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아돌프 히틀러에게는 혈연이 없다시피 했다.
친남매들은 대부분이 요절을 했고, 본인조차도 결혼 직후 자살했다.
사실상 ‘히틀러’라는 가문은 히틀러가 죽음으로써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이어진 혈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굽이굽이 골목을 헤쳐, 겨우 도달한 허름한 집.
자그마한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만이 제대로 된 집 안에서 정호는 눈을 흘겼다.
타닥, 타닥, 타닥.
“아이, 가스 다 썼나 보네.”
자그마한 몸체의 꼬마가 연신 움직이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파울라.’
이름을 되새김질 하는 정호의 고개가 기울었다.
파울라 히틀러.
아돌프에게 있어서 유일한 직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런 이의 집이 이런 허름한 장소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것은 아닌데.’
병사들이 파울라의 얼굴을 보고서, 기겁을 하지 않았던가.
그 모습과 대조되니,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 마셔. 위장이 기계가 아니라면, 먹을 만할 거야.”
타악.
그런 기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라도 하듯.
파울라가 타 온 홍차에서 나는 내음은 실로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누가 보아도 값비싼 향이지 않은가.
“그래서.”
하지만 정호는 그 홍차에는 손도 대지 않고서, 파울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미행한 거지?”
처음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부주의를 탓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파울라는 분명 갑작스레 나타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녀석은 정호가 원하는 물건을 정확히 짚었지 않은가.
“내가 살려 주기까지 했는데, 바로 취조하는 거야? 늑대 아저씨 무서워~.”
“장난은 그 정도로 하지.”
어물쩍 넘어가려는 파울라를 향해, 정호는 한 줌의 표정 변화도 없이 대응했다.
파울라라면, 아돌프 히틀러의 동생.
제아무리 던전 내의 존재라고는 하나, 제2차세계대전에서부터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난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신은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
“안 통하네. 요즘 젊은 애들한테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울라는 한숨을 크게 내쉬는가 싶더니, 곧장 태도를 달리했다.
“물론 처음부터 지켜본 건 아니야. 온몸에 기계 한 점 없는 인간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왔을 뿐이니까.”
그제야 파울라가 실토하자 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몸 하나둘 정도는 기계로 된 곳이었나.’
정호가 이곳, ‘네오 유토피아’를 기괴한 과학이 발전한 장소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몸에 문제가 생기면, 치료보다는 기계로 대체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럼.’
정호는 눈을 흘겨, 파울라를 바라보았다.
키잉-
“홍차도 못 마시는 몸이지만, 이 나이를 먹고서 잔병치레를 안 하는 건 좋지.”
잔병치레의 문제는 아니었으나, 정호는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아무튼 자네를 찾아왔더니, 글쎄 최소 50만 마력인 융합로를 찾고 있는 게 아니야? 그것도 대로변 한복판에서.”
호호-
입을 가린 채, 겉모습과는 다른 웃음소리를 흘리던 파울라.
한데, 다음 순간.
홱-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곧장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100만 마력이면 도시 두세 개는 박살 낼 수 있는 전력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물건을 시장통에서 찾을 리가 없어. 아니, 찾아서도 안 되지. 오빠의 귀에 들어가면 곧장 사형감일 거니까.”
파울라는 손깍지를 쥔 채, 단언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피가 흐르는 인간. 너는 필시 다음 침공의 대상, 또 다른 지구에서 온 이른바 ‘공략자’일 테지.”
그 말에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알고 있나?”
파울라는 침공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존재까지 꿰뚫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마다. 오빠가 이미 한 달 전부터 전시 선포를 했으니까. 모든 자원이 군사 공장에 들어갔어. 덕분에 반란 분자들은 죽을 맛이겠지. 신무기의 실험 대상이 될 뿐이니까. 내 오빠지만 참 철저하다니까.”
그 말에 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신무기라니…….’
어째서 톨비아가 자신에게 퀘스트를 부여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던전은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림자 지하 성채는 이미 죽어 있는 언데드들이 대부분이었고.
설사 숨을 쉬고 살아 있는 해적들이 존재하는 크라켄의 역습조차도 더 강해져 봐야, 그 한계가 명확한 법이니까.
하지만 과학이 발전한 시대의 무기란, 하루하루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보스 몬스터가 자아를 지니고서, 신무기까지 만들어 내는 마당이라면.
‘침공 때엔 공략법, 난이도 자체가 달라지겠군.’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톨비아는 자신에게 퀘스트를 부여했을 터다.
다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내용을 파울라 히틀러라는, 아돌프의 여동생이 알려 주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자신의 오빠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서브 퀘스트]
[혈육상잔]
- 아돌프 히틀러를 처치하십시오.
서브 퀘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보스 몬스터’ 처치라는 실로 웃기지도 않은 내용을 요구한 것이 파울라라는 사실이다.
호호-
파울라는 얼굴을 가리며 웃고 있었으나, 힐끗 보이는 눈빛만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뚝-
잠깐의 웃음 끝에 찾아오는 잠깐의 침묵.
“그거야…….”
이내, 굳은 얼굴을 한 파울라가 말을 이었다.
“내가 반란군, 아니 백장미단을 이끌고 있으니까.”
파울라 히틀러.
그녀는 반란군의 총사령관이자.
