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톨비아에는 ‘럭키 뉴비’라고 불리는 이들이 존재했다.
가볍게 몇천만 원을 부어 대는 과금러들조차 쉬이 얻지 못한 화신.
그것을 몇 번의 과금으로 간단히 얻어 낸 뉴비.
- 축하합니다.
-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
‘이, 이게 뭐야.’
정호는 그런 ‘럭키 뉴비’에 해당하는 유저였다.
단 한 장의 만 원짜리 지폐.
그것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육 성 등급의 화신을 뽑아 낸 것이 아닌가.
- 누군가가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을 소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머리 위에 떠오르는 전광판은 그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려 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좋은 건가?”
“아니, 선배였어요? 포세이돈이라니. 아, 왜 나는!”
자신에게 톨비아를 권유한 김동하가 머리를 부여잡고 배 아파하는 것을 즐길 정도로 정호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선배, 꼭 접지 말고 키워요. 아무리 힘들어도요. 알겠죠? 럭키 뉴비들 대부분이 얼마 안 돼서 접는단 말이에요, 아깝게시리.”
동하가 해 주는 조언에 정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럭키 뉴비들이 어째서 접는지는 이해가 갔다.
게임의 재미란 조금쯤은 치열하게 진행을 해야 느끼는 법이다.
공략을 하나하나 알아 가며, 그것을 클리어 했을 때의 쾌감.
초장부터 막강한 화신으로 무쌍을 한다면, 흥미가 반감되기 마련이다.
‘내가 왜 접어?’
하나, 정호는 그런 유저들과는 조금 반대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정호는 어디까지나, 톨비아를 바쁜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로 이용하려 했다.
조금 돈을 투자하더라도, 어려운 길보다는 쉬운 길로 가고 싶은 것이 정호의 마음이었다.
“잘만 키우면, 랭커도 될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절대! 절대! 접지 마요!”
이어지는 신신당부에도 정호는 가벼이 생각하기만 했다.
하지만 첫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정호는 어째서 럭키 뉴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접는다고 하는지 잘 알게 되었다.
‘럭키 뉴비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톨비아에서 ‘럭키 뉴비’란, 분명 운 좋게 좋은 화신을 뽑아 낸 뉴비를 뜻하기는 했으나.
“내가 왜 이런 저급한 녀석들에게 힘을 써야 하지? 격이 맞지 않는군.”
“…뭐?”
그보다는 화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뉴비를 뜻하기도 했으니까.
“이런 망할… 미친 게임!”
정호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곧장 톨비아를 접을 뻔했다.
뽑기 게임인 주제에, 뽑은 화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니.
고객을 이따위로 대해도 되는가 싶을 정도의 시스템이지 않은가.
하지만 정호는 ‘육 성 등급의 화신’이라는 그 거대한 운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 과금 태도가 좋지 않다 이거지.’
만 원 한 장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마치 눈덩이처럼 거대해져, 정호의 머리를 거세게 때렸다.
“이, 이… 미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더 이상 톨비아에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위치.
최상위 던전을 공략하는, 랭커의 자리에 도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흠. 네 녀석이 하는 말을 내가 왜 들어야 하나?”
그럼에도 여전히 포세이돈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교육의 시기를 놓쳐 버린 탓이다.
“하, X발.”
그때부터 정호의 태도는 변했다.
그동안 어르고 달래며 사냥을 이어 왔으나.
더 이상 자신의 지갑이 홀쭉해진 원인인 포세이돈을 달갑게 볼 수가 없다.
“닥치고 내 말 들어.”
“…이번 한 번뿐이다.”
말을 듣지 않는 화신과 그에 신경도 쓰지 않는 주인.
포세이돈과 정호의 애매하기 짝이 없는 관계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 * *
육 성 등급의 화신이 가지는 기본적인 바탕은 어디까지나 ‘신’이다.
신이라는 존재들은 저마다의 이명을 가질 정도로 특수한 조건에서 더욱 강한 힘을 내는 화신들이다.
이를 테면, ‘바다의 지배자’라는 이명을 지닌 포세이돈은 ‘물’과 관련된 장소에서 무적에 가까운 힘을 내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 그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던전이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특히나 상위 던전에는 물과 관련된 곳이 거의 없었으니까.’
최상위 던전에 하나 정도는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포세이돈은 잘 써 봐야, ‘크라켄의 역습’과도 같은 하위 던전에서 빛을 발하는 화신이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남성형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성능’ 하나만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정평이 난 화신이 아닌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육 성 등급의 화신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스킬 덕분이었다.
