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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12화 (113/144)

112화

정호는 수북히 쌓여 있는 코인과 재료들을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톨비아가 ‘규칙’이라는 것을 어기고서 내놓은 보상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5만이라니.’

5만 코인.

지금껏 모아 온 코인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제7계급 한 마리로 이 정도라…….”

보스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다고는 하나.

제7계급은 모든 천사의 계급에서 하위에 해당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의 드랍 코인이 5만이라는 점은 쉬이 생각할 것이 아니다.

‘크라켄만 하더라도 고작해야 5천 코인이었는데.’

단위 자체가 변했다.

모든 것을 코인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단순 계산으로는 10배에 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직접 맞붙지 않아서 다행인 수준이군.’

톨비아가 어떤 술수를 부린 것인지는 몰라도, 이리엘은 플라톤으로 변화하여.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도 않고 얻어 내었다.

그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는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오 성 각성 재료가 두 개나 되다니.”

본래, 게임이었을 적의 톨비아에서는 오 성 등급의 화신이 더욱 값진 상황이었다.

각성 재료야 보스 몬스터들이 떨어뜨리는 마당이니, 타 유저와의 거래로 얻어 낼 수 있었으니까.

‘화신의 수를 재료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니 원.’

한데, 현실이 된 마당에 상위 던전의 보스 몬스터들이 떨어뜨리는 각성 재료를 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이리엘, 아니 ‘플라톤’이 떨어뜨린 전리품은 정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나 다름없었다.

“대천사들도 쏠쏠하고.”

플라톤에 의해, 세상 물정 모르고 자고 있던 녀석들의 전리품도 상당하여.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치지 않고서 정호가 얻어 낸 코인만 하더라도 무려 12만 코인에 이르러 있었다.

“이거. 진짜 포기하고 돌아가도 괜찮을 정도인데.”

실로 만족스러운 결과물.

12만이라면, 충분한 스펙업이 가능할 정도에 해당하고 있었으니.

이대로 돌아가, 이따위 ‘쇼’보다는 정말로 찾아올 ‘침공’에 대해서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당초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제7계급의 이리엘이 5만.

제8계급의 대천사가 각 1만.

제9계급의 천사가 각 1천.

그 정도로 전리품을 떨어뜨린다면, 그 위의 계급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괜히 톨비아가 만류하기 위해 플라톤을 보낸 것이 아닌 수준이다.

다만, 정호는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웠다.

“미쳤다고 그만둬?”

오히려 떠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관점의 생각.

“제6, 제5계급은 도대체 얼마나 준다는 거야.”

타박.

제2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정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 * *

‘천사들의 신전’이라는 이름을 가벼이 여기고 달려드는 수없이 많은 유저는 하나같이 큰 참패를 맛보고 있었다.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과 천사들의 신전은 전혀 다른 던전이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초장부터 등장하는 앙겔루스의 까다로운 패턴은 아직 손발을 그리 많이 맞추지 않은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나.

사실, 그 패턴을 볼 겨를조차 없었다.

고작해야 제9계급.

가장 최하위에 해당하는 천사임에도 불구하고 앙겔루스가 가진 무력은 지금껏 만나 온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강력했으니까.

[전사의 길. 공략 실패!]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의 벽은 높았다! 전사의 길 길드장인 한방박살. 제1구역의 절반조차 다가가지 못했다고 선언해 화제]

개중에는 아예 랭커들로 구성되어진, 길드 단위의 공략조차도 수포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 랭커들조차도 반을 못 갔다고?

└ 에이. 전사의 길이라면 상위긴 해도, 최상위권에는 미치지 못하는 랭커들의 모임이잖아? 대부분 탱커 클래스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고.

다만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던전들도 대부분 초반에 힘들었다는 점.

거기에 아직 최상위 랭커들의 근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었으나.

[미국의 ‘가디언’. 공략 실패]

[레이나 필두의 ‘대마법사’ 공략 실패]

그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인, 최상위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랭커.

랭킹 2위와 3위의 잇따른 공략 실패 선언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극도로 몰아세웠다.

- 레, 레전드리 클래스! 성녀가 있잖아.

그나마 남은 마지막의 불씨, 성녀조차도.

[성녀, 루치아. 소득 없이 복귀]

[고개 숙인 최상위 랭커들]

[인터뷰 거부!]

[재차 도전할 의향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불꽃마저도 꺼져 버리자, 사람들의 혼란을 말을 할 것도 없었다.

- 2층까지 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 진, 진짜 종말 오는 거 아니야?

- 랭커라는 것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랭커들은 분명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이고 있고, 던전 공략의 부산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맞이한 이들이다.

거기에는 불협화음이 잔뜩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아무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은 이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상위권 랭커들의 활약상 덕분임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 사실 랭커들이 보상을 선점하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성장할 수도 있는 거라고.

- 너희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하나,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나 쉬이 돌아서는 법이다.

잇따른 공략 실패와 ‘도저히 답이 없다.’라고 하는 답변까지.

점차 다가오는 종말의 그림자는 사람들을 랭커들에게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언제 터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활화산과도 같이, 불만의 덩어리들은 쌓여만 가고 있었다.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의 근황은?]

다만, 용암이 아직 분출되지 않은 까닭은 단 하나의 희망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탓이다.

명실상부.

지금까지 침공에서 가장 막대한 보상을 휩쓸고서, 수없이 많은 던전을 홀로 클리어한 존재인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

그런 그가 던전이 출현한 지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 말인 즉, 던전 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 멍청한 랭커놈들. 과망플을 보면서 뭘 배우는 게 없나? 고작 1층에서 그대로 포기하는 게 말이야?

└ 네가 직접 가 보던가. 난이도가 말이 안 된다고.

