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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20화 (121/144)

120화

끼익- 끼익- 끼익-

오래된 경첩의 문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음산한 소리를 내는 작은 사무실.

사내는 마치 누군가가 있다는 듯, 허공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쏟는 애정과는 달리 꽤나 몰아치시는군요.”

돌아올 리 없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 가는 사내.

“제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는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답을 들은 것일까.

사내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정호라는 사내의 업이 상당하다는 것은 이미 그가 지니고 있는 화신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고민이라도 하듯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고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내.

하지만 이내, 결과를 내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 퀘스트는 그에게는 가혹하기 짝이 없습니다. 적어도 입신(入神)의 업은 쌓아야 비로소 넘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까. 천천히 가라고 한들, 그가 눈앞에 둔 보상을 놓칠 인간도 아니고 말이지요. 필시 목숨을 잃을 겁… 예?”

한데, 말을 이어 나가던 도중 사내의 가면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말이 안 됩니다. 그가 이미 입신에 해당하다니요.”

입신.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을 일컫는 그 말을 설마하니 이정호라는 사내에게 붙일 줄은 몰랐다는 듯 가면이 쉴 새 없이 떨렸다.

“그는 분명 지금까지의 어떤 인간들보다야 상당한 업을 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입신을 이야기할 정도는 아닙니다. 혹시, 그에게 과한 편애를 주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엄연히 규칙 위반입니다.”

가면의 뚫린 구멍 사이로 힐긋 보이는 사내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일 기세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찢어진 눈이 동그란 토끼 눈이 되었다.

“예? 확실히… 그 정도라면, 시기가… 적절하기는 했군요. 코앞의 종말을 바라본 인간들에게, 더욱 큰 시련이 찾아온다면 떠올릴 인간은 하나뿐일 테니까.”

이내, 고개를 주억거린다.

“겨우 입신… 이겠지만, 이 정도면 도전할 기회 정도는 생길 수도 있겠군요. 확률이야 터무니없겠지만 그의 기형적인 운이라면.”

타악-

이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는 듯, 다리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사내.

“뭐, 뽑았겠죠.”

그제서야 가면의 사내가 웃음을 흘렸다.

“쯧, 이래서야 제 어깨도 무겁겠네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사내가 피곤하다는 것을 어필이라도 하듯, 고개를 두어 바퀴 돌리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럼, 누구 씨 덕분에 할 일이 많아서.”

끼익-

낡은 경첩의 비명소리와 함께 문을 시원하게 밀고 나가는 사내의 얼굴에 더 이상 가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 사람은 생각보다 그 결과물을 믿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물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아……? 아, 아아?”

정호 또한 다를 바가 없어, 한참이나 뽑기 결과 창을 바라보며 눈을 비벼 댔다.

“육 성? 육 성 맞아?”

이제 막 마음을 접고, 포기하고 있던 마당이다.

픽업 찬스를 돌릴 때에는 지금까지 부어 댄 몇십만의 코인을 내다 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

정말이지 퀘스트의 보상만을 바라본 채, 눈물을 머금고 외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데 이 찬란하게 빛나는 별은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서 픽뚫이라니……!”

픽뚫.

픽업 찬스의 높아진 확률을 뚫고서, 전혀 다른 녀석이 나오는 경우에 붙여지는 그 이름을 설마하니 지금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본래 픽뚫이라 하면, 그리 달가운 녀석은 아니다.

애초에 픽업 찬스를 노린다는 것은, 노리는 녀석은 따로 있으니 도전하기 마련이니까.

다만, 그것이 오 성과 육 성이라는.

애초에 가진 별의 개수가 다른 녀석이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법이다.

“정말 꽝만 아니면 되는데.”

정호는 눈을 흘겼다.

육 성 등급의 화신에도 분명 ‘꽝’이라 불리는 녀석이 많이 존재한다.

오 성과 육 성은 분명 그 차이가 크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이름 없는 육 성’이라 불리는 녀석들이라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이를 테면, 스칸만데르.

분명 그리스로마신화 속의 ‘신’으로서 육 성 등급에 등장하는 녀석이기는 했으나.

스칸만데르는 강의 신.

신화 속에서는 아킬레우스를 몰아붙일 정도로 신의 위엄을 보여 주는 녀석이기는 했으나.

스칸만데르는 엄연히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하위 호환 성향이 강한 화신이다.

톨비아 내에서도 이런 하급 신들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없다.

‘차라리 오 성 등급의 화신을 키우는 게 나으니까.’

헤라클레스처럼 육 성 등급으로 성장하는 화신을 제외하더라도.

잘 키운 오 성 등급이 어지간한 육 성 등급의 화신보다는 나은 경우도 더러 존재했으니까.

“그래서 중요했던 건데…….”

정호는 얻어 낸 녀석의 이름을 연신 확인하기에 급급했다.

이전에도 철자 하나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된 것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맞네.”

정호는 이제 의심할 수가 없었다.

철자 하나 틀리지 않고 나타난 녀석의 정체.

- 헤카테☆☆☆☆☆☆

녀석은 명실상부, 상위의 신이며.

“당장 전력에 포함해도 되겠어.”

정호가 원하던, ‘네오 유토피아’의 공략에서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 * *

그리스신화에서 마법, 마술의 신 혹은 달의 신으로도 불리는 헤카테는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여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으뜸 신에 들지 못한 비운의 신이다.

- 헤카테☆☆☆☆☆☆

- 힘: 274 민첩: 250 체력: 380 지능: 410

실제로 헤카테의 스탯은 오 성 등급의 화신에는 비교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육 성 등급의 화신들 대부분이 400이라는 기본 스탯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최상위 화신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저평가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실제 인 게임 내에서도 헤카테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화신이었다.

