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27화 (128/144)

127화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은 실로 복잡한 방식을 요구한다.

우호적인 접근은 물론이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한편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까지.

전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점도, 고상한 동기마저 피력해야 할 터다.

정말이지 복잡하기 짝이 없고, 절로 머리가 아파져 오는 방식.

다만, 그것을 너무도 손쉽게 설득하는 방법이 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드래곤의 입에서 부어지는 새빨간 화염.

휘이이이잉-

그것을 휘몰아치는 폭풍과 만나, 쏘아지는 불기둥을 만들어 낸다.

그 열기가 어찌나 거셌던지, 철근을 비롯해 합금임에 분명한 폐기물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

‘아. 이거 이쪽에 붙어야 할지도 몰라.’

그것을 바라보는 파울라의 심경 변화가 찾아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존재.

거기에 드래곤이 보여 주는 거대한 존재감에 절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다는 거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파울라는 정호의 전력을 잘못 상정하고 있었다.

이곳은 ‘병기’의 강함이 힘의 잣대가 되는 장소다.

그런 장소에서 단 하나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순수한 인간이란,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법.

한데.

후우우우웅-!

“…메테오 폴.”

그런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중얼거림에 하늘 위에서 운석이 내려오기까지 한다.

[말살 가능성 재분석]

[60… 50… 40… 20… 10…….]

모델은 아직까지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실패작이라지만…….’

실패작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제어 불가’에서 생긴 일이다.

그 성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

저 모든 화력을 견디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성능이 뛰어난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돌프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녀석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파울라에게는 이보다 더한 충격이 없었다.

[10… 9… 5… 1… ‘0.00…….’]

결국 소수점까지 떨어진 모델의 계산.

거기까지 몰아붙인 정호의 일행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을 할 것도 없다.

“잠깐만……! 위험해!”

다만, 파울라는 그것에 눈을 크게 뜨고서 정호를 향해 외쳤다.

‘만약 말살 명령이 수행 불가능하다고 계산이 나오면 위험하잖아!’

점점 새빨갛게 물들어 가는, 모델의 눈동자는 누가 보아도 위험한 수치까지에 이르렀다.

[말살 명령 수행 불가]

[자폭 기능 활성화]

죽이지 못한다면, 피해라도 주어야 한다.

제아무리 실패작이라 할지라도, 기술이 상대에게 넘어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그런 아돌프의 심리가 뻔히 보이는 자폭 기능.

“다, 당장 도망가야 해!”

파울라는 정호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한창 전투에 집중한 탓일까.

콰아아아앙-!

소음들에 휩쓸려 듣지 못한 탓일까.

정호는 공격을 멈추지 않은 채, 계속해서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 안 되겠어.’

순수한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정호의 일행이다.

‘흥……! 얼마나 강하든, 핵폭발에 맞먹는 자폭을 어떻게 버틸 거야.’

아니, 버틴다 하더라도 빈사 상태가 될 것이 분명했다.

‘혹여나 안 죽으면 내가……!’

차라리 쓰러져 주기보다 그쪽을 선호했다.

아돌프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 않은가.

‘어라? 그럼 굳이 도와줄 필요가 없잖아?’

타다다다닥-!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파울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덜컥- 풀썩.

작은 신체 덕분에, 쓰레기 더미들 속에서 솟아오른 철근을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이, 이럼 안 돼. 안 돼. 안 돼……!”

자신이 있는 곳이 그토록 눈살을 찌푸리게 한 쓰레기 더미였음에도 불구하고.

파울라는 급박한 상황에 기어서라도 도망치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네 발로 움직였다.

하지만.

꾸우우우웅-

거대한 폭발을 예고라도 하듯, 들려오는 특유의 소리.

동시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

파울라는 뒤를 돌아볼 용기조차 없었다.

화아아아아-!

눈을 가리는 거대한 빛.

그와 함께, 자신의 인생이 끝났음을 직감한 파울라.

“흐아아아아……!”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흐아아아앙. 내가 왜 죽어야 해. 내가 왜!”

마지막 유언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비통함.

“흐아아앙, 흐아아아… 흐아…….”

