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타박, 타박.
유난히 새하얀 가운을 입은 훤칠한 사내가 복도를 내걸었다.
시원하게 올린 머리칼과 더불어, 단정하고도 깔끔한 복장,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 모습은 그가 자기 관리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활기찬 하루입니다.”
그의 평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사내를 향해 밝은 미소로 인사를 전했다.
“물론입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사내 또한, 그런 이들의 인사를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답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뚜벅, 뚜벅.
사내는 곧 자신의 집무실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곤 손을 휘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이거 데미코프 님 아니십니까. 이른 아침부터 오시다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멩겔레 님. 좋은 아침입니다…….”
“이거 부끄럽습니다. 데미코프 님과 같은 분이 저에게 존칭을 쓰시다니.”
사내, 멩겔레는 정말이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가슴에 손을 얹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감사의 인사.
“그럼 들어가실까요?”
“…네, 그렇게 하시도록 하죠…….”
다만, 그런 멩겔레를 대하는 데미코프는 무엇이 그리도 껄끄러운지 말끝을 흐리며 억지스러운 미소를 내지을 뿐이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의 실험…… 아니, 집무실은 그 어떤 곳보다 좋은 시설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데미코프의 어깨를 살포시 두들기며, 재촉하는 멩겔레.
끼이이이익- 탁.
집무실이자, 실험실의 경첩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다만, 멩겔레는 자신의 텅 빈 실험실을 바라보자마자
“이런 젠장……!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지금까지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욕지거리를 시원하게 내질렀다.
“이런, 죄송합니다.”
곧장 자신의 실태를 눈치챈 것인지.
빤히 바라보고 있는 데미코프를 향해 사과를 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악마와도 같이 변한 얼굴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미친놈.’
데미코프는 그런 멩겔레를 바라보며, 속으로나마 신랄하게 씹어 댔다.
블라디미르 폐트로비치 데미호프.
지오바니 알디니와 함께 미치광이 과학자에 해당하는 그는, 한 번 제대로 된 실패를 맛보았다.
자신의 걸작이라고 불릴 만한 키메라가 정호에게 완전히 분해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 실험실만 날아가지 않았어도……!’
심지어는 데미코프가 자랑하는 실험실은 키메라 제작을 하다 박살이 난 마당이다.
오로지 정호를 향해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갖은 치욕을 겪으며 지내온 생활.
드디어 제대로 된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으으…… 차라리 전쟁 때가 나았어. 그때는 수천 명 정도는 가스실로 보내도 모자라진 않았다고……!”
멩겔레가 떠들어 대는 소리는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멩겔레와 데미코프는 같은 시대를 공유한 이다.
멩겔레는 나치 독일에서.
데미코프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내과의와 외과의라는 점이 다를 뿐, 의사라는 직종마저 같은 마당이다.
‘나도 미친놈이지만, 이 새낀 그냥 돌아 버린 놈이잖아.’
데미코프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세간에 어찌 드러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비인륜적인 실험을 자행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치광이의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쿠당탕-
“살아 있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이래서는 의학의 발전이 있을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시죠? 데미코프 박사님!”
“…….”
그저 실험할 ‘인간’이 없다는 것만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저 미치광이와 자신은 다르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 ‘알디니’조차도 죽은 인간으로 실험을 하는 것일 뿐일진대.
‘똥이 묻은 것과 겨가 묻은 건 다른 법이지.’
그에 비해 자신은 어떠한가.
상당히 깨끗한 사람이 아닌가.
돼먹지 못한 비교를 하는 데미코프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떠올랐다.
“알디니! 알디니 박사님은 어디 있으십니까? 분명 지원자를 받으러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곧 돌아…… 응?”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멩겔레의 얼굴이 수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데미코프의 착각만은 아니었다.
“아, 안 돼. …박사님을 써먹을 수는 없어. 덕분에 많은 성과를 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중얼거리는 말들 하나, 하나가 정말이지 등골을 섬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덥석-!
