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아돌프 히틀러’는 흔히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장애자, 즉 사이코패스로 착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고서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백만 명의 인간을 학살하는 무자비한 인물을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는 적어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인간이었다.
‘아군’에게는 말이다.
“파울라…….”
아돌프는 조금 전, 자신과 대면했던 파울라 히틀러를 떠올렸다.
하나뿐인 혈육이자, 사랑하는 여동생.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존재.
그 두 가지의 간극이 아돌프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 녀석은 나를 이용해서, 오빠를 꿰어 내려는 속셈이야!
파울라는 그리 말을 하면서 연신 이정호라는 인간의 계획을 떠들어댔다.
과연 그럴싸하고, 확실하게 자신을 옭아맬 수 있는 수단으로 가득 차 있다.
설사 거짓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는 계획도 있었다.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파울라에게서 나올 수 없는 계획이긴 하지.”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정말로 파울라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단 하나뿐인 여동생을 믿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다.
“…안 돼.”
하지만 아돌프는 끝끝내 고개를 흔들었다.
단 한 줌, 아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한들.
의심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군이 아니다.
당장 처분해야 할 ‘적’.
지도자는 언제나 의심해야 하는 법이다.
‘거짓 정보일 가능성이 다분해. 그럴싸할 뿐이지, 실상 써먹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마도, 정호라는 인간도 파울라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을 터다.
머리에 총이 겨눠지는데, 속내를 털어 내지 않는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한데.”
탁, 탁.
하지만 그리 생각하면서도.
아돌프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지도의 한편을 쿡쿡 내질렀다.
‘어째서 이 녀석을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았지?’
녀석의 목적은 분명 자신의 목숨일 터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측근을 먼저 쓰러뜨리던가, 자신만을 꿰어 낼 수단을 꺼내던가.
둘 중 하나는 이루어져야 했다.
한데, 정호라는 인간이 가장 먼저 찾아 가는 장소가 매우 수상하기 그지없다.
“…고르고 고른 첫 타깃이 쓰레기장.”
D구역 중에서도 한참은 멀리 떨어진 장소.
그것도 오염 물질로 가득한, ‘실패한 병기’들이 버려지는 폐기물 처리시설이다.
모든 계획의 내용을 파울라를 통해 들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이 첫 번째 장소뿐이었다.
짜악-!
한참을 고민하던 히틀러는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진실은 거짓에 숨기는 것이 가장 안전한 법.”
그렇다면 이 이해가 불가능한 ‘쓰레기장’이야말로 정호가 가장 우선하는 ‘진실’일 터다.
‘치려면 지금인데.’
다만 아돌프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한들.
‘이 정도 추측도 내놓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리가 없지.’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스스로가 진실을 거짓 속에 숨기는 것은 안전하다 했지만.
알아차린 이에게 있어서는 가장 무방비한 순간을 내보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첫 수에?’
명백한 함정.
그것을 곧이곧대로 넘어가 주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끼이익-
“여간내기가 아니군.”
하마터면 자신조차 깜빡 속아,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아니,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만, 정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틀리지 않았을 터다.
막고자 하면 함정이고, 그렇다고 손가락을 빨며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
꽤나 돌파해 내기 어려운 그 상황 속에서.
“…있군.”
해결책을 떠올린 아돌프는 비릿한 미소를 내지었다.
떠올리는 것은 쓰레기장 속, 하나의 존재.
예상치 못했을 것이 분명한 변수.
“모델.”
실패작 중 최고라 불리는 병기의 존재였다.
* * *
빈민들의 거주지인 D구역.
좋은 땅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구역.
그러다보니 빈민들끼리의 구역 다툼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다.
다만, 그런 D구역 중에서도 절대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윽, 냄새.”
그 누구보다 D구역에 빠삭할 파울라조차도 눈을 찌푸리는 장소.
폐기물 처리시설이라고는 하나, 처리 따위는 하지 않은 채 그저 잔뜩 쌓아 두기만 할 뿐인 쓰레기장.
