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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17화 (118/144)

117화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은 분명 그 포탈의 개수가 적었다.

지금까지의 침공과는 달리, 전 세계에 고작 몇 개에 불과한 포탈.

그 침공을 막아 낸 것은 오로지 한국에 나타난 포탈이었을 뿐이었으나-

- 축하합니다.

-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 퇴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침공을 가한 천사들은 퇴각을 했다.

‘막아 낸 포탈의 비율에 따라 나뉘는 건가?’

정호는 들리지 않는 아스텔의 목소리 대신, 스마트 워치에 떠오르는 메모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림자 지하 성채의 경우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포탈이 존재했다.

그 탓일까. 퇴각할 때까지 꽤나 많은 수의 몬스터를 쓰러뜨렸어야 했다.

하지만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은 그 수가 적은 탓에, 하나의 포탈을 막아 낸 것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아쉬운데.’

정호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원정이라도 떠날까 했는데.’

본래 한국의 포탈을 막아 낸 이후,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포탈도 공략할 예정이었다.

더 이상 포세이돈이 없는 정호로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나.

‘이 정도의 코인이면 충분하지.’

어째서 정호가 침공을 막으려는 ‘아스텔’을 만류하려 했던가.

혼자서 쇼를 벌이고 있는 아스텔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정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침공에서 얻어질 ‘막대한 보상’이었지 않은가.

그 보상만 있다면, 다른 장소에 출현한 포탈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실제로-

- 모든 유저에게 20,000코인이 주어집니다.

아스텔의 말을 그대로 옮긴 스마트 워치에 떠오르는 2만 코인이라는, 전에 없던 막대하기 짝이 없는 보상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것은 정호에게 적용되지는 않는 일이다.

아스텔이 말하는, ‘모든 유저’는 아스텔 유저들만을 통칭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고작?’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정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2만 코인이라는 보상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었으나.

지금의 정호에게 있어서는 크게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수고했다.

- 50만 코인을 부여한다.

‘화끈하기도 하셔라.’

총 코인의 양은 아스텔이 많기는 했다.

전 유저들을 대상으로 2만 코인이라면, 정말이지 입이 쩍 벌어지는 코인을 뿌려 대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정호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들이 코인을 가져가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그것은 애초에 자신의 것이 아닐진대 말이다.

‘100만……!’

심지어 50만이라는 코인은 톨비아가 아스텔의 보상 대신 던져 준 것에 불과했다.

던전과 포탈에서 침공해 온 녀석들이 떨어뜨린 수많은 전리품과 코인.

그것은 합이 100만이라는, 실로 믿기 어려운 수치에 이르렀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이 정도의 코인이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포세이돈도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나 본, 자신의 화신인 포세이돈은 자신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강렬한 힘을 내보였다.

하나, 녀석의 힘을 강하면 강할수록.

정호의 가슴 한편에는 지독한 상실감이 뒤따랐지 않은가.

‘포세이돈이 있었다면.’

육 성 등급.

그것도 모든 각성을 이루어 내고, 전용 무기까지 보유한 완전체의 화신.

그 정도의 힘이 있다면 더 이상 침공에 대해 불안을 느낄 필요도 없다.

설사 종말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정호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미가 없다.

‘곧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포세이돈이 떠나며 남긴 말을 곱씹는 정호의 얼굴에는 회의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어렵겠지.’

애당초 포세이돈은 육 성이라는, 정호로서는 아직 단 한 개체도 얻지 못한 신의 등급에 있는 존재다.

육 성 등급의 화신이 얼마나 뽑기 어려운지는, 지난 시간 진행해 온 뽑기에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 화신들 중에서도 포세이돈이라는 녀석 하나만을 콕 집어 뽑아낼 확률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다시 얻을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간절한 바람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포세이돈이 있다면, 침공에서의 부담은 확실히 덜어 낼 수 있지 않은가.

한데.

