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본래 뽑기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없다.
치밀한 계획을 짜고, 기댓값이 얼마인지 착실하게 계산을 한다 하더라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그런 불확실성에 기댄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가 미쳤지.’
정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부릅떴다.
100만이라는 거금.
그 코인을 투자해서 올릴 수 있는 스펙은 상당했다.
당장 확률이 낮기는 했으나, 자신의 초월만 하더라도 훨씬 가능성이 높은 축에 속하지 않은가.
‘육 성이라는 게 만만치 않은 건 알겠어.’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정호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붙잡았다.
60만 코인을 날리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다시금 뽑기에 코인을 내던지려고 하고 있는 모양새.
다만 정호는 전혀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확정 육 성을 준다면… 말이 달라.’
톨비아가 던져 준, [역습]의 퀘스트.
그것은 단순히 별이 여섯 개가 박혀 있을 뿐이었으나, 정호는 곧장 눈치챘다.
육 성 등급의 화신을 확정적으로 내주겠다는 놀랍기 그지없는 보상이라는 것을.
‘곧 만날 거라더니…….’
포세이돈의 마지막 말이 바로 이 보상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은가.
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네오 유토피아, 드래곤의 동굴, 백호의 숲.’
퀘스트에 적힌 이름은 분명 톨비아의 던전들이나, 그 무게가 심상치 않다.
하나같이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상위 던전들이지 않은가.
‘이건 뭐. 육 성 등급의 화신을 얻기 위해서 육 성 등급의 화신을 뽑아야 할 판이네.’
흔한 RPG게임들의 오류다.
하나의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그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 나오는 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구조.
톨비아는 그것이 화신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얼마가 걸리든 상관이 없다면. 최소 스펙으로.’
하지만 정호는 정반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분명 시나리오 퀘스트, ‘역습’에서 요구하는 던전들은 오 성 등급의 화신으로 공략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그것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화신들은 상성들이 꽤나 좋은 편이야. 아슬아슬하게, 특정 던전에 특화된 화신을 뽑아내면.’
정호는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예 선택지가 없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40만 코인을 모조리 육 성 등급의 화신을 저격하는 데 투자하느냐.
아니면 던전의 최소 스펙으로 도전하여,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아내느냐.
아무리 도박을 선호하는 정호의 성향으로도 이 경우에는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픽업 찬스 뽑기.”
- 픽업 찬스! ‘올림푸스의 신들’을 교체하시겠습니까?
결국 이어지는 것은 픽업 찬스의 교체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뽑기를 하는 것은 동일했지만.
육 성 등급이 다수 존재하는 ‘올림푸스의 신들’을 비활성화한다는 것은 곧, 육 성 저격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꽈악-!
정호는 접시 위에 잔잔한 물을 노려보면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사실상 톨비아 시스템을 얻은 이후, 처음 겪는 실패.
까득-
그 분함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 * *
- 픽업 찬스! ‘위대한 과학자’가 활성화됩니다.
- ‘과학’ 관련의 화신 등장 확률이 8배 상승합니다.
“됐어.”
정호는 몇 번의 픽업 찬스 뽑기를 통해, 위대한 과학자에서 멈추었다.
단순히 ‘올림푸스의 신들’보다 확률이 배는 상승했기에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세 가지의 던전 중에서 그나마 난이도가 낮은 네오 유토피아.
그곳을 공략하기 위한 화신을 얻기 위함이었다.
“하!”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내가 과학자를 뽑으려 용 쓸 줄이야..”
그도 그럴 게, 분명 ‘과학’이라는 녀석은 현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 분명했으나.
정작 몬스터들 간의 싸움이 주를 이루는 톨비아에서는 그 티어가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해 있었던 탓이다.
과학자들은 분명 전투에 아예 참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위력적인 힘을 내보이지는 못했으니까.
유저들 사이에서는 과학자가 나온다면, 계정을 삭제하는 것을 추천하는 마당이다.
‘하지만 네오 유토피아라면, 말이 다르지.’
그 사실을 톨비아도 알고 있었던 까닭일까.
그런 과학자들을 사용할 수 있는 던전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네오 유토피아였다.
던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도시.
과학자들 중에서도 특정 화신들은 이 ‘네오 유토피아’에서 강력한 힘을 내보이기도 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상당히 저평가를 받고 있던 두 화신이 네오 유토피아의 출시일에는 그 가치가 끝도 없이 부상했으니, 말을 다한 셈이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지금 화신들로 공략이 가능할 터.’
솔로 플레이라는 제약이 있기에, 조금은 아슬아슬해 보였으나.
공략이 가능하다는 점은 정호에게 있어서 희소식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뽑아야 하는 게 문제지만.’
정호는 남은 코인의 수와 뽑기를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40만이면, 하나 정도는 확실한데.’
확실하다는 것은 지난 육 성 등급의 화신을 저격할 때처럼 1%, 5%의 영역이 아니었다.
4,400번의 뽑기라면.
98%의 확률로 뽑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니까.
‘마음 같아서는, 두 개, 세 개도 노리고 싶지만. 인정하자. 지금 흐름은 너무 좋지 않아.’
정호는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현재 자신의 운은 너무도 처절하기 그지없다.
60만의 코인을 사용하고도, 제대로 된 5성 등급의 유효 화신도 뽑지 못하지 않았던가.