하지만 그 울음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응?”

이상함을 느낀 파울라는 감고 있던 눈을 살포시 떴다.

어찌나 오래도 눈을 감고 있었는지, 구름에 가려 제 빛을 내지 못하는 태양에도 잔뜩 찌푸려지는 눈살.

하지만 그것은 빛에 적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뭐야?”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기묘했던 탓이다.

분명 D구역의 일부가 완전히 박살 나, 지옥도가 펼쳐져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해……?’

오히려 그 많던 쓰레기만 어디로 갔는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말끔하게 치워진 곳에서 정호가 무언가를 줍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후우, 이제야 볼 만하네. 불편해 죽는 줄 알았어.”

“이런 일로 과한 힘을 쓰지는 마. 우리 전력을 녀석에게 보여 줘 봤자, 손해만 날 뿐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애초에 이런 곳에 날 소환한 게 잘못된 일인걸?”

마치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인지, 정말이지 평화롭기 짝이 없는 대화.

그에 파울라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한 차례 주억거리고선 몸을 일으켰다.

“자, 잠깐만……! 나도, 나도 끼워 줘!”

타다닥-!

급한 나머지, 의미 불명의 말을 외치며 정호 일행에게 달려가는 파울라.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실로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아돌프가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어!”

정호에게서 반응은 없었으나, 파울라는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계획을 바꿔야 해!”

거기에는 한 치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기계와도 같은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오빠 미안해. 하지만……!’

그저 속으로만 사과할 뿐이었다.

* * *

‘생각보다 많이 보여 준 것 같은데.’

정호는 이 전투 자체가 보스 몬스터인 아돌프의 귀에 들어가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상세한 내용 정도는 아니라도, 정호가 가진 화신들의 스킬이나 이그나투스의 존재는 분명히 들켰음에 틀림없다.

‘후회는 안 하지만.’

하지만 정호는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총공격을 가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했다.

‘모델의 드랍 조건…….’

럭키 몬스터조차 확률에 따라 아이템을 드랍하는 마당에, 발터 모델이 확정적으로 ‘마법 사출 장치’를 떨어뜨릴 리가 없다.

‘자폭 장치가 마법 사출 장치의 부품이니까.’

녀석에게서 드랍 아이템을 확실하게 얻기 위해서는 자폭을 한 번, 일으키게 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는 말을 할 것도 없었으나.

정호는 새롭게 얻은 메카 헤카테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가 만들었는데, 그 정도도 못 막겠어?”

제대로 된 장비가 없다고는 하나, 메카 헤카테는 이 시대의 정수가 모여든 것이나 다름없는 병기다.

육 성 등급의 화신인, 헤카테가 직접 손을 쓴 그 병기에 ‘전자기 펄스(EMP)’ 기능이 없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헤카테의 두 번째 스킬까지 보여 줄 생각은 없었는데.’

자폭을 막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져 있던 쓰레기 더미를 단숨에 말끔하게 지워 버린 것은 당연하게도 헤카테의 만행이었다.

거기까지는 아직 아돌프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될 스킬이었으나.

그 덕분일까.

전혀 뜻밖의 소득이 있기는 했다.

“무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계획을 바꿔야 해.”

파울라의 태도 변화였다.

“솔직하게 말할 게. 아돌프에게 너의 계획을 말했어.”

조금 전, 전투에서 무엇을 느낀 것인지 확실한 심경 변화가 찾아온 파울라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내걸고 있었다.

“꽤 당당하군.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

“…사, 상관없어. 나도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예상했을 거 아니야. 내가 오빠에게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도는……! 나는 목숨을 걸고 다녀온 거라고.”

“그것도 그렇군.”

어차피 이중 간첩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파울라다.

그런 파울라가 얼마나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기로 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적어도 앞으로의 계획에 방해가 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아무튼, 계획은 바꿔야 해. 네가 말한 계획 중에 함정일 것 같은 부분도 전부 말해 놨단 말이야.”

정말이지 자신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행동을 취하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정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라고.”

하지만 정호는 파울라를 완전히 받아들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한 번 배신한 인간은 언제고 다시금 배신한다.