투두두두둑- 투두두둑-
쏟아지는 소나기.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금방이라도 멈출 것만 같았으나, 꼭 그렇지도 않았다.
후두두둑- 후두둑-
아니, 오히려 시간을 더해 가면 갈수록, 거세게 내린다.
‘영역전개.’
육 성 등급의 화신과 오 성 등급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스킬인, 영역전개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영역 : 취우(驟雨)]
- 물 속성 화신의 모든 스탯이 20% 상승한다.
- 물 속성의 스킬이 강화된다.
- 물 속성을 제외한 적들의 내성이 취약 상태가 된다.
- 불 속성의 적들은 화신의 지능에 비례한 피해를 받는다.
포세이돈이 성능으로써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영역 전개 스킬을 지니고 있었던 덕이다.
물에 존재하는 던전이라면, 이미 포세이돈이 우위를 접하고 있을진대.
그렇지 않은 던전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통용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스킬의 특성상, 영역을 만드는 것은 공격대에 단 하나의 신에게만 허락된 일.
포세이돈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전천후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후두둑, 후두두둑.
실제로 취우의 영역에 존재하는 적인, 타락 천사들은 정호를 향해 쉬이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
“증오스러운 인간.”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춤대는 것이 꼭 오줌 마려운 개처럼 보여 참으로 웃기는 꼴이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포세이돈의 얼굴에는 그리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는군.”
입술을 비틀면서, 검지에 물의 구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상당한 분노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놈이 아무리 덜떨어진 녀석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주인을 향해 이놈이라느니, 덜떨어졌다느니 하는 실로 어이없는 말을 내뱉기는 했으나.
‘죽은 걸 알고 있는 모양이군.’
정호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화신이라 이거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포세이돈은 자신과 가장 오래 함께한 화신, 전우이지 않은가.
제대로 주인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나, 주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화신에게 있어서 가장 큰 치욕일 것이다.
“잡것들이 감히.”
포세이돈의 분노로 이루어진 물의 구슬은 결코 우습게 볼 것은 아니었다.
검지 위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슬, 아니 덩어리.
그것은 이미 적들의 절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하게 변해 있었으니까.
‘이 정도로 화를 낼 일인가?’
무척이나 감동스러운 일이나 다름없었으나.
포세이돈의 이러한 행동이 실로 낯설게만 느껴졌던 정호는 입술을 비틀었다.
마치 포세이돈이 화를 내는 것이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직 나도 못 해 본 일을……!”
후우우우웅-!
그 거대한 물 덩어리를 집어 던지는 포세이돈의 입에서 나오는 말.
파아아아아앙-!
적들이 수몰되어 가는 그 순간에도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그렇지.”
* * *
단 한 번.
제대로 된 스킬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떨어지는 비를 모아, 내던졌을 뿐.
하나, 그것이 이루어 낸 결과물은 사뭇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콰아아아-
수십을 넘어서는 천사가 닿은 것만으로도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으니까.
‘벨라미가 본다면 오열이라도 하겠어.’
‘크라켄의 역습’에서 보스 중 하나로 군림한 벨라미.
녀석이 쏘아 내는 ‘수옥’은 분명 스킬이다.
거기에 준필사 스킬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데 그것을 포세이돈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저 물을 모아 내어 쏘아 냈을 뿐일진대, 그보다 훨씬 강렬한 힘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잘 키우긴 했지.’
꽤나 불순한 의도로 펼쳐진 일이기는 했으나, 정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지었다.
말도 잘 안 듣는 녀석을 향해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가면서 투자했던 것은 바로 이 강력한 힘에 이끌려서가 아니던가.
[포세이돈★★★★★★]
- 힘 : 1,740 민첩 : 1,400 체력 : 2,100 지능 : 1,800
지금껏 보아 온 스탯과는 아예 단위 자체가 다르다.
이그나투스와 헤라클레스를 억지로 몸에 끌어다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힘겹게 만들어 낸 스탯이 2천일진대.
모든 스탯이 그것에 근접한, 놀랍기 그지없는 능력치.
심지어.
- 영역 내에서는 20%의 스탯이 상승합니다.
영역 스킬인 취우의 내부에 있는 포세이돈의 스탯은 이미 화신이 아니라, 진짜 신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화아아악-!
그런 포세이돈의 힘을 직접 보았던 탓일까.
지금껏 경계만 하고 있던 타락 천사들에게서 공격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치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내뻗어지는 빛무리들.
그것은 분명 제6 계급인 능품천사, 엑수시에스의 힘.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 내에서 꽤나 고생을 한 종류의 공격이었으나.
