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정호는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모빌 슈트와 설계 도면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때? 파츠들이 상당히 고급 부품들이라 상당히 구하기 힘들기는 했지만 거의 흡사하지?”
파울라가 옆에서 신이 난 듯, 떠들고는 있었으나.
정호에게 그럴 정신 따위는 없었다.
‘이상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물론 이곳, 네오 유토피아라는 던전은 메카닉, 즉 기갑 병기들이 판을 치는 장소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모빌 슈트라는 형태는 그런 병기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똑같군.’
던전에 진입하기 전, 공대원으로부터 받은 설계도와 차이점을 찾기가 어려운 마당이었다.
‘어떻게 이걸 구할 수 있는 거지?’
정호가 가지는 의문은 이런 설계도를 어떻게 이들이 가지고 있느냐였다.
이 설계도는 어디까지나 톨비아가 아직 게임이었던 시절 유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그것을 현실이 된, 침공 직전의 던전 내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게다가…….’
정호는 눈을 흘겼다.
“아직 움직이지는 않지만, 움직여 주기만 한다면 가장 강력한 병기임에 틀림이 없어.”
분명 이 시대의 인간들은 어떤 병기인지조차 모를 게 분명할진대.
자신감에 찬 파울라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마치 이 모빌 슈트가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듯한.
묘한 기시감에 의한 확신.
그것이 정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도통 움직이질 않는 거야. 분명 설계도와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100만 마력이라는 연료가 있는데도.”
파울라의 투덜거림에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였군.”
“맞아. 우리로서는 도저히 움직이게 할 수 없었으니까. 이 부분이 문제인 것 같거든.”
설계도 도면에는 콕피트, 즉 탑승자가 있는 위치에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이 존재했다.
“이건, 분명 심장이야. 탑승자의 형태에도 기계 부품이 들어가지 않는걸 보면 순수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움직일 수 없다는 거겠지.”
충분히 예상해 볼 법한 생각이었다.
“자, 자. 얼른 타 보라고.”
몸이 달아오르기라도 하듯, 정호의 등을 떠미는 파울라.
하나, 꼬마 정도의 모습의 파울라가 정호를 밀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니, 나도 이건 못 움직여.”
“무슨 소리야?”
난데없는 말에 파울라가 되물어 오기는 했으나.
정호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저 불꽃은 심장이 아니니까.’
설계 도면에 새겨진 불은 100만 마력의 핵융합로도, 그렇다고 인간의 심장도 아니다.
오히려 더 직관적인.
‘헤카테의 횃불.’
페르세포네를 찾으러 다니는 데메테르의 앞길을 비추어 주었다던, 그 횃불을 의미하고 있으니까.
결국 저 모빌 슈트를 움직이게 하기 위한 최소 조건은.
“헤카테.”
대지의 여신, 달의 여신, 저승의 여신, 주술의 신 등 수많은 호칭으로 불리는 신.
헤카테가 존재해야 비로소 힘을 내보일 수 있는 물건이었다.
화아아아악-
최초의 육 성 등급 화신.
헤카테는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퀴퀴한 지하 세계에서 나타났다.
“어휴, 너희가 하데스냐? 불 좀 켜고 살아.”
불평을 터뜨리면서.
* * *
솔직히 말해, 정호는 큰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헤카테가 제아무리 유저들에게 저평가를 받을 정도로 떨어지는 스탯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오 성 등급의 화신들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다.
‘신들이란, 대부분 오만하니까.’
신의 파편, 그러니까 피를 이은 것만으로도 헤라클레스가 가지는 자부심은 상당했지 않은가.
한데 헤카테는 명실상부 신, 그 자체다.
정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공대원에게 물어본 바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는 하였으나.
그래도, 주술의 신이라고까지 부르는 이를 향해, ‘기계 부품’을 포함한 소환수를 요구한다 하여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사실상 신의 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나, 직접 소환해 본 헤카테는 정호의 그런 걱정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흥미로운 내용이야.”
설계 도면을 받아 보자마자, 헤카테가 꺼낸 이야기.
“안 그래도 생물로서는 한계가 있었거든.”
애초에 헤카테의 복장 자체가 남달랐다고 할 수 있었다.
새하얀 가운에 커다란 안경.
어깨까지 내려오는 주황빛 머리칼을 깔끔하게 묶어 늘어뜨린 그 모습은 신이라기보다는, 과학자에 가까웠다.
“주인, 이런 설계도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는데. 연구해 봐야겠어.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 같거든?”
오히려 학구열이 어마어마하여, 정호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실로 만족스러운 상황.
다만 그런 헤카테에게도 단점이 존재했는데.
“어우, 먼지 떠다니는 것 봐. 너희들은 바퀴벌레랑 친구야?”
그녀에게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는, 강박증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거기, 너.”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새하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헤카테는 손짓, 발짓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예, 예……!”
“여기 청소한 것 맞아?”
스윽-
새하얀 장갑을 낀 검지로 쓸어, 새까만 오일이 묻어나자 헤카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시 해, 당장!”
“아, 예……!”
바삐 움직이는 백장미단의 모습에 파울라가 정호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난 청소는 질색이야.”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으며, 정호를 방패로 최대한 헤카테의 눈에 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거기, 꼬마. 아니, 할머니인가……? 언데드? 됐어. 그냥 있어.”
“뭐? 할머니?”
“아닌 걸 증명하고 싶으면, 당장 청소 시작해.”
“이익……!”
하나, 그런 헤카테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법이었다.
