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아스텔의 레전드리 클래스.
용기사, 현자, 성녀.
비록 현자의 주인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나, 용기사와 성녀만을 보아도 그 이름값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스킬들을 제외로 치더라도, ‘드래곤’이라는 최상위 포식자가 서포터로 붙는 것 자체로 일반적인 직업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정호는 그런 레전드리 클래스를 손에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왜 나는 스킬이 하나뿐이야?’
성녀, 루치아.
그녀만 보더라도, 스킬을 수 개는 지니고 있었다.
아니, ‘부활’이라는 사기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 않은가.
한데, 정호는 용기사 클래스를 얻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스킬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삼 성 등급이라는, 화신으로서의 힘을 손에 쥐고 나서야 비로소 단 하나의 스킬이 나타났다.
‘시스템의 차이.’
단순히 용기사라는 클래스의 특징일지도 몰랐으나, 정호는 그것을 ‘시스템’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스텔이 제안을 내걸 이유가 없을 테니까.’
아스텔은 정호의 영입을 위해, 톨비아 시스템의 한계를 맛보여 주려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침공하는 던전의 난이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다.
정호의 성격상, 스펙이 부족하다면 보다 더 많은 코인을 투자하여 화신을 뽑아 댈 것이 분명했으니까.
‘상태창이었다면.’
톨비아가 아닌, 아스텔 시스템이었다면.
그런 아쉬움이 남아야 비로소 아스텔의 속셈이 그대로 먹혀드는 셈이다.
하지만 정호는 이런 시스템의 차이를 마냥 내버려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톨비아 시스템으로 이용해 먹으면 되는 일이니까.’
그 방법으로 강구해 낸 것이 바로 아스텔의 스킬과 톨비아의 스킬을 혼합하는 방식이다.
쿠우우웅-
바닥을 내딛는 정호의 발걸음 소리가 범상치 않았다.
‘무겁군.’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몸의 무게가 단번에 수십 배, 수백 배는 늘어난 것만 같이 감각이 둔하기 그지없었다.
- 그거, 정말 실례되는 말이네.
곧장 귓가를 파고드는 불만 어린 이그나투스의 말이 있었으나, 정호는 가볍게 무시했다.
‘강신이랑 비슷하지만…….’
분명 전혀 다른 시스템일 터임에도 불구하고.
아스텔의 스킬인 ‘용인일체’와 톨비아의 ‘강신’은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았다.
강신은 자신의 몸에 화신의 힘을 부여한다.
용인일체 또한, 스스로에게 드래곤의 힘을 주입하는 형식의 시스템이다.
다만, 완전히 같은 시스템은 아니었다.
‘용인일체가 더 불안정해.’
강신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화신의 기억과 경험을 이어받는다는 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용인일체의 경우에는 오로지 ‘이그나투스’의 육체적인 능력을 이어받는 것에 불과했다.
‘몇 번이고 실패했으니까.’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형체의 생물체가 제대로 된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 자체가 무리가 따르는 법이다.
그것을 가능케 해 주는 것이 바로, 드래곤의 ‘용언’ 마법이다.
이그나투스는 항시 자신의 육체에 마법을 두르고 있는 형태였다.
수십 톤을 가벼이 넘기는 녀석의 육체.
그것을 삼 성 등급의 화신이라고는 하나.
인간의 몸인 정호가 온전히 받아들이고서, 제대로 서 있을 리가 없다.
‘아마도 레벨이 충분히 올랐을 때에는 이용할 수 있겠지.’
아스텔의 시스템이라면.
용인일체의 스킬을 레벨을 올리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을 터다.
하나, 정호는 톨비아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만약 정호가 ‘삼 성 등급의 화신’이 되지 못했더라면, 용인일체의 순간 자신의 무게에 못 이겨 죽을 수도 있는 실정이지 않은가.
‘용언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힘만이라면.’
정호가 아틸라가 아닌, 굳이 헤라클레스를 택한 이유도 바로 이것에 비롯된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힘의 각성’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힘을 세 배로 늘릴 뿐인 스킬.
정작 다른 스탯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통에, 이곳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스킬이었으나.
쿠우우웅- 쿠우웅-
단지 그런 헤라클레스를 강신시킨 것만으로도 정호는 드래곤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물론.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데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활짝-!
정호는 자신의 등에서 펼쳐지는 날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날개만은 영 적응이 안 되네.’
그것은 비단, 날개뿐만이 아니라.
정호의 온몸에도 타오르는 듯한 새빨간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이것들 몇 개 떼어서 재료로는 못 쓰나?’
불현듯, 그런 불순한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기는 했으나.
- 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속내를 읽고 있는 이그나투스의 반발로 인해, 멈추어 세웠다.
아니,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주인, 이제 사라진다니까?”
잔다르크의 말처럼.
신성비호의 배리어가 서서히 사라지며, 천사들의 공격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아, 이제 괜찮아.”
다만, 정호는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했다.
그도 그럴 게.
‘의외의 수확이었지.’
정호는 단순히 ‘용인일체’라는 스킬 단 하나를 이루기 위해, 헤라클레스를 강신시킨 것은 아니었다.
꽈아아아악-
“흐으읍……!”
검을 두 손으로 붙잡은 정호는 그대로 힘껏 휘둘렀다.
검의 날이 아닌, 검 면으로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는 클레이모어.
그러자, 분명 아틸라를 강신 해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우우우우웅-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귀를 어지럽혔다.
“자, 잠시만……!”
“얼른 고개를 숙이시죠. 레이디.”
어찌나 강렬한 바람인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통에 앞장서 있던 화신들조차 잔뜩 몸을 웅크리기에 이르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천둥의 드래곤 슬레이어’의 특수 능력인 우레의 일격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폭발음에 불과한지 모를…….