“잠시만.”

뚝-

거기까지 생각하던 정호의 신형이 멈추었다.

‘녀석을… 완성시키는 데 내가 얼마를 사용했더라?’

포세이돈은 분명 성능 면에서도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는 화신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완성체’의 기준.

모든 각성을 이루고, 전용 무기의 강화까지 모두 이루어진 기준이란 말이다.

‘고점에 특화된 화신이니까.’

포세이돈은 마냥 뽑는다고, 제대로 된 효율을 내는 녀석이 아니었다.

스킬 하나, 하나가 긴 쿨타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 포세이돈이다.

한 번의 스킬에 몬스터를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비로소 제 힘을 뽐내는.

전형적인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의 화신.

‘오 성 등급의 각성도 못 하는 마당에… 육 성? 전용 무기? 맙소사.’

거기에 들어갈 코인과 코인, 그리고 코인!

그것을 떠올리는 정호의 얼굴이 굳었다.

“음……”

정호는 잠시간 생각에 잠기듯,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고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 시간 동안 애증 관계로 함께한 전우와의 우정과 현실적인 타협선.

그 사이의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다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도 않았다.

아니, 단숨에 정해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딱히 포세이돈이 아니라도, 좋은 화신은 많잖아?”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냥 안 만나도 될지도?”

정호에게 그따위 우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 * *

최단 시간 던전 격파부터 시작하여, 최다 던전 격파.

심지어는 지금껏 침공에서 가장 빛을 내던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닉네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지기는 했으나.

그런 과금망겜플레이어를 그리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결국은 이번에도 과망플이 보상 다 먹겠네.

- 이러다 죽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오히려 독식은 안 좋은 것 아닌가.

분명 침공을 막아 내는 데 그 진가를 톡톡히 보여 주었던 과망플이기는 했으나.

- 굳이 없어도 된다고. 다른 나라를 봐. 침공도 다 얼추 막아 내기는 했잖아.

굳이 과망플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었다는 의견이 꽤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만 이번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의 침공.

그곳에서 과망플은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종말을 막다!]

[아스텔의 구원을 거부한 과망플!]

[과망플이 해냈다! 홀로 침공 격파!]

[막대한 보상, 2만 코인! 코인 시장의 여파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랭커들조차도 포기했던 던전의 갑작스러운 침공.

정말로 종말이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는 그 상황 속에서 나타난 과망플의 발자취는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 아스텔이 나타났는데도 거부했다며?

└ 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음. 대뜸 아스텔한테 칼부터 던지고 보던데?

└└ 아니, 칼을 던졌다고?

└ ㅇㅇ.

- 그 정도면 욕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스텔의 구원을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아예 공격을 가했다는 것은 분명 질타의 원인이 되기 충분한 것이었으나.

- 대단하네.

└ 미친 게 아니라, 자신이 있다는 거였더라고.

세상은 과정 따위보다는 그 마지막, 결과만을 중시하는 법이다.

신이나 다름없는 자에게 검을 내던졌다.

실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나 다름없었으나, 결국은 ‘홀로’ 종말을 막아 낸 과망플.

- 미쳤다. 나는 랭커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과망플에 비하면 어림도 없네.

└ 그건 이미 그림자 지하 성채 때부터 아니었음? ㅋㅋ.

└└ 내가 말했지. 과망플은 그냥 신이라니까?

그 업적에 대해서는 따로 잔말을 할 필요조차 없이, 칭송만을 연호할 수밖에 없다.

- 아무리 그래도,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지고 있잖아.

한데.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하여, 그런 유저들을 반하는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과망플은 ‘종말을 막아 낸 구원자’에 가까운 형태였으나.

그 힘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많은 몬스터를 잡았다고는 한들, 지금 이 시점에서 과망플이 가지고 있는 무력은 정도를 넘어섰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 나타난 기묘한 존재?]

패배한 줄만 알았던 과망플이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나타난 새로운 존재.

