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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11화 (112/144)

111화

플라톤이라 하면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 유명한 고대의 철학자이다.

서양의 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그가 오 성 등급으로 선택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다.

다만, 문제라면 그런 플라톤이.

‘이리엘. 아니, 권품천사.’

제1구역의 보스 몬스터인 이리엘.

제7계급의 권품천사로 등장했다는 것은 상당히 이해가 가지 않는 흐름이었다.

제아무리 ‘루시퍼의 성터’와 닮아 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은 아스텔의 던전이다.

그런 아스텔의 던전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플라톤의 존재.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어째서 화신인 네가 나타난 거지?”

정호는 이해가 가지 않는 흐름에 재차 질문을 내던지면서도, 경계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플라톤.’

플라톤은 오 성 등급의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톨비아답지 않은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꾸밈없는 노인의 모습.

그것은 분명 유저들에게 외면을 받기 딱 좋은 모습이나 다름없었으나.

의외로 톨비아 내에서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했다.

‘PVP 주력의 화신.’

제아무리 던전 공략이 주된 컨텐츠인 톨비아라 할지라도, RPG게임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이다.

PVP(Player versus Player)가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PVP 컨텐츠에서 플라톤과 같은 능력을 지닌 녀석들은 항시 포함이 되었다.

PVP는 상대의 공격에 최대한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역으로 피해를 주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이 가진 능력.

‘캔슬…….’

조금 전, 정호의 ‘군신의 검’을 사라지게 만든 ‘스킬 무효화’의 능력.

즉, 적의 공격에 대한 타격을 완전히 무위로 되돌리는 캔슬기의 존재는 PVP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했다.

‘레이드에서는 쓸모없었을 텐데.’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에 한해서 강력한 힘을 보이는 능력.

대다수의 보스 몬스터들의 공격은 이 캔슬에 면역인 경우가 많아, 주력으로 키우기에는 그리 좋은 평가가 내려지는 화신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플라톤이 상대하는 것은 플레이어인 정호라는 점이다.

‘대천사들이 남아 있었으면 안 되었어.’

이래서야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PVP와 다를 것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상대가 플라톤과 대천사를 셋을 포함하여 넷이라는 점과 자신에게는 아직 녀석에게 보이지 않은 다섯 번째 화신이 있다는 점이다.

‘코르데.’

‘네. 대기 중이에요.’

코르데의 전용 스킬인 ‘만인을 위한 암살’이라면, 못해도 과다출혈이라는 상태 이상을 먹일 수 있다는 점이었으나.

“음… 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나?”

홰액-!

갑작스럽게 플라톤이 손을 한 차례 휘젓자, 순식간에 코르데의 모습이 드러나며 정호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어… 아하하. 저 돌아갈게요.”

플라톤의 방향으로 살금살금 움직이던 발걸음 그대로 굳어 버린 채, 정호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쯧… 이래서야 진짜 PVP나 다름없네.”

정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정호라고 하여, PVP를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 어디까지나 정호의 파티는 대던전 공략용의 조합이다.

PVP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플라톤을 상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어째서 이곳에 있냐고 물었던가?”

플라톤은 코르데를 순순히 정호에게 돌려보내고서, 대천사들을 자신의 쪽으로 손짓하여 자리를 잡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PVP를 시작하기 전, 서로의 화신을 재정비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거야, 당연히…….”

말을 이어 가면서도, 플라톤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빛무리들.

그것은 분명 공격의 신호와도 같은 모습이었기에, 정호는 곧장 녀석의 스킬을 피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화아아아아악-

손아귀에 모여들던 빛무리들이 한 번에 피어오르며, 주변을 가득 메운다.

한데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 이상했다.

분명 보스 몬스터인 플라톤이 향해야 하는 공격은 정호일진대.

화아아아악-!

그 빛이 터져 나오는 곳은 자신이 손짓하여 끌어모은 대천사들에게 향해 있었으니까.

‘버프?’

강화 형식의 스킬은 플라톤에게는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정호는 검을 치켜들었다.

‘이리엘의 스킬이라면 곤란해.’

녀석은 플라톤이면서도, 제7계급인 이리엘이다.

이리엘의 힘에는 대천사들을 강화해 주는 버프 스킬이 다수 존재하였던 탓에 정호는 곧장 발을 굴렀다.

타앙-!

어차피 스킬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직접적인 공격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정호의 발걸음은 채 다섯 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우우웅-

점차 잦아드는 빛무리들 사이에서 보이는 광경은 정호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형태였으니까.

“이, 이리엘 님……!”

“어, 어째서…….”

의문을 가득 담은 말을 내뱉으며, 점차 눈을 감기 시작하는 대천사들.

[상태 이상 : 수면 / 지속 시간 : 1,800초]

[상태 이상 : 봉인 / 지속 시간 : 1,200초]

대천사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상태 이상은 보스 몬스터인 이리엘이 펼쳤다고는 믿을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정호는 눈을 흘기며, 플라톤을 향해 물음을 내던졌다.

“자네를 만나러 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게 전부지.”

물론.

그리 덧붙인 플라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전갈이네.”

* * *

“거기 있는 화신들은 돌려보내는 편이 좋겠군.”

플라톤은 가만히 서 있는 대천사들을 뒤로한 채,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갈이라니, 누구의 전갈이지?”

“누구라니.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그 평온한 태도가 어찌나 어이가 없었는지, 정호는 녀석을 공격하려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톨비아… 아니, 신이지. 그게 자네에게는 더 와닿겠어.”

톨비아.

녀석의 이름이 설마하니, 화신인 플라톤의 입에서 흘러나올 줄은 몰랐던 정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어째서 톨비아가……?”

