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아스텔의 던전인 ‘천사들의 신전’과 침공의 대상으로 나타난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은 분명 비슷하나,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천사들의 신전을 떠올리는 까닭은 당연하게도 아스텔의 목소리가 있었던 탓이다.
- ‘천사들의 신전’의 타락한 천사들이 찾아옵니다.
-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 침공합니다.
‘타락한’이 붙기는 했으나, 애초에 ‘천사들의 신전’이 기본 바탕이 되는 던전.
아스텔의 던전임에는 틀림이 없는 일이지 않은가.
다만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인 사안이나 다름없다.
지금껏 종말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톨비아’.
한데 기묘하게도.
이번에 나타난 침공 대상은 다름 아닌 아스텔의 던전이지 않은가.
정호는 사람들의 충격이 상당하리라 예상했었으나.
상당히 다른 반응에 고개를 기울이기는 했다.
‘말은 되는군.’
하지만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타락한 천사들.’
천사들의 신전이라는 던전 자체가 침공하는 것이 아닌, ‘타락한’ 천사들이 침공한다.
애당초 아스텔이라는 게임 자체를 튜토리얼이라고 표현했지 않은가.
침공을 위해 대비했다는 의미에서는, 천사들의 침공이 찾아오는 것은 그리 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스텔을 플레이했던, ‘아스텔 유저’에게만 수긍 가는 일에 불과했다.
“이상해.”
정호는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아스텔과는 무관하게, 정말로 타락한 천사들이 생겨나 침공을 개시했다면 모를까.
하필이면 정호가 아스텔의 제안을 거절한 직후, 이런 이변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본래라면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내용이었으나.
정호에게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이그나투스.”
이미 침공에 대해서 경험을 해 본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세계가 멸망한 이가 자신의 손에 있지 않은가.
“다시는 안 해! 훈련 안 해!”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화들짝 놀라는 반응에 안타까움이 느꼈으나.
지금은 그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침공이 이루어지나?”
“침공?”
정호의 태도가 사뭇, 평소와는 달리 진지함을 깨달은 탓일까.
이그나투스가 평소의 호들갑 떠는 모습이 갑작스레 사라지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적어도, 지금 지구의 형편은 좋은 편이야. 인간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니… 아무래도 편의를 봐준 거겠지. 게임이라고 했던가? 그런 튜토리얼은 우리 세계에 없었어.”
이그나투스의 이어지는 말에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으나.
애당초 이그나투스의 세계는 침공당해 종말을 맞이하기는 했으나, ‘드래곤’이라는 강력한 존재들이 도사리던 장소이지 않은가.
“하지만… 음,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네. 적어도 두 번째 침공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거든.”
“그런가?”
“응. 적어도 내 기억에는 천사라는 존재는 없었어. 본래라면 이번 침공은 ‘드레이크’거든. 하등 생물들이었으니까 주인이 어째서 그리 걱정하는지 몰랐지만.”
이그나투스의 말에 정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3대 인던이야.’
3대 인던이라 하면, 20대 공격대 던전으로 접어드는 유저들이 마주하는 세 개의 던전을 말했다.
두 번째 침공에서 나타났던 ‘크라켄의 역습’.
정호가 이미 예상했던 던전들인 ‘드레이크의 둥지’와 ‘요정의 숲’.
그것이 ‘타락한 천사들의 던전’이라는, 아스텔의 던전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
그 이변의 원인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예상하기 쉬운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럼 결국, 무언가 목적이 있다는 건데.’
단순히 자신을 제거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독주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상공, 드래곤의 출현]
[성녀 가장 먼저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으로 공략에 나서나?]
아니나 다를까.
울려대는 스마트워치의 기사를 확인한 정호의 입이 비틀어졌다.
“…출발하지.”
촤르르륵-
책상 위에 놓였던 수많은 프린트물이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팔랑-
[이리엘 패턴 공략]
‘천사들의 도시’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 * *
아스텔의 신전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발이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벌써 두 번째 레전드리 클래스까지 나온 마당이라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나.
이미 손에 넣은 이들이 있으니, 자신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는 이들이 없을 리가 없다.
“에이… 오늘도 글렀네.”
“도대체 조건이 뭐야.”
“소문으로는 막대한 코인이 필요하다던데.”
다만 그런 이들의 방문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애당초 레전드리 클래스 외에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던 이들.
