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24화 (125/144)

124화

아돌프 히틀러와 파울라는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다.

특히나 아돌프는 유일한 친남매인 파울라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부모의 유산을 공평히 나누고, 정부 지원금을 모두 파울라의 이름으로 돌리는 것을 비롯하여.

정부 재정으로 그녀의 일자리까지 제공해 주기까지 했다.

다만 파울라는 아돌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 비해, 정치적으로 연관이 없다.

실제로 파울라는 아돌프에게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자신에게만큼은 착한 오빠’라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이후 그녀는 철저히 은둔 생활을 하며 히틀러라는 성을 감추고 평생 그 누구와도 친분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일의 ‘패전’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의 일이다.

나치 독일이 패배하지 않은, 네오 유토피아의 경우에는 달랐다.

‘흥, 오빠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어.’

그녀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재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오빠인 아돌프는, 전 인류에서 단 하나의 인종만이 살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학살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모든 인류를 기계로 바꾸어 인종을 개조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가진 인간.

‘하지만, 결국 세상이 평화로운 건 오빠 덕분이니까.’

패전하지 않은 세계에서, 파울라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이다.

‘지금 내가 반란군의 수장으로서 관리를 하는 것도 오빠의 생각이고.’

당연하게도 대중들에게 있어서, 독재란 불협화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조율의 역할을 파울라에게 맡겼다.

‘설마 통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파울라는 자신이 이리도 손쉽게 반란군인, ‘백장미단’의 수장을 차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히틀러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있어서 완전히 적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 걱정하지 마라. 파울라. 어차피 거짓말을 천 번, 만 번하면 진실이 되기 마련이다. 대중들은 누군가의 의지하는 인간들의 집합체다.

‘오빠의 말대로 됐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울라는 그저 자신의 혈육을 막아야 한다는 거짓말을 내보인 것만으로 실권을 쥐게 되었다.

오빠인,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런 파울라에게는 아돌프로부터의 특명이 있었다.

- 반란군을 결성했다는 것은 그만한 병기를 손에 쥐었다는 말과 같다. 파울라. 그것을 완성시키도록.

백장미단이라는, 이미 사라진 단체가 되살아날 정도의 병기.

파울라에게는 그것을 완성시켜, 아돌프에게 바쳐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뭐가 불만인 건지.’

백장미단에게 있어서 저 병기는 최후의, 비장의 수단이나 다름없었으나-.

그녀에게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다.

저 거체의 병기는 움직여 주기만 한다면 이미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검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고.’

전투적인 성능 따위는, 오빠인 아돌프의 영역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나를 보는 눈도 심상치 않아.’

더군다나, 파울라는 인간인 이정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한 상태였다.

오히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눈초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다.

“뭐… 의미 없겠지만.”

설령 정호가 자신의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아니, 오히려 속셈을 알고 있다면 아돌프 히틀러가 뒤에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

아돌프를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없는 한, 자신을 건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상관없어. 괜찮아.’

반대로 파울라의 입장에서는 편하기 그지없다.

그 거체를 지니고서 도망가지도 못하지 않은가.

자신은 그저 병기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아돌프’를 불러, 회수를 요청하면 되는 것이다.

대항 방법이 없는 인간은 붙잡히는 것외에는 살 수 있는 방도가 없다.

그저 병기의 일부분으로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아 그건 좀 불쌍할지도.”

차갑게 식어 버린 심장처럼.

기계 같은 감상을 흘리는 파울라는 병기고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정호 씨는 지금 어디 있어? 지금 바로 시운전하는 걸 보고 싶은데.”

곧장 본론을 꺼내는 파울라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다만.

끼이이이익- 덜컹.

“…뭐야?”

문이 열리고서,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파울라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 어제의 밤과 그리 다를 것은 없었다.

백장미단은 여전히 무구를 만드는 데 열중이었고.

“오셨습니까. 단장님.”

“단장님.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길 그랬어요. 얼마나 기대했었는데.”

자신의 등장에 태평하게 인사나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파울라는 그에 답하지도 않은 채,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어디 갔어?”

“네? 무얼요?”

분명 어제와 같은 장면.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지 않은가.