그런 같잖은 이유를 붙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호에게 있어서 파울라를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달라지는 것이 없었으니까.

“계획은 변경하지 않아.”

“어째서? 숨겨 둔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애초에 너에게 알려 준 계획. 그게 전부다. 함정 같은 건 없어. 물론, 이것도 아돌프에게 알려 줘도 좋아.”

정호는 애당초 숨긴 것이 없었다.

속인다던가, 함정을 판다던가.

그런 애매모호하고도 복잡한 수단 따위는 아돌프와 같은 뱀을 상대할 때에는 오히려 독이다.

‘녀석의 성격이면 멋대로 착각하고, 고민할 뿐이지.’

실제로 정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발터 모델’조차 아돌프는 견제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 정말로 이 다음으로 갈 건.”

“맞다.”

정호는 손에 쥔, 마법 사출 장치를 헤카테에게 건네며 미소를 내지었다.

정호가 다음으로 향할 장소.

그것은 그 누가 보아도 정호가 거짓으로 꺼내었을 것이 분명한 계획.

“‘롬멜’을 만나러 간다.”

“…그, 그게 무슨……!”

파울라의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쩌억 벌렸다.

“말도 안 돼…….”

그도 그럴 게.

‘사막의 여우’ 에르밀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롬멜 장군은 원수라고……!”

그는 현 네오 유토피아.

나치 독일의 최고 계급 ‘원수’에 등재된 인물이었으니까.

* * *

계급에 따라 나누어진 네오 유토피아의 지역 특성상 권력자들은 대부분이 A구역에 주거하고 있다.

A구역은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그야말로 최종 방어선이나 다름없는 곳.

굳이 정호가 아니더라도 발을 내딛는 순간, 곧장 총탄 세례가 쏟아질 것이 분명한 장소다.

‘롬멜이 이곳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군.’

하나, 정호가 향하는 곳은 C구역이었다.

사막의 여우라는 호칭답게.

C구역은 오아시스 하나를 발견하기도 어려운 샛노란 사막의 바다다.

원수나 되는 네임드급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호의 타깃이 되기 충분했다.

터벅, 터벅.

물론, C구역에 있다 한들 그 과정이 순탄할 리가 없다.

어딜 보나 모래밖에 흩날리지 않는 장소에서 롬멜의 주거지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 죽을 거 같아. 내 심장이 뜨거워……!”

파울라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고통을 호소했다.

많은 D구역의 빈민들이 C구역으로 빠르게 올라가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대부분이 기계로 이루어진 이들에게 있어서, 사막의 열기란 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숨기에는 딱 좋은 장소고.’

롬멜은 좌천된 것이 아닌, 스스로 이 장소를 골랐을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찾지 못할 거야. 기계가 아닌 인간을 사막에서 찾는 건, 어지간한 열 탐지기로도 무리니까.”

파울라의 말마따나.

‘순수한 인간.’

롬멜은 네오 유토피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심장을 지니고 있는 이였으니까.

아돌프가 원수나 되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그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있을 터였다.

“찾을 수 있어.”

하지만 정호는 꽁꽁 숨어 있는 롬멜을 찾을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헤카테.”

“흐응, 기다렸다고. 이제야 제대로 된 녀석을 소환하게 되었으니까.”

쿠우우웅-

헤카테의 말과 함께 사막 위에 거대한 기체가 등장한다.

츠으으으-

뜨거운 햇살에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기체에서 뿜어져 나오기는 했으나, 정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 어어……? 이게 끝이야? 뭘 더 하는 게 아니고?”

의문스러운지 파울라가 답을 촉구했지만, 정호는 아예 눈을 감았다.

“…익숙한 녀석이 보인다 해서 왔더니, 파울라가 아니냐.”

아니나 다를까.

곧장 등장하는 녀석.

“드디어 나를 죽이러 온 것이냐?”

질문을 내던지는 롬멜을 향해 정호가 미소를 내지으며 답했다.

“무슨 소릴.”

탁- 탁-

뜨거워진 기체를 두들기며 정호가 말을 이었다.

“백장미단의 수장이라면, 이 의미를 알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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