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권력자에게 암살 시도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좋은 인물이든, 그렇지 않은 인물이든 그따위 것은 상관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법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암살 시도가 이루어진 횟수로만 세계 4위에 등재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발키리 작전.’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면, 슈타우펜베르크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반(反)나치 인사들이 일으킨 쿠데타 사건이다.
시한폭탄을 이용한 암살 사건 중 가장 규모가 큰 사건.
흔히들 발키리 작전이라 불리는 히틀러 암살은 당연하게도 미수, 실패로 돌아갔다.
그에 대한 보복은 당연한 일.
수없이 많은 장군과 정치인이 연루되어 목숨을 잃었다.
‘롬멜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니까.’
물론 에르빈 롬멜은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에 전투에 의한 피해로 병원에 누워 있었을 뿐이니까.
하나, 연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죽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의 신화적인 업적 덕분에 처형은 되지 않고서, 자살로 위장되었으나.
어찌되었던 히틀러의 분노가 빗겨 가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게 좌천으로 끝났다는 거지.’
하나, 톨비아의 던전인 네오 유토피아는 어디까지나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롬멜이 아직까지도 원수라는 계급을 지니고서 이런 삭막하기 짝이 없는 사막에서 목숨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그 결과물일 것이다.
탁. 탁. 탁.
싸늘한 사막의 밤공기를 뒤로한 채.
롬멜의 집으로 초대받은 정호는 부엌에서 복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흘겼다.
‘롬멜은 히틀러 공략에는 필수적이야.’
지금까지의 던전 공략은 다대일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에 그쳤다.
다만 ‘네오 유토피아’의 경우에는 완전히 경우가 달랐다.
‘나라를 상대로 혼자서 덤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은 제아무리 20인의 수를 넘어서는 공격대라 할지라도 다를 것이 없는 법이다.
계란을 하나를 던지든, 스무 개를 던지든 바위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거기다…….’
달칵-
“시장들 하신가?”
문을 열고서, 등장하는 롬멜을 바라보는 정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은.
‘신상 제작의 필수 요소니까.’
던전마다 하나씩 존재하는 신상.
그 파밍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 * *
에르빈 롬벨은 히틀러의 보좌 역할인 경호대장으로도 있었던, 상당히 가까운 측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독일의 영웅으로서 알려져 있는 것은, 그가 천재적인 군인으로서의 신화를 써 내려갔다는 점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나치의 군인임에도, 히틀러가 내리는 ‘일체의 처형 명령’을 모두 무시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내가 백장미단의 단장이라고.”
침묵으로 가득한 식사가 끝난 직후, 롬멜은 담백한 어투로 정호에게 입을 열었다.
“이런 다 늙은 노인네가 무얼 할 수 있다고, 그런 반란 조직을 짜겠나. 더군다나, 백장미단의 단장이라면 바로 거기 있지 않는가.”
하나, 이어지는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맞아. 내가 단장인데?”
파울라가 그에 반발하기는 했지만,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반란 조직이 멍청하다고 해도, 저런 뻔한 수작질에 단장을 쥐어 줄 리가 없죠.”
“뭐……?”
롬멜은 분명 히틀러의 공략에 필수적인 존재다.
하지만 정호의 톨비아에서의 기억에서 백장미단이라는, 반란 조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한들, 존재하지 않았던 단체가 갑작스레 튀어나왔는데 그 원흉이 마냥 ‘아돌프’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심지어 메카 헤카테… 아니, MK-2호를 만들어 낼 정도라면 꽤나 체계가 잡혔을 텐데도 단장이라는 자가 의문이었거든.”
정호는 백장미단의 단장으로 롬멜을 예상했다.
암살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 계획에 거절하지는 않은 이.
톨비아의 던전 공략에서도 확실하게 히틀러를 적으로 보고, 유저에게 도움을 주는 이.
그런 존재는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자네는 좋은 지휘관이 되진 못할 것 같네.”