“어디 갔냐고!”

파울라는 소리를 빼액 내질렀다.

병기고의 중앙.

도시의 심장부인 100만 마력의 핵융합로와 함께.

“저기 있던 병기……!”

가장 중요한 거대 병기가 사라져 있었다.

* * *

네오 유토피아는 총 4구역으로 이루어진 던전이다.

중심부인 A지역부터 시작하여, B, C, D.

그 알파벳의 의미는 분명 던전의 중심부에서부터의 거리에 따라 설정되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거리가 멀다는 것은 곧 중요도가 떨어지는 지점이라는 말과 같다.

그 말인즉.

“이게 무슨 일이여. 충전기가 아예 먹히질 않아.”

“마력이 아예 들어오지 않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D구역의 혼란이 알려지는 것은 조금 이후의 일이라는 말이다.

“어, 어제 내가 제어기에 충전을 해 뒀던가?”

D구역의 도심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혼란을 빚는 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심장이 멈추면 곤란해…… 곤란하다고!”

D구역의 마력을 담당하고 있는 핵융합로가 사라졌다.

그들의 심장은 모두 제어기라는 형태의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마당.

숨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어, 어떻게 하냐고!”

와장창!

목숨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폭도로 돌변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우리 심장을 돌려 달라고!”

손에 집어든 부품들을 거리로 내던지는 이들의 얼굴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터벅, 터벅.

하나,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

거리를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과연.’

평화로운 도시에 혼란을 일으킨 주범, 정호였다.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거겠지.’

헤카테의 주력 스킬인 마법 소환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고렘 소환과도 같은 마법이다.

이를테면 헤카테가 지금껏 만들어 낸 인공 생명체를 꺼내어 쓰는 용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커다란 녀석이 모두 들어갈 줄이야.’

훔치는 것은 실로 간단하기 그지 없었다.

헤카테가 손을 내뻗어, 자신의 소환수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모빌슈트는 통째로 사라졌으니까.

[마법 소환수 Lv5]

‘단숨에 5레벨까지 올랐고.’

헤카테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바로 이 스킬의 레벨에 있었다.

- 마법 소환수는 제물이 된 재료를 토대로, 추가적인 스탯을 얻는다.

- 추가 스탯 : 전체 능력치 250 상승.

아직까지 제대로 된 무구를 손에 넣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50이라는 추가 스탯이 붙는 기염을 토해 내고 있었다.

‘아직은 모자라.’

다만, 정호에게 믿음을 주기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스탯이었다.

처음 만났던 기갑 중대 정도라면 문제가 없었으나, 그 뒤에 있는 화력을 생각해 본다면 무리가 따랐다.

터벅, 터벅.

한데도, 정호는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었다.

“저 자식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누구 놀리는 거야 뭐야. 어?”

단순한 충전이라면 D구역이 아닌, C구역으로 가면 되는 노릇이었으나.

철저한 계급사회로 돌아가는 그들에게는 택할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C구역의 녀석인 모양인데. 그렇게 웃기냐 어?”

하지만 단 한 명.

마치 이 사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 C구역의 시민이라면 말이 다른 법이다.

“죽고 싶은 모양이지?”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정호는 미소를 내지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이런 분위기와 혼란이야 말로, 정호가 원하는 바였다.

기이이잉-

“정지. 모두 정지.”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하던가.

곧장 기계음과 함께 나타나는 수십 기의 기갑 병대.

우르르르-

“아, 아아……! 오셨습니까! 지금 D구역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겁니까! 마력의 잔여가 얼마 남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갑작스레 등장한 기갑 병대의 출현에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터인데, 그것을 해결해 줄지도 모르는 이들의 출현이 아닌가.

‘그럴 리가 없지.’

하나, 정호의 생각처럼.

“모두 떨어져라. 반란, 폭동은 모두 제거 대상이다.”

기이이잉-

기갑 병대의 포대가 모두 D구역의 시민들에게 향했다.

“이게 무슨 짓이요! 우리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인……!”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을 쳐보지만 이미 기갑 병대의 조준선에 들어온 이들이다.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퍼어어엉-!