‘혹시나, 남으면 다음 던전을 준비하면 되는 거고.’
암담하기 짝이 없는 육 성 등급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촤악-!
정호는 접시의 물을 거침없이 버리며, 외쳤다.
“11회 연속 뽑기.”
확률 98.72%.
당연히 뽑는, 긴장감 없는 뽑기 확률.
‘제발……!’
다만 정호는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 * *
슈웅 슈웅 슈웅-
빰빠람.
마음을 달리한 것 탓일까.
아니면, 올림푸스의 신들에 해당하는 화신이 적었기에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지옥의 구렁텅이나 다름없던 장소에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정상인데 말이지.’
11연속 뽑기에 삼 성 등급이 한 번.
아직까지 흐름이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평균에 해당하는 정도에는 속하는 그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멀었어.’
하지만 정호는 괜한 김칫국을 더 이상 마시지 않기로 했다.
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 성 등급의 화신.
그것도 과학자에 해당하는 화신이다.
저격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화신이 떠오르던 간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법이지 않은가.
슈우웅- 빰빠람-
슈웅- 빰빠람.
팡파르가 수도 없이 터져 나온다.
당연하게도 과학자에 해당하는 화신도 등장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3성’ 등급에 불과한 녀석.
‘10만. 슬슬 낌새라도 보여 줬으면 좋겠네.’
벌써 남은 코인의 수가 30만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드래곤의 동굴. 아니 백호의 숲이라도 특화 화신을 뽑아 두고 싶은데.’
[역습]의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3개의 던전 공략.
네오 유토피아를 클리어하여, 얻어질 보상도 있겠으나, 안전벨트를 미리 착용하는 것이 더 나은 법이 아닌가.
슈우웅- 슈웅- 빰빠람.
“오.”
한데, 그런 정호의 마음이 닿기라도 한 것일까.
- 마리 퀴리☆☆☆☆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폴란드의 여성 물리학자인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가 떠올랐다.
동시에.
[세계 7대 과학자]
-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곱의 과학자들이 남긴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조건 :
아이작 뉴턴☆☆☆☆☆ [미보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미보유]
……
마리 퀴리☆☆☆☆ [보유중]
도감이 떠오르며, 정호가 원했던 ‘낌새’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슈우웅- 슈웅-
정호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룰렛을 바라보았다.
‘아인슈타인이 최소 컷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에 기쁨을 표출하는 것만큼, 흐름을 망치는 일이 없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사라진 일이나 다름없었다.
빰빠람-!
- 퀴에르 퀴리☆☆☆
삼 성 등급의 화신은 물론이거니와.
빰빠람-!
- 루이 파스퇴르☆☆☆☆
사 성의 화신까지.
과연 픽업 8배인 탓일까.
터져 나오는 팡파르 속에서, 과학 관련의 화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의 흐름이라면, 당연하게도 나와야 하는 일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지금! …지금!”
쉬지 않고 룰렛을 돌리면서도,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슈우웅- 슈우웅-
세차게 돌아가는 룰렛 속.
“지금이다……!”
그 번뜩임에 정호가 소리를 내지르는 그 순간.
- 삐리리리리리.
덜컥-!
그 흐름을 완전히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정호의 귓가를 때렸다.
“지금이었는데, 왜 하필……!”
원인은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
이상 사태에 대한 알람을 해 둔 것이 잘못이었다.
“아이씨……!
그 내용을 확인한 정호의 입에서 절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왜 하필 지금인데.”
- 적들의 본진이 드러납니다.
- 침공이 이루어지기 전, 그들의 본진을 공격하여 침공을 방어하십시오.
그것은 아스텔이 떠들어 댔을 것이 분명한 이야기들.
평소라면 좋은 정보였겠으나, 이미 그 내용에 대해 예상하고 있었던 정호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정보나 다름없었다.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지 않은가.
한데, 기묘한 일이었다.
드르르르르륵-!
빰빠람-!
완전히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과는 달리, 돌아가던 룰렛에서 팡파르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늦었어.”
하지만 정호는 큰 기대를 가지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적의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난 마당.
거기서부터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은…….”
슬쩍-
고개를 돌려 그 팡파르의 주인을 확인하는 정호.
“어?”
한데, 그 결과를 확인한 정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별의 개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가.
“다섯 개?”
정호는 괜히 쑥스러움을 느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럴 수 있지. 뽑기란 게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하.”
다섯 개의 별이라면, 이미 목표로 했던 녀석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제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실눈을 뜨고서, 확인하는 녀석의 정체.
한데.
“…응?”
정호는 자신이 본 것이 잘못되었나 싶어 눈을 계속해서 깜빡였다.
분명 자신이 목표로 했던, 아인슈타인의 이름은 결단코 아니었다.
실패나 다름없는 결과물.
실망해야 하는 정호가 의아함을 느끼는 까닭.
“이 녀석이 오 성이었던가……?”
녀석의 이름이 도저히 오 성 등급에 머물러 있을 만한 재목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이상한데.’
눈을 비비고, 다시금 보아도 결단코 바뀌지 않는 화신의 이름.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는 깨달았다.
잘못 본 것이 녀석의 이름이 아니라.
- ☆☆☆☆☆☆
별의 개수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