새파란 머리칼을 가진 훤칠한 미남의 사내는 특정 유저들에게 익숙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톨비아 유저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포세이돈’이라 외쳐 화제]

[육 성 등급? 톨비아의 SSR급에 해당하는 포세이돈!]

[종말의 주체인 톨비아와 과망플의 관계는?]

톨비아.

아는 이들은 많지만, 대부분이 ‘과금망겜’ 정도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게임.

하나, 침공이 이루어진 이후 누구나 ‘종말의 주체’라고 손가락질을 하던 그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 그러고 보니.

└ 그런 녀석이 나타나기는 했지.

- 한 유저가 가지고 있다기에는 너무 스킬의 종류가 다양하긴 해. 마치 전혀 다른 유저가 펼친 스킬처럼.

└└ 말도 소환하고, 마법도 쓰고, 검을 쓴다? 조금 이상하긴 하네.

- 아스텔이 ‘축복을 거부한 자’라는 것도 걸려.

└ 아니, 애초부터 과금망겜플레이어잖아. 톨비아 자체가 과금망겜인데.

지금까지 베일로 쌓여 있던 과망플의 정체가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모두 과망플, 정호가 가장 숨기고 싶어하던 정보들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 우리랑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거였어.

- 그럼 그렇지.

- 그럴 줄 알았어.

마치 이 상황 자체를 누군가가 의도하기 위해, 일부러 한 번에 풀어내는 듯한 상황.

인위적이라고 할 정도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가 쉬지 않고 쏟아졌다.

여론은 순식간에 정호를 절벽의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 왜 정체를 숨겼는지 알겠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의도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 타이밍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 톨비아가 종말의 원흉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그런 시스템을 받았다면 나설 수가 없잖아.

└ 그것도 그렇네.

- 게다가 이번에 나타난 던전은 아스텔 입으로 말했잖아. ‘천사들의 신전’이라고.

톨비아 = 종말의 주체.

그 원칙이 깨진 마당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침공의 대상은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 아스텔의 던전이다.

- 그래도 불공평하지 않음?

물론, 그것에 반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지금껏 아스텔 시스템으로 싸워 오고 있었다고, 혼자만 톨비아 시스템을 사용해서 랭커를 달았다면, 너무 치사한 것 아니냐는 거야.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톨비아를 모르는 무지로 인한 일.

- 너, 톨비아 해 본 적 없지? 포세이돈? 저게 몇백만은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괴물인 건 알고 말해?

- 몇백만 원으로 저 힘을 가질 수 있으면, 누구나 과망플이었음.

- 몇백만 원? ㅋㅋㅋㅋ. 몇백만 코인이다.

이미 종말의 주체로써 떠오른 톨비아에 대한 정보는 잔뜩 풀려 있는 마당이었다.

플레이해 본 유저가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

- 그런데, 그러면…… 차라리 아스텔 시스템이었으면, 과망플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는데?

톨비아가 얼마나 악독하고도, 악랄한, 과금으로 점철되어 있는 게임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셈이란 말이다.

- 과망플 응원한다.

└ 이제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겠네.

└└ 와, 과망플 얼굴 진짜 궁금했는데 잘됐다.

오히려 과망플이 정체를 숨길 이유가 사라졌다.

- 자, 이제 나와서 얼굴 좀 보여 줘. 아무도 당신을 탓하지 않아.

과망플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의 댓글이 물결을 치며 떠올랐다.

“…….”

하지만 과금망겜플레이어라 불리는, 당사자.

이정호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날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게.

“스읍, 하. 스읍, 하……!”

지금 이 순간, 정호에게 그럴 정신 따위는 없었다.

“100만. 할 만해. 해야 해. 지금껏 충분히 스택을 쌓았잖아.”

최초의 육 성 저격.

그 장엄하기 짝이 없는 길에 발걸음을 내딛기 직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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