그곳을 찾은 정호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노리는 건 발터 모델이야.”
톨비아의 유저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실패 병기 ‘발터 모델’을 수거하기 위함이었다.
“발터……?”
파울라는 정호의 말에 코를 찡그린 채,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오래 전 들어 보기라도 한 것인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가 싶더니.
“…모델?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 맞아?”
화들짝 놀라며, 정호를 향해 질문을 내던졌다.
“…….”
다만 정호는 그런 파울라의 질문은 완전히 무시한 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토 모리츠 발터 모델(Otto Moritz Walter Model).
모델만 없었어도 제2차 세계대전은 훨씬 일찍 끝이 났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군인이다.
발터 모델은 이상적인 장군이다.
부하들을 아끼고, 능력은 출중하며, 정치와도 크게 연관되지 않았다.
거기에 청렴하기까지 하다.
장군으로서의 측면에서 모델만큼 이상적인 장군상은 없을 것이다.
‘그래봐야 전범이지.’
다만, 그의 끝이 ‘자살’만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특급 전범자로 사형을 당했을 것이리라.
발터 모델은 이상적인 군인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양심을 지키는 훌륭한 인격자는 아니었으니까.
그가 가담한 전쟁범죄만 하더라도 포로 학대, 기근 정책부터 시작하여 인체 실험을 위한 ‘아이 납치’까지.
전형적인 나치의 전범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네오 유토피아에서는 죽은 시점이었지.’
사실 발터 모델은 던전 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나치 독일이 승리한 세계를 그린다고는 하나, 그 시점은 이미 발터 모델이 자살한 이후였으니까.
하지만 기묘하게도.
톨비아의 유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터 모델을 발견했다.
‘설마 이런 쓰레기장에 굴러다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어.’
그의 인격적인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발터 모델이라면, 오빠가 공을 들여 되살리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 하지만… 그건.”
파울라의 말마따나.
그것을 ‘아돌프 히틀러’가 쉬이 놓칠 리가 만무했다.
수많은 인체 실험을 통해, 이미 심장조차 기계로 대체하는 시대를 만들어 낸 아돌프다.
그런 그가, 이미 죽은 이를 되살리는 실험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미 죽어 버린 뇌세포를 되살려, 기계와 결합하는 실험.
이른바, 안드로이드 실험에 의해 발터 모델은 다시금 빛을 되찾았다.
“통제가 불가능해서, 폐기 처분 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반뿐인 빛이었지만 말이다.
‘발터 모델이 실패작이라니 웃기지도 않을 일이야.’
발터 모델은 톨비아에 있어서 몇 안 되는 ‘찾을 수 있는’ 럭키 몬스터다.
아니, 정확히는 럭키 몬스터는 아니었다.
그 강함에 비해 드랍 아이템이 영 신통치 않았으니까.
‘히든 보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랐다.
절그럭- 절그럭-
정호가 보상도 신통치 않은 발터 모델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남들에게는 ‘쓰레기’일 수도 있는 보상.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메카 헤카테에서는 떼어 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재료였다.
‘마법 사출 장치.’
모델은 ‘방어의 사자’, ‘총통의 소방수’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기도 했지만.
‘마법사의 제자’라는, 꽤나 판타지스러운 이명도 지니고 있었던 탓일까.
발터 모델은 메카 헤카테의 화력을 담당하는 마법 사출 장치를 떨어뜨리는 희귀한 녀석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뭐 하고 있어? 얼른 찾지 않으면, 아돌프가 올 거라고.”
파울라의 타박하는 목소리에 정호가 고개를 돌렸다.
‘열심히도 하는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모습과는 달리.
옷 이곳저곳에 오일들을 묻혀 가며 발터 모델을 찾고 있는 파울라의 모습.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파울라가 이미 히틀러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정호로써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돌프는 오지 않는다.”
“응? 올 거야. 아니, 오지 않을까?”