그러니 많은 이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실제로 오랫동안 머무르지는 않았다.
“…….”
한데, 해가 기울어질 무렵까지도 아스텔 신전에 존재하는 이가 있었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부활의 석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텔의 신상 앞.
벌써 몇 시간째 무릎을 꿇은 채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성.
“성녀님은 역시 다르긴 다르군요.”
“예. 아스텔 님도 분명 저런 신실한 모습에 반하여, 그녀에게 성녀의 칭호를 내려주셨을 겁니다.”
신전 내의 수녀들이 감탄을 흘리는 이는 다름 아닌 두 번째 레전드리 클래스, 성녀 루치아였다.
하나, 그런 감탄과는 달리 그 속내는 완전히 달랐다.
‘으… 다리 저려.’
루치아는 사실 이 기도의 순간이 성녀가 된 이후,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세상의 안녕을 위한 기도]
- 성녀는 세상의 안정과, 구원을 위해 아스텔의 신상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 기도 시, 신성 관련 스킬의 숙련도 대폭 증가. 신탁을 받을 확률이 증가한다.
- 필수 : 주 20시간.
- 이행하지 않을 시, 성녀의 자격이 박탈당한다.
이 기도는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다만, 이번만은 달랐다.
‘어째서 알려 주시지 않으신가요.’
루치아가 갑작스레 신전으로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있는 까닭은, 성녀의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효과인, ‘신탁’을 받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런 이단을 굳이 성전을 이끌 이로 선정해야 하나요.’
애초에 루치아가 정호를 찾아, 한국까지 찾아왔던 까닭이 바로 이 신탁 때문이었다.
- 한국에 존재하는 용기사와, 그들의 부하들을 ‘신성 기사단’으로서 받아들여 세상의 구원을 이끌도록 하세요.
지금껏 세상에 울려 퍼지던 딱딱한 아스텔의 목소리와는 달리, 사뭇 초조함이 엿보이는 목소리.
루치아는 처음에야 그 신탁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성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임무이지 않은가.
‘이상한 사람들이었어.’
직접 만나 본 용기사의 일행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분명 용기사로 선정되어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드래곤과 싸우는 기묘한 상황은 둘째로 치더라도.
‘저런 자들이 어떻게 최상위 랭커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
그런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강인한 힘을 지닌 이들이 즐비해 있지 않은가.
어째서 아스텔이 그들을 신성 기사단으로서 파티에 맞이하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만.
‘그런 이단들을 맞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에요.’
마치 자신이 성녀인 양, 훈수를 두는 여성 힐러는 둘째로 치더라도.
‘분명 아스텔 님의 힘을 받았을 텐데, 그런 태도를 취하다니.’
레전드리 클래스라는 칭호 하나로 많은 특권이 주어진다.
비단 그것은 강력한 힘을 지닌 스킬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거니와, 세상의 주목을 이끄는 일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은 아스텔이 넘겨준 것.
그런 아스텔의 의지를 거부하는, 용기사의 태도는 루치아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자는 강할지언정, 용기사로서는 어울리지 않아요.’
루치아는 계속해서 아스텔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더 이상 아스텔이 그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이 더한 수모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성녀, 루치아.
긴 시간 동안의 기도에 무릎의 감각이 없어질 때쯤, 결국 루치아는 아스텔로부터 ‘신탁’을 받기는 했다.
- 용기사와 그의 부하들을 ‘신성 기사단’으로 이끌어 내도록 하세요.
하지만 대답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아이. 헙.”
그 소리에 루치아는 자신이 어떤 말을 입에 담을 뻔했는지 깨닫고는 황급히 입을 막고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휴.”
목격자가 없음을 확인하고나서야, 한숨을 크게 내쉰 루치아의 눈이 변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알겠어요.’
짧은 답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치아.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다면.’
더 이상 아스텔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속으로 삼켜 내는 루치아의 얼굴에는 성녀답지 않은,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한시 바삐 움직인 루치아는 자신들의 파티원들과 함께 ‘용기사’가 진입한 포탈 내부에 들어섰다.
하나, 그 입구를 밟는 순간.
“…그 짧은 시간에.”
루치아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용기사의 힘은 직접 맞붙어 보고서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으나.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수많은 천사의 주검은 그조차 과소평가였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대체…….”
“이런 괴물이 있었다고…….”