└└ 랭커인 척하는 백수 등판 ㅋㅋㅋㅋㅋ

- 아무리 과망플이라도 어렵지 않을까? 랭커들이 제1구역, 1층조차도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했는데?

└ 그럼 죽었는데 되살아나는 건 말이 되고?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침공.

그것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과망플의 소식만을 기다렸다.

- 설사 실패하더라도, 그 정도의 위기라면 과망플도 솔플 그만두고 랭커들이랑 파티 꾸리지 않을까?

└ 그건 좋네.

솔플 유저로 알려진 과금망겜플레이어.

그런 이가 실패했다고는 하나, 최상위 유저와 손을 잡으면 낼 수 있는 시너지를 생각해 본다면.

아무리 어려운 던전이라도 공략할 수 있으리라.

- 그럼, 과망플이 어떤 사람인지도 나오겠네.

└ 사실은 엄청 미남이라던가?

└ 그냥 폐인일 수도 있지.

오히려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일.

그런 자그마한 망상은 그들의 불안감을 덜어 주고 있었다.

“음…….”

다만,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과금망겜플레이어.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만약 기대를 하고 있는 아스텔 유저들이 들었다면 억장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발언이었으나.

정호는 사뭇 심각하게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퍼어어엉-

“크윽… 주, 주인!”

“인간, 그런 힘으로 천상의 세계를 노리다니 어이가 없는 수준이군.”

호기롭게 도전한 제2구역은 어째서 톨비아가 말렸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장소였으니까.

* * *

제2구역에 도달하자마자, 정호는 아스텔의 의도가 무엇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지금의 상황에서는 막아 낼 수 없는.

한 줄기의 희망을 붙잡기 위해,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

그것을 자신에게 부여하려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타박.

제2구역에 발을 내딛자마자.

퍼어어어엉-!

퍼어어엉-!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수없이 많은 폭발.

“시, 신성비호!”

그에 잔다르크가 곧장 피해를 무효화하는 보호막인 스킬, 신성비호로 막아 세운 덕분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크, 크윽……! 퉤!”

지금껏 한시라도 입안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껌을 뱉어 버린 잔다르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미쳤군.’

정호는 첩첩산중을 바라보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았다.

자신을 중심으로 서서히 에워싸고 있는 수없이 많은 천사.

그것은 마치 제1구역의 앙겔루스를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나, 그들을 제9계급에 불과한 천사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6계급이… 잡몹이라고.’

[타락] [제6계급, 포테스타테스(Potestates)]

제6계급, 능품천사.

본래라면 타락한 천사들을 막아 내는 역할을 해야 할 녀석들이 스스로 타락한 웃기는 꼴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었으나.

퍼어어엉-!

매섭게 쏘아 내는 폭탄과도 같은 빛무리는 웃음기를 싹 지워 내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열둘.’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제7계급, 네임드 몬스터인 대천사들만 하더라도 네 명으로 찢어져서야 겨우 쓰러뜨릴 수 있었건만.

그 대천사들보다도 두 계급이나 높은 천사들이 무려 열둘이나 존재하고 있었다.

‘이대로 강행하다가는 죽겠군.’

다가오는 저 천사들은 분명 지금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정호에게는 새까만, 지옥의 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만 보였다.

“마스터. 이대로는 위험한 것 아닙니까?”

“신성비호로는 더 이상 못 버티겠어! 주인!”

화신들의 입에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한데,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호의 얼굴에 기묘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런 상황이 될 거란 건 알고 있었잖아.”

정호는 분명 목숨을 걸 각오는 했으나.

그것을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한 채, 내던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이미 이 공략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을 하면서도, 정호가 강행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아주 실낱 같은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고서야,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이미 테스트했던 게 있잖아.”

지금까지의 침공은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니네체르가 이끄는 ‘그림자 지하 성채’.

그것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라켄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무려 한 달이야.”

한 달간 정호는 쉬지 않고 훈련을 강행했다.

거기에는 분명 자신의 검술 자체를 단련시키기 위함도 있었으나.

다양한 상황, 최악의 상황 속에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를 테면 이그나투스를 이용한 ‘단 하나의 보스’를 가장한 훈련처럼.

‘다수의 강한 적’을 상대로 한 훈련도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에엑. 주인. 설마 그거 하게?”

그런 정호의 의중을 깨달은 것일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이그나투스의 입에서 질린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왜? 싫나?”

“아니,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그… 조금 무식하다고 할까…….”

“끝나면,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

“아,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하면……!”

반발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그나투스는 정호의 자비로운 설득에 결국 수긍했다.

정호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옮겼다.

“헤라.”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헤라클레스.

오 성 등급에 해당하고, 육 성 등급으로 확정적으로 올라서는 성장형의 화신.

다만, 높은 힘 스탯에 비해 낮은 체력을 가진 녀석은 현 상황에서는 활약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정호가 이루어 내려는 것에는 헤라클레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응. 주인. 할 게. 아니, 하게 해 줘요.”

자신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꽈악 쥐고서, 정호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퍼어어엉-!

퍼엉-!

잔다르크의 신성비호로 덧씌워져 있던 보호막이 깜빡이며,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호는 곧장 입을 열었다.

다만 그 말은 사뭇, 의외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아틸라, 강신 해제.”

지금껏 던전에서 단 한 번도 풀지 않았던, 아틸라의 강신을 해제하는가 싶더니.

“헤라클레스. 강신.”

굳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헤라클레스를 강신시키는 것이 아닌가.

정호의 ‘검의 화신’에 대한 동기화율을 생각해 본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하나, 정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힘의 권능.”

이어지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단 하나 뿐인, 힘의 권능.

그리고…….

“용인일체.”

레전드리 클래스, 용기사의 권능 중 하나인.

드래곤과의 일체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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