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네오 유토피아]
- 세상에는 오로지 단 하나만의 국가가 살아남아 평화를 되찾았다. 세계에는 단 하나의 수장만이 존재하며 그를 필두로 한 새로운 이상향, 유토피아를 건설했다.
- 입장 인원: 1인
- 최대 입장 가능 인원: 20인
터벅, 터벅.
정호는 ‘네오 유토피아’의 던전으로 거침없이 진입하면서도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설명은 무슨,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네.’
결국 던전이라는 것은 공략하여 깨부수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다.
한데, 이상향이니 유토피아니 하는 이야기는 던전과는 꽤나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닌가.
“뭐… 이 모습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가.”
정호는 던전을 둘러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던전 내부는 이미 해가 지고서, 새하얀 달빛이 떠오른 밤의 시간이었다.
보통의 던전이었다면 횃불 하나를 의지한 채 움직여야 했겠으나.
깜빡. 깜빡.
화려하기 짝이 없는 네온사인들이 빛나고 있는 도시의 풍경.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조금은 과할 뿐이지, 분명 정호가 살고 있는 현대의 도시 풍경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어이, 거기 잘생긴 총각. 이리 와서 오일이라도 사 가. 효과 죽인다우.”
“최신식 스마트 기기는 어떻습니까?”
분명 던전의 안임에도 불구하고, 유저인 정호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수많은 사람.
몬스터라고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유토피아라고.’
다만, 정호는 이 평화를 무너뜨려야 하는 입장.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정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유토피아를 표방하고 있는 이 평화로운 던전의 본질을 알고 있던 탓이다.
‘나치 독일이 세계 정복한 곳이 유토피아라…….’
그도 그럴 게.
네오 유토피아.
이곳은 2차 세계 대전, 히틀러를 필두로 한 나치 독일이 승리한 세계였으니까.
“아유, 이 오일 하나면 삐걱거리는 팔다리가 다 낫는다니까?”
“이 스마트 제어기 하나면, 당신도 쿵쾅 뛰는 심장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이들은 분명 인간이었으나.
그들의 팔다리는 새까만 얼룩이 묻어 있는 기계로 되어 있다.
심지어는 가슴팍을 열어 기계로 되어 있는 심장을 꺼내는 모습.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화로웠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뚜벅. 뚜벅.
하나, 정호는 당황하지 않고 길거리 상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어서 와요.”
등 뒤에 검을 찬 정호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상인들은 호의롭게 맞이했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른다면, 녀석들을 한 번에 몰살하는 것도 가능할 터.
던전에서 적을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정호였기에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기는 했으나.
“그래서 이건 얼마지?”
오히려 상인들이 진열해 둔 상품을 만지작거리며, 가격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소형 핵융합로 말씀이시죠?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입니다. 사실 스마트 제어기가 최신이라 좋기는 하지만, 정작 중요할 때 뻗어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거든요.”
“마력은 어떻지?”
“물론 10만 마력은 거뜬히 넘깁니다.”
탕탕-
핵융합로라고 하더니, 손으로 텅텅 두들기는 모습이 불안하기 그지없었으나 그것이 나름대로의 안정성을 어필하는 모습이었다.
“더 좋은 건 없나? 100만, 아니 50만 마력 정도라도.”
“아유, 10만이면 대전투용 병기에도 들어갈 정도입니다. 100만이라니, 그런 방대한 마력이 들어가는 건 도시급 전력뿐입니다요. 구할 수도 없거니와,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게 문제죠, 이게.”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가격이 문제라고 하는 상인이었으나.
‘겨우 10만?’
정호가 걱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 구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적어도 50만 마력은 있어야 굴러간다고 했는데.’
정호가 야시장이나 다름없는 던전의 초입부에서 쇼핑을 하는 까닭.
