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유저가 멩겔레의 실험체 보관실에 들어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네오 유토피아라는 곳은 나라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던전. 적들과 만나면 싸우는 게 당연시되는 장소다.
심지어 멩겔레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네임드 몬스터’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조금 전 정호만 하더라도, 코앞에 있던 멩겔레를 간단히 죽여 버릴 수 있었으니까.
설사 패배한들, 유저들은 공략에 실패할 뿐 실험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일반적인 유저들은 멩겔레의 실험체 보관실에 어떤 녀석들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 바보야? 이런 쥐밖에 없는 곳에서 할아버지가 어떻게 버티겠어. 차디찬 바닥에서 삼 일도 못 버틸걸.”
소년의 시치미는 참 그럴 듯했다.
도대체 시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꽤나 후덥지근한 바깥 온도와는 달리.
‘방부 대책이라도 되나 보지.’
마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를 막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먹을 것도 삼 일에 한 번이라고. 할아버지가 우리들 사이에서 먹을 걸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만, 처음 그럴 듯했던 소년의 말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거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마 혈기왕성한 우리가 할아버지에게 먹을 걸 바치면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너 외에 다른 녀석들도 있나 보군.”
“…어? 그건……!”
소년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조심스러워하는 것치고는 꽤나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정보를 토해 냈다.
“바보야. 그렇게 말하면.”
“그럼 네가 하던가. 씨.”
아이들의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정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대로 대화를 이어 나가 봐야 진행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데리고 와.”
“뭘 알고 있다는 거야? 넌 우리 얼굴도 모르면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만, 정호는 이미 톨비아에서 녀석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마당에, 실험체 보관실이라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 있는 까닭은 아돌프 히틀러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해적(Edelweiss Pirates).
나치 독일에 반항한 청소년 집단이었다.
“뭐?”
“어떻게?”
녀석들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자, 정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려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가지.”
쉐엑- 철컹.
감옥과도 같이 촘촘하게 세워진 쇠창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 버린 정호가 걸음을 옮겼다.
* * *
나치 독일 체제에 불만을 품고 저항한 청소년 조직으로는, 에델바이스 해적과 스윙 키드가 있다.
스윙 키드의 경우에는 그저 미국의 재즈를 좋아하던 청소년이었고, 실상 나치를 거부하거나 투쟁한 집단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에델바이스 해적의 경우에는 완전히 반체제주의적인 청소년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설립 초창기에는 그리 눈에 보이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으나.
후에는 과격해져, 탈영병이나 노예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거나.
아예 무기고를 털어 나치들을 습격하기까지 했다.
“너, 너 도대체 뭐야. 그걸 어떻게 부순 거야……!”
쇠창살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떠올라 있었다.
다만, 정호는 전혀 다른 감상을 흘렸다.
‘쯧.’
눈앞에 있는 것은 소년들이었으나, 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네오 유토피아에 시민들처럼 의수와 의족을 달고는 있었으나, 그 크기와 형태가 어설프기 그지없다.
아예 손의 형태는 어디로 갔는지, 가위로 팔을 대신한 녀석도 있었다.
‘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용한 셈이군.’
애당초 기계로 된 의수, 의족으로 인간의 신체 부위를 대체한다는 것이 쉬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현대에서도 완벽한 대체가 안 되는 마당인데, 그것이 제아무리 독일의 승리로 이어진 세계라 할지라도 쉬이 뚝딱 튀어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수없이 많은 인체 실험으로 이루어진 일일 터다.
슬금슬금.
실제로, 정호에게 자신들의 본모습이 보이자 숨기라도 하듯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어디 있지?”
하나, 정호는 녀석들의 생김새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소년들의 모습이 문어면 어떻고, 괴물이면 어떻는가.
다른 던전에서는 몬스터와도 협상을 해야 하는 입장이 정호다.
“…저, 절대 못 알려 줘!”
그나마 소년들 중, 제일 처음 정호에게 말을 건 소년이 당당하게 나섰다.
아마도 에델바이스 해적의 리더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
정호는 더 이상, 소년에게 닦달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찰캉-!
자신의 쇠창살을 자른 것처럼 검을 한 차례 크게 휘둘러, 소년과 자신 사이의 벽을 허물었을 뿐이다.
위협하는 의도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으, 으으……! 저, 절대 못 넘겨!”
소년의 얼굴에는 정호를 향한 두려움이 가득했으나, 그럼에도 자리를 비켜서지는 않았다.
뚜벅.
하나 정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검을 든 채 잘려진 쇠창살 너머로 발걸음을 한 차례 옮겼다.
“어, 엄마..!”
“흐윽, 흐윽……!”
그 모습이 마치 자신들을 죽이려는 모양새로 보였던 탓일까.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저, 절대로……!”
뚜벅.
두 걸음째.
“…거기까지 하지. 자네가 찾는 것이 나인가?”
결국 참다 못한 목소리가 실험체 보관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 들려오던 앳된 소년들의 목소리와는 다른, 중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하, 하지만 대부!”