신이라는 발언은 둘째 치더라도.

애당초 톨비아라면, 정호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내건 전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전갈을 ‘화신’에게 맡길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런 얼굴로 늙은이를 바라보아도, 그리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네. 어디까지나 내가 톨비아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이니까…… 그래도, 이 늙은이의 사견을 덧붙이자면.”

씨익-

플라톤의 자글자글한 주름 위로 피어오르는 미소.

“먼저 규칙을 위반한 것은 아스텔이었으니, 보낸 것이 아니겠는가.”

“규칙?”

도대체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하는 플라톤의 행동에 기울어진 머리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던전.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라고 했던가? 이 침공이 상당히 기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다만, 플라톤은 그런 의문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생각 따위는 없어보였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어보였다는 것이 정확했다.

“이상하긴 하지.”

그렇기에, 정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플라톤의 대화 속에서 그 내용을 알아내려 애쓸 뿐이었다.

“적어도 아스텔 유저들이 클리어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야.”

플라톤의 질문은 이미 정호가 떠올렸던 내용이었다.

제2구역까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톨비아에서도 최상위 던전에 해당하는 ‘루시퍼의 성터’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이 현 시점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미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바로 그걸세.”

플라톤은 손가락을 들어, 정호를 정확하게 가리키고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가 느끼는 그 기묘한 느낌. 그게 문제란 말이네. 기억에 없는 침공, 처음 겪는 상황. 예상과는 다른 결과물. 우리는 모두 영혼 속에 가지고 있는 기억을 떠올릴진대, 침공이라는 이데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떠올릴 수 없는 불합리함이 이곳에 있다는 말일세.”

플라톤은 자신의 이론을 들어, 정호를 이해시키려 하고 있었다.

모든 영혼은 이데아라는 본질을 알고 있었으나, 현실의 몸에 정착하며 그것을 모두 잊어버린 것뿐이다.

모두는 새로운 것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닌, 그저 떠올릴 뿐이라고 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었다.

“침공이 침공이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다만, 그 따위 내용을 정호가 알 리가 없었다.

플라톤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내저었다.

“그저, 이 상황 자체가 본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네.”

이어지는 말에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도해서 이루어졌다.’

플라톤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규칙과 관련되어진 이야기였다.

본래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

아스텔이 규칙을 깨었다는 말과 합쳐 본다면, 이 모든 상황은 녀석이 의도했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어이가 없군.”

정호는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아스텔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겨우 나를 죽이려고, 그 위험을 감수한다고?”

아스텔은 분명 다가오는 종말을 막아 내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했다.

그런 녀석이 겨우 수십억 인구 중 하나인 자신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말이었다.

“그건 아닐세.”

다만, 플라톤은 딱 잘라 말했다.

“자네는 스스로의 생각보다, 귀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어야 하네. 탐을 내는 이가 하나둘이 아닌 모양이니까.”

“음?”

그것이 상당히 의외의 말이었던 탓에 정호는 귀를 기울였다.

“자네를 얻어 내는 것 하나만으로… 음, 이건 없었던 이야기로 하게나.”

플라톤은 마치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던 것처럼, 말을 하다 말고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 던전은 결국 자네를 손에 넣기 위한 작업에 불과하다는 말이네. 모든 것은 연기, 짜여진 각본.”

“쇼라는 말이군.”

“같은 이데아인 모양이군.”

정호는 플라톤의 말에 눈을 흘겼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보았을 때, ‘톨비아’가 어떤 말을 자신에게 전할지 눈에 보였던 탓이다.

“한마디로, 이 던진을 공략하지 말라는 거군.”

“바로 그걸세.”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스텔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입하기 위해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을 준비했다고 했다.

‘톨비아 시스템의 한계를 보게 만들겠다는 속셈이겠어.’

그야말로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질이었다.

현 시점에서 정호의 힘은 침공을 막아 내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한, 위험한 존재들을 만나 그 한계를 맞이한다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번 침공은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럼, 플라톤. 너를 보낸 이유는…….”

이런 사항의 내용이라면, 톨비아가 직접 ‘퀘스트’로써 내려주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라는 존재를 보내어 공략을 만류한다는 의미.

“똑같이 규칙 위반이라는 말이겠어.”

한마디로, 직접적인 관여는 본래 규칙에서 벗어난 의미라는 것이다.

그것이라면 이야기가 들어맞는다.

아스텔은 직접 침공에서 막아 낼 힘이 있을 터.

하지만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하여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뿐이다.

그것은 어떤 녀석이 만들었는지 모를 규칙에서 의거한 일이었다.

정호는 플라톤 위에 떠올라 있는, [제7계급]의 칭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네가 보상이었어.”

“맞네.”

톨비아는 정호가 쉬이 이 던전 공략에서부터 발을 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제7계급이라는.

제1구역의 보스 몬스터의 전리품을 정호에게 줌으로써 아스텔의 속셈을 깨부술 생각인 모양이었다.

“보스 몬스터로써 수집은 안 되는 모양이군.”

“어디까지나 아스텔의 구역이니 말일세.”

“너는 괜찮나?”

다만 그것에는 플라톤의 죽음이 강제된다.

플라톤은 화신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보스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는 마당.

그 전리품을 얻어 내기 위해서는 녀석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 플라톤은 ‘허허-’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영혼 속에 나의 지식과 기억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진대 무슨 상관인가?”

처억-

이미 결정된 마당에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정호는 앉아 있는 플라톤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될 것 같다.”

“음?”

의문스러운 표정을 내짓고 있는 플라톤.

정호는 그에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세차게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나는 목숨이 아깝다고 던전 보상을 두고서, 발을 돌릴 수는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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