어떻게 저런 말실수를 하면서, 백장미단의 단장을 할 때까지 들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작은 꼬마의 모습이 사람들의 경계심을 낮추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놈이 올 리가 없지.’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몸을 끔찍하게도 챙기는 녀석이다.
제아무리 정호가 이곳에 볼일이 있어 들렸다고 한들.
‘약간의 위험 부담이 있으면, 끽해야 부하 몇을 보내는 게 전부겠지.’
아니, 발터 모델을 떠올리기라도 한다면.
‘녀석을 기동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겠지.’
그것이 정호의 노림수다.
괜히 럭키 몬스터가 아님에도, 그렇게 불리겠는가.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서 인간 형태의 안드로이드인 ‘발터 모델’을 찾아내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아돌프가 알아서 기동시켜 준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온몸에 오일과 쓰레기를 점철시키며 바늘을 찾을 게 아니라.
“헤카테, 아틸라, 잔다르크, 헤라클레스, 멀린.”
‘히든 보스’라고 불릴 정도의 녀석을 단번에 박살 내 버릴 화력을 준비하는 일이다.
“불렀어? 요즘 바람 맞았나 하고 이 누님은 걱정이 태산이었다니까.”
“이 조그마한 꼬마는 뭐야? 딱 봐도 거짓말 잘하게 생겼네.”
“마스터, 저는 어린 여성은 취향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곧장 나타나는 정호의 가장 강력한 1군 화신들.
“어, 어어… 이게 다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에 당황한 파울라가 말을 더듬으며, 풀썩- 쓰레기 더미에 몸을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츠으으으으- 츠으으으-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쓰레기장에서 기괴한 기계음이 울려 퍼진다.
풀썩-!
잔뜩 쌓인 쓰레기 더미가 움푹 내려앉는다.
잠들어 있던 누군가가 눈을 뜬 것이 확실시되어질 때.
정호의 입이 열렸다.
“헤카세! 마법 소환수!”
외치는 것은 당연하게도,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높은 화력을 낼 수 있는 메카 헤카세.
다만, 그저 거대한 모빌 슈트만 움직일 수 있다면, 헤카세가 재평가될 리가 만무했다.
커다란 병기란 생각보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욱 큰 법이니까.
“버전은?”
“물론, 3번. 초소형으로.”
“정말이지… 아직 완벽하지 않다니까.”
헤카세의 투덜대는 소리와 함께 정호의 몸에 부착되기 시작하는 수많은 기계 부품들.
완벽하지 않다는 말과는 달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부품들이 하나하나 맞물려 정호의 온몸을 뒤덮었다.
콰앙!
이윽고,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등장하는 인간 형태의 안드로이드 ‘발터 모델’.
녀석은 새빨간 눈을 빛내며 정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기동 확인]
[인종 확인 중입니다.]
[아시아인. 말살 대상입니다.]
[즉각 제거를 시행합니다.]
어째서 실패작인지 알 수 있는 말을 떠들어 대는 발터 모델.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정호는 자신의 클레이모어를 굳게 쥐고서 미소 지었다.
따악- 딱.
“흥, 뭐라는 거야 미친놈. 아이언 메이든.”
콰득-!
정호가 딱히 지시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잔다르크는 확실한 구속 수단을 내걸고 있었고.
“악마의 터치.”
단단한 갑주의 방어력을 멀린이 떨어뜨렸으며.
기우뚱- 콰득!
버둥대는 것인지 쓰러지려는 아이언 메이든을 헤라클레스가 확실히 붙잡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한 번의 화력을 뿜어내기 위한 절차에 불과햇다.
“아틸라 강신.”
아틸라의 강인한 힘이 끌어오름을 느낀 정호가 크게 외쳤다.
“이그나투스! 브레스!”
“뭐, 뭐야? 난 왜 마지막에 소환되는 건데!”
화아아아악-!
쏟아지는 브레스 속.
그곳에 정호의 검이 내질러졌다.
“군신의 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단 한 번의 일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