타악-
하지만 테이블 위에 수저를 놓는 롬멜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정호는 지금 파울라 히틀러라는, 적인지 아군인지도 제대로 확실치 않은 이를 데려온 마당이다.
롬멜에게 있어서는 확실한 적일 것이 분명한 그녀의 존재.
모습을 드러낼 리가 만무했다.
‘쯧…….’
속으로나마 혀를 차낸 정호는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먹고는 일어서려 했다.
한데, 그런 순간.
“그래도.”
끼익-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롬멜.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좋은 참모는 되겠어. 따라오게.”
* * *
인간은 기본적으로 똑똑하거나 멍청하든지, 게으르거나 부지런하다.
똑똑하고 게으른 자는 지휘관 감이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자는 참모 감이고,
멍청하고 게으른 자는 말단 병사 감이지만,
멍청하고 부지런한 자는 전투에 도움이 안 되니 국가를 위해 강제 전역시켜라.
요즘도 전투 교본에 나오는 어록의 주인공인 롬멜은 정호를 차가운 사막의 모래로 인도했다.
“군인은 참으로 편한 직업일세. 그저 적을 쓰러뜨리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일이니까.”
느긋한 걸음으로 운을 떼는 롬멜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승리만 한다면, 어떤 죄라도 용서가 되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어 나가든, 아군의 희생이 얼마가 나오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일세. 이만큼 편한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흘흘-
롬멜의 자조적인 웃음이 뒤따랐다.
“세간에는 나를 무슨 초인이나 영웅 보듯이 하네만, 나는 그리 깨끗한 사람이 아닐세. 결국은 승리한 나라의 군인 중 하나일 뿐이지.”
롬멜은 스스로를 낮추었다.
실제로도 그의 신화적인 일화들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반론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리 놀라운 일들은 아니었다.
다만, 그 직후 이어진 말에 대해서는 정호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들어진, 거짓된 승리의 지휘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들어진 승리.
그것은 분명 롬멜의 입에서 나올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째서 백장미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지 알고 있는가?”
“모르겠군.”
정호는 귀를 기울였다.
백장미단은, 톨비아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체다.
한데, 그것이 롬멜의 주도하에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그에게 무언가의 심경 변화가 있다는 것과 같았다.
“나는 궁금했네.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부여잡고서, 마냥 숨어 살아가는 인생. 아무런 의미도, 뜻도 없는 그 생활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네. 마치,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
“한데, 그 설계도를 발견하고서 깨달았네.”
롬멜은 굽어진 허리를 펴며, 눈을 부릅떴다.
“나는 자네와 같은 이를 도와, 총통을 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그렇기에 이런 죄책감과 후회로 점철된 생활을 한다는 걸.”
분명 던전 내의 인물이 알지 못할 내용이다.
‘일전에도 비슷한 게 있긴 했지.’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에서 만난 플라톤.
녀석은 톨비아와도 접점이 있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달은 꽤나 특수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롬멜의 경우는 아예 화신조차 아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어지는 말.
“이럴 거면, 차라리 직접 치자고. 그리 생각하여 만든 것이 백장미단이네.”
스으으윽- 스윽-
그 직후 난데없이 바닥에 엎드려, 사막의 모래를 헤집는 롬멜.
달칵- 철컥.
이윽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롬멜이 고개를 홱 돌렸다.
돌아 선 롬멜의 손에 쥐어진 것은 분명 총이었다.
“어, 어. 잠, 잠시만. 아군 아니었어?”
파울라가 당황하여 목소리를 내었다.
그도 그럴 게.
롬멜의 총열이 향하는 곳이 다름 아닌 정호였으니까.
“전쟁도 아니네. 짜여진 각본. 연극 놀이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다네.”
“미, 미쳤어!”
파울라가 소리를 빼액 내지르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가 보게. 자네는 아직 내 계획에 필요하니까.”
“어, 어어……!”
롬멜이 고개를 까딱여, 도주를 허락하자 파울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기 시작했다.
“이게 최선인가?”
