 진짜였군. 네가 여기 있을 줄이야……!”
“길게 말할 시간은 없다. 용건만 말해.”
정호는 일부러 칼을 들이미는 시늉을 하며, 데미코프를 위협했다.
“그, 그만하게. 아직은 약속이 있지 않은가.”
“용건은?”
“그, 그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전에 만난 데미코프답지 않게, 꽤나 위축된 모습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바쁘다.”
정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말꼬리를 흐리는 녀석이 의심이 드는 마당이 아닌가.
“아, 알겠네. 말하겠네.”
그런 정호의 낌새를 알아차린 것인지, 데미코프는 침을 한 차례 삼키는가 싶더니.
“도와주게.”
갑작스레 넙죽- 엎드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는 못 살겠네. 차라리 자네의 밑에 있으면 이런 수모도 겪지 않지 않겠나? 약속은 됐고, 제발 나를 거두어 주게.”
[블라디미르 폐트로비치 데미코프☆☆☆☆가 당신의 화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정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이가, 스스로 몸을 굽혀 들어오다니.
“음…….”
화신은 다다익선.
클라우스를 얻을 때에도 떠올렸던 그것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 받아들여 주는 건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환한 얼굴의 데미코프가 정호를 향해 애절한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거절하지.”
이어지는 정호의 대답은 매몰차기 짝이 없다.
“왜, 왜……! 어째서인가……!”
“약속이니까.”
털썩-
딱 떨어지는 단답에 망연자실한 데미코프가 주저앉고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대로는 못 하네. 그 미친놈의 실험실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말일세! 나약한 인간들의 장기만 있는데, 그걸로 무얼 하겠는가!”
상당히 망가진 모습.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고.”
다만, 정호가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툭툭-
녀석의 어깨를 두 차례 두들기고서, 갈 길을 떠나는 정호.
“으, 으으… 악마 같은 녀석!”
악담이 쏟아졌지만, 정호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입맛을 다실 뿐.
‘어차피 해결될 일이니까.’
녀석은 아직 제대로 된 키메라를 손에 쥐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태로 녀석을 받아들여 봤자, 지금까지 기다린 보람이 없지 않은가.
어차피 ‘멩겔레’가 사라진다면, 그 실세를 쥘 녀석은 데미코프와 알디니일 터.
‘조금 더 싫어해야지.’
녀석에게서 얻어 낼 키메라는 그런 증오에서부터 탄생할 것이니까.
* * *
폭탄이라는 녀석은 위험한 병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정성이 없는 녀석이 아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지만 않는다면, 제멋대로 터지지는 않는다.
터지지 않는 폭탄이란, 얼핏 보기에는 그저 자그마한 공.
주변에 그런 공들이 잔뜩 있더라도, 그것이 폭탄이라고 알아차리기란 어려운 법이다.
사각- 사각-
“…이상하군.”
아돌프는 기묘한 느낌에 한창 휘갈기던 펜을 놓고서, 턱을 붙잡았다.
평상시와 같은 오후.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다가오는 침공의 날에 대비하는 일과.
분명 그뿐일진대.
‘너무 조용해.’
조용하다는 것은 평화를 상징하는 것과도 같은 말일진대도.
아돌프의 미간은 전혀 펴지질 않았다.
‘인간이 죽었다고.’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고 빼앗았던, 유저들의 존재.
그런 유저들 중 하나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아돌프의 신경은 상당히 사나워져 있었다.
‘롬멜이 나를 따르겠다고 했고.’
그런 유저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골치 아프게 여기고 있던 롬멜이다.
의심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보급대대에서는…….’
보급대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유저’의 사망은 확실해 보였다.
롬멜의 추가 병력 요청도 있었고, 그것을 보급대대가 이어받았다는 전달도 받았다.
‘녀석을 보았다는 소식도 없다.’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고는 하나, 정호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는 아돌프이지 않은가.
하지만 계획상의 어떤 장소에도, 인간을 보았다는 소식 따위는 없었다.
정말이지 걱정해야 할 일도, 걸리는 것 따위도 없다.
어떤 불협화음조차 들려오지 않는 평화로움.
‘그게 더 수상하단 말이지.’
하지만 그 평화가 아돌프의 신경을 자극했다.
마치 맞지 않는 퍼즐에 일부러 끼워 맞춘 듯한.
기묘하기 짝이 없는 어색함.
‘마치… 전쟁을 일으키기 전의 나처럼.’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돌프는 눈을 부릅떴다.
타악- 핑그르르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아돌프는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파울라! 파울라는 어디 있나!”
파울라 히틀러.
자신의 혈육이자, 배신자였을지도 모르는 여동생.
그녀를 황급히 찾는 아돌프였으나.
- 지크 하일! 조금 전에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잠깐 나간다고 했습니다.
전달병의 잔뜩 긴장한 목소리가 아돌프의 귀를 때릴 뿐이었다.
“이런 젠장!”
그제서야 아돌프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년을 당장 찾아!”
콰앙-!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아돌프.
“잘못 생각했어……!”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또 다른 세계의 인간들, 그러니까 ‘유저’들은 항시 자신을 여러 방면에서 공격했다.
단 한 번이라도 단순한 무력으로 밀어붙이는 법이 없었다.
항시 자신을 옥죄고, 살을 갉아먹는.
아차 싶은 순간에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드는 것들이다.
‘아직, 아직은 안 늦었을 터.’
유저, ‘정호’의 계획은 아직 멀었다.
그의 계획 중 몇 개가 거짓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치기까지 수없이 많은 난관이 분명 존재했다.
그중에는 ‘멩겔레’라는 자신의 수의사를 처치할 계획도 있었고.
‘멩겔레는 오늘 아침에 연락을 받았으니까…….’
그런 그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알아채는 것이 늦기는 했으나,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닐 터.
따르르릉- 달칵.
“파울라는 찾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리는 전화를 곧장 받아 든 아돌프.
다만 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소식은 아돌프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려 주었다.
- 크, 큰일 났습니다! C 구역, 제8 정찰 부대에서의 연락! 적습! 적습이라고 합니다. 상대는 여우. 그 롬멜입니다, 각하!
“…뭐, 뭐라!”
따르르릉-
- D 구역에서 적습, 백장미단입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적습의 신호는, 단순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당장……! 당장 그 새끼들을 족쳐!”
당황한 아돌프가 곧장 출전 명령을 내리기는 했으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 …해, 해킹입니다. 전 구역에 누군가의 방송이!
그것은 따로 소식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치지지직-
자신의 텔레비전에도 같은 방송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 반갑네, 아돌프. 오랜만이군.
아돌프가 절대 잊을 리 없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쿠우우웅-!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