- 적어도, 50만 마력 정도는 되어야 해요. 그 정도가 아니면, 제대로 된 모빌 슈트는 만들지 못해요. 아니, 50만도 굴러가는 정도지 100만은 있어야 해요.
바로 헤카테의 ‘마법 소환수’.
인공 생명체라는 그 고렘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한 매개체였던 탓이다.
“50만 마력 이상의 융합로를 찾는다면, 여기에는 없어요. 애초에 나라가 금지한 수준의 융합로가 아닙니까.”
단순히 구매를 하면 되는 줄만 알았던 것과는 달리, 50만 마력이라는 최소 조건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쯧. 알았다.”
정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구매처까지 물어볼 것을 그랬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지금이라도 던전을 나가서 확인해 봐야 하나?’
제아무리 평화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곳은 어디까지나 던전이다.
‘언제 경비대가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제대로 된 신분증 하나 없는 정호로서는,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하던가.
쿵- 쿵-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형체들.
그것을 바라보며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네.’
* * *
웅성웅성.
야시장의 거리가 소란스럽게 변했다.
“얼른! 얼른 집어넣어!”
“뭣들 하고 있어, 얼른 길 터!”
호객 행위를 이어 나가고 있던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한가운데에 길을 펴기 시작했다.
차악- 쿵!
이어서 발뒤꿈치를 거세게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팔을 내뻗는다.
한시가 급한 마당.
그에 정호는 발걸음을 바삐 하여, 굽이굽이 어지럽기 짝이 없는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지크 하일!(Sieg Heil)”
“지크 하일!”
몸을 숨기자마자 울려 퍼지는 경례 구호.
그와 동시에.
치르르르- 쿵!
치르르르- 쿵!
도대체 2차 세계 대전에서 얼마나 지난 시대인 것인지.
배 부분에 포문을 달고 있는, 두 발을 내딛는 거대한 기갑 병기들이 쉴 새 없이 탁 트인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쯧.”
정호는 아직 원하는 물건을 얻지도 못한 채, 적들과 전면전을 펼칠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혀를 찰 뿐이었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4성 등급의 화신… 아니, 저 지휘관급은 5성이라는 거지.’
쿵- 쿵- 쿵-
도대체 끊이지 않는 그 기갑 병기의 행렬에 기가 찰 지경이다.
물론, 전면전으로 이루어진다면 쓰러뜨리는 것에 문제는 없겠으나…….
“D-4 지역에 나타난 7명의 반란 분자를 섬멸한다!”
““와아아아아-!””
저들이 고작해야 몇 명 되지도 않을 반란 분자를 처리하기 위한 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보다 더한 병기가 아직 이 도시 안에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은 정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래서야, 장비를 구할 수도 없겠어.’
아직 가장 중요한 핵융합로조차 구하지 못한 마당에, 이리 쫓겨만 다닌다면 도저히 모빌 슈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차라리 나가서……!’
재차 장비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당장이라도 나가야 할 판.
스윽-
정호는 늑대 가죽 코트를 푹 눌러쓰고서 기갑 병대가 지나갈 때까지 어두운 골목에 몸을 숨겼다.
쿵- 쿵-
적막 속에 기갑 병기들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거리.
그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나갈 해프닝에 불과한 일.
‘생각보다 물어볼 게 많네.’
그에 정호는 아예 거리에서 시선을 떼고서, 던전을 나간 직후의 질문 리스트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데.
“늑대 아저씨, 여기서 뭐 해요?”
너무도 집중한 탓일까.
아니면, 그저 방심을 했던 탓일까.
분명 완벽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호를 정확하게 알아보고서, 말을 내거는 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십 대 초반의 작은 꼬마아이가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아차!’ 싶은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하니 모든 인간이 거리에 나가 있는 그 순간에 이런 작은 꼬마가 골목에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꽈악-
황급히 꼬마의 입을 막고서,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인 정호.
‘들키지 않았을 거야.’
제아무리 거리의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거대한 기갑 병기들이다.
