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7화 >
# 107화
“자기 입으로 성녀라고 떠드는 녀석들 중에 제대로 된 녀석이 있을 리가 없지.”
설마하니 전직 성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올지는 몰랐으나.
정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건, 화신으로써의 기억 때문이겠지.’
명실상부, 잔다르크는 그 이름 자체가 성녀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화신이다.
불과 무명무식의 어린 소녀가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이 되고, 백년전쟁의 종지부를 찍는대에 큰 기여를 한다는 것은 쉬이 넘겨볼 일이 아니다.
다만 그런 잔다르크의 일생은 매우 기구하기 그지없다.
모든 일이 끝난 이후, 고작해야 19세의 나이.
그녀는 성녀로써 추앙받기 보다는, 마녀로써 화형에 당해 사망했으니까.
“...누,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아스텔님에 대한 모독을 용서할 수 없어요.”
정호가 먼저 공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던 그녀는 분명 성녀로써의 귀감이 되는 모습이었으나···.
평정심을 유지하던 루치아에게서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스텔이 아니라, 너보고 하는 이야기야.”
“저에게 성녀의 직함을 내려주신 아스텔님에게 대한 모독과 같은 말이에요.”
“아니야. 아니라고.”
잔다르크는 마치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가식적으로 답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그 태도를 유지하라고.”
“그게 무슨...”
“거기서 네가 그리는 성녀로써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용서합니다.’와 ‘죄송합니다.’ 뿐이야. 알겠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는 잔다르크.
실로 난데없는 훈수는 분명 전직 성녀로써의 경험에서 나온 충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 길이 없는 루치아에게 있어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터.
“당신이 무어라 한들 저는 아스텔님의 신탁을 받은 성녀로써,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잔다르크의 계속된 훈수에 얼굴에 살짝 상기 되어 있기는 했으나, 그 뜻을 굽히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신과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어요. 제가 제안을 드리는 것은 아스텔님의 선택을 받은 용기사님이니까요.”
아예 잔다르크를 무시하며, 정호를 향해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만행마저 저질렀다.
“하? 하하. 이 년이 진짜.”
절그럭, 절그럭.
그에 잔다르크가 당장이라도 손에 든 철퇴를 가져다 던질 기세로 변했을 때.
“멈추지.”
정호가 입을 열어, 그 상황을 멈춰 세웠다.
‘솔직히 말하면, 받아들이는 게 맞지.’
제아무리 잔다르크가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들.
파티에 도움이 된다면, 가식적인 성격 따위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탐이 나는 능력이긴 해.’
객관적으로 볼 때.
레전드리 클래스, 성녀의 힘은 정호에게 있어서 상당히 마음에 드는 수준이었다.
모든 면을 내보이지는 않았으나, 단순한 보조형 스킬들만으로도 자신의 공격을 연거푸 막아내지 않았던가.
‘거기에 드래곤이 한 마리 추가되는 거고.’
레드 드래곤인 이그나투스의 힘만 하더라도, 자신의 스탯에 따라 강해지는 마당.
성녀의 레벨이 올라가면 갈수록, 블루 드래곤의 힘도 강력해질 것이 분명하니 파티의 멤버로써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그런 모든 것들을 감안했을 때.
“거절하지.”
정호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거절밖에 없었다.
“어,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루치아.
“흥.”
그런 그녀를 향해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잔다르크가 재차 쏘아붙였다.
“성녀라는 건, 원래 속이 시커먼 법이거든.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것은 분명 잔다르크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정호는 고개를 작게나마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감이야.’
정호는 성녀, 루치아를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
* * *
-후, 후회하시게 될 거에요.
떠나가는 루치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호는 눈을 흘겼다.
‘아스텔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군.’
오히려 그 점이 정호의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성녀의 출현과 퇴장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거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고작해야 하나, 둘이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레전드리 클래스가 벌써 나타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애초에 성녀의 출현 자체가 의문이었다.
자신이 손에 쥔, 용기사라는 레전드리 클래스를 얻는데에 필요한 조건은 분명 ‘10만 코인’. 그러고도 레드 드래곤, 이그나투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큰 허들이 존재했다.
성녀의 조건은 알 길이 없었으나, 같은 레전드리 클래스인 만큼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나타난 지 고작해야 한 달 만에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있을 수 없는 일인지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 성녀가 찾아온다고? 한국까지?’
레전드리 클래스인 성녀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 주목을 이끌고 있는 이가 한국이라는 작은 땅에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저인족들이 도사리고 있는, 심해까지 찾아온다는 것은 결단코 우연이 아니다.
‘성녀의 힘이겠지만, 의사소통의 문제도 없었고.’
루치아는 이탈리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은가.
‘화신의 힘에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사실상, 정호가 화신들을 모두 내놓은 채 아스텔 유저들을 맞이한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다.
하나, 하나가 아스텔의 최상위권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이들.
한데, 루치아는 그런 이들을 보고서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아무리 퍼즐을 어긋나게 놓으려 해도 정답에만 놓아지는 그 모습은 의문이 아니라, 의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저 녀석, 저대로 보내줘도 되는 거야?”
어느새 다가온 잔다르크가 정호를 향해 말을 내걸었다.
“확 교육이라도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니야?”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토해내는 말이 사뭇 살벌하기 그지없다.