“어떻게 네 녀석을 죽였는지 의문이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포세이돈은 그 공격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정호를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설명하자면 길어.”
하나, 정호 또한 그 공격에 관심이 없다는 듯 답을 했다.
후우웅- 후웅-
그토록 고생했던 공격들이 포세이돈의 몸에 닿자 폭발은커녕, 아무런 효과도 남기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다 신의 가호.’
[고유 특성]
[바다 신의 가호]
- 일정 이하의 물리, 마법 공격을 무효로 되돌린다.
헤라클레스가 지니고 있는 고유 특성은 ‘12 과업’, 육 성 등급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이미 육 성 등급에 해당하는 포세이돈의 고유 특성은 전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힘이었다.
‘현자 타임이라도 올 지경이네.’
그토록 고생했던 공세가 포세이돈에게는 아예 통하지도 않는다.
그 사실이 정호에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는 했으나, 지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특전 - 플라톤의 윤회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한 개체의 화신을 소환해 내는 힘이다.
후우우웅- 펑!
후우웅- 펑!
포세이돈의 손에서 뻗어져 나오는 물의 구슬은 적들을 한 무더기로 쓰러뜨리고는 있었으나.
윤회가 끝나고 난다면 단 수십의 천사들만으로도 정호에게는 버거운 마당이지 않은가.
“이제 끝을 내야 하겠군.”
포세이돈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던지고 있던 물 덩어리를 손에서 지워 냈다.
차악-
그 대신이라고 할까.
허공에서 대뜸 등장하는 거대한 삼지창을 손에 쥐는 포세이돈.
정호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하는군.’
포세이돈의 전용 무기인 ‘트리아이나’.
톨비아를 플레이 하던 시절 저것을 뽑는 데에만 무려 오천만 원이 들어간, 어마무시한 가격을 자랑하는 무기.
들어간 돈을 생각한다면 절로 가슴이 아릿하게 아려 오기는 했으나.
그만한 가치를 하고 있음을 정호는 잘 알고 있었다.
“휩쓸려 죽으면, 네 녀석의 책임이다.”
포세이돈의 경고와 함께.
스르르륵- 스르륵-
물로 이루어진 한 가닥의 실이 삼지로 찢어진 창의 끝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경고를 한 것치고는 참으로 소박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
오히려 조금 전, 아무렇게나 쏘아 내던 물의 구슬이 더욱 강력해 보였으나.
‘이런.’
정호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포세이돈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도 그럴 게, 정호는 그 물의 가닥이 얼마나 위험한 녀석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 물줄기는 애당초 얇은 것이 아니다.
구우우우웅-
포세이돈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소리.
주변의 모든 것을 일그러뜨리는 듯한, 강렬한 압력이 존재했다.
저 물줄기는 질량보존의법칙 따위는 완전히 무시한, 거대한 해일을 응축해 놓은 것이다.
‘갑자기 필사 스킬을 꺼내고 있어.’
혹시나 조금 전, ‘자신이 해 보지 못한 일’을 완수하기 위해 꺼낸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그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포세이돈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적들인 타락 천사에게 향해 있었으니까.
휘리리릭- 휘릭-
실과 같은 물줄기가 완전히 트리아이나를 뒤덮자, 포세이돈은 곧장 창을 돌리며 아무렇게나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휘릭-
한데, 이상한 일이다.
적들은 아직까지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은 제자리에서 서서, 그저 창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뚜욱-
“아틀란티스의 영광.”
이내 필사 스킬인 창무(槍舞), 아틀란티스의 영광을 발동한, 포세이돈이 숨을 고르며 정호를 바라보았다.
“이런 형태로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동감이야.”
마치 이미 끝이 났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둘.
“……?”
“…….”
그에 타락 천사들의 고개가 기울어지기는 했으나.
즈륵-
갑작스레 자신들의 얼굴부터 몸까지 그어져 있는 자그마한 새빨간 선을 확인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 직후.
“카아악!”
“크헉!”
순식간에 수백에 달하는 천사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은 장면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후두두두둑- 후두두둑-
쏟아지는 비에 섞여, 떨어지는 혈우(血雨).
조각난 천사들의 살점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그 속에서.
“다시 만날 수는 있고?”
“아마도… 얼마 걸리지는 않을 것 같군.”
다음의 재회를 기대하는 하나의 주인과 화신의 대화는 평화롭기만 했다.
후두두둑- 후두둑-
장마철의 소나기처럼.
뚜욱-
비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