하지만 정호는 이 헤카테가 지닌 진면목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법, 주술보다는 고렘의 신이지.’

헤카테는 마법의 신이라 불리는 이명과는 달리, 게임 내에서는 전혀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마법 소환수 - Lv1]

- 마법으로 이루어진 탑승 가능한 인공 생명체를 일 체 소환한다. 소환수의 능력치는 헤카테가 가진 스탯의 절반에 해당한다.

마법 소환수가 주력기라는 점이다.

‘분명 큰 의미가 없을 줄 알았더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호조차도 헤카테의 주력 스킬이 ‘소환수’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탑승 가능한 소환수라는 것은 분명 메리트가 있는 법이지만.

본신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과, 스탯의 절반이라는 한계점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군마 소환이랑 다를 게 없네.’

오 성 등급에 해당하는 아틸라가 소환하는 군마와 큰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조차도 주력 스킬이 아닐진대 말이다.

육 성 등급 중에서도 최하위.

그리 생각하는 것이 정호를 포함한 일반적인 유저들의 생각이었다.

‘설마, 화력을 전혀 다른 곳에서 당겨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

다만 정호의 평가가 바뀐 것은 헤카테를 주력으로 이용하는 공대원 덕분이었다.

- 아니 형, 이거 진짜 히트라니까요? 조금만 더 키우면 제 꿈이 이루어져요.

이십 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상당한 과금력으로 고래 유저들 중에서도 유명했던 녀석은 정호에게 항상 헤카테를 어필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정호였으나.

- 이거 봐요. 이렇게도 써먹을 수 있다니까요?

한창 던전 공략 진행 중에 녀석이 꺼낸 헤카테의 마법 소환수를 보는 순간 그 생각을 달리했었다.

‘아무리 봐도 모빌 슈트잖아.’

이동 목적의 탈것이 아닌,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형태의 소환 개체.

고렘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여 내보인 그것은 분명 남자의 로망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었다.

‘괜히 돈만 썼었지.’

그 모습에 매료되어, 한때 지르지 않아도 될 과금을 지른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모빌 슈트가 활약했던 게, 하필이면 네오 유토피아라…….’

정호는 ‘과학자’인 화신을 얻고자 했다.

네오 유토피아가 기괴한 과학이 발전한 던전인 만큼, 과학과 관련된 화신들이 그 힘을 내보이기 쉬운 구조였던 덕이었으나.

그런 기괴한 과학마저도 ‘모빌 슈트’라는 허구, 환상의 영역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만한 공략법이 없다는 거지.’

이미 헤카테를 이용한 네오 유토피아의 공략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아주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문제란 당연하게도, 그 거대한 소환수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문제였으나.

타악-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듯.

뚜욱- 뚝.

- 어, 형?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레 미안한데, 헤카테 모빌 슈트 어떻게 만드는지 기억하고 있나?

본인에게 물어보면 끝이 나는 일이었다.

* * *

- 적들의 본진이 드러납니다.

- 침공이 이루어지기 전, 그들의 본진을 공격하여 침공을 방어하십시오.

아스텔은 분명 적들의 본진이 나타난다 하였으나, 옳은 표현 방식은 아니었다.

세상 곳곳에 생겨난 수없이 많은 포탈.

색도, 크기도 각기 다른 그 포탈들은 하나같이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은 본진이라기보다는.

- 드레이크의 둥지: D-57

- 요정의 숲: D-90

.

.

.

오히려 대대적인 침공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침공의 날짜.

한마디로 앞으로 등장할 모든 던전들이 포탈로써 세상에 깔렸다는 것이다.

“가장 빠른 게 드레이크의 둥지야.”

“57일? 크라켄의 역습 바로 다음 던전이 드레이크 아니었나? 이 정도면 해 볼 만하지 않을까?”

다만 다행인 점이라면.

그 포탈들은 난이도에 따라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나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나타날 것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니까.”

항시 어떤 위험이 닥쳐 올지 모르는 상황.

오로지 다음 침공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당한 희소식.

심지어는.

“난이도에 따라 나뉘어 있다면, 우리들도 충분히 랭커를 노려 볼 만한 것 아니야?”

차근차근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 때에는 앞으로가 막막했으니까.”

“그게 이례적인 일이었던 거겠지. 침공 시간을 보면 알 수 있잖아.”

- 루시퍼의 성터: D-394

톨비아를 플레이 했던 모두가 입을 모아,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과 흡사하다던 루시퍼의 성터는 무려 일 년이 넘는 유예 기간을 가지고 있었다.

“상위 던전은 두고, 천천히 하나씩 해 보자고.”

“코인도 벌고 말이지.”

한때는 절망만이 가득했던 아스텔 유저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상위 던전은 랭커들이 알아서 하겠지.”

대부분 유저들의 시선은 하위 던전에 머물렀다.

다만, 그래서일까.

아직 닥치지 않은 위험인 상위 던전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네오 유토피아: D-98

네오 유토피아.

분명 상위 던전임이 분명한 네오 유토피아에게 98일의 유예 기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 알아차렸다고 한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억지로 눈을 돌려 회피하기 마련이다.

“98일?”

다만, 그런 와중에 단 한 명.

포탈 외에 텅 비어 버린,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 우두커니 선 정호는 연신 고개를 기울였다.

“난이도 별로 나누어 놓고서, 왜 이것만 달라?”

적어도 200일은 훌쩍 넘겨야 할 D-day가 한참이나 앞당겨져 있다.

지금 당장 진입하더라도, 98일 내로 공략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꽤나 위급한 상황.

“뭐, 상관없지만.”

터벅-

다만, 그 포탈로 진입하는 정호의 발걸음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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