난데없는 대청소의 시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헤카테가 정호를 향해 다가왔다.
“으음.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를 불렀다는 건, 주인이 급하다는 거니 이 정도로 해야겠어. 모두 해산!”
아직도 불만이 많은 것인지 미간이 찌푸려져 있기는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었던 모양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누구신데 그래, 저분이?”
“모르겠는데?”
“단장이 데려온 것 아니었어?”
단원들은 순순히 말을 따랐으면서도, 자신이 어째서 따랐는지는 모르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정호는 그런 이들의 모습에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청소 따위에 권능을 쓰는 신이라니.’
[권능: 경계의 여신]
- 중간, 중립의 이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거부할 수 없다.
전투 관련의 권능은 아니었으나, 이런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기에는 충분한 권능.
한데, 그것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소에 이용해 먹는 모습은 헤카테가 얼마나 깔끔함을 추구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주인, 아무래도 부른 건 저것 때문인 것 같은데.”
“알아보겠어?”
“당연하지.”
헤카테는 거대한 모빌 슈트를 가리키며, 말을 하기는 했으나 도저히 찌푸려진 미간이 펴지질 않았다.
“하지만 저건 실패작이야. 제대로 써먹진 못할 거야. 초기 설계도대로 나오지도 않았고, 주인이 쓰기에는 파츠가 부족해.”
헤카테 특유의 강박증이 다시금 재발한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알고 있어.”
이번에는 정호 또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빌 슈트를 이용하는 데에는 헤카테의 힘이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나.
그것을 전투에 활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호의 몫이었다.
‘화력이 포격에 치중되어 있어.’
대부분의 병기가 미사일과 포탄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화신을 이용한 전투를 모르는 백장미단으로서는 최선이었을 터다.
‘이래서야 움직인다 해도, 반란군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겠어.’
이래서야 그저 커다란 포신이나 다름없다.
100만 마력이라는 에너지원이 아까워지는 마당이다.
“말도 안 돼!”
하지만 그것에 공감하지 않는 이도 존재했다.
“설계도와 다른 부분은 분명 존재하지만, 실패작이라니. 절대 있을 수 없어.”
파울라 히틀러였다.
그녀는 헤카테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 남지 않았어. 다시 만들어 낼 시간은 없다고.”
분명 침공까지는 세 달이라는 꽤나 여유로운 시간이 남아 있었으나.
무슨 일인지 파울라는 조급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실패작은 실패작이라고 하는 거야. 적어도 주인이 사용할 주력 장비 그리고 화신들이 이용할 마법 포대 스무 개 정도는 있어야 해. 이대로 전투를 벌여 봐야 제대로…….”
그런 파울라를 설득하는, 헤카테의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으나.
“거기까지 하지. 이대로 진행하지. 그래도, 헤카테의 의견처럼 검 하나 정도는 구해 주었으면 좋겠군. 그 정도라면 며칠 걸리지도 않을 테니 괜찮겠나?”
정호는 그런 헤카테를 만류하며, 파울라의 편에 손을 들었다.
“주인이… 그런다니까… 뭐……!”
헤카테는 강박증이 도진 것인지 이를 바득바득 갈기는 했으나 토를 달지는 않았다.
“…뭐. 그, 그 정도라면.”
파울라 또한 더 이상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한 정호의 태도에 결국은 말을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그럼……! 검이 완성되는 대로.”
“물론이다.”
시원한 정호에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인지, 파울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따라와. 방으로 안내할게.”
어린아이처럼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는 파울라.
다만, 그 얼굴에는 미소 한 점 없었다.
* * *
지하의 세계에도 밤이 찾아왔다.
지상에서의 소음에 어지러웠던 낮과는 달리, 밤은 이따금 들려오는 기이한 엔진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편이었다.
“…….”
침대에서 한참이나 몸을 눕히고 있던 정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
“헤카테, 자고 있나?”
“아니. 이런 먼지 구덩이에서 어떻게 잠을 자겠어.”
곧바로 헤카테의 대답이 돌아오자, 정호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움직인다.”
“그 말만 기다렸어.”
정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밤손님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도둑이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리며, 몸을 움직였다.
‘일어나기 전에 MK-2, 아니 모빌 슈트는 가져가야겠어.’
정호는 백장미단이 소유하고 있는, ‘MK-2’를 몰래 가지고 도망칠 계획이었다.
분명 파울라가 준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몰래 훔치는 것은 당연하게도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던 탓이다.
“어쩜 그런 가증스러운 언데드가 다 있담.”
분명 파울라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혈연인 아돌프 히틀러를 쓰러뜨리고서, 바로잡는다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명분이.
하지만 정호는 결단코 파울라를 믿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인간에게 강력한 병기를 주는 것부터 잘못되었는데.’
공짜로 주는 것은 일단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그것을 덥석 던지는 인간은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심일 뿐이다.
“헤카테, 널 소환하기 전까지는 나도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그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
그것은 헤카테가 가진 하나의 능력 덕분이었다.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낮에 이루어진, 단순한 청소에서 비롯된 것.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림도 없어.”
결국에는 청소에 참가하기는 했으나.
녀석은 ‘경계의 여신’인 헤카테의 말을 거부했다.
“먼저 속인 건 그 녀석이니까, 아무런 불평을 가지지도 못하겠지.”
터업-
화아아아악-!
“암, 그래야지. 그게 인간의 됨됨이라는 거니까.”
헤카테가 모빌 슈트에 손을 대자, 순식간에 빛이 퍼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