헤라클레스조차 단 몇 분을 버티지 못한, 잔다르크의 교육을 루치아가 받는 것에 대해선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었지만.
“아니, 보내줄 수밖에 없는 거지.”
정호는 그에 고개를 내리 저으며, 입술을 비틀었다.
존재 자체가 의문 덩어리인 루치아가 어째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예상이 갔으니까.
‘아스텔.’
단언할 정도의 확신이었다.
톨비아의 시스템을 내버리는 대신, 막대한 보상을 약속한 아스텔.
다만, 정호는 이미 그런 제안을 거절한 이력이 있었다.
“뻔히 보이는 회유책이었어.”
그런 정호를 향해, 아스텔은 마지막 제안을 내건 것이다.
아스텔의 유저 중 하나인, 레전드리 클래스 성녀라는 먹잇감을 내던지면서 말이다.
‘괜히 건들 필요도 없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지.’
아스텔을 믿을 이유가 전혀 없는 정호에게 있어서는 ‘거절’은 선택이 아니었다.
다만,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후회를 한다고 하는 거지?’
계속해서 불안감을 재촉시키는 듯한 아스텔의 행동은 정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으니까.
‘톨비아의 동태도 이상하고.’
톨비아가 주어진 ‘부활’이라는 힘은, 단 한 번이라고는 하나 죽음으로부터의 거절을 이루어내는 일이다.
하필이면 다음 침공을 앞둔 상황에서, 정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침공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
차라리 침공이 찾아와, 이 초조함을 해소해주었으면 할 정도였다.
‘드레이크의 둥지 정도는 절대 아닐 거고.’
정호는 다음 침공에서 나올 법한 던전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그 불안을 잠재우고자 했다.
‘요정들의 숲도 그렇게 높은 난이도는 아니니까.’
그 다음으로 떠올리는 것은 무려 상위 유저들을 위한 터전이었으나.
‘큰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그조차도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오 성 등급의 화신들만을 지니고 있다고 하나.
충분한 도감작 아래에 쌓여 올려 진 화신들의 힘은 정호에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거인들의 도시’ 정도의 최상위 던전까지는 아닐 테니까.’
그 정도라면.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공략이 가능할 터다.
거기에 아스텔이 내건 제안을 거절했다고 후회할 일 따위는 없다.
띠리리리리-.
그런 정호의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아스텔의 목소리가 들린 이후로 한 시라도 떼어놓지 않았던 스마트워치에서 하나의 알림이 울려퍼졌다.
‘침공.’
침공일 때에만 울려 퍼지는 긴급 알람.
그것에 정호가 미소를 내지으며, 시선을 옮겼다.
어떤 던전이 찾아와도, 공략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서.
다만, 그 알림의 원흉을 바라보자마자.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
“...뭐?”
정호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그것은 단순히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이라는 것이 최상위의 던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천사들의 신전...”
정호는 계속해서 그 던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되뇌어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기억에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침공의 대상,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은.
“그게...뭔데?”
정호의 기억에 없는 던전이었으니까.
* * *
다음 침공이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임이 밝혀지자, 사람들의 열기는 꽤나 뜨거웠다.
-뭐야, ‘천신’이면 내가 생각하는 그곳 맞나?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나 하루 종일 던전 공부했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잖아 이건.
정호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주욱 읽어나가면서, 곤란함을 표했다.
“...뭐야.”
분명 자신의 기억에는 없는 던전 일진데, 인터넷 상의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눈치가 아닌가.
‘내가 바다 속에 있을 때 세상이 변하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천신이면, 이리엘의 공략이 꽤 까다로웠던 것 같음.
┖일정 이상 딜 넣으면, 무적 되는 패턴 때문이지?
┖┖ㅇㅇ. 딜찍이 안 되니까 더 까다로움
이미 공략법조차 알고 있다는 듯, 떠들어대는 댓글에는 정호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으니까.
하나,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침공은 천사들의 신전?]
[톨비아가 아닌, 아스텔의 던전이 나타나다]
[종말의 주체는?]
천사들의 신전은 톨비아가 아닌, 아스텔의 던전이었으니까.
정호는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던전은 정호가 상세히 알고 있는 톨비아의 던전들이었다.
게임에서도 족히 수십 번은 공략을 완료한, 이미 경험해본 것들.
그렇기에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스텔이면...’
광고 대행을 하며 아스텔에 대해 찬양하며, 떠들어대기는 했으나.
정호가 경험해본 아스텔은 고작해야 12레벨에 불과한 수준이다.
몬스터 몇 마리를 잡아 본 것이 전부인 정호에게 있어서 ‘던전’이란 거리가 먼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 한다면, 저 천사들의 신전이라는 던전이 대다수의 아스텔 유저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천사들의 신전이면, 레벨 100정도의 파티 던전이잖아. 지금 랭커 정도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듯.
그 말인 즉, 던전의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것과 의미가 같았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호의 얼굴이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지금 유저들이 떠들고 있는 천사들의 신전과, 침공 대상으로 떠오른 던전의 이름이 미묘하게 다르지 않은가.
-멍청이들아. 그냥 천신이 아니라, 타천신이잖아.
답답하다는 듯, 떠들어대는 댓글처럼.
던전의 이름은 ‘타락한 천사들의 신전’.
정호의 입술이 비틀렸다.
‘후회할 거라고.’
괜히 아스텔의 말과, 성녀 루치아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