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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05화 (106/144)

< # 105화 >

# 105화

촤아아아아악-.

물살을 세차게 가르며, 날아오는 대검에 실린 위력은 지난 적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까아앙.

그것을 정호가 검을 들어 막아 세우기는 했으나.

저릿저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하마터면 검을 놓을 뻔했다.

“이번에는 상당히 좋았어! 한 번 더!”

하지만 상대는 그런 정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대한 대검을 순식간에 회수하는가 싶더니 재차 내리치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카앙-!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아예 검 그 자체를 집요하게 노리고 날아오는 검격.

“크윽...!”

그것을 이를 갈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정호라고 마냥 그 공격을 받아내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카앙-!

‘한 번, 단 한 번이면 돼.’

정호는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저 거대한 검으로 어떻게 저리도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지는 모르는 노릇이었지만.

아무리 견고하고 탄탄한 검술이라 할지라도, 빈틈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쉐에에에엑-.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둘...까!”

다시금, 한 차례 막아세우고 있는 검을 향해 날아오는 일격.

그것에 정호가 눈을 빛냈다.

상대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탓인지, 조금은 큰 움직임을 펼치고 있었다.

‘틈...!’

그래봐야 아주 미세한 틈에 불과했으나, 잠자코 검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상대에게 있어서 이 만한 기회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촤아악-.

이윽고, 머리 위에 들어 올리고 있는 검을 향해 내리꽂히기 직전.

정호는 무릎을 살짝 굽히고서, 검을 살짝 뒤로 물렸다.

얼핏 본다면 상대에게 주도권을 쥐어주는, 오히려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움직임이었으나.

채애애앵-.

“어?”

검끼리 맞붙어 내는 소리가 기묘하다는 것을 상대도 알아차리고는 의문을 흘렸다.

스르르릉- 채앵- 타앙!

사선으로 그어내듯이, 상대의 검을 흘려버리고는 순식간에 밀어낸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상대의 일격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순간.

다만, 정호는 그에 그치지 않은 채.

쉐에에에에엑-!

흘려버린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런 정호의 검이 상대의 목에 닿기 직전.

“한 판!”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심판, 이그나투스가 손을 들어 끝장내려는 정호의 검을 막아 세웠다.

털썩.

정호는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검을 내던지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하아...!”

어찌나 숨을 참고 있었던 것인지, 가쁜 숨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이야. 주인, 이 누님은 상당히 놀랐다고. 패링은 언제부터 할 수 있었던 거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잖아.”

“잔재주야.”

정호의 대련 상대였던, 아틸라는 아직까지도 검의 감촉이 느껴지는 것인지, 목에 손을 대며 고개를 흔들었다.

상당히 과한 반응이었다.

“그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애당초 오 성 등급인 아틸라와 삼 성 등급인 정호의 차이는 단순한 스탯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명실상부 영웅의 반열에 든 이.

그런 이가 정호가 펼치는 검술에 당해줄 리가 만무했다.

그것도 이 성 등급인, ‘유능한 용병’의 기억에서 훔친 패링으로 말이다.

“아하하.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는걸.”

시치미를 떼는 아틸라의 반응으로 보았을 때에는 확실해보였다.

‘나쁘지는 않군.’

다만, 정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내지었다.

처음 아틸라와의 대련을 시작했을 때.

손도 발도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정말이지 비약적인 성장이나 다름없었다.

‘단순한 스탯으로는 못할 경험이긴 해. 하지만...’

물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익숙해지고는 있었으나.

초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게.

‘한 달.’

곧장 새로운 침공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세상은 평화로움을 간직 한 채, 한 달에 가깝게 시간이 흘러갔으니까.

한 마디로,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뽑기를 하지 못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끄응...!”

정호는 도박중독자가 아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가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손이 간지럽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평화로움이 폭풍전야와도 같은 불안감이 떠올랐던 탓일 뿐이다.

‘땀을 흘리니 어느 정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법일까.

시작은 단순히 불안을 없애기 위한, 단순히 머리를 비우기 위해 시작한 대련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찾았다.

“대련은 끝이 나신 모양이군요.”

“그래. 매번 고맙군.”

“무얼요. 저희야말로, 영웅님께서 찾아오시니 기쁠 따름이지요.”

자신을 향해 말을 내거는, 저인족의 지도자 ‘리앙’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저인족들은 ‘크라켄의 역습’이 퇴각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바다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심해만큼 수련하기 편한 곳이 없네.’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조용하기까지 한 심해는 대련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그럼, 조금 더 빌리도록 하지.”

“동족들이 근처에 있지 않도록 할게요.”

정호는 뽈뽈대며 떠나가는 리앙을 바라보다, 기다리고 있는 화신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굳이 심해까지 정호가 찾아오는 까닭.

그것은 고작해야 아틸라와의 대련을 위해 찾는 일은 아니었다.

대련 정도라면 인적이 드문, 가까운 산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그나.”

“아... 오늘도 하는 거야?”

곧장 레드 드래곤, 이그나투스를 부르자 질색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절그럭.

“음. 주인, 이 녀석도 교육이 필요한 것 같은데?”

“누나. 이번에는 나도 하게 해줘.”

“넌 아직 멀었어.”

물론 이그나투스가 거절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알았어. 할 게. 하면 되잖아.”

어쩔 수 없다는 듯, 투덜거리는 이그나투스는 곧장 자신의 몸에서 불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부글부글부글.

바다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화염.

그와 동시에 이그나투스의 작은 형체가 점차 커지는가 싶더니.