백장미단의 단장이었다.
* * *
본래 백장미단(Weiße Rose)은 1942년, 나치에 대항하여 뮌헨 대학교에서 대학생들과 지도 교수로 이루어진 비폭력 단체였다.
“그들처럼 비폭력 단체까지는 아니지만, 상징성이 있어야 사람들이 모여드는 법이니까.”
파울라는 그런 백장미단을 비밀리에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 왔다.
“이야. 정말 덕분에 살았다니까. 네가 없었으면, 단원들을 잃을 뻔했어.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런 위기에 몰고 간 건 정말 미안해. 내가 나서려면 그래도 명분이 필요했었으니까.”
굳이 기갑 중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까닭도, 결국은 자신의 단원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건 됐다.”
하지만 정호는 그런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니, 이미 잊었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설마하니, 100만 마력의 융합로를 무상으로 제공할 줄이야.’
아돌프 히틀러, 보스 몬스터를 죽이는 조건으로 줄 것이라 예상했던 핵 융합로였으나.
- 보상으로 주면, 어떻게 쓰러뜨리게? 할 수 있어?
파울라가 선뜻, 그 융합로를 주겠다고 선언했던 탓이다.
‘무얼 믿고 주는 건지 모르겠네.’
오히려 너무도 간단해, 의심이 들 지경이다.
터벅, 터벅.
정호는 어지러운 골목길을 제집 안방처럼 거침없이 걸어가는 파울라의 뒤를 따르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는 않았다.
차라리 적들의 기갑 중대와 전투를 벌인 직후라면 모를까.
정호가 정말로 아돌프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없을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대뜸 안내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이런 퀘스트가 존재한다고 알려지지도 않았고.’
정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이런 퀘스트 루트가 있었는지 재차 검토했으나.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파울라 히틀러라는 NPC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어.’
그뿐이 아니라, 톨비아 게임 내에는 ‘반란군’, ‘백장미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
“그래.”
밝은 미소로 촐랑거리며 앞장서는 파울라를 바라보는 정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골목길을 빠져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펼쳐지는 대로변.
“당신 오일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곳은 정호가 처음 마주했던 거리와 그리 다를 바가 없어 많은 상인이 즐비해 있었다.
아니, 완전히 판박이처럼 느껴졌기에 잘못 도착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으나.
타박. 뚝-
그곳에 파울라가 발을 내딛는 순간, 의문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
“…….”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모두 하던 행동을 멈추고서, 눈동자만을 데구르르 굴려 정호와 파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의 몸 80프로가 기계인 세상이야. 기계로 인간을 대체해도 알아차리는 녀석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럼 이 녀석들 모두.”
“조금 전에 있던 거리 녀석들의 복제판이야. 아, 여기다.”
파울라는 바닥에 엎드려, 땅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탕탕, 탕탕, 탕탕.
그 땅에서 울려 퍼지는 꽤나 기묘하기 짝이 없는 소리.
그것을 한참이나 일정한 규칙으로 두들기나 싶더니.
“장미.”
땅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치킨. 손님 하나 있어.”
끼이이익-
파울라가 암구호를 댐과 동시에 바닥이 열리고, 나타나는 사내가 하나.
“단장님, 오셨습니까? 손님이라니, 도대체.”
“지구인이야.”
“예? 어, 얼른 들어오시죠.”
지구인이라는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이 실로 기묘하기 짝이 없었으나.
정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파울라를 뒤따랐다.
후웅- 치익- 치익- 치익-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실로 길었다.
위아래에서 바삐 돌아가는 기계 부품들과, 증기들은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 도시의 모든 전력이 이 아래에서 공급되고 있거든.”
정호는 자신이 안내받는 장소와, 파울라의 의도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100만 마력이라는 건, 도시 전력을 말하는 거였군.”
“맞아. 조금씩 빼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통째로 꺼내면 도시에 영원한 밤이 찾아와.”
안내를 하기 위해, 앞서 있던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단장님. 그걸 꺼내면 곧장 전시 상황일 겁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사내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의문이 떠오른 정호였으나.
그것을 해소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긴 계단이 끝을 보일 때쯤, 차츰 보이기 시작하는 백장미단의 거처를 보자마자.
“…미친.”
정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게.
“아, 단장님. 오셨습니까?”
“단장님!”
“덕분에 잘 도망쳤습니다.”
파울라를 맞이하는 수많은 단원의 뒤편.
그곳에 있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물건은 분명 도시 전력을 담당하고 있는 핵융합로임에 틀림이 없었으나.
우우우웅- 우우웅-
치익- 치익-
그 핵융합로를 중심으로 거대하기 짝이 없는 기갑 병기가 증기를 내뿜으면서 서 있었으니까.
“아마, 우리가 왜 또 다른 지구에서 온 너를 믿는지 영문을 모를 거야.”
파울라의 말이 귀를 때렸다.
“우리는 너를 믿는 게 아니야.”
탕탕-!
어느새 거대한 형체의 옆에 다가선, 파울라가 로봇을 두들겼다.
“우리가 만든, MK-2호를 믿는 거야.”
정호는 어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녀석들이 MK-2호라고 하는 그 내용물은 분명.
‘이런 미친, 메카 헤카테잖아.’
정호가 만들려 했던, 인공 소환수 그 자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