거대한 굉음이 제2구역에 울려 퍼졌다.
* * *
“야. 너 방금 내 허벅지 만진 것 같은데.”
“착각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레이디의 안전을 위해서”
“진짜 죽어 볼래?”
잔다르크와 멀린의 작은 실랑이가 있기는 했으나.
정호에게 그런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후욱, 후욱……!”
고작해야 단 한 번 휘둘렀을 뿐일진대, 정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본래 ‘용인일체’를 활용할 방법을 찾다, 헤라클레스의 힘을 이용하고자 했던 훈련이었다.
하지만 정호는 거기서 꽤나 의외의 결과물을 건질 수 있었다.
‘힘의 권능이 전체 스탯에 포함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헤라클레스를 강신시켰으니, 정호의 스탯을 포함한 능력치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설마하니 그것이 ‘드래곤’, 아스텔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는 이그나투스에게도 적용되리라는 사실은 전혀 뜻밖의 수확이었다.
‘힘 스탯만 2천에 가까워.’
분명 일시적인 힘.
아틸라를 강신시키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검술을 펼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한데도 2천이라는 무자비한 스탯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휘이이이이잉-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열두 마리의 천사가 공격을 가하고 있었던 제2구역.
한데, 단 한순간의 바람이 휘몰아친 직후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끄응.”
하나, 그 대가는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제아무리 스스로가 삼 성의 화신이라고는 하나.
2천의 스탯을 온전히 이루어 내는 것에 대가가 없을 리가 없다.
‘차라리 군신의 검이 낫겠어.’
고통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이었으나.
온몸의 힘을 모조리 써 버린 것처럼,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 탈력감은 쉬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휘청-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몸을 비틀거리는 정호.
“괜찮겠어? 주인?”
그에 잔다르크가 우려 섞인 말을 내걸기는 했으나.
정호는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제6계급의 천사들이 쓰러졌으니, 남은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단 하나의 천사.
보스 몬스터인, 제5계급 역품천사인 디나미스뿐이다.
위태한 몸으로 보스전에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지는 몸소 알고 있었으나.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면.”
이미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 루시퍼의 성터와 흡사하다는 것은 확인한 바다.
제5계급의 디나미스라면, 이미 공략법도 알고 있는 마당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진행하지.”
정호는 흔들리는 발을 앞으로 향했다.
타박.
다만 그 발걸음이 한 번 이어지자마자.
쿠르르르르릉-
동시에 울려 퍼지는 거대한 울림.
“망할……!”
그에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지난 던전인 크라켄의 역습에서도 경험한 바가 있는 종류의 울림이었다.
이 울림은 제5계급인 보스 몬스터의 등장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었다.
‘던전의 종료.’
한마디로, 포탈이 열리며 침공을 개시하는 신호였다.
타박. 타박. 타박.
흔들리는 던전의 내부.
한데 정호의 발걸음이 언제 비틀거렸냐는 듯, 정확하게 바닥을 짚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정신력이나 다름없었다.
“어딜…….”
정호의 얼굴에 귀기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이 던전이 침공을 개시한다면, 세계가 위기에 처한다는.
그럴 듯한 영웅심리나,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딜 도망가려고……!”
눈앞에 놓인 보상을 놓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 * *
쿠르르르릉-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 위치한 포탈에서 거대한 울림이 퍼져 나오기 시작한 직후.
-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 지구로의 침공을 계시합니다.
아스텔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꿰뚫었다.
“미, 미친……!”
“아직 공략이 하나도 되지 않은 던전이라고!”
비록 그 포탈 자체가 세계에 몇 되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최상위의 랭커들조차도 공략을 실패할 정도의 던전.
그것이 고작해야 이틀에 불과한 시간 만에 지구를 향해 침공을 개시한 것이다.
“아. 아아……! 마, 망했어!”
하늘 위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는 두 날개를 지닌 천사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조, 종말이야. 우린 다 죽었다고.”
“비켜! 당장 이곳을 떠야 한다고!”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날아오는 천사에게서 멀어지려 애쓰기 시작했다.
하나, 애당초 공중에서부터 나타나는 녀석들이다.
그들을 피해 낼 방도 따위는 없었다.
“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절규에 찬 비명 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저들이 지상에 안착하는 순간이 바로 지구 종말의 날.
그것을 깨달은 이들은 아예 입을 버린 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기도 했다.
펄럭- 펄럭-.
서서히 다가오는 천사들의 군대.
“제발……제발……!”
사람들은 아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결단코 이루어지지 않을, 그야말로 기적을 바라는 행동에 불과했으나.
다른 방도가 없는 한 기도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데, 기묘한 일이다.
화아아아아아악-
그런 기도가 하늘에라도 닿았는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빛.
그 속에서 정말로 ‘기적’이 찾아왔다.
화아아아아-
“아, 아스텔이다!”
“아스텔이 왔다고!”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거대하고도 아름답기 짝이 없는 존재, 아스텔이 직접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에게 힘을 나누어 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런 막강한 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 지구의 여러분에게 단 한 번의 구원을.
아름다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또, 어찌나 달콤한지.
“아, 아아!! 아스텔 님!”
“아스텔! 아스텔!”
처음 나타났을 때에는 고작해야 ‘홀로그램’이라고 치부하던 이들의 입에서 연신 환호성이 피어올랐다.
화아아아악-
아스텔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빛.
그 빛이 단숨에 저 악마와도 같은 천사들을 처리할 것이라 의심치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가 피어올랐다.
한데, 그 빛이 쏘아 오르기 직전.
“어떤 놈인지 몰라도. 그건 내 꺼야……!”
난데없이 울려 퍼지는 거대한 목소리.
그와 함께.
“저리 비켜!”
콰아아아아아아앙-!
아스텔의 신형 위로 거대한 검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