“혹시 박사님! 하아, 직접 자신의 몸에 실험을 한 적은 있습니까? 하아, 하아. 의외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데미코프의 앙상한 어깨를 단단히 붙잡은 멩겔레의 말은 위험 수치를 완전히 넘어선 수준이다.
흰자위까지 드러내는 그의 광기에 ‘희대의 사이코패스’라고 불렸던 데미코프조차 몸을 덜컥 멈추어 세웠다.
“지, 진정하시게. 멩겔레 대위. 이러면 안 되네!”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시대의 흐름이! 과학의 발전이! 모두 멈추어 섰지 않습니까!”
데미코프는 힘껏 저항하기는 했으나.
끽해야 인간의, 노인의 몸에 불과한 데미코프가 기계의 힘을 빌린 멩겔레의 힘을 억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쿠당탕-
결국 실험대 위에 강제로 눕혀지게 된 데미코프.
눈을 데구르르 굴리니, 약품 속에 들어 있는 눈동자가 자신과 마주했다.
“자네는 미쳤네! 미쳤다고! 이봐! 거기 누구 없나! 이 미친놈을 당장 끌어 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소리를 빼액- 내질렀다.
“어이쿠, 안 됩니다. 데미코프 박사님. 제 집무실은 세계에서 제일인 시설이랍니다. 그런 소음이 밖으로 나갈 리가 없지요.”
츠윽-.
“하아……!”
어느새 데미코프를 완벽하게 결박한 멩겔레는 손아귀에 든 주사기를 매만지며 황홀한 미소를 내지었다.
“잠깐, 자고 일어나시면 될 겁니다.”
“우웁! 우우우웁!”
버둥거리는 데미코프를 향해 다가오는 멩겔레.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똑똑.
데미코프를 구해 준 것은 하나의 노크 소리였다.
“아…… 누구야. 또……!”
신경질스러운 말과는 달리 멩겔레는 벗어 놓은 가운을 소중하게 집어 들더니, 단정하게 만들고 나서야 문으로 향했다.
끼이이이익-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활짝 열어젖히는 문.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우웁! 우웁! 우웁!”
이토록 반가운 목소리가 있을까.
데미코프는 눈시울을 빨갛게 물들이며,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려 애썼다.
“알디니 님이시군요.”
지오바니 알디니.
정말이지 많이도 싸웠고, 몇 번이나 의견 충돌이 일어났는지 셀 수조차 없는 이.
아군이라기보다는, 같은 적을 둔 동맹 관계나 다름없는 존재.
하지만 적어도 저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보다는 훨씬 정감이 가는 녀석이다.
“물론이죠.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제가 거짓말을 한 적 있습니까? 실험체 대기실에 넣어 놓고 오는 길입니다.”
“알디니 님! 다, 당장 확인하러 가 보시죠!”
오. 오오……!
이어지는 대화에 데미코프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알디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자인가.
‘꼭, 꼭 은혜를 갚겠다!’
지금 이 순간이라면, 그 늙은이의 볼에 키스를 갈겨 주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런 데미코프의 다짐은 단 수 초도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스르르륵-
침대 아래에서 느껴지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인기척.
“오랜만이에요. 데미코프.”
거기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등 뒤에서의 만남은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으니까.
“주인님께서 조용히 있어 달라고. 그리 전달했거든요.”
주인.
그 말에 데미코프는 손만 자유로웠다면, 자신의 이마를 내려칠 뻔했다.
‘도, 도대체 누굴 데려온 것이야! 알디니!!!’
쓰러뜨려야 할 대상인 이정호.
그가 알디니와 함께 찾아왔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이 미친 노인네가!’
정말이지 자신의 주변에는 제대로 정신이 박힌 녀석이 없음을 실감하는 데미코프였다.
* * *
정호는 캄캄한 감옥과도 같은 실험체 보관소 1에서 멩겔레를 마주했다.