그토록 고르고 고른 파티원들조차도 믿기 어렵다는 듯, 입을 쩌억 벌리고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어, 얼른 가죠!”
루치아는 놀람을 표하는 파티원들을 재촉해, 빠른 속도로 용기사가 뚫어 놓은 길을 뒤따랐다.
‘어째서 아스텔 님이 용기사를 파티원으로 끌어들이라 한 건지는 알겠어.’
이 정도의 무력이라면, 아무리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종말에서 구원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
하나, 루치아는 아스텔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이 없었다.
‘파티원이 아니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겠어.’
먼저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용기사가 들어간 포탈을 뒤따라 들어온 것도 그것을 위한 일이었다.
쉐에에에엑-
콰아아아앙-!
어느새 용기사와 가까워진 것인지 전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루치아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여기서 대기해 주세요.”
파티원들은 굳이 거기에 이의를 제의하지는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루치아는 그런 태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짓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떤 참견도, 도움도 주지 않아야 해요. 아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죠.”
“너무 위험하다 싶어도 그렇습니까?”
의문을 내던져오는 이를 향해, 살짝 눈을 찌푸린 루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일이 있어도요.”
루치아는 지난번, 용기사는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아스텔 님이 무언가 잘못을 한 게 분명해.’
아스텔과 관련되어졌을 때, 곧장 돌변한 것을 보아 그런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계기가 필요해. 계기.’
이미 자신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용기사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거기에는 아스텔과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
루치아는 미소를 내지었다.
‘단순한 여성과 남성으로.’
그런 계기를 만들어 내는 일에는 이보다 더한 일이 없었다.
타닥. 탓!
루치아는 곧장 몬스터가 도사리는 곳을 향해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앗. 위험……!”
“…조용!”
곧장 파티원 중 하나가 만류하려 들기는 했으나, 루치아의 발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치 죽기라도 원하는 것처럼.
용기사, 정호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천사’들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루치아.
“도, 도와주세요!”
밝은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던전 내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목소리 탓일까.
전투를 벌이던 용기사 쪽에서 자신으로 시선을 보내기 시작하자.
“아앗……!”
루치아는 철저하게 계산된 자세로 쓰러지며, 미소를 내지었다.
‘흥, 위기에 처한 가녀린 여성만큼 남성의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 없지.’
루치아는 자신의 가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보기 드문,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칼과 함께.
지나가면 누구나 뒤돌아볼 법한 미모.
거기에 범죄자조차도 포용할 것만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성녀라는 칭호는 그런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물건이다.
“이, 인간……! 증오스러운 인간 녀석!”
천사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 탓에 몸을 떨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기일 뿐.
‘나도 레전드리 클래스야. 녀석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 정도야.’
어차피 용기사가 구해 주러 올 것이니 상관은 없는 일이었으나.
성녀의 힘을 지니고 있는 그녀가 몬스터들의 공격에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성보호.’
안정장치까지 마련한 루치아의 입에 미소가 지워질 리가 만무했다.
한데 가장 가깝게 있던 천사가 쥐고 있던 무기를 휘두르자.
쉐에에에엑-
카아아앙-! 콰직!
“…어?”
루치아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이상하게도, 그토록 쉽게 쓰러져만 가던 녀석들의 공세가 이상했다.
용기사의 공격조차 막아 세웠던 ‘신성보호’를 펼쳐 냈음에도 불구하고.
콰직! 콰직! 콰직!
천사들의 공격 한 번, 한 번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보호막.
“자, 잠시만요. 도와주세요!”
상황이 기묘하게 흘러가자, 루치아는 용기사를 향해 재차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 어째서!’
정호의 방향에서 반응 따위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음에도, 이제는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사냥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콰직! 콰직! 콰직!
당장이라도 깨질 듯이 불안하게 반짝이는 보호막.
루치아는 다급히 외쳤다.
“도, 도와줘요! 켈릭! 다우라!”
이번에 부르는 것은, 용기사가 아닌 파티원들이었으나.
“…….”
“…….”
자신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을 뿐, 몸을 숨기고서 이 상황을 그저 관망만 할 뿐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내린 부탁 아닌 명령에 의한 일이었으나.
루치아는 그것을 떠올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당장 도와달라고! 이 멍청한 녀석들아!!”
콰지지지지직-
루치아의 허망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던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