소음은 분명 대단할 터.
고작해야 꼬마의 목소리로…….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기이이잉-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리.
‘이런… 젠장!’
정호는 자신이 얼마나 안일한 판단을 내렸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청기……!’
꽤나 오래된 기억이었기에, 떠올리는 것이 늦었다.
에너지 발생 감지기라는 꽤나 멋들어진 이름으로 만들어진, 보청기가 녀석들의 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거기, 누구냐!”
“신경 쓸 것 없다! 본 중대가 지나가는데,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반란 분자나 다름없는 일!”
기이이잉-
기이이잉-
건물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격을 쏘아 댈 기세이지 않은가.
“당장 나와서, 신분증을 제시하라!”
도망을 칠까도 생각했으나.
골목이 제아무리 굽이져 있다고 한들, 건물들이 통째로 날아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법이다.
‘젠장……!’
아니, 설사 도망을 치는 데 성공을 하더라도.
철저하게 감시되는 이 네오 유토피아 내에서 신분증 하나 없는 자신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다.
‘차라리.’
정호는 굳은 결심을 하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터벅.
“포격 중지!”
팔 한쪽을 내밀며, 등장하는 정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경례였으나.
‘한 번. 단 한 번으로 끝낸다.’
정호의 속내는 정반대였다.
녀석들의 방심을 유도하여 포대를 내리는 그 순간, 공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차라리 알려진다면, 저들이 찾는다는 반란 분자 중 하나로 알려지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근거한 행동.
“구호는 어디 갔나!”
‘쯧, 염X하네.’
한 번, 외치면 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문제일 뿐.
유럽인도 아닌 정호가 굳이 외치지 못할 이유는 없었으나.
그르르릉-
이미 포격을 가할 기세였던 포대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마당이다.
정호는 이미 그런 구호 따위는 외칠 생각이 없었다.
“군신의……!”
그 대신이라고 할까.
등 뒤에 짊어진 클레이모어를 붙잡은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아틸라의 필사 스킬인 군신의 검.
휘이이이잉-
한데,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는 그때.
“너희는 경례를 안 해?”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자신의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한 정호가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자신의 품에 있던 꼬마가 앞장서서, 그들을 향해 다가서고 있지 않은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 기갑 중대를 보고서, 저토록 당당할 수는 없는 노릇.
“지, 지크 하일!”
한데 오히려 구호를 닦달하던 지휘관 쪽이 크게 당황하여 경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알았어. 얼른 가 봐. 난 이쪽 늑대 아저씨랑 놀아야 하니까.”
“네, 넵! 알겠습니다.”
쿠웅- 쿠웅-
마치 자신의 수족을 부리듯, 손을 휘두르는 것으로 기갑 중대를 보내 버리는 꼬마.
정호는 그제야 포대가 자신을 가리키지 않은 것이 팔을 내뻗는 자신의 행동 때문이 아닌.
이 정체 모를 꼬마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쿠웅- 쿠웅-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 멀어져 가는 기갑 중대.
“…넌 누구지?”
정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고작해야 던전의 초입부.
여기서 기갑 중대를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그런 중대를 손짓으로 보내는 존재 따위는 정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한다 하더라도 네임드급의 중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나? 파울로. 파울로 히틀러야.”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이름을 꺼내는 꼬마의 말.
“뭐?”
하마터면 정호는 자신의 검을 그대로 녀석에게 휘두르려 했다.
파울로 히틀러라면, 분명 보스 몬스터인 히틀러의 여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정호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포옥-
자신의 품으로 달려들어, 작게 속삭이는 파울로의 말.
“필요한 게 100만 마력의 융합로라며?”
어디서부터 쫓아왔는지, 자신의 목적마저 알고 있는 녀석.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뒤에 이어진 말이었다.
“그거 내가 줄게. 대신, 나 좀 따라와 줄래?”
그와 동시에.
띠링-
퀘스트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