“…인, 인간?”
멩겔레는 정호를 보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도, 도대체 어디서 구한 것입니까. 이런 지원자를! 인종은 모두 개조했을 텐데!”
하나, 알디니를 향해 따지듯 외치는 그의 얼굴에는 희열만이 가득했다.
“진짜 살아 있는 육체라니……! 그렇게 찾아도 없었거늘! 알디니 님, 당신은 정녕 신이시오?”
정호는 미치광이처럼 스스로의 몸을 쓰다듬고 있는 멩겔레를 바라보며, 속으로나마 미소를 내지었다.
네오 유토피아가 자신이 기억하던 톨비아 시절과는 많이 변했기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녀석은 변한 것이 없다.
그저, 유저들을 향해 실험체로 만들어 주겠다는 둥.
화신으로 존재하는 미치광이들과는 다른, 차원이 다른 사이코패스.
“다, 당장 묶어서 실험실로 가야겠습니다. 알디니 님, 준비해 주시지요.”
철커엉-
녀석의 손아귀에 걸린 쇠사슬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슬금슬금 정호를 향해 다가왔다.
‘쯧.’
정호는 여전히 조급한 녀석의 반응에 속으로 혀를 차냈다.
녀석이 다루는 쇠사슬은 상당히 까다로운 무구다.
적을 옳아매어, ‘행동 불가’라는 실로 특이하기 짝이 없는 상태이상을 일으키는 기묘한 물건.
‘알디니.’
물론 정호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당해 줄 리가 없었다.
고개를 까닥여 신호를 보내자, 곧장 알디니가 멩겔레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자, 조금 진정하시지요. 멩겔레 박사님.”
“저걸 보고도 어찌 진정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의 새로운 진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더욱 신중하셔야죠. 멩겔레 박사님이 수없이 많은 인간의 육체를 만져 온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 벌써 그로부터 몇 년입니까? 완전한 인간의 육체를 만지는 것이.”
“오, 오오…… 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폐기된 실험체라도 만져, 감각을 되찾으시지요.”
“조, 좋습니다. 제일 맛있는 부위는 아껴 먹는 법이니까……!”
기이잉- 투웅.
알디니가 멩겔레를 이끌고서 정호가 있는 실험체 보관실을 떠나자.
“푸후…….”
정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단순히 쓰러뜨리기만 해서야…….’
멩겔레를 쓰러뜨리는 것 정도야, 바로 코앞에서 검이라도 한 번 내지르면 끝나는 일이었다.
다만, 정호는 녀석을 처리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었던 처음 계획을 수정했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지.’
멩겔레가 이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득일 터인데.
알디니라는 존재 덕에, 아예 손쉽게 녀석과 마주하게 되었지 않은가.
“아저씨는 이제 큰일이에요.”
어두컴컴한 보관실의 내부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 정호는 미소를 내지었다.
‘역시, 아직 실험체는 있었어.’
요제프 멩겔레는 잔학무도한 이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서지 않은 포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스실에 내보내고, 모두 학살했다.
당시에 그에게 주어진 실험체가 매우 많았기에 생긴 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노인인 데미코프의 몸조차 탐낼 정도면 말을 다했지.’
녀석에게 실험체란, 하나하나가 소중한 녀석들이다.
“팔 다리가 모두 잘릴 거예요. 그 다음에는 눈에 염산을 넣을지도 모르죠. 앞으로가 걱정이네요.”
콜록콜록.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소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이미 실험이란 실험은 모두 자행했을 터.
질리고 질렸으나,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겨 둔 실험체임에 틀림없다.
“이봐.”
정호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소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멩겔레의 실험체 보관실.
이곳에 들어오는 유저는 모두 죽음에 이른다는, 무시무시한 장소.
하나, 그런 곳이야말로.
“너희 할아버지는 어디 있지?”
무언가를 숨겨 두기에 알맞은 장소가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