정호는 눈앞에 겨누어진 총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롬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최선이네. 지긋지긋하다고 하지 않았나. 애초에 나는 총통의 군인일세.”
그 말을 끝으로.
타앙-!
차가운 사막의 모래.
그 위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털썩-
정호의 신형이 바닥에 쓰러졌다.
탁탁탁탁탁-!
다급한 파울라의 발걸음 소리만이 휘몰아치는 모래 속에 흩어졌다.
* * *
한창 침공에 대비하는 통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는 의외의 소식을 접했다.
“…죽었다고?”
“네.”
“확실한가?”
“파울라 중장이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끝에는 총통 각하의 군인이라고 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 분명한 이가 갑작스레 죽었다고 소식을 접한 탓이다.
보통이라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소식이다.
그도 그럴 게.
제아무리 혈연이라고는 하나, 파울라는 이미 기대를 배신한 이다.
믿음을 저버린 이가 제아무리 적이 죽었다고 떠들어 대 봐야 한 귀로 흘리면 될 뿐이다.
다만.
“…생체 반응 센서에는 잡히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잡히는 건, 롬멜의 센서뿐입니다.”
“롬멜은?”
“여전히 집에 대기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민이 지니고 있는 기계에는 식별 코드가 실려 있고.
설령 완전한 인간인 롬멜이라 할지라도, 생체 감지 센서로 확실하게 그 거처를 확인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 사실은 롬멜조차 모르는 일이다.
롬멜은 스스로가 숨어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으나,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정호의 계획을 알아차린 이후로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까닭이 바로 이 센서에 대한 강한 자신감 덕분이었다.
“정말로 죽었다라…….”
아돌프는 미소를 내지었다.
롬멜은 요주의 대상이었다.
꿈에서 본 숱한 죽음.
거기에는 항시 롬멜이 인간을 도와, 자신의 목숨을 끝장내고 있었으니까.
‘언제 처리할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기억이 돌아온 그 순간, 롬멜을 처형할 생각도 했었다.
“롬멜 원수를 복귀시킵니까?”
이어지는 보좌관의 말에 아돌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롬멜을 쉬이 처형하지 못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다.
롬멜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숱한 장군들과 군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재다.
강행한다면 강행하겠으나, 침공을 앞둔 지금 이루어질 일은 아니었다.
‘그런 롬멜이 충성한다라.’
한데, 이번 사건은 기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것은 아돌프에게 있어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일이나 다름없었다.
“아직은 조금 더 지켜보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으나.
롬멜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은 누그러졌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래도, 준비라도 하도록 언질을 놓아두게.”
“지크 하일!”
보좌관의 경례를 받는 아돌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적어도 전쟁에서만큼.
롬멜의 힘은 의심할 바가 없었으니까.
* * *
“복귀할 준비라도 하라더군. 끌끌, 늙지 않는 독재자만큼 무서운 게 없다더니 이런 다 늙은 노인네를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 건지.”
변덕스러운 사막의 날씨.
모래가 새빨갛게 물들었을 때.
“이미 알고 있었나?”
정호의 목소리가 공허한 지하 속에서 울려 퍼졌다.
“병상에 누워 있기는 했지만, 나는 암살 시도에 가담한 자일세.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더 이상하지.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않은 한은 말일세.”
롬멜은 여유로운 미소를 내지으며, 권총을 손아귀에서 돌려댔다.
‘신병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더니.’
그것은 정호로서는 알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저,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을 보아 확인할 길이 있지 않을까 정도의 수준이었지.
실상은 톨비아 시절의 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생체 감지라니, 그 따위 물건은 적어도 톨비아에선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나는 아돌프의 능력을 높게 쳐주고 있다네. 내가 떠올린 것을 녀석이 떠올리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이윽고, 타악-!
권총을 마주잡은 롬멜이 정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쟁 준비를 하려면, 일단 보급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의 뜻을 이해한 정호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몸을 일으켰다.
“리스트를 준비하지.”
그것은 침공을 위한 보급이 아닌.
아돌프 히틀러의 목을 옥죌 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