-다시 말해두지만, 나는 몬스터가 아니야. 알아 뒀으면 좋겠어.

완전히 드래곤화가 된 이그나투스의 말이 심해 속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따위 말이 정호의 귓가에 들려올 리가 만무했다.

정호가 굳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심해까지 찾아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냥 준비.”

다음 던전의 공략 준비였다.

-몬스터...아니라니까.

* * *

톨비아에서는 셋 이상의 화신을 소환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애초에 소환할 수 있는 수 자체가 적다보니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일은 대부분 유저들끼리의.

파티 이상은 되어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었을 때의 이야기 일 뿐이다.

‘소환 화신만 넷.’

정호는 이미 넷 이상의 화신을 소환할 수 있는 마당이다.

연계 스킬이 있는 앤 보니와 메리 리드를 소환한다면, 다섯.

벨라미의 ‘파이렛 어셈블’을 사용한다면 수 없이 많은 화신을 이용할 수 있는 마당이다.

그런 수의 화신들을 한 번에 이용한다는 것은 임기응변으로는 무리인 법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정호가 쟁취한 레전드리 클래스, ‘용기사’의 효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

이그나투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브레스.

제아무리 본신의 힘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드래곤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권능이다.

그런 공격을 이루어낼 수 있는 몬스터는 상위 던전에서나 등장하는 녀석들 뿐.

훈련을 하기에는 꽤나 적합한 상대가 아닌가.

“디펜스!”

정호는 녀석의 브레스를 막아 세우면서도, 화신들에게 즉각적인 명령을 내렸다.

“신성비호!”

“아발론의 성역!”

이미 한 달에 가깝게 호흡을 맞춘 덕분일까.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스킬을 사용하는 화신들의 모습.

특히나 새롭게 참가한 잔다르크와 멀린은 이상적인 형태였다.

[신성비호]

-아군에게 신성가호를 부여하여, 피해를 무효화하는 보호막을 생성한다.

-종류와 관계없이, 주변에 ‘성역’이 선포되어 있다면 보호막을 받은 아군은 일정 시간 동안, 체력을 회복한다.

‘화신들끼리의 시너지까지.’

톨비아 시스템 내에서, 화신과 화신들끼리의 연계 효과가 이루어지는 일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더불어.

“누나, 고마워요!”

“제대로 일 하기나 해.”

“아, 넵!”

강력한 힘에 비해, 체력이 한참이나 모자란 헤라클레스는 그런 보호막을 덕분에 이그나투스의 깊숙이 침투할 수 있지 않은가.

꽈아아아악-.

애초에 순수한 힘 스탯만 하더라도 ‘200’을 넘어서는 헤라클레스다.

도감작과 함께 모든 스탯을 받은 녀석은 이미 ‘300’이 넘어선 마당.

그런 헤라클레스가 드래곤의 꼬리를 덥석 붙잡자.

-아악. 아파. 아파.

이그나투스로부터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다만, 헤라클레스의 힘은 고작해야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힘의 권능.”

현 시점.

헤라클레스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스킬, 힘의 권능.

하나의 스탯에 제한하여, 증폭시키는 단순 자가 버프 수준에 불과했으나.

불끈, 불끈.

헤라클레스가 신의 자식임을 증명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단숨에 늘어난 힘의 스탯은 ‘900.’

그것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고작해야 오 성 등급의 화신이 가질 만한 스탯은 결단코 아니었다.

후우우우웅-.

쾅!

거대한 드래곤의 형체를 가진 이그나투스가 마치 종이짝처럼 뒤집어져, 바닥에 내리 꽂혔다.

‘미쳤군.’

1군으로만 이루어진 대 보스전의 연습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제아무리 그렇다 한들, 드래곤인 이그나투스를 이토록 쉽게 제압한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수고했다.”

어느새 인간의 형태로 돌아온 이그나투스에게 다가간 정호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녀석은 충격이 상당했는지, 평소 같으면 대뜸 화를 낼 법도 했건만 침묵을 지켰다.

‘너무 심했나?’

사실 이번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가장 고생을 한 이가 있다고 한다면 이그나투스 일 터다.

정호는 그 동안 수많은 조합을 이용하여 이그나투스를 제압했다.

물론 이그나투스는 단단한 비늘을 지니고 있는 탓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드래곤의 자존심으로 패배를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것은 실로 큰 굴욕일 터.

“아니...괜찮아. 어차피 본 녀석도 없으니까.”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드래곤의 자존심이란, 어쩜 이리도 옹졸한 녀석인지.

목격자만 없다면 괜찮다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이 특이한 건가?’

로드라는 특성인 탓에, 다른 드래곤보다도 더욱 주변을 신경 쓰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주의해줘.”

이그나투스는 혀를 한 번 삐죽 내미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만약에라도, 다른 드래곤이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진짜 나. 이거 깨물어버릴 거니까.”

실로 어처구니없는 자존심.

하나, 정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애당초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던전에 있을 것이 분명하고.

설사 레전드리 클래스에 또 다른 드래곤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이런 심해까지 찾아올 리가 만무했으니까.

다만 세상에는 절대라는 건 없는 법인 모양이다.

-...어머, 언니.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

그에 고개를 치켜드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 이그나투스는 여기 있을 진데.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거대한 푸른빛의 드래곤이 심해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잠깐...”

갑작스런 사태에 불현 듯, 불안감이 떠오른 정호.

곧장 시선을 아래로 내려, 흙먼지를 뒤집고 쓰고 있던 이그나투스의 방향으로 돌렸다.

“주인. 안녕.”

최악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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