“괜찮다. 전쟁통을 구르다 보면, 살의가 없는 사람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니까.”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한쪽 안구의 색이 완전히 바래 새하얀 빛을 내고 있는 중년의 사내.
한데, 그 외형에 비해 새하얗게 질린 머리칼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알려 주는 듯 했다.
“쇠창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르는 것을 보면, 잡혀온 것은 아니겠고… 나를 찾아왔다는 건, 나를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데. 내 말이 맞나?”
“맞다.”
“그건 의외로군. 이미 나는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을 터인데…….”
중년의 노인.
실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의 사내는 자신의 흰 눈알을 굴리며, 정호를 바라보았다.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지워지지 않은 듯했다.
그 의심은 실로 타당했다.
실제로 저 노인이 살아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아돌프에 의해 ‘멩겔레’가 처형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사건이었으니까.
“슈타우펜베르크.”
“정말 알고 있었군.”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히틀러 암살 사건의 주동자였다.
* *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라 하면, 나치 독일의 마지막 양심이라고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암살을 직접 시도한 장본인이자, 공개적으로 히틀러에게 저항한 유일한 군인.
하지만 히틀러의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슈타우펜베르크는 곧장 처형당했다.
아니.
처형당해, 죽었어야만 했다.
‘그걸 멩겔레가 되살렸다는 거지.’
무슨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멩겔레는 슈타우펜베르크를 되살려,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알겠다만, 이제는 내게 힘이 없네.”
하나 슈타우펜베르크, 즉 클라우스는 약한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육체가 기계로 대체되어졌음에도, 그의 얼굴에 생긴 자글자글한 주름은 노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럴 거면, 혀라도 물지 그랬나?”
정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었다.
“야! 대부님께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만두게. 제임스.”
정호의 말에 소년이 곧장 반발하기는 했으나, 클라우스가 손을 내뻗어 그것을 제지했다.
“당연히 나도 그렇게 하려 했네. 이미 실패로 돌아간 마당에, 살아 봐야 뭘 하겠는가.”
“소년들을 봤기 때문인가? 자신의 육체는 틀렸으니, 녀석들을 이용한다면. 혹시라도 다시 한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소린 절대로 하지 말게.”
꽈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년, 제임스를 만류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클라우스의 얼굴이 분노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런 클라우스의 얼굴을 보면서도 정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 그럼 설마 소년들이 불쌍해서 자기가 보호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저 제임스란 소년이 하는 말은 못 들었나? ‘먹을 걸 바치면서’ 버티고 있다고.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죽는다면, 저 소년들이 아사할 걱정은 없겠군.”
“으, 으으……!”
신랄한 정호의 말에 클라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분노를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반박할 수가 없다.
실제로 멩겔레가 아이들을 실험체로써 데려갈 때에도 그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소년들을 보듬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야……! 너, 거기까지 해.”
“대부님께 그게 무슨 말이야.”
겁에 질려 있던 소년들도, 정호의 무례한 말에는 참을 수 없었는지 서서히 좁혀 왔다.
“이젠 보호해야 할 대상이 보호해 주기까지 하는군. 정말이지 쓸모가 없어.”
클라우스는 어찌나 분했는지 입술을 물어,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다만.
“…맞는 말일세.”
결국 정호의 말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대부님!”
“대부님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소년들이 곧장 반발하며, 클라우스에게 달라붙기는 했으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의 말이 백 번 옳네. 부족한 식량을 나 같은 성인이 축내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큰 부담이겠지.”
클라우스는 목을 쭈욱 내밀었다.
“자네가 찾아온 이유를 착각했었군.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추잡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나에게 끝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어.”
그렇다면, 끝내 주게.
그리 말을 덧붙이는 클라우스.
“아, 안 돼. 대부님!”
“대부님을 살려 줘요! 제발요!”
소년들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실험체 보관실 내부에 울려 퍼진다.
한데, 정호는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정호는 일부러 클라우스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있었다.
공략에 실패한 공격대 중 하나의 유저가 우연히 발견한 멩겔레의 보관실.
이미 공략 실패한 마당에 될 대로 되어라 식으로 떠들어 댄 소리.
그것이 녀석을 ‘쟁취’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되었으니까.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히든 피스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초 발견 유저’에게나 제공되는 일이다.
그것을 실패한다고 하여, 다른 유저가 낚아챌 수도 없는 마당.
쯧.
혀를 한 차례 차낸 정호가 클라우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도, 죽고 싶나?”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 몹쓸 몸으로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을 따름이네.”
“그럼 하면 되지 않나?”
정호가 손을 내밀었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다시 한번, 늑대소굴(Wolfschanze)을 만들어라.”
이어지는 정호의 말은, 클라우스에게 있어서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Es lebe unser heiliges Deutschland!(우리 성스러운 독일이여 영원하라!)”
“아…… 아아……!”
클라우스의 얼굴에 황홀함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게.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당신의 화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녀석의 유언이었으니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당연히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