시민들을 향해 거침없이 발포되는 하나의 포성.

“어, 어어……!”

“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아무리 몸의 일부가 기계라 하더라도.

연이어 이어질 포격 속에서 살아남을 인간 따위는 없으리라.

‘헤카테. 준비는?’

정호는 그런 상황을 찬찬히 확인하며, 헤카테를 불렀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아. 이런 흉한 녀석을 꺼내기에는… 정말이지 죽을 정도로 싫은데. 하아, 어쩔… 수 없겠지.’

헤카테는 특유의 강박증 덕분에, 쉬이 허락 신호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급박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결국은 손을 든 모양이었다.

“헤카테, 마법 소환수. 모델, 메카헤카세.”

“아으……! 알았다고!”

투웅-! 투웅-! 투웅-!

폭우처럼 쏟아지는 포탄들.

피와 살점이 난무할 것이 뻔한 상황.

그 속에서.

기이이이이잉-!

기괴한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형체가 D구역의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시운전……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뭐?”

파울라는 단원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한다는 말이야? 이 멍청이들!’

시운전이란 어디까지나 병기고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밖으로 향하는 순간.

D구역의 전원이 모조리 날아가 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한데, 단원들은 그것도 모르는 눈치가 아닌가.

“단장님이 허락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오전에 인사까지 나눴는 걸요.”

“으으으으……!”

파울라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복장이 터지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한마디로, 정호라는 인간은 그 거대한 기체를 훔친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유유히 가져갔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네?”

“시운전을 한다고 했으면, 어디에서 한다는 말이 있었을 거 아냐!”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말들이 연달아 튀어나오고는 있었으나, 파울라는 그럴 정신 따위는 없었다.

“D구역 거리라고 했습니다.”

“…D구역? 거리?”

점입가경.

거리에 그만한 기체를 꺼낸다는 것은 전면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훔쳐 놓고서, 거리로 나간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아……! 서, 설마!’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치솟아 오르는 불안감에 파울라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어, 얼른 가야 해. 싸우기 전에!”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위한 시운전이……!”

“그게 문제라고!”

콰아앙-!

문을 박차고 나가는 파울라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떠올라 있었다.

* * *

파울라는 곧장 시운전 중이라는 D구역의 거리로 내달렸다.

‘안 돼. 절대. 절대 안 돼.’

지금 전투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아니,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MK-2호기와 기갑 병대가 싸우는 일만은 일어나서는 안 돼!’

MK-2호기는 어디까지나 백장미단의 병기다.

그것이 자신의 오빠인 아돌프 히틀러의 군대와 전면전을 벌인다면.

백장미단이 나라에게 대놓고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름 아닌 자신이 오빠인 아돌프를 향해 전면전을 내거는 일이나 다름없단 말이다.

쿠웅-! 쿠웅-!

하지만 거리에 도달하여, 파울라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

“하, 하하…….”

그것을 확인한 파울라의 입에서 허탈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쿠웅-! 쿵-!

벌써 한바탕 벌인 것인지, 주변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전투가 벌어진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MK-2호기’의 패배로 이어지는 것이 이상적이었겠으나.

쿠웅- 쿠웅-!

거리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기체는 단 하나뿐이다.

연신 주먹으로 부서진 기갑 병대의 로봇을 파괴하고 있는 기체.

그것은 분명 MK-2호기였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파울라의 귀를 때려댄다.

그것이 마치 자신을 지옥으로 이끄는 절규와도 같이 느껴진다.

털썩-

결국 힘이 빠져, 무릎을 꿇고 마는 파울라.

기이잉-

그 소리에 한참 박살 난 로봇을 부수고 있던 MK-2호기가 고개를 돌린다.

“왔나? 백장미단 단장.”

“…하지 마.”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일지 뻔한 탓에 파울라는 고개를 푸욱 숙였다.

이윽고, MK-2호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정호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더 이상 독재는 없다! 백장미단 단장인 파울라 히틀러는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죽이고,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울려 퍼지는 환호.

그 속에서.

“네가 원하는 바가 이것 아니었나?”

능글맞은 정호의 목소리가 낙심한 파울라의 귀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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